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일 '3.1절 기념식'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기념식에서 매번 웅장하게 읽어오던 獨立宣言書를 원문대로 읽지 않고 쉽게 풀어서 읽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이렇게 풀어서 읽으니 도무지 원문이 가진 힘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언론은 이를 두고 “3.1 절 독립선언서를 우리말로 읽었다”고 보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우리의 독립선언서가 언제 중국어나 영어로 쓰여 졌답니까? 독립선언서는 그 자체가 우리의 國語입니다. 남의 나라 말로 쓴 게 아닙니다. 다만 선언서의 결연함과 독립 의지를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좀 더 장중한 어휘를 사용했을 뿐입니다. 그나마 없는 단어를 만들어 일부러 어렵게 쓴 것이 아니라 당시 식자들이 사용하고, 우리 국어 사전에 있는 단어를 가지고 선언서를 썼습니다. 
 
때문에 독립선언서는 原文 그대로 읽어서 당시의 시대상황과 선언서가 가진 힘을 제대로 느낄 수가 있게 해야 합니다. 조금 어렵다고 풀어서 의미를 전달할 바에야 뭐 하러 아까운 시간 낭비해 가면서 그것을 다 읽어야 하겠습니까. 그냥 “독립선언서에는 이러이러한 내용이 쓰여 있습니다” 하며 짤막한 요약문을 발표하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좀 쉽게 풀어서 읽으면 많은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알고 더 좋지 않겠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3.1절날 이를 풀어서 읽으면 원문이 발표될 때 가지고 있던 시대성과 역사성을 훼손하는 결과도 됩니다. 그동안 3.1절에 독립선언서를 원문 그대로 읽어온 것은 그날 그 자리에서 우리가 이러한 독립선언서를 이렇게 발표했다는 역사성을 상징적으로 재현해서 보여주기 위한 것이지, 그걸 100% 국민들이 알아들으라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애당초 독립선언서 자체가 독립을 선언하기 위한 글이기 때문에 문장 하나하나가 힘있는 선언체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3.1절날 이를 낭독할 때는 당연히 선언서가 가진 문장 자체를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날도 선언서는 힘있게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또한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이를 원문으로 읽어야 아이들이 "아, 3.1 운동 당시에는 조상들이 낭독한 독립선언서가 저랬었구나" 하면서 나름대로 역사성을 인식하게 됩니다. 15세기에 쓰인 訓民正音 서문도 몇 번만 읽으면 그 뜻을 알 수가 있습니다. 독립선언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가 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이기 때문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풀어 쓴 내용은 TV에서 자막으로 처리해주거나, 낭독하기 전에 사회자나 낭독자가 이 선언서가 가진 역사적 의미와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면 될 일입니다. 

모든 걸 편의주의로만 바라보면 안된다고 봅니다. 힘들어도 배울 것은 배우고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합니다. 이러다가 판소리 춘향가도 어려우니 죄다 요새말로 부르자는 소리가 나오지나 않을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