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패망의 역사 현장
계백(階伯)장군이 이끄는 5천 명의 백제 군사가 황산벌에서 동으로부터 쳐들어 오는 신라 김유신 장군의 5만 군사와 혈전을 벌린다. 황산벌은 지금의 논산시 연산면과 양촌면 일대. 신라군의 침공을 막았던 벡제의 마지막 보루인 삼영(三營)은 황산성을 가운데 두고 북쪽으로는 노성산성, 남쪽으로는 신흥리산성이 있다.
서기 660년 여름 군사수에 있어서 열세이면서 승승장구 하던 계백 장군은 신라군의 진격을 막지 못하고 끝내는 이곳에서 궤멸한다. 계백장군 역시 이곳에서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다.
그후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 항복하고 당나라에 끌려가면서 백제는 이렇게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서울-조치원-공주를 거쳐 논산을 가다보면 노성읍내를 지나게 되는데 바로 읍내 뒷산이 노성산성이 있는 노성산(魯城山, 384m)이다. 동쪽에 있는 계룡산(845m)과는 노성천을 사이에 두고 있다.
노성산 정상에는 백제시대때 쌓은 삼태기 모양의 둘레 894m의 석성이 아직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노성산 기슭의 파평윤씨 집성촌에는 향토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다. 280년 전에 지은 백의정승 윤증(尹拯, 1629-1714)선생 고택과 조선시대때 지은 노성 향교가 있고 1717년 숙종 43년에 지은 공부자(孔夫子)의 영정을 모신 노성 궐리사(闕里詞)가 있다.
노성산성은 면사무소가 있는 노성읍내 시멘트길을 따라 산으로로 올라간다. 상월면 구야고개에서 면사무소 뒷산까지 이어지는 임도와 만난다. 10분 정도 오르면 능선 옆으로 난 산성으로 올라가는 길과 노성암-가곡리-구야고개로 가는 임도와 갈라진다. 산성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소나무 숲길이다. 바람결에 스치는 솔향기를 맡으며 걷는다. 숲속 저만치에 복원해 놓은 높이 7-8m쯤 돼보이는 노성산성이 나타난다. 남측 성벽인 이곳을 지나 4-5m 높이의 창끝처럼 뽀족하게 다듬어 놓은 기암 괴석들이 늘어선 바위 사이를 지난다. 곧바로 느티나무 고목이 늘어선 너른 마당에 절도 아닌 함석집들이 자리잡은 산성 마을에 다다른다. 그곳 있었던 총석사(叢石寺)라는 절터에 유불선을 합친 금강대교(金剛大敎) 노성분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여기서 보면 남서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논산평야와 강경평야가 시원스레 내려다 보인다.
동으로는 연산, 남으로는 논산읍, 서로는 석성과 부여땅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다시 노성분원 뒤로 난 나무계단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노성산 정상이다. 계백장군의 지휘소로 추정되는 장대터가 봉긋하게 솟아 있다. 성 한 가운데 서서보면 북고남저(北高南低)형인 성의 윤곽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노성산성 안에는 네곳의 우물터와 성문 두곳, 그리고 건물지들이 남아 있다.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을 지펴서 급보를 중앙에 전달했던 봉수대터도 있다. 노성산 봉수(烽燧)는 전남 순천에서 시작하여 북으로는 공주 월성산과 남으로는 논산읍 등화산, 봉화산 봉수와 연결돼 있었다고 한다.
노성산 북쪽으로 뻗은 능선에는 산성 동문이 있던 자리도 있었다고 하나 풀숲에 가려 찾을 길이 없다. 여기서 성돌을 밟고 내려서서 동쪽이나 서쪽으로 노성산성을 한 바퀴 돌아 내려 갈 수 있다.
성벽은 화강암을 길이는 40-50cm, 두께 25cm 정도로 수평을 맞춰 자르고 돌뿌리를 40-50cm 되게 다듬어 바르게 쌓았다. 성벽의 높이는 평균 4m 정도이나 일부 구간에서는 7m가 넘는 곳도 있다. 공주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돌을 외지에서 다듬어서 실어 온 것이 아니라 근처에서 채굴하여 현장에서 다듬어서 쌓은 것이라고 한다. 노성산을 올라 성터를 한 바퀴 둘러보는데 3시간쯤 걸린다.
