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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감동, 흑인 영가에서 가스펠로

[阿Q의 ‘비밥바 룰라’] 월간팝송에 실린 ‘흑인 음악의 변천사’ ② 가스펠과 부기우기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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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 싱어 마할리아 잭슨과 블루스 피아니스트 지미 얀시.

인종차별이 더욱 심했던 미국 남부에 있어서 흑인의 종교는 백인과는 많이 달랐다.
남부의 흑인들은 주로 침례교가 많았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에게는 교회보다는 교회에서의 음악이 더욱 중요했다는 사실이다.
 
가스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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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가스펠 가수 글렌 캠벌
노예생활에서의 절망을 신에 대한 기도로서 자신을 구원한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자연히 기도하면서 즉흥적인 영가를 부르게 되었고 거기에는 손뼉을 친다든지 아멘을 부르거나 할 때의 힘찬 리듬이 생겨나 독특한 흑인 영가*가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1930년대 흑인교회에서 확립이 되어 현재까지 꾸준히 내려오고 있으며 백인가수인 글렌 캠벌(Glen Campbell)이나 토마스(B.J. Thomas) 같은 이들은 가스펠을 전문으로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국내에도의 알려져 있는 흑인가수 알 그린(Al Green)은 가장 대표적인 가수라 할 수 있으며 그는 보다도 위대한 가스펠 가수는 바로 마할리아 잭슨(Mahalia Jackson)*이다. 그녀의 영가는 역시 드문 일이지만 국내에서도 라이선스로 소개가 되어있는데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면 가슴 뭉클한 감동이 전해져 오면서도 즐거울 때는 정신없을 정도로 리듬과 박력이 넘쳐흐른다.
 
 
* 흑인 영가 : 아프리카적 양식이 가미된 그리스도교적 전통의 산물인 영가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존립되었다. 영가는 세속적 노래를 흡수, 변용시키면서 더욱 풍요롭게 변화되었다. 웨슬리가 말했던 ‘성스러운 노래의 격랑’은 농부들의 한숨 섞인 시냇물과 합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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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영가는 노예생활에서의 절망을 신에 대한 기도로서 자신을 구원한다는 열망으로 만들어졌다.
저녁나절에는 횃불을 켜들고 장례식장에서,
낮에는 힘든 노동을 잊기 위해 성가가 불려졌다. 교회에서 시작된 노래가 숲과 들판으로 울려 펴졌다. 도끼로 나무를 하거나 무거운 짐을 들고 걸어가며 흑인들은 성서 구절을 빌려와 그들의 고통을 음미했다. ‘요단강(요르단강)’은 멀리 있지 않았고 성서에서 말한 양떼들이 바로 미국 남부의 풀숲을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 마할리아 잭슨( 1911년 10월 26일~1972년 1월 27일) :  누구보다도 이 세상 모든 고통을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가스펠 송을 신을 향한 봉헌, 정열적 신앙심의 선언으로 승화시킨 이가 마할리아 잭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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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의 여왕 마할리아 잭슨
이들 성악가들은 고전적 성가에 새로운 작품을 첨가했는데, ‘Didn't it Rain’, ‘In the Upper  Room’, ‘How Many Times’, ‘Precious Lord’, ‘Hold my Hand’, ‘Lord’, ‘Remember Me’ 등의 작품을 꼽을 수 있다. (2007 크리스찬 뮤직 명예의 전당 헌액, 1997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1978 가스펠 뮤직 명예의 전당 헌액)
 
* 흑인 영가와 블루스의 상관관계 : 농촌의 노동요나 존 헨리의 발라드 곡처럼 영가에서 영감을 얻은 세속 음악은 아마 처음에는 어느 정도 구별이 되기는 했겠지만 블루스가 탄생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주었다. 16마디 합창곡으로 불리던 노래가 12마디 독창곡으로 변했다.
 
3/4박자를 뼈대로 하고 화음을 기본으로 한 길게 늘어지는 멜로디를 살로 한 형식을 띠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의 멜로디로 불리던 노래가 점차 여러 화음으로 불려졌다. 흑인들이 우울할 때 그들은 블루스 분위기에 잠기지만 그들은 또한 적극적으로 이 우울증을 비웃으며 고통에서 해방된다.
 
유머와 연결된 슬픔, 현실과 환상의 어우러짐, 이것이 초기에는 냄비, 장난감 피리, 빨래판에서 시작하여 밴조, 기타, 피아노에 이르기까지 악기가 발달하면서 형성된 블루스의 마력이다.
 
부기우기
 
1920~30년대에 한 소절에 8박자로 연주되던 블루스의 일종으로 피아노 음악이었는데 이 음악의 발생은 대도시의 흑인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렌트 파티(Rent Party)* 에서부터였다.
 
* 렌트 파티를 스키플(Skiffle)이라고도 부르는데 의미는 집세 모금 파티였다. 재즈와 포크를 뒤섞여 연주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스키플 밴드라고 불리는 로컬 재즈 그룹으로서 흑인들간에 인기를 모았다.
 
이 파티는 당시 집세가 비싼 관계로 상호부조를 위해 그날의 호스트가 1개월분의 집세를 모으는 것으로서 가벼운 식사나 음료를 장만하고 피아니스트가 출연해 연주하는데 당시 그들의 연주는 인기 최고였다고 한다.
 
부기우기의 대표적 아티스트는 Jimmy Yancey, Albert Ammons, Clarence Smith Pine Pop’ 등이 있었고 이 음악이 백인들에게까지 전파된 것은 30년대 중반 빅 밴드들이 부기우기를 그들의 취향에 맞게 대중화시킨 이후이다. 현재도 부기우기는 흑백을 가리지 않고 가끔 소개되기도 하는데 우리식을 표현하자면 계 모임에서 나온 음악이랄까.
 

입력 : 2020.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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