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택 : 親美냐 親中이냐 : 월간조선

2003년은 전쟁으로 시작될 것이다. 이라크를 상대로 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사실상 이미 시작되었다. 국제사회와 유엔을 무대로 이미 「정치戰」과 「외교戰」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군사戰」도 작전개시 시점의 선택만 남았을 뿐 초읽기에 돌입한 상태이다. 전쟁은 분명히 일어날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목표가 단순히 이라크의 무장해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라크의 정권교체에 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전쟁 캠페인」으로 「선거 캠페인」을 대신하고 있다. 유엔을 무대로 한 외교戰도 독자행동에 착수하기 위한 명분 축적의 과정일 뿐이다. 리처드 하스(Richard M. Haass) 美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이 지적했듯이 부시 행정부에게 있어서 『多者主義는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를 상대로 한 2단계 「테러와의 전쟁」을 기획하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안보전략을 수립하였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 9월27일 의회에 제출한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는 테러리즘이 최대의 위협으로 摘示(적시)되었으며, 「대량살상 무기의 확산」을 테러의 범주로 분류하였다.

주지하듯이 부시 대통령은 2002년 年頭(연두)교서에서 이라크, 북한, 이란을 「惡의 軸(축)」으로 규정하여 이들이 2단계 「테러와의 전쟁」의 대상국가임을 분명히 했다. 이는 소위 불량국가들의 대량살상 무기 확산을 테러와 직결된 문제로 간주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이라크와 북한은 이번 보고서에서도 대량살상 무기를 확산시키는 불량국가의 범주에 포함되었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先制공격을 핵심으로 하는 군사독트린이라고 할 것인데, 이는 이미 지난 6월 부시 대통령의 웨스트포인트 연설에서 제시된 것이다.

「일방주의적(Unilateral)」인 것은 물론, 「선제적(preemptive)」, 심지어 「예방적(Preventive)」 군사력의 행사를 천명한 것은 「억지(Deterrence)」에 기반을 두었던 지난 半세기간의 군사독트린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부시 행정부는 마치 서부개척 시대의 뛰어난 보안관처럼 악당보다 총을 먼저 뽑는 「단호한 보안관(Resolute Sheriff)」이 되기로 작정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자신의 세계전략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 「미국적 국제주의(American Internationalism)」를 제시하였는데, 강조점은 어디까지나 「미국적」이라는 것에 주어진다. 즉, 미국적 가치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으로서, 이의 국제적 확산을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에서 「국제적」이라는 것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의 국익을 증진하는 것이 곧바로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도 기여한다는 공화당의 신념을 강조한 적이 있다. 리처드 하스 美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은 이를 「미국적 가치에 일치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변형시킨다」는 의미에서 「통합의 과정(Process of Integration)」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主權은 철저히 옹호하는 반면 다른 국가의 主權에 대해서는 조건적으로 思考(사고)하는 대단히 二重的 사고체계로서, 국제사회의 「통합」이 아니라 「분열」을 초래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들을 위시한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미국 국내에서도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조지프 나이(Joseph Nye) 하버드大 케네디행정대학원장은 『부시 행정부가 「狹義(협의)의 國益」과 「廣義(광의)의 國益」을 혼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존 아이켄베리(F. John Ikenberry) 조지타운大 교수도 『부시 행정부의 제국적 야심이 결국은 세계를 분열시키고 실패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이러한 국내외의 비판에 굴복할 것 같지는 않다. 흔히 지적하듯이 부시 행정부 내에는 强溫派(강온파)의 대립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고 본인들도 이를 시인하지만, 강온파를 막론하고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 핵심관료들은 「脫-脫냉전(post-post cold war)」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주도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에게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제공한 계기가 9·11 테러였다면, 이를 밀어붙일 수 있게 만든 것은 역설적이게도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회복한 국력에 대한 자신감이다.

