張誠珉前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의 盧武鉉 통치행태 분석 : 월간조선

盧武鉉 참여정부의 정치체제는 어떤 유형의 체제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잡종체제」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잡종체제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 얼핏 행실이나 사고가 바르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여러 가지 쓸데없는 생각(雜念·잡념)을 갖고, 쓸데없이 하는 말(雜談·잡담)로 국민들에게 민폐나 끼치면서, 엉뚱하고 방해만 되는 시끄러운 소리(雜音·잡음)만을 전달하면서 국민들에게 이런 저런 스트레스와 雜病(잡병)만을 유발시키는 정치체제를 의미한다.

둘째, 민주화 이후 신생 민주주의 국가가 그 다음 단계인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로 진입해 들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권위주의 체제로 다시 회귀하거나 혹은 자유민주주의로의 진입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아직은 불완전한 자유민주주의 상황에 놓여 있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럴 경우 그 나라의 정치체제는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 놓여 있는 일종의 정치적 잡종체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필자가 盧武鉉 체제를 잡종체제로 규정하는 기준은 전자보다는 후자의 의미에 좀더 역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후자보다는 전자의 의미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해석하려는 경향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독자들이 어떤 쪽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이 글을 읽든지, 필자는 이 개념만큼 참여정부의 정치체제적 성격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개념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盧武鉉 정권은 정체성 없는 雜種체제

우선 盧武鉉 정부의 정체성을 분석해 보면 왜 잡종체제인지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지역·계급·계층·이념·세대 등의 기준으로 이 문제를 살펴보자.

첫째, 지역적으로 다수의 호남사람들은 盧武鉉 정부를 PK(부산·경남)정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반면, PK지역 사람들은 盧정권을 호남정권이라 생각한다.

둘째, 계급적으로 다수의 노동자는 盧武鉉 정권이야말로 親재벌정권이고 삼성공화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반면, 전경련을 비롯한 다수의 재벌들은 親노동자 정권으로 생각하고 있다.

셋째, 이념적으로 북한은 盧武鉉 정권을 親美(친미)정권으로 생각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親北(친북)정권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넷째, 세대적으로 젊은 유권자들은 盧武鉉 정권이 젊은 신세대들을 대변하기 보다는 보수 중산층들을 대변하는 정책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반면, 나이든 보수 중산층들은 「386 젊은 사람들이 집권해서 지금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상의 네 가지 현상만 보더라도 盧武鉉 정부가 확실한 국정운영에 대한 철학이나 정체성이 없는 일종의 잡종체제임을 알 수 있다.

全斗煥 정권과 민정당도 경험하지 못한 혹독한 참패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盧武鉉 민주당 후보를 16代 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써 지역주의 청산과 개혁정치 그리고 한 단계 성숙한 민주적 의회정치의 場(장)이 펼쳐지길 기대했었다. 여기에 3金식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권위주의 정치의 유산까지 말끔하게 씻어 내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공고화까지를 간절히 바랐었다. 특히 이런 바람과 열망의 강도는 젊은 유권자들일수록 높았다.

그래서 2004년 3월12일, 야당이 盧대통령의 위헌적 행위를 경고하면서 탄핵을 단행했을 때도 국민들은 대통령편에 서 있었다. 이런 민심의 반응은 2004년 4·15 총선 결과에 잘 반영되었다.

그러나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했던 시점에서 벌써 2년이 지난 지금, 민심의 時針(시침)은 어떤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을까? 그 일단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신뢰할 만한 잣대는 아무래도 지난 5·31 지방선거 결과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5·31 지방선거는 여당에 사상유례 없는 大참패를 안겨 준 선거였다. 여당이 이렇게까지 선거에 참패한 것은 朴正熙(박정희) 前 대통령이 암살당한 이후, 全斗煥(전두환) 중심의 新군부 세력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창당한 민정당조차 경험해 보지 못한 혹독한 결과였다.

