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고] 軍을 대상으로 한 革命的 정치실험을 우려한다 : 월간조선

月刊朝鮮 2005년 7월호에 「軍法의 목적은 지휘권 옹호와 軍紀확립이다」라는 제하에 軍사법제도 개편案을 비판했던 이 老兵이 다시 한 번 펜을 들어 軍사법제도 개편을 즉각 중지하라고 요구한다. 대통령직속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저돌성에 「걱정 半(반), 분노 半」의 심정으로….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지식과 경륜이 부족하거나 어떤 연유로 恨(한)이 맺혀 있는 「혁명가들」의 눈을 통한 피상적 관찰로 뒤엎거나 뜯어고친 법과 제도가, 실은 오랜 세월을 두고 시행착오도 겪으며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그리고 존재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들임을 당신들은 아는가?

그들의 혁명적 정치실험이 잘못되었음을 스스로 깨닫기까지 오랜 세월을 요하고, 그동안 국민의 고통과 손실이 너무도 컸다는 것이 현대사의 교훈임을 알아야 한다.

1917년, 러시아 절대王政을 폭력혁명으로 무너뜨리고 볼셰비키 정권이 들어선 후 공산주의자들은 「계급을 타파하여 모든 인민이 평등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든다」는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 혁명 초기에 귀족들의 「莊園(장원)」을 몰수하는 일에「붉은군대」는 힘겨운 싸움을 했고, 적지 않은 희생을 치렀다.

귀족들이나 교회들이 가지고 있던 莊園은 그 자체가 하나의 경제단위로서 사실상 그들의 領地(영지)나 마찬가지였는데, 이를 혁명정부(공산당)가 몰수하겠다고 하자 그들이 저항했던 것이다. 이를 평정하고 莊園을 몰수하는 싸움에서 「붉은군대」가 苦戰(고전)했던 것은, 그 귀족들의 私兵(사병)집단들이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붉은군대」가 내부적으로 군기가 문란하여 제대로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평등주의자(공산주의자)들이 가장 표본적 계급사회인 군대를 개혁하여 민주화한답시고 군대의 계급제도를 없애 버림으로써 소련의 「붉은군대」가 20세기 최초의 계급 없는 군대가 되었고, 그리하여 하급자(부하)들이 어떤 상관과도 「계급장 떼고 맞짱 뜰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로써 공산주의자들은 「계급 없는 세상, 만인이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이상을 군대에서까지 실현하기는 하였으나, 그 결과 상관이 부하 앞에서 눈치를 보아야 할 만큼 지휘관의 권한(지휘권)이 약화되면서 부대를 제대로 지휘할 수 없어 부대가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임무수행도 어렵게 되었다.

스탈린이 軍계급제도를 부활한 까닭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유역의 수많은 피란민들이 강 하구의 얕은 곳을 건너 국군 주둔지역으로 오고 있다.

바로 이렇게 「민주화」된 군대, 상관이 부하 앞에서 눈치를 보아야 하는 군대의 실상과 그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던 스탈린은 1924년 레닌 사망 후 정권을 잡으면서, 국방을 위해서는 강한 군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스탈린은 1935년에 「붉은군대 현대화 계획」을 내걸고, 그 일환으로 군대에 계급제도를 부활시켰다. 비록 일부의 저항으로 여러 해가 걸린 작업이긴 했지만.

그 후로 「붉은군대」는 오히려 위계질서가 더 엄격하고 군기가 엄정하여 강한 통제력을 가진 군대로 바뀌어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고도 처절한 혈전 끝에 그들의 나라 소련을 지켜 낼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소련 공산주의자들은 「민주화」되어 지휘권이 약화된 군대는 유사시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므로 지휘권을 강화하고 위계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교훈을 그들의 실험을 통하여 얻게 되었던 것이다.