최근 워싱턴과 미국 국제정치학계에서 나오는 말들을 보면 미국이 자신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일방주의에 대한 비판도 『미국의 힘이 강할수록 신중해야 한다』는 차원일 뿐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팽배해 있었던 미국의 覇權的(패권적) 지위에 대한 懷疑(회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極초강대국(Hyperpower)」

「포린 어페어스」 최근 호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 수치를 통하여 미국의 覇權的 지위가 확고부동함을 보여 주었다. 즉, 미국은 다른 주요 강대국들을 합친 것보다 강한 군사력, 캘리포니아州 하나만 가지고도 세계 5위에 랭크되는 경제력, 다른 7개 강대국을 합한 것과 동일한 연구개발(R&D) 지출로 확인되는 과학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근대사에 있어서 어떤 나라도 상업-해군력과 지상군이 동시에 최강인 경우는 없었다는 사실도 추가된다. 독일의 「디 차이트」 발행인 요제츠 요페는 『로마시대를 제외하고 역사상 세계 1位 국가와 2位 국가 간 국력 격차가 이렇게 벌어진 적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존스 홉킨스大의 마이클 만델바움(Michael Mandelbaum)은 미국의 이러한 압도적 우위를 超강대국(Superpower) 이상이라는 의미에서 「極초강대국(Hyperpower)」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러한 「極초강대국」 미국이 이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외교안보 정책을 세계에 내놓았다. 미국이 가치기준을 정하고, 미국이 위협을 규정하며, 미국이 군사력의 행사를 통하여 正義를 실현하겠다고 나서는 대단히 급진적인 접근법이다.

이는 과거 수백 년간 국제공동체를 유지해 온 전통적 지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발상이다. 하스 美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은 『오늘날 국제관계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란 없으며, 19세기의 「유럽협조체제(Concert of Europe)」와 같은 것도 기대하기 힘들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미국이 「단호한 보안관」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이외의 국가들에게는 2000년 전 로마제국을 떠올리게 만드는 꺼림칙한 구상이다. 이와 관련, 영국의 채널4 TV는 최근 「로마, 帝國의 모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로마제국과 미국이 열한 가지 점에서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미국 역시 로마제국과 마찬가지로 결국에는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이러한 발상의 根底(근저)에는 미국이 로마제국만큼이나 강력하다는 것, 그리고 로마제국처럼 행세하면 결국엔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西로마를 기준으로 할 때 로마제국은 1000년간, 東로마(비잔틴 제국)를 기준으로 하면 2000년간 계속되었으니 불과 226년 된 미국이 로마를 닮더라도 조기에 멸망할 것 같지는 않다는 데 이런 경고의 허망함이 있다.

우리가 마음에 들건 그렇지 않건 간에 세계질서는 미국의 새로운 구상으로 인해 냉전붕괴時에도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지각 변동의 과정에 놓여 있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미국과 주요 강대국간의 관계이다. 부시 행정부 출범 직후 미국의 NMD(국가미사일방어체계·National Missile Defence) 추진으로 긴장관계에 놓였던 美·러시아 관계는 9·11사태 이후 급속도로 접근하고 있다. 반면, 미국과 유럽 관계는 상당한 긴장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의 유럽 동맹국들 대부분이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가운데 슈뢰더의 독일과의 관계는 戰後 최대의 긴장국면에 놓여 있다. 만약 미국의 이라크 공격 이전에 사전조율이 되지 않는다면 미국과 유럽의 긴장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그렇다면 東北亞는 미국의 새로운 구상 下에서 어떠한 지각변동을 겪게 될 것인가. 이제 우리의 시선을 東北亞로 돌려보자.

전략적 트라이앵글의 역전:美-中-러 삼각관계의 새로운 버전

東北亞의 안보구조를 규정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美-中-러의 戰略的(전략적) 三角관계이다. 美-中-러의 전략적 삼각관계는 9·11 테러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해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

주지하듯이 냉전시대 美-中-러 관계는 美中의 전략적 제휴 下에 舊소련을 봉쇄하는 성격의 것이었다. 이는 美蘇의 兩極(양극)대결에 中蘇분쟁이 결합된 결과였다.

脫냉전시대에 접어들어 美러, 美中, 中러 관계가 모두 증진되면서 美-中-러의 삼각관계는 전략적 성격을 탈각하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美-中-러 삼각관계는 다시 전략적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미국의 NMD 강행을 계기로 中러가 밀착하면서 냉전 초기 北-中-러의 北方 삼각과 韓-美-日의 南方 삼각 대결구조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9·11 이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강력히 전개하는 가운데, 美-中-러 관계는 美中 간에 미묘한 긴장이 유지되는 가운데 美러가 밀착하는 전략적 성격을 띠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실로 美-中-러 전략적 삼각관계의 역전이라고 할 만한 변화이다.

