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연기군 전의면 雲住山城
<운주산성 남문터. 운주산성은 높이 3-4m로 길이 40-50cm, 두께 20-25cm 크기로 다듬어진 돌로 정교하게 쌓았다. 성벽을 따라 걸으면서 삼국통일과 곧 다가올 남북통일의 시대적 배경을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백제 부흥군이 결사항전을 했던 三千窟의 전설이 깃든 곳
산성을 돌며 삼국시대와 현재를 돌이켜본다.
사람도 사귀다 보면 속마음이 겉보기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산도 마찬가지다. 오르지 않고서 멀찌감치서 눈으로만 보고 나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 해서는 안될 것 같다. 어떤 산이든 직접 올라가 봐야 그 산의 진수를 알 수 있다.
충남 연기군 전의면과 전동면에 걸쳐 있는 雲住山(460m)이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경부선 열차를 타고 오가다 창밖으로 슬쩍 지나쳤을 운주산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두루뭉실해 보이나 역사적으로는 사연이 남달리 많은 산이다. 1번 국도인 천안 삼거리를 지나 전의읍에 닿으면 남동쪽으로 산봉우리 꼭대기에 햐얀 비석 같은 것이 세워진 산을 볼 수 있다. 구름이 머문다는 운주산이다. 운주산 자락으로 국도와 경부선 철도가 나란히 지난다.
태안반도까지 이어지는 錦北正脈에 놓인 운주산은 주위의 300m급 산들에 비하면 높은 축에 든다. 실제로 운주산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 천안일대와 남쪽으로는 조치원과 계룡산이 손에 잡힐듯 가깝게 내려다 보이고 동쪽으로는 청주시와 서쪽으로는 광덕산(699m) 줄기와 요즈음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공주시와 연기군에 걸처 있는 신행정수도 건설 확정지가 서남쪽으로 아득히 보인다.
이렇게 조망이 좋은 산에 아무런 군사시설이나 통신시설이 들어서지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운주산에서 북쪽으로 빤히 건너다 보이는 흑성산(519m)이 더 높아 그 역할을 넘겨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운주산은 예로부터 三南의 요충지였다. 삼국시대에는 이곳까지 고구려의 영토였다. 이곳에서 남진하려는 고구려와 북진하려는 신라와 백제가 서로 合從連橫을 해가면서 밀고 밀리는 영토 싸움을 치열하게 치렀을 것이라 짐작이 되는 곳이다. 이렇게 150년 동안 치른 삼국간의 전쟁은 결국 당나라를 끌어들인 신라의 승리로 끝나긴 했어도 진정한 의미의 삼국통일은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한민족끼리 피를 흘렸던 비극의 현장, 운주산 정상에는 1천300년 전에 쌓은 길이 3.2km의 古城이 있다.
內城과 外城을 갖춘 10리城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 구간만 빼고 대부분 무너지고 묻혀서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는 없지만, 그 자취는 완연하여 성곽의 규모와 축성방법을 알 수 있다. 성문과 성안의 여러 건물터들이 지표조사를 통해서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다. 이처럼 운주산은 선조들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 산길을 걷는 등산인들에게 지난 날의 역사의 교훈을 돼새겨 보게 한다.
높지도 않은 운주산을 임도를 따라 차를 타고 산중턱까지 올라가서 10여분 걸어 산 정상을 올라갔다 내려와서는 운주산에 갔다 왔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등산인들도 꽤나 많이 있음직하다. 운주산 산행은 산을 오르기보다 성벽을 따라 운주산을 한 바퀴 돈다는 생각을 가지고 올라야 한다. 운주산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성터의 둘레는 10리가 채 안되지만 산길이라 한 바퀴 도는데 1시간 이상 걸린다. 하늘을 가린 울창한 숲길이 성벽위로 이어진다. 길 한쪽으로 무너져 내린 이끼 낀 성돌들이 천 년이 넘는 시간의 흐름을 한마디로 말해 주고 있다.
운주산을 오르는 길은 동서남북으로 다 나 있다. 예로부터 드나들던 城의 남문, 북문, 서문, 동문터로 난 길로 오르면 된다. 그러나 운주산 등산로는 운주산 서쪽 기슭에 자리잡은 전의 시가지에서 곧바로 오르는 길과 남쪽 미곡리 계곡으로 오르는 두 길로 집약된다. 서쪽 학달리 마을 앞을 지나 승용차가 다닐 만큼 정상을 향해 훤히 뚫린 산길을 따라 오르면 남쪽 사면을 가로질러 산등성을 타고 성터로 오르는 임도와 만난다.