반면, 2년 전에 대통령을 탄핵했던 야당에는 지방권력을 독식해도 무방하다고 할 만큼 맹목적 지지를 보냈다. 여당에 대한 반감이나 심지어 증오에 비례해 야당에겐 「묻지 마式」 정치적 자비와 관용을 조건 없이 베풀었다. 그 결과 한나라당은 지방권력을 「싹쓸이」 했다.

盧武鉉 정부 여당은 왜 과거 新군부 정당도 경험하지 못했던 이런 처참한 심판을 국민들로부터 받게 되었을까? 혹시 5·31 지방선거의 결과는 盧武鉉식 국정운영에 대해 우리 국민이 내린 「최후의 심판」은 아니었을까?

盧정권의 참패 요인으로 많은 사람들은 정권의 오만과 편견, 국정운영의 아마추어리즘, 분열주의, 집권 다수당의 횡포, 독선적 사고, 私的(사적) 재산권을 침해하는 세금정책과 부동산정책, 국민의 상식에 반하는 역발상, 주변 동맹국들과의 외교적 갈등 등을 꼽고 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 지난 5·31 지방선거 결과로 표출된 것이고, 이는 사실상 「성난 민심에 의한 대통령 탄핵」으로 명명되었다. 이로써 盧대통령은 임기가 끝나기 전에 벌써 두 번이나 탄핵을 당하는 우리나라 헌정史 초유의 기록을 갖게 되었다.

이 두 번의 탄핵은 한 번은 의회로부터 받은 탄핵이고, 또 한 번은 국민으로부터 직접 받은 탄핵이다. 이런 충격의 물결이 민심을 먹고 생존하는 여당 국회의원들에게까지 확산된 결과였을까? 집권 여당 의원들조차 자신들이 출범시켰던 정당을 해체하는 것이 민심수용의 길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지금 집권당은 일종의 정치적 IMF 위기를 맞고 있다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지방선거 결과를 집권당 해산명령과 정치적 환난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盧武鉉「개혁독재」에 내려진 사망선고

2004년 11월11일 집권당의 총수인 盧武鉉 대통령은 열린당 창당 1주년 기념식 축하 메시지를 통해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자」고 역설했다. 盧대통령은 당시 축사에서 『모든 당원이 하나 되어 참여 민주주의의 모범 정당을 만들고, 의회민주주의를 선도하는 원내정당, 책임 있는 정책정당이 되도록 힘을 모으자』고 방향을 제시한 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성공한 정당을 만들어 보자』고 했다. 그리고 盧대통령의 100년 가는 정당 만들기 대열에 자발적으로 동참한 집권 여당 대표는 여당의 100년 정당화를 마치 정치적 상속자처럼 강조하고 다녔다.

그러나 집권여당이 출범한 지 불과 3년이 지난 지금 「100년 정당을 만들어 보자」고 역설했던 그 대통령은 여당 내부로부터 출당 조치당할 비판적 상황에 몰려 있고, 자신의 당적 보유를 비롯한 거취문제까지 고민해야 할 위기를 맞고 있다.

대통령의 100년 지속 정당 발언을 마치 정치적 유언을 약속받은 것인 양 내뿜고 다녔던 집권당 대표는 지난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조차 유지하지 못한 채 당 밖으로 물러나 있는 상황이다. 당 내부에서는 차기 大選 후보조차 내세울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란 비판이 일고 있다.

그럼 우리 국민들은 왜 盧武鉉 참여정부에 대한 역사적 심판에 전폭적인 동참을 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야당에 몰표를 몰아 주고 여당에는 「종이 돌」을 던졌을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낮아서 그랬던 것일까?

盧대통령의 정치 참모가 주장한 것과 같이 정말로 대통령의 정치적 의식 수준은 21세기를 향하고 있는데, 우리 국민들의 정치 수준은 독재시대를 맴돌면서 대통령의 높은 정치적 의식수준을 따라 잡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 국민들이 민주주의보다는 야당의 일당 독재화를 다시 그리워했기 때문일까?