美러관계의 변화는 진실로 의미심장한 것이다. 그 극적인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 다름 아닌 지난 6월의 ABM(탄도미사일 방어체제 제한) 조약 붕괴이다. 냉전시대에 소위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은 「상호확증파괴」(MAD)의 원리에 입각해 있었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核보복 능력을 보장한 ABM 조약이었다. 탄도미사일 방어체제에 제한을 가하여, 核선제 공격에 대한 상대방의 보복을 보장함으로써 美蘇 간의 전략적 균형이 확보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미국이 ABM 조약을 탈퇴하여 미사일 방어망 구축에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게 됨으로써, 美러 간의 전략적 균형은 사실상 붕괴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對中 포위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의 태도를 격렬히 비난했던 러시아가 침묵으로 일관하여 ABM 조약의 붕괴를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배경에는 러시아의 실용주의 노선이 자리하고 있다.

푸틴의 러시아는 9·11 이후의 정세 속에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하는 대가로 실리를 취하는 실용주의를 채택하였다. 이로 인해 체첸內戰은 잊혀졌고 ABM 조약은 조용히 폐기되었다. 美-러 관계의 개선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5월28일 「나토-러시아 협의회」가 창설됨으로써 당분간 美러 간 군사적 대립의 소지는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美中관계는 부시행정부 출범 초기에 비해서는 다소 완화되기는 하였지만, 미묘한 긴장관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9·11 이후의 정세는 미국이 중·장기적으로 「對中 봉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가질 만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중국은 탄도미사일을 20基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아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에 실질적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러시아가 ABM 조약의 붕괴를 사실상 용인하는 바람에 러시아와의 전략적 연대를 통하여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하고 미사일 방어체제를 저지하려던 중국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소위 中-러의 「전략적 동반자관계」라는 것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이다.

반면 부시 행정부는 중국을 제외한 주변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는 대단히 적극적이다. 지난해 美 국방부가 발표한 「4개년 국방검토보고서」(QDR:Quadrennial Defense Review)는 중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비하여 한국, 일본, 대만, 필리핀, 태국, 파키스탄과의 관계를 강화할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부시 행정부는 인도의 核실험을 묵인하는 등 인도와의 관계 증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미국이 自國 주도하에 한국-일본-대만-필리핀-태국-파키스탄-인도-아프가니스탄으로 이어지는 「對中 봉쇄 벨트」를 그리고 있다고 의심할 만하다. 사실 부시 행정부 외교안보팀은 선거캠페인 기간부터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가 아니라 「전략적 경쟁자」라고 규정했었다.

고이즈미(小泉純一郞)의 외교 쿠데타

2002년 9월19일 일본은 日北 정상회담을 계기로 국제 외교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일찍이 일본의 외교가 이만큼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아 본 적은 없었다. 그만큼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총리의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고이즈미의 외교가 파격적이라는 것은 무엇보다 미국과의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고 일본 나름의 독자적 계산下에 日北 정상회담의 개최를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하워드 베이커 駐日美대사의 공식적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북한과의 협상내용을 철저히 비밀에 붙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부시 행정부는 역대 어느 미국 정권보다도 親日的 성격을 가지고 있는 정부이다. 부시 행정부 내에는 아미티지 국무부 副장관, 제임스 켈리 東亞太차관보를 비롯하여 親日인사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내각은 미국과의 사전협의 과정을 과감히 생략해 버렸다.

심지어 고이즈미 내각은 고이즈미의 방북이 발표(8월30일)되기 직전인 8월27~28일 美日 차관급 협의를 위해 일본을 방문한 아미티지 국무부 副장관에게조차 확실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 국제 외교가에서는 이를 두고 「부시에 대한 고이즈미의 외교적 쿠데타」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고이즈미가 독자외교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은 日北 정상회담 이후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韓日 정상회담에서 金大中 대통령과 공동으로 미국에 북한과의 대화를 촉구한 대목에서도 증명된다. 호사가들이 「KK반란」이라고 命名한 韓日 공동성명은 완곡하게 표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美北대화에 대한 강력한 압력이나 마찬가지였다.