운주산 남쪽 기슭 미곡리로 운주산의 주계곡이 흘러내린다. 계곡 이름은 피수골, 또는 무수골이라고 부른다. 성으로 둘러싸인 성마을이 자리잡았던 오목한 분지의 물줄기가 한테 모여 흘러내린다.
이 계곡을 타고 오르는 주등산길은 미곡리 사방댐 옆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미곡리의 운주산 주차장까지 조치원에서 가자면 6.25 발발 직후 미군 스미스대대가 전멸하다시피한 개미고개를 지나 전의 못미처 주유소 옆에 있는 운주산성 안내판이 세워진 오른쪽 샛길로 접어든다. 그러나 최근 천안-조치원간 1번도로가 직선화 되고 새로나면서 곧바로 운주산 안내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여 운주산 입구 산길로 접어든다. 천안서는 전의를 지나 운주산성 진입을 알리는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여 굴다리를 지나 운주산성과 高山寺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 산길로 접어들면 된다.
주차장까지 비포장 길이다. 걸어서 갈 경우 마을을 지나 주차장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멀리서 보면 젖무덤 같은 봉우리 두 개 사이로 깊은 계곡이 형성된 운주산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 못미처 두 봉우리 사이에는 3천여평 크기의 묵은 계단식 논과 집터들이 나온다. 北高南低형의 고원분지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성마을에는 집이 세채나 있었다고 한다. 운주산성은 정상부에서 산중복에 걸처 삼태기 모양으로 축성한 테뫼식 石城으로 內城과 外城이 함께 갖춰진 특이한 형태의 古城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운주산성은 고려시대 이전에 축성한 산성이었으나 조선 초기 때에는 이미 폐성이 된 상태였다고 전한다. 연기군에는 운주산성을 중심으로 11개의 성들이 남북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그중에 운주산성이 제일 높은 산에 제일 큰 규모로 축성됐다. 그러나 언제, 누가, 어떤 목적으로 운주산성을 쌓았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주자장에서 피수골 계곡을 1km 정도 따라 오르다보면 오른쪽 숲으로 성벽이 보이기 시작한다. 계곡은 곧 산성의 배수구로 이어진다.
곳곳에 성터와 遺構 산재
<운주산 정상에는 기우제 제단과 연기군에서 세운 백제얼 상징 탑이 있다.>
성터 일주 산행은 주차장에서 高山寺로 올라가는 산길로를 접어든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대찰의 규모를 갖춘 고산사를 둘러보고 피수골이라고 알려진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피수골 중간 계곡에는 三千窟이라는 안내 표시판이 세워져 있고 그옆으로 거대한 바위들이 무너져 내린 어둠 컴컴한 계곡을 나온다. 백제 부흥군의 마지막 결사 항전지로 당시 피로 물들여진 계곡을 보고 피수골이라 부르게 됐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피수골 어디에 삼천명의 군사가 기거했던 거대한 동굴이 있을 것이라는 전설을 믿고 10여년전부터 백제 古代史 연구에 골몰하고 있는 崔秉植(大韓文化財新聞社사장)운주문화원 원장은 삼천굴 탐사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운주산성 답사 산행은 남쪽 성벽을 오르면서 시작된다. 최근 성내로 들어가는 남문과 좌우 성벽을 옛모습 그대로 복원을 해놓았다. 높이가 3m가 훨씬 넘는다. 계곡 오른쪽 숲길을 벗어나 성벽길에 올라서니 곧바로 조치원 시가지가 내려다 보인다. 북쪽으로 산성 마을터인 고원분지도 내려다 볼 수 있다. 성벽을 따라 걷으면서 무너져내린 이끼 낀 돌 무더기에서 유구한 역사의 흐름을 가늠해 본다. 지금은 나딩구는 돌무덤이 됐지만 300m 이상되는 산꼭대기까지 돌를 져나르고 져온 돌들을 다듬어 쌓느라 고생을 했을 선조들의 노고도 되새겨본다.
