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미북정상회담은 무위로 돌아갔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결렬된 제2차 미북(美北)정상회담과 관련, 국내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포스트 하노이’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준비 태세를 강조하고 나섰다.
북한은 2차 회담에서 영변 핵 시설 폐기 조건으로 ‘대북(對北) 제재 완전 해제’를 원했지만, 미국은 이미 효력이 다한 ‘영변 카드’ 외에 북한이 ‘추가 핵 시설들도 모두 폐기’할 때만 ‘상응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맞받아침으로써 협상은 결렬됐다.
북한은 ‘벼랑 끝 전술’로 나왔다. 15일 러시아 ‘타스통신’ 보도에 따르면,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날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미국의 요구사항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지 양보할 의사가 없다.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중단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하노이 회담의 교훈과 과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게 밝혀졌고 ▲그런 속내를 알아챈 미국 협상단이 ‘노 딜(No Deal)’ 전략으로 ‘나쁜 합의’를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며 ▲문재인 정부는 ‘북핵(北核) 폐기’를 우선시해, 남북관계 과속 추진으로 미국과 엇박자를 내선 안 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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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미북정상회담 이틀째인 지난달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JW메리어트 호텔에서 회담 결렬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美 정부, ‘核 보유’ 고수하면서 제재 해제하려는 北의 협상술 실체 파악”
김태우 동국대 행정대학원 석좌교수(전 통일연구원장)는 지난 13일(현지시각)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기고한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동향>이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하노이 회담 결렬을 통해) 한국 국민은 북한이 핵무기를 내려놓을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며 “북한은 핵 협상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무력화를 요구하겠다’는 장기적인 목적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미국 정부는 하노이 회담을 통해 북한 협상술의 실체를 파악했다. 북한이 말하는 ‘조선반도 비핵화’가 미국이 원하는 ‘북한 비핵화’와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사실도 확인했을 것”이라며 “미국의 관리들은 북한이 핵 보유를 고수하면서, 제재를 해제하거나 완화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됐다. (그러므로 ‘핵 보유하면서 제재 해제’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무력화’ 등) 북한의 이런 목표들은 결코 쉽게 달성되지 않을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지난 13일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제3차 자유진영 시국 대토론회(대한민국 생존과 안보를 위한 핵 균형 및 첨단·재래식 대응 방안)’에서 “2018년에 북한의 핵무기 폐기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고 현 정부는 노력하였으나, 이번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결과를 통하여 (북한은) 핵무기를 폐기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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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 JW메리어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이 서울역 대합실에서 TV를 통해 중계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박휘락 교수는 “이제 한국은 외교적 노력을 통하여 북한의 핵 개발을 포기시키거나 개발된 핵무기를 폐기한다는 접근에만 의존하지 말고,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사용을 ‘억제’한다는 절박하면서도 실제적인 노력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다”며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이 가해질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 하에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극단적인 대책’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여 (북핵을) 억제한다는 개념이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불안하다”며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재래식 무기만으로도 억제 및 방어할 수 있는 태세를 구비해 나가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의 제언이다.
“文 정부, ‘北核 공격’ 가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 하에 대책 강구해야”
“북한의 핵무기 사용 위협에 직면하여 현재 상태에서 한국이 실행할 수 있는 유효한 방책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이 핵무기로 공격할 경우 (전투기) F-15를 비롯한 한국 공군과 미사일이 북한 지도부를 ‘정밀타격’하여 살상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이를 위한 계획과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사전) 억제가 실패하여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것 같은 ‘명백한 징후’가 존재할 경우 사전 ‘정밀타격’으로 북한의 핵무기를 지상에서 파괴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이를 위한 계획과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런 위기의식 하에) 한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관한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데 국가와 군의 모든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그 양과 질, 배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함으로써 ‘정밀타격 억제전략’의 시행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조영기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통일연구회장(전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은 최근 발표한 <‘하노이 담판’의 교훈과 과제>라는 제하의 보고서에서 “(하노이 회담에서) ‘노 딜’의 원인은 북한이 ‘영변+α’에 대한 폐기를 거부한 것이다. 이번 하노이 회담 결렬에 따라, 북한은 핵 시설을 시종일관 기만·은폐하고 미국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인식의 격차가 확인됐다”고 진단했다.
조 회장은 “사실 영변 이외에 북한에 제2, 제3의 우라늄 핵시설이 존재한다는 것은 공개된 비밀이다. 대표적인 곳이 평양 외곽의 천리마구역 내 ‘강선’이다”라며 “‘강선’의 우라늄 농축 능력이 영변의 2배에 달하며, (북한에는) 최대 10곳의 농축시설이 더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우라늄 광산과 정련소 등이 40~100곳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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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9월 20일 2박 3일의 평양남북회담 일정을 마치고 백두산 방문을 위해 북한 삼지연 공항에 도착, 김정은과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이어 “정부 관계자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북의) 핵 탄두는 20~60발로 추정되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투발(投發) 수단도 1000발 이상 보유하고 있고, 핵·미사일 핵심 인력 200명을 포함해 1만명 이상의 인원이 (북한에서 핵 개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답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제언이다.
“南北관계 과속, ‘對北 제재’ 허점 만들어 ‘北核 폐기 불가능한 지경’에 이를 수 있다”
“‘하노이 담판’은 몇 가지의 교훈을 남겼다. 우선 김정은이 ‘하노이 담판’에서 ‘결코 북핵 폐기에 응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협상 테이블에 영변 핵시설만 제시되고, 다수의 우라늄 농축 시설은 은폐했다는 사실은 김정은의 핵 폐기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 영변 핵시설은 수명이 다해 용도 폐기가 임박했고, 영변의 핵 능력은 북한 전체 핵 능력의 30~40%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고철이 된 것이나 다름없는 영변 핵시설을 완전한 제재 완화의 대가로 제시했다는 사실은, 북한이 언제라도 국제사회를 기만할 수 있음을 다시 확인시켜줬다.
‘하노이 담판’이 결렬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중재자 역할을 요청했다. 중재자 역할은 북핵 폐기 도정(道程)에서의 중재자이다. (이를 간과한) 문 대통령이 3·1절 경축사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을 통해 ‘한반도 신(新)경제지도’를 언급한 것은 아무래도 성급해 보인다. ‘하노이 담판’에서 보여준 북한의 속내가 미국의 제재 지속을 우회하려는 모양새인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은 향후 한미 엇박자를 유발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미 간 이런 엇박자로는 김정은의 ‘핵 질주’를 막을 수 없다. 특히 남북관계 발전 과속이 우리 스스로 대북 제재의 구조적 허점(structural hall)을 만들어, 북핵 폐기가 불가능한 지경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