국민들이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盧武鉉식 개혁정치에 확실한 사망선고를 내리고자 결심하고 행동에 나선 그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세상을 뒤엎는 盧武鉉식 「개혁독재」를 해체시켜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국민들은 맨 처음 盧武鉉 정부가 개혁을 외칠 때 이것이 무엇을 위한 개혁인지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무엇인가 잘 해보려는 취지에서 개혁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려 노력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보수적 反盧진영과 진보적 反盧진영에서는 盧武鉉 정부의 개혁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2004년 4·15 총선에서 승리해 환호하던 열린당은 2년 후에 실시된 5·31 지방선거에서 유례없는 패배를 맛보았다.

보수층, 대한민국 국가정체성 파손에 경악

보수적 反盧진영은 盧武鉉 정부의 개혁이 국가를 해체시키고 국민을 분열시키며 국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성토하기 시작했고, 이 정부의 개혁정책이란 결국 국가생존을 위협하는 정치적 행위에 지나지 않음을 인지했다.

盧대통령이 참여정부의 정치적 정체성을 「左派(좌파) 新자유주의」로 정립하고 나선 시점에서는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의 근본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하게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보수적 反盧진영은 오직 자신들의 생각을 표출할 수 있는 「그날」(투표일)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이들이 느끼게 된 체제위기는 「어쩌면 나라를 공산정권에 넘겨 줄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만큼이나 절박한 수준이었다. 5·31이 되자 보수적 反盧진영은 盧武鉉 정권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들어 나라를 무너뜨리기 전에 자신들이 그 정권을 먼저 흔들어 무너뜨려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투표장으로 향했다.

그 결과 사상 유례 없는 대참패를 집권여당에 안겨 주었다. 투표장으로 향한 유권자들의 심리에서 드러난 이번 선거의 특징은 어떤 후보를 먼저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호감적 투표를 하기 위한 것보다는, 어떤 정당의 어떤 후보를 먼저 떨어뜨릴 것인지를 생각하고 투표장으로 향한 非호감적 투표였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 국민은 『국민을 향해 데모를 하고 있는 정부』에 투표로 데모를 했다. 다만 진짜 돌 대신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 내에서 허용된 투표용지라는 「종이 돌」을 던졌을 뿐이다.

반면, 진보적 反盧진영에서는 50년 만에 획득한 민주화 세력의 지평을 하루아침에 극소화시켜 민주화 세력의 씨를 말리는 역풍을 몰고 왔다는 혹독한 비판이 쏟아졌다.

거대한 민주세력 진영의 해체, 국정운영 능력의 미숙과 철학의 不在(부재), 원칙의 침몰, 비전의 실종, 전략의 함몰, 능력의 不在 그리고 민주적 제도의 공고화를 방해하는 훼방꾼, 한나라당과의 大연정 제안으로 인한 민주적 정체성 상실, 지역주의의 세분화, 양극화 전략으로 인한 계층·계급갈등의 심화 등 참으로 민주 개혁세력을 대변한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미숙하고 무능한 리더십으로 일관했다.

스스로 국정운영의 大혼란을 유발하고 『민주세력의 씨를 말렸다』는 점에서 「盧武鉉식 개혁」이란 표현은 앞으로 「朴正熙식 독재」란 표현보다 더욱 혐오스러운 용어로 불리게 될 것이다.

盧武鉉과 金泳三

金泳三 정권 때는 경제적 위기, 즉 IMF 외환위기를 몰고 왔지만 盧武鉉 정권 시대에는 「정치적 환난」, 「정치적 IMF」, 「정치적 빅뱅」이 초래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盧武鉉 정권이 역사에 남긴 최대한의 역설적 기여(?)는 민주화 세력을 무능한 집단으로 낙인시켰다는 점이며, 민주화 세력의 정치적 정체성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려 버렸다는 점이다.