성벽길 양 옆 산기슭은 하늘을 가린 숲의 연속, 따르르-건너편 산에서 오색딱다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도 들린다. 뻐꾸기와 휘파람새, 산비들기, 어치의 합창이 끊이질 않는다. 무너져 내리고 토사에 덮였어도 최소한 3-4m의 높이로 쌓았으리라 생각되는 성벽길은 오르막인가 싶으면 평탄하기도 하고 곧바르다 싶으면 꺾어져 돌아간다. 말을 타고 성벽을 따라 주변 일대를 살폈을 병사들의 늠름한 모습도 그려본다. 城의 남벽은 360m봉과 392m봉과 연결된다. 이러한 성벽 길을 걷다보면 수많은 기와 조각과 토기 파편들이 발에 채인다. 지금은 잡초에 덮혀 평지를 이뤘지만 건물터들도 여러군데 나온다. 동쪽 성벽길은 운주산 정상에서 보면 남쪽에 있는 392m봉을 연결하는 코스다. 중간 안부에 동문터가 있다.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을 끝내고 주변을 정리를 해 놓았다. 여기서부터 오르는 길은 가파라서 숨이 턱에 찬다. 숲 사이로 운주산 밑을 뚫고 뻗어나간 경부고속전철 철길이 내려다 보인다. 치고 오른 운주산 정상에는 기우제를 지냈다는 제단이 있다. 제단이 있은 언덕 아래에는 백제의 얼을 상징하는 높이 11.6m의 탑이 세워져 있다. 탑과 제단이 꾸며진 삼각형 모양의 정상의 너른 터는 본래 將臺가 있었던 자리였다.
三千窟 전설만 남아
<피수골 어디엔가에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삼천굴. 삼천굴 입구로 추정되는 바위굴 앞에서 삼척굴의 사연을 설명하는 高山寺 총무 이성노님.>
정상에 오른 뒤 하산길은 옛 성마을로 바로 내려가는 길과 서쪽 성벽을 따라 처음 출발지였던 계곡을 거처 고산사-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두가지 길이 있다. 정상에서 서쪽 성벽으로 난 등산로는 내리막 길이다. 급경사를 이룬 비탈에 쌓은 성터 회랑이 곧 등산로다. 중간에 읍내리로 내려가는 등산로도 만난다. 운주산 성안에서 주차장까지 승용차를 타고 오른 다음 10여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백제탑이 있는 운주산 정상에 다다를 수도 있다.
국토의 4분의 3이 산이라지만 운주산을 중심으로 끊어지지 않고 사방으로 이어지는 능선들을 보면 우리나라에 산이 어지간히 많기도 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백제 義慈왕의 혼백을 모신 운주산 高山寺.>
성벽길을 따라 한바퀴 돌고 내려오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 40분. 고산사 아래 주차장에서 피수골로 오르는데 20분, 둘레 543m나 되는 내성의 일부와 성마을터를 둘러보기도 하며 쉬는 시간을 모두 포함하여 3시간이면 운주산성을 구석 구석 둘아보고 내려 올 수 있다.
“운주산은 높지는 않지만 사계절 다 아름다운 산입니다. 한겨울 설경도 기가 막힙니다. 다른 산과 달리 자연만 있는 것이 아니라역사가 있는 산이지요. 느슨하고 울창한 숲길은 우리 같이 나이 먹은 이들이 오르기에 아주 적합합니다. 운주산 어디엔가에 큰 굴이 있다고 전해 옵니다. 백제가 망하고 나서 부흥군이 운주산성에 들어와 항전할 때 백제군과 유민 3천여명이 숨어 지냈다고 합니다. 어느날 아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신라군에게 발각되어 물살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 굴의 정확한 위치를 찾을 길이 없으나 조금전에 오르 내렸던 피수골 어딘가에 그 굴이 있으리라고 추측합니다. 아마도 무너져 내린 흙이 큰 바위에 덮혀 버렸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산행 안내를 맡은 최병식사장이 전설로 남아 있는 삼천굴의 얽힌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준다.
“옛날부터 이 굴에다 불을 때면 운주산 꼭대기에서 연기가 피어 올랐다고 전해옵니다. 굴안에 삼천명이나 기거했다면 어지간히 큰 굴인텐데 찾을 수 없습니다.”
최근 운주산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운주산 산 밑으로 고속전철이 지난다. 전설속의 삼천굴과 고속전철 터널. 운주산과 굴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는 것일까. 고속전철 터널이 뚫린 후 산성 분지에 있던 옛 우물들이 마르고 여러 계곡의 물줄기가 줄어들었다. 환경 변화가 온 것이다. 水脈이 방향을 틀은 것인지 지하수가 다 빠져나간 것인지 산성內에 물이 말라 운주산을 사랑하는 대전, 조치원, 천안의 산꾼들과 운주산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역사학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운주산성 남문터. 운주산성은 높이 3-4m로 길이 40-50cm, 두께 20-25cm 크기로 다듬어진 돌로 정교하게 쌓았다. 성벽을 따라 걸으면서 삼국통일과 곧 다가올 남북통일의 시대적 배경을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백제 부흥군이 결사항전을 했던 三千窟의 전설이 깃든 곳
산성을 돌며 삼국시대와 현재를 돌이켜본다.
