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먹고… ‘눈 앞이 캄캄’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4-05-01  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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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는 ‘참꽃’이라고도 합니다. 이른 봄 개나리와 함께 온 산을 분홍색으로 물들이는 진달래는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추억에 잠기게 되는 참으로 ‘신기한’ 꽃입니다. 초등학교 3~4학년 때입니다. 하루는 학교를 마치고 가까운 산 중턱에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일행 4~5명은 산으로 우르르 올라갔습니다. 진달래는 꽃이 연하고, 꽃을 따먹으면 별 맛이 없지만 그래도 조금 단맛이 나기 때문에 먹을 만합니다. 학교를 오가며 '뭐 재미있는 것 없나'하며 두리번거리며 다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먹음직스러운 진달래가 눈 앞에 잔뜩 있는 것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촌 아이들의 습성상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진달래’를 열심히 따먹었습니다. 한참이나 따먹은 후 갑자기 아이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 앞이 캄캄해지고 머리가 헤롱헤롱하고 정신이 몽롱하여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드러누워 잠을 잤습니다. 같이 꽃을 먹은 일행 중 두 명은 그래도 정신이 말짱한지 집으로 무사히 가서 부모님들께 아이들이 산에서 자고 있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먹은 꽃은 진달래가 아니라 진달래와 비슷한 ‘철쭉’이라고 부르는 꽃이었습니다. 철쭉은 꽃에 독성이 있어 많이 먹으면 위험하다고 합니다. 시골 아이들은 먹는 풀과 못 먹는 풀을 웬만하면 구별하는데 어떻게 시골 촌놈들이 대낮에 떼거지로 그런 실수를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어른들도 설마 떨떠름하고 맛없는 철쭉을 아이들이 따먹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하고 별로 주의를 주지 않았나 봅니다. 꽃 중에 제일 맛있는 것은 ‘아카시아 꽃’이라고 장담합니다. 5월이 되면 동구 밖의 아카시아 나무에서 풍겨나오는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찌릅니다. 낮은 곳에 있는 아카시아는 나름대로 열심히 따먹지만 키가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는 것은 누나나 형들을 졸라 따 먹곤합니다. 아카시아는 꽃을 하나하나 따 먹는 것이 아니고, 꽃송이 하나 전체를 손이나 입으로 쭉 훑어서 입 한 가득 넣고 씹어야 재 맛이납니다. 아카시아 꽃의 진수를 한번 보려면 꽃이 피는 때 대구 앞산공원 산책로에 가 보시기 바랍니다. 꽃은 아니지만 봄철 많이 먹는 것으로는 버들강아지가 있습니다. 3월말에서 4월초순 버들강아지는 한참 물이 오릅니다. 이때 살이 통통한 버들강아지를 주머니에 잔뜩 따 넣고 먹는데 삼켜도 되지만, 주로 단물을 빨아 먹고 뱉어 냅니다. 껌대용으로 많이 씹었습니다. 물이 오른 버들강아지 줄기로 피리를 만들기도 하는데 피리를 길고 짧게, 바람 부는 입구를 가늘게 굵게 만드느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집니다. ‘강아지풀(오요강아지)’과 ‘버들강아지’를 구별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강아지풀은 글자 그대로 일년살이 풀의 한 종류로 사람이 먹지는 못합니다. 이에 반해 버들강아지는 버드나무의 새순입니다. 버들강아지가 5월 중순 쯤해서 늙어지면 솜이 보풀어 오르고 봄 바람에 흩날리기도 합니다. 찔래 새순도 봄에 많이 먹는 간식거리 중에 하나입니다. 봄에 갓 자란 연한 찔래 새순의 껍질을 벗긴 후 오독오독 씹어 먹습니다. 싸리나무 새순은 먹지는 못하지만 나뭇가지에 난 새순의 밑동을 꺾으면 진분홍 색 물이 흘러내립니다. 여자아이들은 이 진물을 손톱에 ‘메뉴큐어’ 대용으로 바르기도 했습니다. 싸리나무는 마당비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종류가 많지만 제가 말하는 싸리는 닥나무처럼 생긴 나무입니다. 잎이 아카시아 잎과 유사한, 화투장의 4월패(지방에 따라서는 6월) ‘까막싸리’ 그림이 제가 말한 싸리나무 잎입니다. 돼지가 나오는 7월패를 ‘홍싸리’라고 부르던데 실제로 잎이 빨간 홍싸리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가지가 없이 곧고 유연성이 좋은 싸리나무는 농사짓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나무였습니다. 지금도 못자리 비닐을 씌울 때 이 싸리나무를 사용하는 집이 많고, 고추 밭에 고춧대로도 많이 사용합니다. 이 나무는 뿌리가 퍼지기 때문에 논둑에 심어 놓으면 논둑이 잘 터지지 않는 장점도 있습니다. 할머니들이 간이 지팡이로 사용하기도 하며, 개나 닭을 쫓을 때 길고, 가볍고, 맵시가 좋아 요긴한 위협 ‘무기’로 쓰입니다. 동네 꼬맹이들에게는 칼싸움하는데 싸리나무만큼 좋은 나무도 없습니다. 일년 농사 후에는 부엌의 땔감으로 일생을 마칩니다. 참, 마지막에 부엌 꼬챙이로 어머니 손에 들려 있는 것도 싸리나무 가지입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조금 샜습니다. 진달래와 버들강아지 찔래외에도 봄철에 캐 먹는 간식거리로 유명한 풀뿌리가 있는데 정확한 표준어 명칭을 몰라서 죄송합니다(우리는 이를 ‘짠데(혹은 빼기)’라고 불렀습니다). 이놈은 어린 도라지처럼 뿌리가 자그만 하지만 땅에 꼭 박혀 있어서 뽑아먹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이른 봄철 억새풀 새순을 뽑아먹기도 하는데 산나물 캐러간 아이들 손에 꼭 한묶음씩 들려 있던 것이 바로 이 억새풀 새순이었습니다(우리는 이를 ‘뽀삐’라고 불렀습니다). 다 자란 억새풀은 사람의 손을 벨 정도로 날카롭지만, 억새 새순은 보들보들 한 것이 여간 맛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역시 껌대용으로 씹었습니다. 이렇게 열매가 맺기 전 이른 봄의 간식거리는 주로 풀이나 나무의 새순이나 뿌리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외 돈나물, 나락나물, 비름, 나생이(냉이) 등은 간식거리는 아니지만 어머니나 누님들이 산이나, 밭도랑, 논둑 등지에서 많이 캐먹던 봄나물입니다. 연못에서 이른 봄 건져낸 향긋한 ‘말’이란 수초도 봄나물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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