盧대통령은 공교롭게도 민정당과 시대적 야합을 한 金泳三前 대통령과 매우 유사한 정치노선을 밟고 있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은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의 정신으로 창당했다』고 주장한 자신의 창당 정신의 기초까지 허물어 버렸으며, 盧武鉉 정당 지지자들로 하여금 좌절의 쓰라림을 갖게 만들었다. 사실상 민주적 정체성에 대한 포기성명이나 다름없었다.

그 어떤 정권보다 젊은 정치인들의 열정을 폭넓게 반영하는 정권임을 강조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어설픈 철학과 정치적 자질을 갖춘 젊은 지도자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망칠 수 있다」는 불신과 불안감을 국민에게 심어 주었다. 특히 李承晩·朴正熙·全斗煥·盧泰愚 보수정권들보다 더 확실히 『보수의 지평을 확장시켜 놓았다』는 점은 그의 역설적 업적이다.

마치 뜻은 좋았으나 능력 미숙과 무능으로 국정을 이끌어 나가지 못한 제2공화국 張勉 정권이 5·16 군사 쿠데타를 유발했듯이, 盧武鉉 정권의 무능 또한 사상 유례 없는 보수화의 大흐름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로 하여금 부패한 保守 집권세력들보다는 무능한 개혁세력들이 훨씬 위험하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고, 張勉·金泳三·盧武鉉으로 이어진 문민 3大 무능정권의 낙인을 국민들에게 강하게 심어 주고 있다.

盧武鉉 정권은 張勉 정권과 많은 점에서 비견된다. 盧武鉉 정권은 힘겹게 획득한 민주화 세력의 국정운영 기회를 너무 허망하게 놓친 실패한 리더십이란 점에서 張勉 정권과 함께 유사성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한 민주론자라는 평가와 더불어 「위기 초래형(盧武鉉 정권)」 혹은 「위기 도피형(張勉 정권)」 지도자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張勉 정권이 권력의 윤리성과 민주성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리더십의 효율성을 살리지 못한 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면, 盧武鉉 정권은 권력의 윤리성과 민주성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은 나머지 리더십의 효율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차이는 크다.

盧武鉉은 「개혁」을 내걸고 金泳三의 옷을 입은 全斗煥식 독재의 길을 가고 있다.

盧武鉉 정권과 張勉 정권

민주화의 열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5·16 「군사 쿠데타」를 초래한 것이 張勉 정권의 최대 과오였다면, 민주주의의 작동원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5·31 「유권자 쿠데타」를 가져온 것이 盧武鉉 정권의 치명적 실정인 것이다.

분명 민주성은 지도자가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 중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민주적 덕목이 지도자의 무능과 실패까지를 변호하거나 대체해 주지는 않는다. 지금 盧武鉉 정권은 「민주성」과 「효율성」이란 두 가지의 리더십 덕목을 모두 갖추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 양자를 현실에 적응시킬 수 있는 전략과 수행능력도 갖고 있지 못하다.

효율성을 낳지 못한 껍데기만의 민주는 무능한 정부를 만들어 독재를 유혹할 수 있다. 효율적 독재가 非효율적 개혁이나 민주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사회적 여론을 환기시키고 있다. 盧武鉉 정부는 지금 독재에 대한 향수를 우리 정치사회에 짙게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싹쓸이 한 「지방정권의 일당독재화」 현상이다.

지금 보수적 反盧진영은 盧武鉉식 개혁독재를 막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유사 공산주의 체제로 변질 혹은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지금 진보적 反盧진영은 민주개혁적 정체성이 상실되고 민주주의의 심화가 아니라 오히려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유혹하고 있는 현상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한국 역사상 한 번도 손잡아 본 적이 없는 보수와 진보 간의 反盧「적대적 제휴」인 것이다.

국민들이 5·31 지방선거에서 盧武鉉식 개혁정치에 사망선고를 내린 두 번째 이유는 盧武鉉 정권의 문민독재式 정당운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이다.