20세기 두 번째 계급 없는 군대는 中共軍이었다. 國共內戰(국공내전)에서 중국대륙을 석권하고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출범을 선포한 중국공산당은 그때까지의 「인민전쟁 전략」을 뛰어넘어 그들의 군대(紅軍)를 현대화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그 구체적 내용 중의 하나가 군대에 계급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급제도만은 공산당 내부에서 상당한 논란과 저항에 부닥쳐 몇 차례 존폐의 우여곡절을 겪다가(특히 10년간의 문화혁명기에) 뒤늦게 1988년 8월1일에야 비로소 도입이 확정되었다. 그나마도 최고 계급 중장(그들 계급으로는 상장)까지만으로.

레닌그라드 攻防戰의 교훈

공산주의 宗主國(종주국)인 소련과 중국의 공산주의자들까지도 군대에는 민주주의도 평등도 없음을 결국 인정하고 말았다. 그들의 그 「터무니없이 고귀한」 이상에도 불구하고.

이는 그들이 수십 년간의 실험 끝에, 군대가 전쟁에서 여러 악조건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데 있어서 지휘관의 지휘·통솔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전장에서는 지휘관(자)의 督戰(독전)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계급제도가 있어야 하고 지휘관(자)에게 軍內의 모든 권력을 주어 부하가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도록 기강을 세워야 한다는 점을 늦게나마 이해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옳았음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이 나치 독일軍과의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거둔 「참혹한 승리」를 통하여 증명된 바 있다.

전장(전쟁)의 실상과 군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우리의 전례를 소개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불과 1년 10개월, 방위태세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북한의 기습 남침을 당하여 우리의 방어선은 곧 무너졌고,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敵에게 빼앗긴 국군은 흩어진 병력을 한강 이남에서 수습하며 敵의 南進을 저지하느라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우리를 도우려고 가장 먼저 한국에 도착한 美 제24사단의 선발대인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대대)가 1950년 7월5일 경기도 오산에서의 첫 교전에 탱크를 앞세운 敵에게 격파당했고, 그 본대인 사단은 7월20일 대전에서 敵의 집중공격을 받고 격파되었으며, 사단장 딘 소장은 敵에게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군대에는 민주주의가 없다』

국군과 유엔軍(미군)은 계속 밀리고 밀려, 우리 영토의 대부분을 敵에게 빼앗기고 그해 8월 낙동강 방어선에서 우리나라의 운명을 건 방어전을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최후의 방어선」인 이 선마저 무너지면 한반도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없어지고 9월15일로 예정하고 준비 중인 유엔軍의 인천상륙작전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방어전을 지휘하던 美 제8군사령관 워커 장군은 휘하 장병들에게 엄명을 내렸다.

『(더 이상) 후퇴는 없다. 투항도 안 된다. 최후까지, 죽을 때까지 싸운다』

그러자 미국 언론이 들끓었다.

『이건 非인도적이고 非민주적이다』

이에 유엔軍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나섰다.

『군대에는 민주주의가 없다』

이 한마디 말로 여론은 조용해지고 사태는 그것으로 끝났다.

같은 때 한국군에서는, 명령 없이 전장을 이탈하는 부하를 즉각 사살할 수 있는「즉결처분권」을 부여받은 분대장급 이상 지휘자(관)들이 모든 戰線(전선)에서 督戰(독전)하고 있었다.

낙동강 방어선의 격전지 多富洞(다부동) 북쪽의 遊鶴山(유학산)을 탈취한 敵이 이어서 8월15일 국군 1사단 13연대(후에 15연대로 개칭) 방어지역의 328고지를 공격했다. 고지를 빼앗긴 병력이 황급히 동남쪽에 있는 巢鶴山(소학산)으로 철수하자 연대장 崔榮喜(최영희) 대령은 철수하는 부하들 앞에 57mm 對전차포를 쏘았다.

그리고 즉시 그들을 돌려세워 빼앗긴 고지를 향한 역습(반격)을 명령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그 고지를 되찾고 말았다. 이 역습에 崔榮喜 대령은 상부에 보고하거나 허락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대구에서 모병한 대대 규모의 신병까지도 투입하였다.