사람도 사귀다 보면 속마음이 겉보기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산도 마찬가지다. 오르지 않고서 멀찌감치서 눈으로만 보고 나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 해서는 안될 것 같다. 어떤 산이든 직접 올라가 봐야 그 산의 진수를 알 수 있다.
충남 연기군 전의면과 전동면에 걸쳐 있는 雲住山(460m)이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경부선 열차를 타고 오가다 창밖으로 슬쩍 지나쳤을 운주산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두루뭉실해 보이나 역사적으로는 사연이 남달리 많은 산이다. 1번 국도인 천안 삼거리를 지나 전의읍에 닿으면 남동쪽으로 산봉우리 꼭대기에 햐얀 비석 같은 것이 세워진 산을 볼 수 있다. 구름이 머문다는 운주산이다. 운주산 자락으로 국도와 경부선 철도가 나란히 지난다.
태안반도까지 이어지는 錦北正脈에 놓인 운주산은 주위의 300m급 산들에 비하면 높은 축에 든다. 실제로 운주산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 천안일대와 남쪽으로는 조치원과 계룡산이 손에 잡힐듯 가깝게 내려다 보이고 동쪽으로는 청주시와 서쪽으로는 광덕산(699m) 줄기와 요즈음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공주시와 연기군에 걸처 있는 신행정수도 건설 확정지가 서남쪽으로 아득히 보인다.
이렇게 조망이 좋은 산에 아무런 군사시설이나 통신시설이 들어서지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운주산에서 북쪽으로 빤히 건너다 보이는 흑성산(519m)이 더 높아 그 역할을 넘겨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운주산은 예로부터 三南의 요충지였다. 삼국시대에는 이곳까지 고구려의 영토였다. 이곳에서 남진하려는 고구려와 북진하려는 신라와 백제가 서로 合從連橫을 해가면서 밀고 밀리는 영토 싸움을 치열하게 치렀을 것이라 짐작이 되는 곳이다. 이렇게 150년 동안 치른 삼국간의 전쟁은 결국 당나라를 끌어들인 신라의 승리로 끝나긴 했어도 진정한 의미의 삼국통일은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한민족끼리 피를 흘렸던 비극의 현장, 운주산 정상에는 1천300년 전에 쌓은 길이 3.2km의 古城이 있다.
內城과 外城을 갖춘 10리城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 구간만 빼고 대부분 무너지고 묻혀서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는 없지만, 그 자취는 완연하여 성곽의 규모와 축성방법을 알 수 있다. 성문과 성안의 여러 건물터들이 지표조사를 통해서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다. 이처럼 운주산은 선조들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 산길을 걷는 등산인들에게 지난 날의 역사의 교훈을 돼새겨 보게 한다.
높지도 않은 운주산을 임도를 따라 차를 타고 산중턱까지 올라가서 10여분 걸어 산 정상을 올라갔다 내려와서는 운주산에 갔다 왔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등산인들도 꽤나 많이 있음직하다. 운주산 산행은 산을 오르기보다 성벽을 따라 운주산을 한 바퀴 돈다는 생각을 가지고 올라야 한다. 운주산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성터의 둘레는 10리가 채 안되지만 산길이라 한 바퀴 도는데 1시간 이상 걸린다. 하늘을 가린 울창한 숲길이 성벽위로 이어진다. 길 한쪽으로 무너져 내린 이끼 낀 성돌들이 천 년이 넘는 시간의 흐름을 한마디로 말해 주고 있다.
운주산을 오르는 길은 동서남북으로 다 나 있다. 예로부터 드나들던 城의 남문, 북문, 서문, 동문터로 난 길로 오르면 된다. 그러나 운주산 등산로는 운주산 서쪽 기슭에 자리잡은 전의 시가지에서 곧바로 오르는 길과 남쪽 미곡리 계곡으로 오르는 두 길로 집약된다. 서쪽 학달리 마을 앞을 지나 승용차가 다닐 만큼 정상을 향해 훤히 뚫린 산길을 따라 오르면 남쪽 사면을 가로질러 산등성을 타고 성터로 오르는 임도와 만난다.