盧武鉉 정부는 참여정부를 표방했다. 그래서 많은 유권자들은 과거 어떤 정권에서보다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 폭넓게 반응하고 참여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었다. 의사결정 방식도 매우 민주적인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 3金 정치와는 확연히 차별성을 유지해 갈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민주화 이후 세 번째 민주 정부답게 좀더 높은 수준의 책임성과 법의 지배·참여·대표성·투명성, 그리고 정부의 정책수행 능력을 提高하는 민주적 거버넌스가 헌법과 대표체계內에 잘 제도화될 것으로 생각했다.

全斗煥식 일방주의 통치

그러나 盧武鉉 정권은 「개혁」과 「민주성」이라는 외형적 체제의 틀을 빌려 모든 것을 배제했고 배척했다. 마치 영화 「왕의 남자」에서의 왕(연산군)처럼 분열과 독선적인 정당운영을 펼쳤다. 모든 정책은 「막가파式」으로 발표됐고, 과거 민정당 시절의 일명 「全斗煥 방식」의 상명하달式 의사전달 체계가 주조를 이뤘다.

야당과의 정책집행 협의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을 떠받치고 있는 집권당의 입장이나 의견이 거의 무시되었다. 참여와 개혁정부란 미명下에 절차적 민주성이나 참여는 봉쇄됐고, 차단되었다. 한 진보학자의 주장처럼 朴正熙·全斗煥 정권이 「개발독재」였다면, 盧武鉉 정권은 「개방독재」였던 셈이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포함해 FTA 문제, 경제 양극화 해소 정책, 非정규직 문제, 교육 문제, 駐韓미군기지 이전 문제, 부동산 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책은 일방주의 방식으로 발표되고 진행되었다. 정권의 몸통과 체제의 외형적 모습은 金泳三식의 민주적인 색깔의 옷으로 포장되었지만, 통치행태와 정당운영의 사고방식은 全斗煥식의 일방주의적 통치 패턴을 답습했다.

더욱이 사회적 참여를 극대화시키겠다는 취지下에서 출범했던 참여정부에서 자신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참여할 수 있는 직접적 공간은 조그마한 틈조차 없었다. 단지, 필요하면 자신의 정책에 당과 시민이 알아서 참여하고 알아서 귀 기울이라는 오만한 태도는 「책임 참여제」보다는 「방임적 소극 참여제」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민주적 정당운영 방식과는 거리가 먼 권위주의적 정당운영 방식에다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정당운영 구조를 수립하여, 당정 간의 갈등을 증폭시킨 것은 다반사였다. 이로 인해 여당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불평을 키워 나갔다. 그 결과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정책 선호가 완전히 차단된 정당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지자들 또한 자신들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정당정책에 지지를 철회했다. 결국 다수의 유권자들과 지지자들은 집권 여당에 대한 투표 불참행위를 선택한 것이다.

「국민이 나를 따라야 한다」는 생각

2002년 12월19일 밤 대통령 당선 직후 柳時敏 의원이 대표로 있던 개혁국민정당 사무실을 찾은 盧武鉉 대통령이 샴페인 병을 번쩍 들어 마시고 있다.

盧武鉉의 정치인생은 5共 청문회장에서 全斗煥씨에게 명패를 던지면서부터 시작됐다. 정치란 정적과 싸우면서 정적을 닮고 배운다는 말이 있다. 全斗煥 정권은 자신에 대한 반대세력을 키우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결국 자신을 반대하는 언론을 통폐합했다. 盧武鉉 정권 역시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들을 적대화시키고 인터뷰를 거부하는 등 다소 어폐는 있지만 「문민 全斗煥 체제」로 조금씩 진입해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민들이 盧武鉉식 개혁정치에 사망선고를 내린 세 번째 이유는 국민의 정적화와 동맹국의 적대화 정책을 철수하라는 명령이었다.