日北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언론들은 왜 現시점에서 고이즈미가 정치적 도박에 가까운 선택을 했는가를 분석하는 기사를 연일 내보냈는데, 그 주된 논조는 고이즈미가 자신의 정치적 필요 때문에 부시 행정부의 對北정책을 희생시켰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하워드 프렌치 기자는 「일본이 리드해 가는 북한 문제」라는 9월22일자 기사에서 일본이 「미국의 외교우산」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길을 가려는 것으로 평가하였다. 부시 행정부의 공식적 환영에도 불구하고, 美 언론의 이러한 회의적인 반응은 사실상 워싱턴 政街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며, 부시 행정부가 고이즈미의 행보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고이즈미 내각은 왜 미국의 심기를 자극하면서까지 이러한 정치적인 도박을 감행한 것일까. 물론 10%대로 추락한 고이즈미 내각의 인기를 만회해 보고자 하는 동기도 있었을 것이며, 일본정치의 전형과는 다른 그의 독특한 캐릭터도 한몫했을 것이다.

일본외교의 독자행보는 「普通國家化」를 위한 노력의 하나

그러나 그렇게만 보는 것은 일본의 국가전략에 대해 일본의 파워 엘리트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는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놓치는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선택의 배후에는 더 이상 미국에게 국가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는 일본 엘리트들의 「속내」(本音)가 자리하고 있다.

사실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지만, 안보와 외교에서는 미국의 屬國(속국) 취급을 당해 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일본 경제력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한국의 金大中 대통령이 햇볕정책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일본의 박탈감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고이즈미 총리의 파격적 외교행보가 일찍이 오자와 이치로 자유당 당수가 제기했고, 일본의 보수적 정객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同意를 형성하고 있는 「普通國家論(보통국가론)」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을 염두에 두면 고이즈미의 독자외교는 有事法制(유사법제:일본 및 주변국 위기時에 대비한 비상사태법)의 정비나 평화헌법의 再해석으로 나타나고 있는 일본의 군사화와 상충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일본의 독자외교는 일견 美日 양국의 괴리를 가져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美日 양국의 엘리트들이 내밀히 추진하고 있는 일본의 「普通國家化」를 위한 프로젝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日北관계의 정상화는 域內(역내)에서 일본의 적극적 역할에 대한 주문과 함께 보통국가론에 더욱 탄력을 주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이즈미의 파격적 외교가 한반도 정세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 못지않게 일본 변수의 부각이 東北亞 정세에 미치는 전반적 영향을 예의주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북한의 개혁은 개방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진짜 변하고 있다. 우리가 직접 실감하는 변화는 對外관계로서, 南北관계, 日北관계, 美北관계에 걸친 외교공세가 全방위적, 동시발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북한의 변화는 일부에서 지적하듯이 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에 겁먹고 체제생존을 모색하기 위한 「정치적 쇼」 차원이 아니다. 부시 행정부의 강경정책이 북한의 결단을 재촉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북한은 단지 살아남기 위한 소극적 차원이 아니라, 북한 나름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기 위한 적극적 차원에서 변화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북한은 「고난의 행군」의 시기에서 「천지개벽」과 「新思考」의 시기로의 일대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7월의 경제개혁 조치와 신의주 특별행정구의 지정이다.

작년 10월 金正日의 지시로 10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시작되었다는 북한의 경제개혁 조치는 정치적 제스처나 실험으로 보기에는 너무 큰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물가와 임금인상, 환율의 현실화, 개인 영농제 부분 도입, 기업의 자율성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북한의 경제개선 조치는 단기적으로 북한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中長期的으로 외부의 지원과 공급 확대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에 빠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성적인 식량부족을 낳고 있는 농업 생산성 저하, 50%도 안 되는 공장가동률을 고려하면, 이번 조치의 성패는 거의 절대적으로 외부의 지원에 의존하는 셈이다.

따라서 북한의 개혁은 개방과 연동될 수밖에 없으며, 신의주 특구의 지정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楊斌(양빈)이라는 외국인 장관의 임명, 입법·사법·행정권의 부여, 私有재산제의 인정, 無관세·無비자 등의 조치를 들고 나온 신의주 特區는 중국의 경제특구보다도 훨씬 파격적인 것이다. 신의주에 이어 개성과 원산도 특구로 지정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두 개의 한국」의 長期共存

이러한 북한의 구상이 온전히 실현되기 위한 핵심적 관건은 물론 美北관계의 개선이다. 美北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궁극적으로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어야만, IMF(국제통화기금), IBRD(세계은행), ADB(아시아개발은행) 등과 같은 국제 경제기구로부터의 자본유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金正日은 부시 행정부가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면, 대량살상 무기 문제에서 파격적인 양보를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대량살상 무기 이외에 재래식 戰力, 人權 등 다양한 의제를 제시하며 강경한 자세를 쉽게 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金正日은 이미 착수한 개혁·개방 조치를 가속화하는 한편 더욱 파격적인 행보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확보하는 「외교戰」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한 외교戰의 정점은 당연히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될 것이다.

