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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 원색적인 사운드, 흑인 재즈의 독특한 필링

[阿Q의 ‘비밥바 룰라’] 월간팝송에 실린 ‘흑인 음악의 변천사’ ⑤ 펑크와 디스코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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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 콜린스(Bootsy Collins). 그는 1997년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흑인음악의 변천과정은 소울에 와서 또 여러 줄기로 뻗어나간다. 구체적으로는 70년대 이후인데 이미 당시는 흑인의 음악도 소울부터 시작된 인위적인 상업성과 대중성에 의해 백인들까지도 좋아하는 음악으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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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펑크와 디스코의 등장에 기여한 밴드 슬라이 앤 더 페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
그렇다고 해서 흑인음악이 전체적으로 그렇게 변한 것은 아니고 흑인 음악 고유의 블루스와 재즈, 가스펠 등은 나름대로 그 정통성을 지닌 채 계속 발전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70년대 들어와서 새롭게 변모하는 흑인 음악으로는 펑크(funk)와 디스코의 등장을 들 수 있는데 펑크의 특성을 뭐라 꼭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자극적이고도 원색적인 사운드가 주가 되며 이미 50년대 후반부터 흑인 재즈계에서 독특한 필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필링은 곧 제임스 브라운의 창법이나 음악 속에 있어서도 나타나고 슬라이 앤 더 페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의 음악에서도 엿보이기는 하지만 펑크 고유의 스타일이 본격적으로 선보인 것은 현재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조지 클린튼(George Clinton)* 에 의해서였다.
 
또한 그의 그룹 팔리아멘트 펑카델릭(Parliament/ Funkadelic)과 함께 대표되는 펑크 그룹으로는 Bootsy's Rubber Band, Parlet, Brides Of Frankenstein, Horny Horns 등이 있고 개인적으로 Eddie Hazell, Bernie Worrell, Fuzzy Huskins 등이 있다. 이 펑크 뮤직은 당시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편인데 국내에는 펑카델릭(Funkadelic) 정도의 그룹이 소개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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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클린턴과 부치 콜린스의 앨범.
* 부치 콜린스와 조지 에드워드 클린턴, 그리고  Parliament-Funkadelic
 
윌리엄 얼 "부치" 콜린스(William Earl "Bootsy" Collins, 1951년 10월 26일 출생)는 미국의 음악가 겸 싱어송라이터다.
1970년대초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과 함께 인기를 끌었다. 나중  펑크 재즈 그룹인 팔리아멘트 펑카델릭(Parliament-Funkadelic)과 함께 콜린스의 드라이빙 베이스 기타와 유머러스한 보컬이 그를 펑크의 선두주자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시켰다. 그는 1997년  Parliament-Funkadelic의 다른 15명의 멤버들과 함께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조지 에드워드 클린턴(George Edward Clinton, 1941년 7월 22일 출생)은 미국의 가수, 작곡가 밴드의 리더, 음반 프로듀서다.
독특한 이름의 밴드인 Parliament-Funkadelic은 1970년대 동안 공상과학 소설, 이국적인 패션, 사이키델리아, 초현실적인 유머를 바탕으로 한 영향력 있고 다양한 형태의 펑크 음악을 개발했다. 그는 1982년 앨범 《Computer Games》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1990년대 힙합과 G-펑크(funk)에 영향을 끼쳤다.
 
클린턴은 제임스 브라운슬라이 스톤(Sly Stone)과 함께 펑크 음악의 가장 중요한 혁신자들 한 명으로 여겨진다. 그는 1997년 부치 콜린스와 함께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리고 작년(2019년) 그와 Parliament-Funkadelic은 그래미 평생 공로상(Grammy Lifetime Achievement Awards)을 받았다. 평크와 재즈에 끼친 업적 때문이리라.
 
 
이어서 7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 디스코를 들 수 있는데 여기까지 와서는 완전히 상업적으로 그리고 같은 흑인들도 흑인음악의 말세가 왔다고 개탄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렇기는 하지만 디스코 역시 흑인 음악의 한 지류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디스코가 대중화되기 전부터 케이.씨. 앤 션샤인 밴드(K.C. & the Sunshine Band) 등의 선구적인 백인 디스코그룹(물론 멤버 중엔 혹인들도 있다)이 있었지만 그 독특한 리듬은 역시 흑인들의 전유물이었던 것이고 이어서 비지스와 도나 서머가 기름통에 성냥을 그어대 결국 세계는 디스코의 화염에 휩싸이게 되었었다.
 
 
영화음악과 재즈-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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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비 원더와 마빈 게이(오른쪽)

물론 70년대에 들어오면서 디스코에 휩싸이지 않고 나름대로 흑인 음악을 가지고 새로운 음악성을 추구한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스티비 원더와 마빈 게이,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 등이었는데 이들은 그동안 백인들이 시도해온 내면세계의 관념을 디스크에 옮겨 컨셉트 앨범제작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역시 백인들이 많이 해왔던 영화음악에도 대량진출, 영화 의 음악을 맡아 성공했던 아이작 헤이스(Isaac Hayes), 의 커티스 메이필드, 의 바비 워맥(Bobby Womack) 등을 비롯해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메이비스 스테이플스(Mavis Staples), 글래디스 나이트(Gladys Night),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 밀리 잭슨(Millie Jackson), 퀸시 존슨(Quincy Jones) 등 수많은 혹인 음악인들이 영화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이 시기에 또하나 눈에 뛴 음악은 재즈-펑크인데 흑백을 구분치 않는 크로스오버 재즈와 달리 대부분이 흑인 고유의 음악성으로 구사하는 재즈-펑크는 도날드 버드와 블랙버스(Donald Byrd와 Blackbyrds)의 주도아래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하비 행콕(Herbie Hancock), 존 헨디(John Handy), 행크 크로포드(Hank Crawford), 프레디 허버드(Freddie Hubbard), 일본인 재즈뮤지션 사토 와타나베(Sado Watanabe), 그리고 그루세이더스(Crusaders) 등에 의해 그 맥을 이었다.
 
그러면서도 70년대말 흑인 음악의 기둥을 더듬어보면 블루스의 감각을 지닌 정통파 신인 아티스트 몇이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바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테디 펜더그래스(Teddy Pendergrass), 밀리 젝슨(Millie Jackson), 그리고 랜디 크로포드(Randy Crawford)였다.
 

입력 : 202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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