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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 상임감사 하마평에 오른 황인오씨가 연루된 '중부지역당' 사건의 실체!

[자료를 통해 본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황인오 "北의 국가 운영방식은 말이 안 돼" (2004년 한 인터뷰에서)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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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발생한 지 12년이 지난 2004년 황인오씨는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우상화, 유일사상, 세습체계 등 북한 정권의 국가 운영방식은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자신의 활동에 후회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황씨는 "체포될 시점에 이르러선 북한 김일성, 김정일 정권과 교섭은 필요하지만, 나중에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며 "한때 우리가 시대상황을 잘못 판단해서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수사과정에 조작되거나 부풀려진 것이 있는지에 대해선 "일부 과장된 면이 있지만, 대체로 큰 틀에서는 사실이다. 그걸 부인하지는 않는다"고도 했다.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조직 체계도. 사진=안기부 발표 자료
최근 ‘강원랜드 상임감사’ 물망에 올라 논란의 중심에 선 황인오씨는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에 연루됐던 인물이다. 이 사건은 1990년대 최대 공안사건 중 하나였다.
   
1992년 10월 6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북한의 지령에 따라 남한에 구축된 지하당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의 전모를 발표했다. 안기부는 거물간첩이자 북한 서열 22위로 알려진 이선실이 황인오씨를 포섭, 서울과 인천 등 24개 주요 도시의 46개 기업과 단체 등 각계각층으로 구성된 400여 명의 조직원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안기부가 발표한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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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오씨(좌)와 이선실
 
  
<이선실은 4·3 제주폭동 유가족을 칭하고 재야단체와 민중당 등에 접근, 민중당 대표 김낙중·민중당 조국통일위원장 손○○(익명 처리-기자 주) 등으로 하여금 운동권과의 연대투쟁 공간을 마련하고, 연방제 통일 실현을 위한 ‘상층부 통일전선공작’에 주력하도록 했다.
이선실은 과거 남로당과 같은 지하당을 구축하기 위해 1980년 사북사태(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소재의 탄광회사인 동원탄좌에서 발생한 탄광 노동자들의 대규모 소요사태-기자 주)를 주동한 바 있는 황인오를 포섭, 강원 및 충남·북 일원을 중심으로 하는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위장명칭·민족해방애국전선·이하 민애전)을 구축했다. 
안기부는 북한이 민중당에 침투시킨 간첩 김낙중·손○○ 일당 여섯 명과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조직원 400여 명 중 총책 황인오 등 124명을 검거, 이 중 68명을 간첩·반(反)국가단체 구성 혐의 등으로 구속, 송치하고 잔당을 추적 중이다. 동(同) 수사과정에서 권총, 수류탄 등 각종 무기류와 무전기, 난수표(亂數表) 및 공작금 100만 달러 등 총 149종 2399점에 달하는 공작금품을 압수했다.>
 
이 사건은 구속자만도 62명에 이르고 수배자도 300여 명에 달했다. 특히 북한의 고위 서열 중 한 명인 이선실이 직파(直派)돼 공작을 총지휘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줬다. 황인오씨뿐 아니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이름도 오르내렸다. 사건 당시 민주당 부대변인이었던 김부겸씨는 이선실과 접촉, 그로부터  500만 원을 건네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김부겸씨는 이 사건으로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로 구속기소,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 집행유예 2년을 확정판결 받았다. (2016년 총선 기간 중 김부겸씨 측은 국가보안법상의 회합죄와 불고지죄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지만 이선실과 회합한 사실이 없어 무죄를 선고받았고 돈을 받은 적도 없어 검찰에 의해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불고지죄에 대해서만 집행유예의 형을 받았다고 말했다. -기자 주)
 
총책 이선실과 그에게 포섭된 황인오
 
총책 이선실은 1916년생(호적상 1917년생)으로, 1980년 3월경부터 1990년 10월까지 10여 년간 남북한 및 일본을 왕래하며 북한에서 직파된 공작원 10여 명과 함께 대남공작을 지휘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1990년대 초부터 김낙중과 함께 민중당 창당을 주도하며 민중당 내 핵심 당원들을 포섭했다. 남한의 전위 세력들을 조직한 이선실은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1990년 강화도를 거쳐 월북했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선실은 1999년 ‘남한 간첩’ 혐의로 체포돼 고문을 받다가 사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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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오씨가 소지했던 간첩공작 장비.

