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잘 보지 않습니다.

사극을 좋아하지만 이 드라마 초반부에서 이순신의 청년 시절을 작가가 마음대로 그린 것을 보고는 나머지 부분을 더 이상 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순신은 기존에 인기를 끌었던 허준이나, 대장금과는 다른 차원의 사극입니다. 동의보감을 편찬한 허준의 생애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재미와 감동을 위해 그의 일생을 어느 정도 허구 속에서 재구성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문제입니다.

드라마 대장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실록에 '대장금이란 의녀가 있었다'는 짧은 기록을 바탕으로 소설을 쓴 것이기에 내용자체가 허구일 수 밖에 없습니다. 99% 허구를 다룬 대장금이지만 이 드라마는 내용적인 면에서 현대적 요소를 많이 도입해 여러 차례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장금이가 자기 목숨을 걸고 대비에게 내기를 요청하는 내용이라든지, 궁중의 요리대회를 통해 최고상궁을 뽑는다는 설정 등은 현대적인 사고를 가미한 부분이었습니다. 최고상궁이란 직책과 용어도 작가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대장금의 내용 자체가 어차피 허구이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장금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애교로 봐 줄 수가 있습니다.

사극에서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습니다.

명백한 사실을 반대로 그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먼저 일본을 쳐들어가서 일본이 반격하면서 임진왜란이 발생했다든지 하는 설정은 역사 왜곡에 해당됩니다. 소품과 풍습에 대한 고증도 중요합니다. 임진왜란 전투 장면에 M16 소총이 등장 할 수는 없습니다. 

인물의 비장함이나 신비함, 영웅적인 모습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의 각색이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안중근 의사의 일생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그의 출중함을 강조하기 위해 "안중근이 20세에 일본에 비밀리에 건너가 이토 히로부미와 동양평화론에 대해 담판을 했다"는 식으로 드라마를 만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는 역사 왜곡에 더하여 안중근을 모독하는 행위에 해당될 것입니다. 

우리의 사극은 위에 예를 든 '어처구니 없는' 수준의 왜곡조차도 '새로운 역사 해석'이란 이름 하에 자연스럽게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드라마 이순신에서 원균과 이순신이 어려서부터 마치 라이벌인 것처럼 그린다든지, 임난 전에 선조가 일본 정벌 계획을 가지고 있다든지 하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일입니다.

지난 토요일 방영된 이순신은 이 드라마가 가진 황당함의 극치를 보여 주기 충분했습니다. 간혹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 임금분장을 한 사람과 신하들이 농담 따먹기 하면서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 나오는데 이날 방영된 드라마는 이런 코미디보다도 수준이 더 나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 전 방영분을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만들던 거북선이 침몰됐다며 선조가 수군을 해체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제가 실록을 하나씩 뒤져보지 않아 지금 당장 확언은 못하겠지만 여러 관련 사서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더 웃기는 것은 선조가 수군 해체를 명했는데 이순신은 그 명령을 거부하고 독단으로 수군을 유지한다는 설정입니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이순신이 말을 타고 서울에 도착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순신은 대궐에 칼을 차고 들어와 임금께 독대를 요청합니다. 이순신은 선조에게 수군해체는 불가하다는 것을 청원합니다.

임금과 독대 자체가 금기시되던 시절에 독대를 요청한다는 설정 자체도 우습지만, 진영을 비우고 서울까지 말을 타고 와서는 따지는 이순신의 모습도 황당합니다. 

코미디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선조임금과 문무백관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더니 이순신에게 호통을 칩니다.

"네 이놈! 일개 무부 따위가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이에 이순신은 지지 않고 눈을 부라리며 선조에게 대듭니다. 이순신은 수군을 폐하려면 자신의 목을 먼저 베라고 합니다. 그러자 선조는 섬돌을 달려 가더니 칼을 들고 이순신의 목을 치려고 합니다.

드라마대로 한다면 이순신이나 선조나 군신의 도리라고는 배워본 적이 없는 완전히 막돼 먹은 자들입니다. "고증이고 사실이고 내가 알 바 아니다"는 식의 '막가는 드라마'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설정입니다. 그 다음 회를 보지 않아 이러한 황당한 장면이 이순신의 꿈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는지는 제가 확인을 못했습니다.  

이 밖에 임진왜란 때 M16 소총을 들고 싸우는 식의 어색한 장면도 너무 많습니다.

일본 무사들의 복장은 나름대로 멋있게 고증을 한 것 같은데 우리나라 무관의 복장은 푸른색과 붉은색 일색입니다. 중국인은 아닌 것 같은데 散髮을 한 이상한 무사 하나가 이순신을 호위하고 다니는가 하면, 장군들이 맨 상투 바람에 여기저기 막 돌아다닙니다. 수군들은 등과 배에 '水'를 쓴 헝겁을 두르고 다닙니다. 병사들 막사는 완전히 요즘 군대 내무반입니다.

이러다가는 "이순신은 임진난 때 죽지 않았고, 사실은 산속에 숨어살면서 난중일기를 창작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