강력한 지휘권의 중요성

국방부 검찰단.

지휘관들의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 즉 육군참모총장의 「즉결처분령」 하달이나 전장에서 부하를 즉결처분한 일부 지휘관들의 행위, 그리고 연대장이 독자적으로 모병하여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신병대대를 연대 역습에 투입한 행위 등은 法을 초월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지휘관들의 이러한 위헌ㆍ위법적 지휘로 위기에 처하여 곧 망하게 될 조국을 구해 낸 것이 엄연한 사실인 것을….

그때 40여 일간의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서 포항ㆍ안강ㆍ기계ㆍ영천 전투와 함께 가장 치열했던 다부동 전투를 치른, 白善燁(백선엽) 준장의 보병 제1사단은 겨우 7000명 병력 중 장교 56명을 포함하여 무려 2300명의 전사자를 냈고, 살아남은 병력의 대부분이 부상당했다. 총병력의 3분의 1이 전사한 것이다.

이렇게 쌍방간의 밀고 밀리는 치열한 싸움으로 전선은 여러 차례 남하와 북상을 거듭하며 3년 1개월을 싸우고 정전될 때까지 우리 국군은 총 31만9759명(전사 5만8809명, 실종 및 포로 8만2318명, 부상 17만8632명)의 병력손실을 보고 신생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해 냈던 것이다(필자는 운좋게 17만여 명의 부상병에 포함되어 살아남았다).

그러면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우리가 북한 인민군의 기습공격을 당한 최악의 상황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도 부대를 수습하며 싸워 끝내 국군의 使命(사명)을 완수해 낸, 「군사적 차원에서」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순수 군사적 차원에서의 요인 하나만 꼽는다면 그것은「강력한 지휘권」을 행사하여 「독전」했다는 것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자원입대한 용사들을 포함하여 어떠한 군인들도 일단 전장에 투입되어 敵과 마주서면 긴장하여 굳은 표정에 입에 침이 마르고 말이 없어진다. 전투가 시작되면 일단 살아남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할 뿐 「국가와 민족, 부모형제와 내 처자식을 보호하기 위하여」 등의 고결한 생각들은 자취를 감추고 오로지 눈앞의 敵과 등 뒤의 눈을 부릅뜬 지휘자만을 의식한다.

山川(산천)이 찢어지는 듯 소름끼치는 기관총 소리들은 전투원들의 용기를 압도하고, 숙인 머리 위에서 포탄 벼락치는 소리는 지휘자의 돌격명령을 듣고도 몸이 반응할 수 없게 한다. 얼굴을 때리는 뜨거운 흙덩이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어이쿠』 하는 외마디 소리, 위생병을 부르는 부상병들의 비명 등… 이 피범벅·땀범벅의 阿鼻叫喚(아비규환) 속에서 젊은 영혼들은 그래도 살겠다고 엎드려 자지러진 채 숨을 몰아쉰다. 생존본능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때 엎드려 꼼짝 않는 전투원들을 일으켜 敵에게 돌진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애국심이 아니라 「敵보다도 더 무서운」 지휘자의 부릅뜬 눈과 잡아먹을 듯한 몸짓이다. 결국 전장에서는 지휘자(관)의 독전만이 전투원들의 전쟁공포를 압도하고 敵에게 돌진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라를 구하기 위한 극약 처방도 필요

만약 이럴 때 엎드려 있는 전투원들에게 지휘자가 이 전쟁의 성격, 이번 전투의 중요성, 국군의 사명과 애국심 등을 강조하며 그들과 토론하여 돌격을 계속하기로 합의하는 민주적 절차를 밟아 그들을 일으켜 세워 돌격하도록 하다가는 그 자리에서 그들은 전멸당하고 전쟁에 패하여 나라가 망할 것이다.