당시 공안당국은 황인오씨가 이선실에게 포섭돼 1990년 10월 17일 월북, 교육을 받은 뒤 같은 달 23일 남한으로 돌아왔다고 전했다. 황인오씨가 반(半)잠수정에 탑승해 북한에 도착한 뒤 평양에서 김일성 동상·만경대·주체탑·혁명열사릉 등을 참배하고 김일성·김정일 찬양 영화 및 임수경 체북 기록영화 등을 관람했으며, 주체사상 등 사상교육과 권총 사격훈련 등을 받고 조선노동당에 정식 입당했다는 것이다.
    
현지 입당했던 이철우씨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지내 
 
중부지역당에는 '현지 입당'이란 규율이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지 입당이란 북한 노동당에 가입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하지 않고, 남한 현지에서 입당한 후 북한이 추인(追認)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현지 입당과 관련해 유명한 인물이 바로 이철우씨다. 이철우씨는 17대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이다.
 
그는 1992년 북한 조선노동당에 현지 입당했다는 사실이 국회의원에 재임 중이던 2004년에 알려져 논란이 됐다. 그는 현지 입당 후 당원부호 ‘대둔산 820호’를 부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3년 7월 8일 징역 4년을 선고받았던 이철우씨는, 복역 후 한탄강 댐건설 반대를 위한 시민운동 등을 벌여오다 1999년 2월 25일 특별복권됐다.
 
황인오씨 등은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이념으로 한다’는 내용의 노동당 규약과 김일성에 충성을 다짐하는 맹세문도 채택했다. 관련자들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조직원들이 남한 현지에서 입당했던 이른바 ‘현지 입당’ 절차는 이러했다고 한다. 판결문 중 일부다.
 
"나는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한 수령님의 전사"
 
<입당 대상자는 황인오 등 입회자와 함께 중앙에 서서 노동당기와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향한다. 입회자가 “‘조선 노동당’ 강령과 규약을 승인하였으므로 지금부터 입당식을 거행하겠습니다”라고 선포. ‘적기가(赤旗歌)’와 ‘수령님께 바치는 충성의 노래’ 제창. 오른손을 들고 ‘맹세문’ 낭독.
 
 맹세문 내용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우리 조선이 치켜든 찬란한 주체의 횃불에 따라 장엄한 역사적 진군을 시작하는 성스러운 이 시각에 나는 조국과 민중 앞에 숭고한 사명을 심장 깊이 새기며 영광스런 우리 전선과 수령님 앞에 나의 전 생애와 생명을 걸고 다음과 같이 맹세한다.
 
  1. 나는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한 수령님의 전사이다.
  1. 나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주체형의 혁명가이다.
  1. 나는 전선의 영예로운 전사이다.
  1. 나는 한국 민중의 애국적 전위이다.
  1. 나는 민중과 운명을 같이하는 민중의 벗이다.
  1. 나는 목숨 바쳐 전선과 혁명을 지킨다."
  
맹세가 끝나면 입회자가 “조선노동당 당 중앙의 위임에 따라 동지의 조선노동당 입당을 허가함을 선포한다”고 말하고 입당자에게 당원 부호(대둔산 ○호)와 조직 내에서 통용하는 조직명(가명)을 부여. 이어 입회자가 “오늘 동지의 맹세가 영원토록 변치 않기를 바란다”고 다짐한 후 “우리의 임무는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제 당신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지도부 성원이다”라고 고지. 입당자와 입회자 간에 악수를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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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오 手記 "독자적인 위장 명칭 예비… 상급 조직과의 연계 차단"
 
황씨는 옥중에서 공작의 과정과 중부지역당의 실체를 담은 수기(手記)를 작성하기도 했다. 다음은 그의 수기 중 일부다.
 
<조직의 실체는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이되 만약의 경우 적발되었을 경우에는 한민전 노선을 따르는 자생조직임을 내세우기 위해 ‘민족해방애국전선’이라는 이름을 예비해 둔 것이다. 최악의 경우 '한민전 중부지역위원회'를 자처할 수도 있는 것이고 이것은 ‘중부지역당’ 지도부만이 아니라 앞으로 조직될 산하 각 도당(道黨)과 시군당(市郡黨) 역시 ‘민족해방애국전선’이 아닌 독자적인 위장 명칭을 예비해 둠으로써 조선노동당의 계선조직인 것은 물론 각 상급 조직과의 연계도 미리 차단하기 위한 계획이었던 것이다.>
 
중부지역당은 당(黨) 정치신문 <백두산>, 북한방송 녹취자료집 ‘새날의 주인’ 등을 발간했다. 이른바 ‘특보 사업’이라는 것도 추진했다. 황인오씨의 수기 중 일부다.
 