운주산 남쪽 기슭 미곡리로 운주산의 주계곡이 흘러내린다. 계곡 이름은 피수골, 또는 무수골이라고 부른다. 성으로 둘러싸인 성마을이 자리잡았던 오목한 분지의 물줄기가 한테 모여 흘러내린다.
이 계곡을 타고 오르는 주등산길은 미곡리 사방댐 옆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미곡리의 운주산 주차장까지 조치원에서 가자면 6.25 발발 직후 미군 스미스대대가 전멸하다시피한 개미고개를 지나 전의 못미처 주유소 옆에 있는 운주산성 안내판이 세워진 오른쪽 샛길로 접어든다. 그러나 최근 천안-조치원간 1번도로가 직선화 되고 새로나면서 곧바로 운주산 안내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여 운주산 입구 산길로 접어든다. 천안서는 전의를 지나 운주산성 진입을 알리는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여 굴다리를 지나 운주산성과 高山寺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 산길로 접어들면 된다.
주차장까지 비포장 길이다. 걸어서 갈 경우 마을을 지나 주차장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멀리서 보면 젖무덤 같은 봉우리 두 개 사이로 깊은 계곡이 형성된 운주산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 못미처 두 봉우리 사이에는 3천여평 크기의 묵은 계단식 논과 집터들이 나온다. 北高南低형의 고원분지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성마을에는 집이 세채나 있었다고 한다. 운주산성은 정상부에서 산중복에 걸처 삼태기 모양으로 축성한 테뫼식 石城으로 內城과 外城이 함께 갖춰진 특이한 형태의 古城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운주산성은 고려시대 이전에 축성한 산성이었으나 조선 초기 때에는 이미 폐성이 된 상태였다고 전한다. 연기군에는 운주산성을 중심으로 11개의 성들이 남북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그중에 운주산성이 제일 높은 산에 제일 큰 규모로 축성됐다. 그러나 언제, 누가, 어떤 목적으로 운주산성을 쌓았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주자장에서 피수골 계곡을 1km 정도 따라 오르다보면 오른쪽 숲으로 성벽이 보이기 시작한다. 계곡은 곧 산성의 배수구로 이어진다.
곳곳에 성터와 遺構 산재
<운주산 정상에는 기우제 제단과 연기군에서 세운 백제얼 상징 탑이 있다.>
성터 일주 산행은 주차장에서 高山寺로 올라가는 산길로를 접어든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대찰의 규모를 갖춘 고산사를 둘러보고 피수골이라고 알려진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피수골 중간 계곡에는 三千窟이라는 안내 표시판이 세워져 있고 그옆으로 거대한 바위들이 무너져 내린 어둠 컴컴한 계곡을 나온다. 백제 부흥군의 마지막 결사 항전지로 당시 피로 물들여진 계곡을 보고 피수골이라 부르게 됐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피수골 어디에 삼천명의 군사가 기거했던 거대한 동굴이 있을 것이라는 전설을 믿고 10여년전부터 백제 古代史 연구에 골몰하고 있는 崔秉植(大韓文化財新聞社사장)운주문화원 원장은 삼천굴 탐사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운주산성 답사 산행은 남쪽 성벽을 오르면서 시작된다. 최근 성내로 들어가는 남문과 좌우 성벽을 옛모습 그대로 복원을 해놓았다. 높이가 3m가 훨씬 넘는다. 계곡 오른쪽 숲길을 벗어나 성벽길에 올라서니 곧바로 조치원 시가지가 내려다 보인다. 북쪽으로 산성 마을터인 고원분지도 내려다 볼 수 있다. 성벽을 따라 걷으면서 무너져내린 이끼 낀 돌 무더기에서 유구한 역사의 흐름을 가늠해 본다. 지금은 나딩구는 돌무덤이 됐지만 300m 이상되는 산꼭대기까지 돌를 져나르고 져온 돌들을 다듬어 쌓느라 고생을 했을 선조들의 노고도 되새겨본다.