국민은 盧武鉉 정권이 참여정부가 아니라 국민의 생각과는 반대방향으로 질주하고 엇박자를 놓는 역주행 정권 혹은 역발상 정권으로 생각한다.

정치의 기본상식에 따르면 정치의 기본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권을 지키고 보호하는 데 있다. 그런데 지금 盧武鉉 정권은 이 상식에 일대 혼란을 야기 시키고 있다. 또한 정치란 지도자가 국민의 뜻을 잘 받들고 모시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盧武鉉식 정치는 국민이 지도자의 생각을 잘 파악하여 각자 알아서 지도자가 말하는 대로 따라올 것을 요구하고 있다.

盧武鉉식 정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지도자에 의한, 지도자를 위한 역발상의 정치」를 의미한다. 그래서 국민이 대통령을 이해해 주고 따라와 줘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 자신이 하는 것을 국민이 동의하지 않고 비난하면, 자신도 국민의 생각과 반대방향으로 질주하고 국민을 야유하며, 국민에게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고 비아냥거린다.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사상 유례 없는 참패를 당했음에도 盧대통령은 이렇게 반응했다. 『선거에서 패한 게 내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한두 번 선거로 나라가 잘 되고 못 되는, 어느 당이 흥하고 망하고 그런 게 민주주의는 아니다.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수준이 있고, 제도나 의식·문화·정치구조 등의 수준이 그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민심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서, 그 나라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그 나라 의식이고 문화이고 제도이고 정치구조란다. 국민들의 여론과 민심이 그 나라의 문화·의식·제도·정치구조를 반영하지 않거나 반영하지 못하는 별개의 존재란 말인가?

그 나라의 문화와 의식과 제도는 어떻게 형성되고 누가 움직인다는 것인가? 가만 놔둬도 저절로 형성되고 작동된다는 말인가? 이쯤 되면 민주주의의 작동원리에 대한 盧대통령의 인식수준은 거의 폭력적인 무지의 단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정치학자가 아니라 일국의 지도자다. 민주사회에서 국민 앞에 비전과 목표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하여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 내야 할 지도자이다. 그리고 민주사회에서 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선거를 통해 이뤄진다.

국민을 야유하고 비아냥 거리는 盧대통령

그가 선거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고, 그 실패의 일차적 원인이 자신의 失政(실정)과 失言(실언)이었다면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일국의 지도자로서 어떻게 이런 발언을 할 수 있을까?

선거에서 패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운영이나 국정운영에 중요한 원칙과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까? 선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민심에 별로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국민을 무시해도 좋다는 말이다.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담한 패배를 맞은 것은 소위 「참여정부」가 민심을 무시하고, 민심에 거스르며, 민심에 역류하는 정치를 해왔기 때문인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아직 민심이 중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혹시 참여정부는 겉으로는 시민적 참여를 강조하는 외형적 정치틀을 국민 앞에 민주적으로 포장하여 제시해 놓고, 실제 내용적으로는 스스로 왕이라고 참칭하는 군주, 즉 僭主(참주)정치를 꿈꾸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선거패배로 여당의 지도부가 해체되고 총사퇴를 하는 혼란 상황을 맞아 당명을 바꾸고 당을 해체해야 한다는 소속의원들의 아우성치는 소리가 터져 나와도 대통령은 「케 세라 세라」다. 그러면서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가 정치를 하는 동안 순풍(정치에 입문할 때인)은 13代(총선)뿐이었다. 호남당 했다고 선거에서 떨어지고 항상 역풍 속에서 선거를 치렀고 대통령 선거 그 해에도 마지막 20일까지 역풍 속에서 헤맸다』고 말했다.

이 말은 자신의 정치 역정은 순풍보다는 항상 역풍 속에서 성장해 왔음을 시사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 패배에도 크게 개의치 않겠다는 것이다.