<1991년 11월 초에 서울에서 개최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각료회의)에 주목하여 이를 ‘특보’ 사업으로 명명한 김정일의 남한 순례설을 조작, 유포하기로 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전기침(錢其琛) 중국 외교부장과 함께 참석한 이람청(李嵐淸) 중국 대외경제부장의 수행원을 가장하여 김정일이 서울에 들어왔으며, 서울에 들어온 즉시 남쪽 공안기관원의 감시를 따돌리고 렌터카를 대여하여 2박 3일 동안 남한 전역을 순회하며,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어루만지고 곧 다가올 통일된 나라에서는 누구나 똑같은 인간 대접을 받으며 사는 낙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꿈 같은 희망을 주고 갔다는 내용으로 ‘특보’를 만들었다.
사실대로 말해서 이 특보 사업은 그것 자체의 의의에 주목하기보다 이○○(익명 처리-기자 주) 부장으로 대표되는 평양의 지도부, 아마도 김정일에 이르게 될 평양의 대남(對南)사업 담당자들에게 의무이행을 보고하려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이 ‘특보’를 강원도와 대전, 충남 지역에 200부가량 배포했다.>
 
김낙중, 윤민석, 장기표…
   
이 밖에도 황인오씨 등은 중부지역당 전위(前衛) 조직인 ‘애국동맹’ 산하 ‘5·1 노동동맹’ 조직원들을 동원해, 김정일 생일 등에 ‘충성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수사당국은 밝혔다.
  
황인오, 김부겸씨 외에도 이 사건 관련자 중에는 유명 인사가 꽤 있다. 당시 민중당 대표였던 김낙중씨를 비롯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촛불집회의 주제가 격이었던 '이게 나라냐'와 더불어민주당의 전신(前身)인 민주통합당 당가를 작사·작곡한 윤민석씨가 대표적이다. '합리적 진보'를 표방하고 있는 장기표씨도 이 사건으로 구속됐었다.
 
황인오의 회고 "사람들이 '고문에 의한 조작'이라고 증언해 주길 바랐지만..."
 
이철우 의원의 현지 입당 파문이 정국을 뒤흔들었을 당시, 황인오씨는 한 월간지와 인터뷰를 가진 바 있다. 당시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황씨는 안기부에 체포된 이후 자신의 혐의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고 한다. 조사 과정에서 이선실과 접촉했던 이들에 관한 정보를 당국에 제보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형을 감경(減輕)해 달라고 요구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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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노동당 현지 입당식 때 사용한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

    
'사건 당시 변절자라는 지탄을 받았다'는 질문에 황인오씨는 “그 노릇을 해서 내가 과연 무슨 이득을 봤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나로 인해 어머니와 아내까지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1992년 사건 당시 많은 사람이 내가 법정에서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고 증언해 주기를 바랐고, 실제 그렇게 부탁한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한 일은 했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건은) 큰 틀에서는 사실... 가족 폭행은 안기부가 사죄해야'

그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우상화, 유일사상, 세습체계 등 북한 정권의 국가 운영방식은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자신의 활동에 후회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체포될 시점에 이르러선 북한 김일성, 김정일 정권과 교섭은 필요하지만, 나중에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한때 우리가 시대상황을 잘못 판단해서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대가는 충분히 치렀다고 생각한다.>
 
수사과정에 조작되거나 부풀려진 것이 있는지에 대해 황씨는 "일부 과장된 면이 있지만, 대체로 큰 틀에서는 사실이다. 그걸 부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내 어머니와 집사람, 네 살 먹은 아들을 안기부 지하실에 20여 일 동안 감금하고 온갖 폭행을 한 것에 대해서는 ○○○ 의원(익명 처리-기자 주)을 비롯해 당시 안기부 조사관들과 국가가 반드시 사죄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8.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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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sh76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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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한 (2018-09-01)

    좌파일급종북정부에서일급간첩황인호을강원랜드상임감사를채용한것이과연이정부가완전좌빨이아니고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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