성벽길 양 옆 산기슭은 하늘을 가린 숲의 연속, 따르르-건너편 산에서 오색딱다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도 들린다. 뻐꾸기와 휘파람새, 산비들기, 어치의 합창이 끊이질 않는다. 무너져 내리고 토사에 덮였어도 최소한 3-4m의 높이로 쌓았으리라 생각되는 성벽길은 오르막인가 싶으면 평탄하기도 하고 곧바르다 싶으면 꺾어져 돌아간다. 말을 타고 성벽을 따라 주변 일대를 살폈을 병사들의 늠름한 모습도 그려본다. 城의 남벽은 360m봉과 392m봉과 연결된다. 이러한 성벽 길을 걷다보면 수많은 기와 조각과 토기 파편들이 발에 채인다. 지금은 잡초에 덮혀 평지를 이뤘지만 건물터들도 여러군데 나온다. 동쪽 성벽길은 운주산 정상에서 보면 남쪽에 있는 392m봉을 연결하는 코스다. 중간 안부에 동문터가 있다.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을 끝내고 주변을 정리를 해 놓았다. 여기서부터 오르는 길은 가파라서 숨이 턱에 찬다. 숲 사이로 운주산 밑을 뚫고 뻗어나간 경부고속전철 철길이 내려다 보인다. 치고 오른 운주산 정상에는 기우제를 지냈다는 제단이 있다. 제단이 있은 언덕 아래에는 백제의 얼을 상징하는 높이 11.6m의 탑이 세워져 있다. 탑과 제단이 꾸며진 삼각형 모양의 정상의 너른 터는 본래 將臺가 있었던 자리였다.
三千窟 전설만 남아
<피수골 어디엔가에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삼천굴. 삼천굴 입구로 추정되는 바위굴 앞에서 삼척굴의 사연을 설명하는 高山寺 총무 이성노님.>
정상에 오른 뒤 하산길은 옛 성마을로 바로 내려가는 길과 서쪽 성벽을 따라 처음 출발지였던 계곡을 거처 고산사-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두가지 길이 있다. 정상에서 서쪽 성벽으로 난 등산로는 내리막 길이다. 급경사를 이룬 비탈에 쌓은 성터 회랑이 곧 등산로다. 중간에 읍내리로 내려가는 등산로도 만난다. 운주산 성안에서 주차장까지 승용차를 타고 오른 다음 10여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백제탑이 있는 운주산 정상에 다다를 수도 있다.
국토의 4분의 3이 산이라지만 운주산을 중심으로 끊어지지 않고 사방으로 이어지는 능선들을 보면 우리나라에 산이 어지간히 많기도 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백제 義慈왕의 혼백을 모신 운주산 高山寺.>
성벽길을 따라 한바퀴 돌고 내려오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 40분. 고산사 아래 주차장에서 피수골로 오르는데 20분, 둘레 543m나 되는 내성의 일부와 성마을터를 둘러보기도 하며 쉬는 시간을 모두 포함하여 3시간이면 운주산성을 구석 구석 둘아보고 내려 올 수 있다.
“운주산은 높지는 않지만 사계절 다 아름다운 산입니다. 한겨울 설경도 기가 막힙니다. 다른 산과 달리 자연만 있는 것이 아니라역사가 있는 산이지요. 느슨하고 울창한 숲길은 우리 같이 나이 먹은 이들이 오르기에 아주 적합합니다. 운주산 어디엔가에 큰 굴이 있다고 전해 옵니다. 백제가 망하고 나서 부흥군이 운주산성에 들어와 항전할 때 백제군과 유민 3천여명이 숨어 지냈다고 합니다. 어느날 아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신라군에게 발각되어 물살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 굴의 정확한 위치를 찾을 길이 없으나 조금전에 오르 내렸던 피수골 어딘가에 그 굴이 있으리라고 추측합니다. 아마도 무너져 내린 흙이 큰 바위에 덮혀 버렸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산행 안내를 맡은 최병식사장이 전설로 남아 있는 삼천굴의 얽힌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준다.
“옛날부터 이 굴에다 불을 때면 운주산 꼭대기에서 연기가 피어 올랐다고 전해옵니다. 굴안에 삼천명이나 기거했다면 어지간히 큰 굴인텐데 찾을 수 없습니다.”
최근 운주산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운주산 산 밑으로 고속전철이 지난다. 전설속의 삼천굴과 고속전철 터널. 운주산과 굴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는 것일까. 고속전철 터널이 뚫린 후 산성 분지에 있던 옛 우물들이 마르고 여러 계곡의 물줄기가 줄어들었다. 환경 변화가 온 것이다. 水脈이 방향을 틀은 것인지 지하수가 다 빠져나간 것인지 산성內에 물이 말라 운주산을 사랑하는 대전, 조치원, 천안의 산꾼들과 운주산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역사학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