근래 북한의 변화가 내포하고 있는 戰略的含意(함의)는 「두 개의 한국(Two Koreas)」의 長期共存이다.

최근 들어 金正日의 중국과 러시아 방문이 잦아진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의 개혁·개방 구상의 일단을 밝히고 중국과 러시아의 강력한 지지를 요구했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당연히 북한체제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 한반도 전체가 미국의 세력권 안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부시 행정부에 들어와서 對中 봉쇄망이 형성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북한이야말로 그러한 對中 봉쇄망을 이완시킬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며, 수십 년간 혈맹관계에 있는 가장 믿을 만한 友軍이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의 붕괴를 총력 저지하는 한편, 북한의 개혁·개방이 성공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남아 있는 현실적 통일방식은 기능주의적 통합이며, 그것은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나 우리의 「연합제」보다 훨씬 느슨한 형태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유럽式 국가연합에 다름 아니다. 북한의 개혁·개방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될수록, 국가연합의 현실성은 높아지게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유럽통합의 모델을 참고하여, 장기간에 걸친 主權이양의 시나리오를 구상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기능주의적 통합은 갑자기 등장한 통일한국이 어느 특정 국가로 경사될지도 모른다는 주변국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효과도 있다.

한국에게 중국은 미국의 代案이 될 수 있나

최근 워싱턴의 당국자들이나 한반도 전문가들을 만나게 되면 가장 자주 듣게 되는 질문 중의 하나가 한국의 점증하는 反美감정을 어떻게 보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반백 년의 혈맹에 대한 미국인들의 서운함이 깔려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미국의 전략적 이해가 걸려 있는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우려가 배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미국인들의 우려를 잘 보여 주는 實例가 한국갤럽이 2001년 말 30~49세 사이의 한국의 차세대 리더 51人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와 분석이다.

同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수(59%)가 韓美관계에서 주로 이익을 보는 것은 미국이라고 응답하였고, 절반 가까운 응답자가 反美감정의 증가에 동의하였다. 4명 중 3명은 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을 제한적으로만 지지하였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절반 이상의 응답자들이 『10년 후에는 韓中관계가 韓美관계보다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응답하였다는 점이다. 反美감정이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카드」 부상과 연계될 수 있다는 사실에 미국인들은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前述했듯이 부시 행정부는 極초강대국 미국의 가치에 세계를 통합하려는 제국적 야심을 가지고 있으며, 단호한 보안관으로서 이에 저항하는 세력을 선제적으로 제압하겠다는 세계전략을 수립하였다. 또한 러시아와의 전략적 제휴와 업그레이드된 美日동맹 및 韓美동맹에 기초하여 현재적(북한), 그리고 잠재적(중국) 위협에 대항한다는 東北亞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그런데 東北亞의 兩大 동맹국 중의 하나인 한국이 중국에 傾斜(경사)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한국의 중국 경사의 근거가 되는 것은 문화적·인종적 이유도 있지만, 소위 「중국기회론」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唐家璇(탕자쉬안) 중국 외교부장은 중국을 보는 한국인들의 주된 시각을 「중국기회론」이라고 단언했다고 한다. 한국의 수출대상국 2위이자 최대 무역흑자국으로서의 중국의 가치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이 20년 내에 GDP 기준으로는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반드시 非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中華문화권에서의 韓流(한류) 열풍도 우리의 자신감을 증대시켜 놓았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에서는 「중국기회론」과 더불어 「중국위협론」이 병존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중국기회론」에만 몰두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았던 것은 淸日전쟁 이후 100년에 불과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돌이켜 보면 한국의 中國觀은 너무 안이하다는 느낌이다.

