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뉴시스
문재인 정권의 ‘대북 원전 지원’ 의혹이 제기되자,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9일 “문재인 정부에서 있었던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교류 협력사업 어디에서도 북한의 원전 건설을 추진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윤건영 의원은 ‘문재인의 최측근’이면서 ‘문재인 청와대’에서 국정상황실장일 당시 소위 ‘문재인-김정은 회담’ 진행 과정에서 막후 조정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윤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행정부 국가공무원이 총 68만명인데 그들의 컴퓨터에 있는 문서가 모두 남북정상회담 의제이고 정부 정책인가”라고 하면서 “백번 양보해 해당 산업부 공무원이 관련 내용을 검토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공무원의 컴퓨터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고 그것이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는 정책 추진이라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윤건영 의원의 주장은 표면적으로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다. 68만 국가직 공무원 컴퓨터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문건이 나왔다고 해서 이를 정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추진했다고 예단하는 것은 ‘억측’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북 원전 지원’ 문제는 이와 전혀 다른 문제다.
국내에서는 대통령이 ‘탈원전’을 외치며 우리의 원전 역량을 차근차근 해체하는 과정에서 일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또는 일개 부처의 부서가 ‘신규 원전 건설’을 검토하는 행태가 과연 가능할까. 사실상 현실성이 거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일개 부처의 실무자가 ‘국가안보시설’인 원전을 반국가단체 북한에 건설하겠다고 하는 발상을 ‘윗선’의 지시 없이 독단적으로 구체화하고, 이를 문건으로 남겨 공용 컴퓨터에 저장해 놓는 일도 상상하기 어렵다.
해당 문건에 대한 제삼자의 탐색·식별·분석 작업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해괴한 저장법(핀란드어 작명과 약어 사용), 감사원 감사 직전 한밤중에 이를 폐기한 사실 등을 감안하면 “정상회담에서 나올 수 있는 남북 협력을 실무 차원서 검토하고 정리한 것뿐”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주장에 따르면 일개 공무원이 ‘후과’를 감수하면서 일요일 밤에 사무실에 잠입해 필사적으로 해당 문건들을 은폐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윤건영 의원의 주장은 또 자승자박과 같다. 문재인 정권이 지난날 적폐청산을 부르짖으면서 행했던 작태를 보면 그렇다. 단적인 예를 한 가지 들겠다. ‘기무사 계엄문건 검토 의혹’의 경과를 살펴보자.
해당 의혹은 2018년 7월,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자칭 ‘군인권센터’란 단체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정국 장악과 국민 여론 통제를 위해 계엄령 선포를 검토하는 문건(‘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 방안’)을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작성했고, 이는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을 통해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보고되는 식으로 정권 차원의 ‘내란 음모’가 있었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 대다수 언론매체는 마치 진짜 ‘내란음모’ ‘친위 쿠데타 기도’가 있었던 것처럼 기사를 써대면서 논란을 확산시켰다.
‘문재인 청와대’도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7월 9일, 해당 의혹과 관련해서 국방부가 독립수사단을 구성해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그것도 인도 방문 와중에 그 같은 지시를 내렸다. 7월 16일에는 국방부에 계엄 문건 관련 국방부와 기무사, 그리고 각 부대 사이에 오고 간 모든 문서와 보고를 즉시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7월 20일에는 청와대 대변인이 문건을 들고 나와 이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017년 3월 박근혜 정부 당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 세부자료를 확보했다”면서 그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같은 달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계엄령 관련 문건을 모두 수집하라고 한 특별 지시에 따라 국방부에서 제출한 문건이다. 당시 김의겸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하라고 지시했다”면서 해당 내용을 발표했다.
이날, 청와대가 공개한 총 67쪽 분량의 ‘대비계획 세부자료’는 애초 논란이 된 소위 ‘기무사 계엄 검토 문건’인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 방안’의 부속 문서 격이었다. 당시는 이미 문재인 대통령이 지시해 발족한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기무사 계엄 문건 의혹’을 수사하는 와중에 왜 청와대가 나서서 관련 문건을 공개했는지 그 의도는 불분명하다.