계백(階伯)장군이 이끄는 5천 명의 백제 군사가 황산벌에서 동으로부터 쳐들어 오는 신라 김유신 장군의 5만 군사와 혈전을 벌린다. 황산벌은 지금의 논산시 연산면과 양촌면 일대. 신라군의 침공을 막았던 벡제의 마지막 보루인 삼영(三營)은 황산성을 가운데 두고 북쪽으로는 노성산성, 남쪽으로는 신흥리산성이 있다.
서기 660년 여름 군사수에 있어서 열세이면서 승승장구 하던 계백 장군은 신라군의 진격을 막지 못하고 끝내는 이곳에서 궤멸한다. 계백장군 역시 이곳에서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다.
그후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 항복하고 당나라에 끌려가면서 백제는 이렇게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서울-조치원-공주를 거쳐 논산을 가다보면 노성읍내를 지나게 되는데 바로 읍내 뒷산이 노성산성이 있는 노성산(魯城山, 384m)이다. 동쪽에 있는 계룡산(845m)과는 노성천을 사이에 두고 있다.
노성산 정상에는 백제시대때 쌓은 삼태기 모양의 둘레 894m의 석성이 아직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노성산 기슭의 파평윤씨 집성촌에는 향토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다. 280년 전에 지은 백의정승 윤증(尹拯, 1629-1714)선생 고택과 조선시대때 지은 노성 향교가 있고 1717년 숙종 43년에 지은 공부자(孔夫子)의 영정을 모신 노성 궐리사(闕里詞)가 있다.
노성산성은 면사무소가 있는 노성읍내 시멘트길을 따라 산으로로 올라간다. 상월면 구야고개에서 면사무소 뒷산까지 이어지는 임도와 만난다. 10분 정도 오르면 능선 옆으로 난 산성으로 올라가는 길과 노성암-가곡리-구야고개로 가는 임도와 갈라진다. 산성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소나무 숲길이다. 바람결에 스치는 솔향기를 맡으며 걷는다. 숲속 저만치에 복원해 놓은 높이 7-8m쯤 돼보이는 노성산성이 나타난다. 남측 성벽인 이곳을 지나 4-5m 높이의 창끝처럼 뽀족하게 다듬어 놓은 기암 괴석들이 늘어선 바위 사이를 지난다. 곧바로 느티나무 고목이 늘어선 너른 마당에 절도 아닌 함석집들이 자리잡은 산성 마을에 다다른다. 그곳 있었던 총석사(叢石寺)라는 절터에 유불선을 합친 금강대교(金剛大敎) 노성분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여기서 보면 남서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논산평야와 강경평야가 시원스레 내려다 보인다.
동으로는 연산, 남으로는 논산읍, 서로는 석성과 부여땅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다시 노성분원 뒤로 난 나무계단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노성산 정상이다. 계백장군의 지휘소로 추정되는 장대터가 봉긋하게 솟아 있다. 성 한 가운데 서서보면 북고남저(北高南低)형인 성의 윤곽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노성산성 안에는 네곳의 우물터와 성문 두곳, 그리고 건물지들이 남아 있다.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을 지펴서 급보를 중앙에 전달했던 봉수대터도 있다. 노성산 봉수(烽燧)는 전남 순천에서 시작하여 북으로는 공주 월성산과 남으로는 논산읍 등화산, 봉화산 봉수와 연결돼 있었다고 한다.
노성산 북쪽으로 뻗은 능선에는 산성 동문이 있던 자리도 있었다고 하나 풀숲에 가려 찾을 길이 없다. 여기서 성돌을 밟고 내려서서 동쪽이나 서쪽으로 노성산성을 한 바퀴 돌아 내려 갈 수 있다.
성벽은 화강암을 길이는 40-50cm, 두께 25cm 정도로 수평을 맞춰 자르고 돌뿌리를 40-50cm 되게 다듬어 바르게 쌓았다. 성벽의 높이는 평균 4m 정도이나 일부 구간에서는 7m가 넘는 곳도 있다. 공주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돌을 외지에서 다듬어서 실어 온 것이 아니라 근처에서 채굴하여 현장에서 다듬어서 쌓은 것이라고 한다. 노성산을 올라 성터를 한 바퀴 둘러보는데 3시간쯤 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