「중국기회론」에 현혹되지 말아야

물론 우리가 미국과 일본 일각에서 과장되게 주장되는 「중국위협론」에 附和雷同(부화뇌동)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것은 마치 19세기 말 駐日청국공사관 참사관이던 黃遵憲(황준헌)의 「朝鮮策略」(조선책략)에 우리의 조정이 휘둘렸던 것을 연상시킨다. 黃遵憲은 여기서 러시아의 위협을 과대평가하고, 일본의 위협은 과소평가하여 조선의 정세판단을 흐려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기회론」과 「同種同文」의 향수에 현혹되어 極초강대국 미국을 대체하려 한다면, 이는 엄청난 과오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마치 20세기 初光武(광무) 정권이 영국과 러시아의 세계적 대립구도를 보지 못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차르의 專制(전제)군주정과 大韓帝國 전제군주정의 동질성에 현혹되어 쇠망해 가는 러시아에 빌붙어 亡國을 재촉했던 것과 다를 바 없다. 반면 일본은 세계정세를 정확히 간파하고 英日동맹을 맺어 러日전쟁의 승리 이후 조선을 병합하였던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선택은 미국이냐 중국이냐가 아니다. 極초강대국 미국과의 동맹은 한국의 번영을 위한 안보적 담보로서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자산이다. 바야흐로 脫냉전시대라지만 선진국치고 미국과 동맹을 맺지 않은 나라는 없으며, 東유럽 국가들은 NATO에 가입하지 못해서 안달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반면 중국과의 역사 문화적, 지리적 인접성은 미국이나 일본이 갖지 못하고 있는 우리만의 자산이다. 이러한 長點을 충분히 살려 중국시장을 先占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없다. 또한 북한의 최대 후원자인 중국의 동의가 없으면 한반도의 통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현실도 존재한다. 따라서 중국과의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도 우리에게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이는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결코 화해할 수 없다고 하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적 경쟁관계는 역설적으로 한반도의 외교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보통국가론과 세계적 美日동맹에 기대어 脫亞入歐(탈아입구)의 역사를 반복하지 못하도록 붙들어 놓기 위해서라도 일본과의 우호적 관계는 경제적, 문화적으로 한층 심화되어야 한다.

업그레이드된 韓美동맹 구축을

최근 東北亞 전략환경의 변화를 감안할 때,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업그레이드된 韓美동맹」을 구축하는 것이다. 특히 내년은 「韓美동맹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韓美 양국은 이 기념비적인 해를 맞이하여 「韓美동맹의 21세기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첫째, 韓美동맹은 「縱的(종적)인 동맹」에서 「橫的(횡적)인 동맹」으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대등한 동반자 관계에 어울리는 韓美동맹은 최근 점증하고 있는 反美감정을 억제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한국군 지휘부에게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지휘구조가 개혁되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미군과 자위대가 작전하는 형태와 유사한 竝列的(병렬적) 지위구조로 전환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둘째, 韓美동맹은 통일 이후를 내다보면서 한반도에서의 전쟁뿐만 아니라 수색 및 구조, 反테러, 해상교통로 보호, 인도주의적 지원과 재난 구호 같은 포괄적 지역안보를 담당하는 방향으로 적용범위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셋째, 미국은 韓美동맹과 美日동맹을 연계하여 韓-美-日 삼각동맹으로 발전시키기를 희망하고 있으나, 이는 한국의 전략적 이익에는 부합하지 않으므로 신중히 대처해야 한다.

韓-美-日 삼각동맹은 무엇보다 對中봉쇄로 인식되어 중국을 자극할 것이며, 한국으로서도 지나치게 행동 반경을 속박당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韓-美-日 동맹보다는 韓-美-日 공조라는 개념이 선호되어야 한다.

최근 워싱턴에서는 「한반도의 엔드게임(Korean Endgame)」이라는 말이 膾炙(회자)되고 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셀리그 헤리슨(Selig Harrison)의 新刊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막바지에 이른 「한반도 50년 전쟁」의 종결 방식에 대한, 나아가 통일 이후의 환경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관심을 표현하는 말이다. 한반도의 冷戰 해체와 통일이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주변 4국의 공통 관심사일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에서의 차가운 50년 전쟁을 종결하는 談論(담론)이 또 다른 전쟁을 연상시키는 「엔드게임」으로 호칭되는 것 자체가 달가운 일이 아니다. 담론은 담론으로 그치지 않고 현실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19세기를 방불케 하는 엄중한 정세를 맞이하여 우리는 19세기의 「조선책략」 수준의 국가전략조차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으며, 외국인들에 의해 「한반도의 엔드게임」이 논의되는 지경에 처해 있다. 19세기말 黃遵憲의 「조선책략」의 경우처럼 외국인의 훈수에 의해 우리의 國益과 국가전략이 좌우되는 상황이 또다시 재현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