여당은 쑥대밭이 되어 지지도가 거의 10%대로 추락했고,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헤어날 길을 찾지 못해 수렁에 빠져 있을 때 집권 여당의 상징적 총수란 대통령은 누에고추가 실을 내뿜듯 계속해서 失言 행진을 하고 있다. 「국민의 친구」와 「公共(공공)의 하인」이 되어야 할 대통령이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국민을 敵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선거 직후 가진 한 방송사의 여론조사 응답자 가운데 50%가 『열린우리당의 선거 패배의 일차적 책임이 盧대통령의 국정운영 실패에 있다』고 답했다. 국민의 절반이 「대통령 책임」을 묻고 있는데도 선거결과를 나몰라라 하는 盧대통령의 행태에서 이런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지도자(군주)가 되는 네 가지 방법으로, 첫째 자기 능력에 의해서 되는 것, 둘째 운이 좋아서 되는 것, 셋째 흉악한 폭력에 의해서 되는 것, 넷째 시민들의 부름에 의해서 되는 것을 들었다. 마키아벨리가 살아 있었다면 아마 盧대통령은 두 번째 유형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했을 것이다.

盧대통령은 말의 역주행뿐만 아니라 정책과 정부운영에서도 역주행함으로써 국민을 敵으로 만들고 있다. 정책과 국정운영의 역주행은 강남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세금폭탄을 퍼부었지만, 오히려 강남의 집값 상승을 더욱 부채질한 결과를 낳았고,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에 갈수록 불참 국민들이 많아지고, 개혁 민주세력에 대한 보수주의 인사들의 도전만 거세지는 현실에서 잘 드러나 있다.

새로운 균형을 찾아서

필자는 盧武鉉 체제를 잡종체제라고 규정하면서 이 글을 시작했다. 앞에서 지적했지만, 盧武鉉 정권이 이 시대에 가져온 최대의 역설이자 희극이자 비극은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심화를 향해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할 우리 사회에 보수화 물결을 출렁이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물론 성숙한 사회는 「보수」와 「진보」 양 날개가 균형잡힌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의 보수화는 균형을 상실한 채 급격히 터져 나오고 있다. 마치 朴正熙·全斗煥 군부 권위주의 체제下에서 민주화세력이 급속히 확산되었던 것과 같은 속도와 격렬함 못지않게, 盧武鉉 정권下에서는 보수주의 인사들의 정치 세력화가 급팽창하고 있다.

개혁 민주세력임을 자임하는 盧武鉉 참여정부는 개혁 민주세력들의 정치참여를 좌절시킨 대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보수 정치세력들의 정치참여 열기를 뜨겁게 고조시키고 있다.

盧武鉉 정권은 과거 군부권위주의 정치下에서 국가의 동원에 의한 참여에 익숙했었던 소극적 보수세력들을 자발적·적극적 정치 참여자로 변모시킨 반면, 과거 권위주의 체제下에서 적극적 정치참여자들이었던 민주인사들은 오히려 정치불참 세력화시키거나 아니면 정치적 방관자들로 만들고 있다.

필자는 다른 어떤 것보다 이러한 사회적 균형의 상실이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치유하기 힘든 깊은 균열을 만들어 내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盧武鉉 대통령이 가장 우선적으로 인식해야 할 교훈은, 『썩은 새끼줄로 여섯 필의 말이 이끄는 수레를 부리는 것처럼 조심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백성을 섬기지 않으면 백성은 원수가 되어 원한을 갖게 된다』는 공자의 말이라 생각된다.

이는 「逆天者(역천자)는 忘(망)하고 順天者(순천자)는 興(흥)한다」라는 평범한 진리의 변인 것이다. 국민의 상식에 기초하지 않고 역발상과 역주행의 국정운영을 지속할 경우, 이 또한 망하게 되어 있다.

이제부터라도 국민을 향한 독선·독단·독주·독설의 「사독주의」式 중독정치를 포기하여 국민으로부터 毒杯(독배)를 받아 마시는 愚(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