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당 신기남 前 의장이 「친일파 청산」을 앞장서다가 자기의 부친이 일본군 헌병 오장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당 의장직에서 사퇴를 했습니다. 신 前 의장의 아버지가 일본 헌병 오장을 지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문제가 불거지자 항간에는 『거짓말 한 것이 나쁘다』, 『친일파 자손이 민족정기 외치다니』, 『의장직 사퇴하라』등등 별 이야기가 다 나왔습니다. 저 눈에는 문제의 본질이 「거짓말을 했느냐 안했느냐」, 「아버지가 일본군 헌병이라고 자식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말란 법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에 있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 사건은 「거짓말의 문제」, 혹은 「이중 인격자의 문제」, 혹은 신 前 의장 자신이 말하는 「과장과 오해의 문제」를 넘어선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이는 바로 「패륜의 문제」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 前 의장은 『언젠가는 밝히려 했는데 이제 기회가 됐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가 자기 아버지가 일제시대 때 무엇을 한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자기가 저주를 퍼부은 「친일파」의 대상에 자신의 아버지가 포함될 수도 있는 상황을 인지한 상태에서 계속해서 「친일파 척결」을 외치는 데 앞장선 것이 됩니다. 만약 신 前 의장의 말대로 그가 자기 아버지의 일제 시대 때 행적을 자세하게 몰랐고, 단순히 일본 헌병에 있었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그는 더욱 삼가 하고 조심했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의 부친이 일본 헌병 오장을 했지만 부친의 행적이 매우 유동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부친이 자기 직위를 이용해 독립군을 도왔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독립군 정보원 활동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물론 이런 사실과는 다르게 신 前 의장 부친에게 잔인한 고문을 당했다는 사람만 줄줄이 나왔지만). 혹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 헌병이 되어 일본에 수동적인 협조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일본의 이익을 위해 동족에게 잔악한 짓을 많이 한 「친일파」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철없는 자식이 나와서 『친일파 척결하자』고 떠들고 다닐 경우, 그 아버지 되는 사람은 일제시대 때 그 사람이 어떤 친일적인 행동을 했느냐 보다는 그 사람이 맡았던 「애꿎은」 하급 직책 하나만으로 친일파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될 수 있습니다. 신 前 의장은 사건이 불거지자 『(선친의 일본군 복무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은 있었다. 선친이라서 내놓고 말하지 못해 늘 부담스러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신 前 의장은 말할 것도 없이 입을 다물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자신으로 인해 아버지가 세인의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 金삿갓은 과거 시험에서 김익순이란 사람이 반란을 일으킨 홍경래에게 항복한 것을 꾸짓는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후일 그 김익순이 자기 할아버지란 사실을 알고 金삿갓은 평생 삿갓을 쓰고 다녔다는 일화가 전해 집니다. 비록 자신이 모르고 한 짓이라도 조부를 욕되게 해서 일신의 영달을 추구한 패륜을 저질렀으니 하늘을 볼 면목이 없다는 것이 金이 평생 삿갓을 쓴 이유였습니다. 우리는 과거 공산 독재 국가에서 부모형제가 서로를 감시하게 하고,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게 한 것을 공산주의가 저지른 반인륜적 행태의 으뜸 순위중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행 법은 자기 부모나 시부모, 장인, 장모 등은 원칙적으로 고소를 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인륜의 문제이고, 인륜은 인간이 스스로 존귀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가장 힘이 센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대상이 될 지도 모르는 「친일파」의 척결을 외치다가, 아버지의 과거가 밝혀지자 이번에는 『민족정기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태를 보고 있자니 울어야 할 지 웃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