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4-08-0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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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끈기는 99% 벼농사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벼농사는 힘이 드는 농사입니다. 나락농사에 이앙법이 도입된 후 마지기당 소출은 늘었지만 이에 들이는 노동의 양은 배가 되었습니다. 이 이앙법의 순 우리말이 ‘모내기’ 혹은 ‘모심기’란 말입니다. 이른 봄(4월말)이 되면 나락씨를 물에 불립니다. 이 과정에서 쭉정이 나락은 걸러집니다. 요즘은 이때 씨를 같이 소독하고 있습니다. 이후 못자리를 할 논을 정해 물을 가두고 못자리판을 장만해야 합니다. 이와 동시에 논을 갈아엎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경운기가 없던 시절에는 논에 물을 가두어 소로 논을 갈았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이런 작업도 할 수 없습니다.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구릉지대에 자연적으로 물이 생겨나는 논이나 「소(沼)」가 많아 1년 내내 무논 상태로 있는 논이 최고로 비싼 논으로 거래되었습니다. 비료가 없던 시절에는 논의 기운을 붇돋우기 위해 퇴비를 넣어야 했습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 퇴비증산에 총력을 쏟은 적이 있는데 퇴비를 넣지 않으면 농사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을철에 웃자란 억새풀이나, 기타 각종 풀을 지게로 져온 후 논에 쏟아 넣고 그것을 일일이 발로 밟아 논에 쑤셔 넣었습니다. 못자리 장만이 끝나면 씨를 모판에 뿌립니다. 1970년대 이후 모판에 비닐을 씌워 싹을 좀더 일찍 틔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5월 중순이후 모내기를 할 시기가 되면, 먼저 논을 삶아야 합니다. 논을 평평하게 만드는 이 작업을 써레질이라고 합니다. 모판에서 모를 쪄내서 한 다발씩 짚으로 묶습니다. 이렇게 묶어낸 모를 ‘모침’이라고 합니다. 못자리를 한 곳과 모를 심어야 할 논의 거리가 멀 경우 모침 나르는 작업도 보통 고된 일이 아닙니다. 지게로 모침을 한 가득 싣고 좁은 논둑길을 수없이 오르내리면서 써레질을 끝낸 논에다가 모침을 뿌려놓아야 합니다. 모침 나르는 작업은 여럿이 함께 하기도 하지만 주로 논 주인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내기는 주로 품앗이로 이루어 집니다. 품앗이는 하루 해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하루만에 일이 덜 끝나면 다음날 또 하루 일을 해야 합니다. 좀더 속성으로 일을 끝내기 위해서 돈내기로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봄에 모가 자라고 논을 장만했다고 무조건 모를 심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논둑 가득 자란 풀을 베어내고, 동시에 비가 와도 논둑이 터지지 않게 논둑을 논흙으로 발라서 맨질하게 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요즘 농촌에 젊은 사람들이 고된 일이 하기 싫어 논둑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장마철이나 태풍 때 논둑이 자주 터지기도 합니다. 옛날 어른들은 아무리 고되어도 이 논둑하는 작업만큼은 결코 소홀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사는 농촌사회에서 자기의 게으름으로 인해 자칫 남의 일년 농사를 망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맨질하게 손을 본 논둑에 콩을 심었던 것입니다. 그냥 논둑에 콩을 심어봐야 잡초와 뒤섞여 자라지도 않습니다. 모내기와 밭농사가 동시에 겹치기 때문에 이 시기 농촌의 모습은 그야말로 정신이 없습니다. 모를 논에 심지 않고 밭에 씨를 뿌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밭나락’ 혹은 ‘차나락’이라고 하는데 명절 때 쓸 소량의 찹쌀을 바로 이렇게 해서 얻었습니다. 모내기가 끝나고 나면 곧바로 김매기가 시작됩니다. 이때는 7~8월 폭염 속에서 김을 매야 하기 때문에 여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김매기는 손으로 논 바닥을 한 골씩 긁어 내는 작업입니다. 옛날 시골 사람들은 농사철에 손톱을 깎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논일과 밭일을 밤낮으로 하다보면 손톱이 다 닳아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김매기는 벼를 베기 전까지 몇 차례 계속됩니다. 특히 모가 한참 자란 8월 중순의 김매기 때는 날카로운 나락 이삭에 눈을 많이 찔리기 때문에 옛날 노인들 중에는 눈동자가 헤진 사람이 많습니다. 가을이 되면 나락을 베어 냅니다. 벤 나락은 한 묶음씩 묶어내어야 이후의 운반과 각종 작업에 편리합니다. 태평양 전쟁 때는 쇠붙이 공출이 심해, 놋그릇은 물론 나락을 벨 낫까지 공출을 해 갔다고 합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조선낫을 집 뒤뜰에 묻어 놓고 공출을 피했다고 합니다. 조선낫은 「왜낫(개량낫: 우리가 요즘 쓰는 낫)」에 비해 크고 무겁습니다. 조선낫은 튼튼하기 때문에 각종 단단한 나뭇가지를 내려쳐도 이가 잘 나가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묶어낸 볏단은 일렬로 논에 세워 말려야 합니다. 말리는 작업이 끝나면 한 곳에 쌓아서 탈곡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이렇게 쌓아 놓은 볏무더기를 ‘낟가리(노적)’라고 합니다. 탈곡 작업은 심지어 눈오는 겨울까지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볏단을 쌓아 놓아야 들쥐나 새들로부터 곡식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경운기와 탈곡기계가 보급된 후에는 탈곡 작업이 들판에서 이루어 졌지만, 더 옛날에는 볏단을 전부 집에 지고와 집 마당에 낟가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옛날에는 소 달구지라도 들어갈 수 있는 논이 드물었습니다. 따라서 무거운 볏단을 소의 등을 이용해서, 소가 없으면 지게로 지고 집의 마당까지 날랐다고 합니다. 탈곡 후에는 수매를 위해 나락을 햇볕에 말려야 합니다. 수매를 위해서 말리고, 다시 담고, 쭉정이를 걷어내고 이를 다시 수매장까지 옮기고 하는 작업이 반복됩니다. 옛날에는 이런 고된 노동을 한 농민들이 실상 일년에 쌀밥 몇 번 먹어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 민족이 쌀밥을 마음 껏 먹은 것은 1970년초 통일벼가 보급된 이후입니다. 쌀에 대한 우리민족의 집착은 결국 벼농사의 범위를 두만강 이북까지 끌어올려 놓았습니다. 쌀농사가 없어지면 쌀농사로부터 형성된 한국인의 많은 민족적 특성이 점차 바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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