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아파트 베란다에서 짹,짹거리는 새소리가 나서 창을 열고 창 주위를 살펴 보았습니다. 창 밖에 매단 에어컨 실외기 주변에서 계속해서 들리는 새새끼소리를 듣고 옆 창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어 실외기의 바깥쪽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분명히 새새끼 소리는 실외기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전선과 배관을 연결하느라 뚫린 작은 구멍이 옆 모서리에 나 있으나 전선과 배관이 엉켜 있어 새가 들락거릴 수가 없게 돼있었습니다. 벽 안쪽을 향한 실외기 한 모서리에 직경 4-5cm 크기의 작은 구멍속에서 새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습니다. 실외기 속에 작은 새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친 것이 분명했습니다. 문 뒤에 숨어서 보니 어미새가 입에 작은 곤충을 물고 와 실외기 주변을 이리저리 날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날아왔다가 인기척에 놀라 다시 공원 건너 숲으로 날아가는 어미새는 여름에는 산에서 살다가 겨울이면 인가 주변으로 내려오는 텃새인 박새였습니다. 배가 고픈 새끼들이 실외기 속에서 먹이를 물고 날아 올 어미새를 애타게 기다리며 큰소리로 짹짹거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얼씬거리니까 어미새는 둥지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이리 저리 오가더니 건너 편 산 숲 속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새끼들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지더니 그 중에서 제일 배가 고팠던 새끼 한 마리가 노란 주둥이를 내밀고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동안 둥지속의 새들이 알에서 깨어나 이렇게 컸지만 집안 식구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실외기 속에 박새가 둥지를 틀고 새끼칠 것이라는 상상도 못했고 눈치도 채지 못했습니다.

어미새의 지저귐과 새끼들의 짹짹거림으로 베란다는 상당히 시끄러웠으나 창밖에서 나는 새소리로만 여겼던 것입니다.

실외기의 작은 구멍으로 주둥이를 내밀던 새끼 한마리는 밖으로 발까지 내밀고 곧 튀어 나올 자세였습니다. 문을 열고 새를 구경하는 식구들의 소란을 멀리 어디선가 지켜 보고 있는 어미새는 둥지가 탄로 날까봐 새끼들이 배고프다고 끊임없이 울어대도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배가 고픈지 새끼들은 더욱 기를 쓰고 짹,짹거렸습니다. 드디어 노란 입을 짝 벌린 새끼 한 마리는 작은 구멍으로 다리까지 내밀고 튀어나올 태세었습니다. 어미새를 애타게 기다리는 새끼들의 지저귐이 더욱 잦아지고 연신 큰 입을 벌린 새끼들이 머리를 번갈아 내밀고 있었습니다.

층층마다 창밖으로 내건 에어컨 실외기가 매달려 있건만 하필이면 14층이나 되는 높다란 우리 집 실외기 속에 박새가 둥지를 틀었을까.

아파트 숲속을 헤매던 어미새들이 창 밖에서 보니 베란다에 화초들도 가득하고 식구가 별로 없으니 조용한 우리 집 분위기가 맘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비록 창 밖에 마련된 둥지일지라도 한식구가 된 박새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집안 식구들은 모두들 둥지속의 새끼들이 잘 자라 무사히 둥지를 떠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집에 굴러 온 복덩이라 생각하고 둥지속의 박새 가족들을 반기는 표정들이였습니다. 그 이후부터 박새 가족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베란다 창문을 여는 것은 물론 베란다 출입을 삼가하고 있습니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지만 새들이 다 자라 둥지를 떠날 때까지 에어컨도 켤 수가 없는 불편함도 감수할 작정입니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산과 들은 무분별하게 파괴되어 야생 조류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서식환경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새들의 먹이인 곤충과 식물들이 사라지고 있으니 자연히 새의 종과 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아파트 에어컨 실외기 속에 둥지를 튼 박새들을 보면 숲속의 새들도 어쩔 수 없이 인간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지혜를 터득한 것인지, 아니면 나무에 구멍을 파고 둥지를 짓는 수고를 덜고 인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을 함께 누리며 편하게 살기로 작정을 한 것인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