이날, 청와대가 공개한 총 67쪽 분량의 ‘대비계획 세부자료’는 애초 논란이 된 소위 ‘기무사 계엄 검토 문건’인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 방안’의 부속 문서 격이었다. 당시는 이미 문재인 대통령이 지시해 발족한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기무사 계엄 문건 의혹’을 수사하는 와중에 왜 청와대가 나서서 관련 문건을 공개했는지 그 의도는 불분명하다.
다만, 김의겸 대변인은 문건 내용 공개 당시 “‘비상계엄 선포문’ ‘계엄 포고문’ 등이 이미 작성돼 있다”는 식으로 밝히면서 보기에 따라서 해당 문안이 준비돼 있기 때문에 문건 작성에 관여한 한민구 전 국방부장관과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또는 그 ‘윗선’이 실행 의지를 갖고 있었다는 주장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당시 기무사가 작성한 문건 내용은 ‘박근혜 탄핵’에 대한 입장과 무관하게 헌법재판소 선고에 불복한 이들에 의해 ‘심각한 치안 불안’이 야기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그 대응 조치로 ‘위수령’과 ‘계엄령’을 검토했던 것에 불과했지만, 청와대 발표 이후 언론은 마치 해당 문건이 2017년 3월 당시 기무사 등의 내란 예비·음모 혐의를 입증할 증거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군이 유사시 ▲경찰의 치안 유지 불가능 ▲행정·사법 국정기능 마비 상황을 조기에 회복하려는 방안으로 관련 법령에 따라 ‘위수령’과 ‘계엄령’을 검토하는 건 위법(違法)이라고 할 수 없다. 그에 따른 세부계획도 준비돼 있어야 한다.
현재 코로나19 감염증과 같은 전염병 발생·확산에 대비하기 위해 평소 방역체계를 마련하고, 세부 실행지침을 준비하듯 ‘국가안보’의 최일선에 있는 군 역시 ‘유사시’를 대비해야 한다. 그게 바로 군의 임무다. 이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다. 오히려 이를 문제 삼아야 한다.
기무사가 작성했던 문건에는 헌법과, 계엄법에 어긋나는 내용이 없었다. 대통령은 공공안녕·질서 유지를 위해 일정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군이 맡게 하는 합법적인 비상조치인 ‘계엄’을 검토·선포할 수 있고, 기무사는 계엄령 발령 시 합동수사본부라는 계엄하의 핵심기구가 되기 때문에 관련 법령 확인과 세부 사항을 준비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은 공개석상에서 해당 문건에 대해 논의했고, 문재인 정권이 임명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문건의 존재를 알고 나서 4개월 동안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내란음모’라고 주장하고, ‘문재인 청와대’까지 나섰던 소위 ‘기무사 계엄 검토 의혹’은 문건 1건에서 비롯됐다. 그 문건 1건을 놓고 호들갑, 난리법석을 떨던 자들은 누구인가. 전 정부 문건을 들고 나와 ‘뭔가 있었다’는 식으로 공개했던 자들은 누구인가.
그보다 훨씬 중대한 의혹에 대해서는 지금 ‘터무니없는 주장’ ‘북풍 공작’이라고 반발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해당 의혹이 사실과 다르다면, 이전에 했던 식으로 온갖 문건을 들고 나와 국민에게 해명해야 하지 않을까. 또 야당이 추천하는 특별검찰을 수용하고, 국회의 국정조사를 추진해 해당 의혹에 대한 진위를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하지 않을까. 그게 바로 ‘문재인 청와대’가 취해야 할 ‘법적 조치’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는 “선거철마다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는 악성종양인 색깔론과 북풍 공작 정치(30일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논평)”를 도려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런데 왜 이 정권의 반응이 이럴까.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을 올리고, 보궐선거에서 승리하고, 정권 재창출을 기대할 수 있는 ‘호재’를 맞았는데 왜 문재인 정권은 감정적 대응으로 일관하는지 의문이다.
글=박희석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