1953년 7월27일 정전 후 전장에서 즉결처분한 지휘관을 즉결처분당한 사람의 유족이 고발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지휘관들 중 누구도 법원의 유죄판결을 받은 일은 없었다. 이는 그 사건을 취급한 법관들과 그런 보도를 접한 국민 일반이 戰時(전시)에 급박했던 상황에서 지휘관의 즉결처분이 나라를 구하기 위한 극약처방이었다고 여겨 無言(무언)의 동의를 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할 만하다. 이 역사에서 인류가 터득한 지혜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쟁에 대비해야 하고 그 대비가 곧 싸워 이길 수 있는 强軍(강군)을 가지는 것이며, 강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軍內의 모든 권력을 지휘관(자)에게 집중하여 지휘관(자)들이 소신껏 부대를 지휘하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휘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바로 軍사법제도(軍法)이다.

그러므로 軍사법제도 내지 軍法의 입법취지는 지휘권을 보호하는 데 있다. 이 점은 일반사회의 경우, 법이 사회의 안녕질서를 유지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 軍은 그 임무수행에 적합하도록 지휘관을 정점으로 하여 피라미드형 지휘체계로 편성되었고, 軍 검찰과 재판제도도 지휘관의 지휘下에 기능해 왔다. 사단장급 이상 지휘관은 軍 검찰사무를 통할하여 소속 검찰관을 임명하고 지휘ㆍ감독하며 군사재판 관할관으로서 재판관을 지정하고 재판결과(판결)에 대한 확인권을 가지며 판결내용을 변경할 수 있었다. 강력한 지휘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미국 등 선진국들의 경우에도 이와 유사하다.

軍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조치들

그런데 現 정부의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는 국방부에 건의하는 형식으로 대대적인 軍사법제도 개혁을 추진 중이다. 이 위원회는 지난 7월18일 제5차 본위원회를 열어 군사법원 및 軍검찰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강화하고, 「장병참여 재판제도」 등을 도입한다는 내용의 軍사법제도 개혁 입법안을 의결하였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사단급 이상 부대에 설치돼 있는 보통군사법원을 평시에는 폐지하고 국방부에 고등군사법원을, 5개 지역에는 지역 군사법원을 설치하며, 심판관 제도 및 관할관 확인 제도 역시 평시에는 폐지했다가 戰時에 부대별 보통군사법원체제의 부활과 함께 운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2007년 3월부터는 「將兵(장병)」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군사재판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軍 검찰조직의 경우에는 현재의 부대별 보통검찰부 체제를 폐지하고 국방부 고등검찰단과 5개 지역에 지역검찰단을 설치하며, 일정한 경력의 민간 법조 인력도 軍 판사 및 軍 검찰에 임명될 수 있도록 정원의 3분의 1을 민간에서 개방하는 등 엄청난 변혁을 가져온다. 그 변혁의 핵심은 지휘관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軍 검찰과 판사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삼권) 분립을 통하여 입법ㆍ사법ㆍ행정부가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유지한다는 원칙을 軍에 적용하여 지휘관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軍 검사와 판사의 권한을 강화하여 상호 견제하도록 한다면 이는 「전쟁원칙들」 중 가장 중요한「지휘통일의 원칙」에 어긋나고, 軍의 존재의의와 특성을 무시한 처사다.

지난날 몇몇 지휘관의 법에 대한 무지나 無소신으로 사법운용에 과오가 있었다면 이는 어렵지 않게 시정할 수 있는 일인데, 이처럼 거창한 제도개편을 시도하는 것은 矯角殺牛(교각살우: 소의 뿔을 바로 잡으려다가 소를 죽이는 것)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짓이다.

「軍의 민주화」는 지난 세기에 공산(사회)주의 국가에서 실험을 통하여 잘못된 일이었음이 증명되었는데도 이제 우리나라에서 이를 고집스럽게 추진한다면 이들을 철없는 바보로 봐야 할지 혹은 「의심스럽고 위험한 사람」으로 봐야 할지 혼란스럽다. 軍의 존재의의가 전쟁을 전제로 한 것임을 안다면 이러한 軍사법제도 개편은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 軍을 약화시켜 「평양」만을 즐겁게 하고 우리나라에 큰 죄를 짓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