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아뢰옵니다.

소인은 월(月)마다 나라의 일을 살피어 글로 엮는 곳에 몸담아 붓을 드는 자이오며, 기록의 무게를 알기에 감히 이 상소를 올리옵니다. 비록 소인은 재주도 얕고 식견 또한 부족하오나, 나라의 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 하나로 감히 진언을 올리려 붓을 들었사옵니다.

전하께서 동지를 앞둔 무렵(12월 12일) 성균관(교육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한자 교육의 필요성을 두고 논의하시던 중, 한국고전번역원장 김언종이 “학생들이 한자를 너무 배우지 않아 ‘있을 재(在)’ ‘밝을 명(明)’이라는 전하의 성함조차 모르는 상황”이라 말하자, 전하께서 웃으며 “그래서 ‘죄명’이라고 쓰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전해졌사옵니다. 그 자리는 웃음이 오가며 화기 또한 돌았다 하나, 소인은 전하의 사법 리스크가 연상되어 식은땀이 흐르고 오한이 들었사옵니다. 전하의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불편한 상황이 느껴졌고, 참석한 성균관 선생과 유생들 또한 등골이 오싹했다고 하옵니다.

같은 날, 전하께서 세종컨벤션센터에서 공조(工曹, 국토교통부)를 비롯한 여러 관서의 업무를 점검하시던 자리에서는, 제물포공항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이학재에게 외화 불법 반출 가능성과 관련한 일을 물으셨고, 그 답변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하시자 “말이 참 기십니다. 가능하냐, 안 하냐를 묻는데 자꾸 옆으로 샙니다”라고 질책하신 것으로 보도되었사옵니다. 이어 즉각적인 답이 나오지 않자 “지금 다른 데 가서 노시느냐”라는 말씀까지 더해졌고, 이 장면 또한 그대로 중계되어 조정 안팎에 여러 말이 오르내리고 있사옵니다. 소인은 이 일련의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이 편치 아니하였사옵니다.

소인은 전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바 아니옵니다. 학문이 뿌리에서 약해지고 문자의 기초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현실 또한 사실이옵고, 공항을 통한 외화 반출이 나라의 기강과 국경 질서를 흔드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 역시 분명하옵니다. 전하께서 이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고 직접 따져 물으신 뜻 또한 소인은 이해하려 하옵니다.

다만 소인이 감히 염려하는 바는, 그 뜻이 혹 말씀의 결에 가려 다르게 전해지지는 않을지 하는 점이옵니다. 웃음 섞인 한마디는 자조로 읽힐 수 있으나, 그 말이 지닌 맥락과 무게를 생각할 때 사안을 넘어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만들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사옵니다. 마찬가지로 공개된 자리에서의 격한 질책은 문제의 구조를 밝히기보다, 장면만 또렷이 남길까 소인은 두렵사옵니다.

이에 소인은 감히, 전하의 질책이 지닌 성격을 셋으로 나누어 헤아려 보았사옵니다.

첫째, 그 질책은 안으로 향한 말이기보다 밖으로 향한 말처럼 보였사옵니다. 그 자리는 방송이 중계되고 언론이 기록하는 공개의 장이었사옵니다. 만일 이를 비공개의 자리에서 하셨더라면, 오늘과 같은 소란은 크지 않았을지도 모르옵니다.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 말이 놓인 자리가 곧 말의 성격을 규정하였사옵니다. 공개된 질책은 곧 메시지가 되고, 메시지는 의도를 넘어 해석을 낳게 마련이옵니다.

둘째, 소인은 언어의 품격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제물포공항공사 사장 이학재는 세 차례나 백성의 선택을 받은 국회의원을 지낸 자로 국토·SOC·교통 분야의 실무자이옵니다. 그럼에도 답변이 미진하다는 이유로 말을 자르고, 공개된 자리에서 무능을 드러내는 표현을 쓰신 것은, 단지 출신 정파의 문제라기보다 전하의 위상을 돋보이게 하고 상대를 낮추는 효과를 낳았사옵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정치의 장이 아니라 실무의 자리였사옵니다. 옛말에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 하였거늘, 말은 베푸는 데 쓰일 때 힘을 얻는 법이옵니다.

셋째, 그 질책은 하나의 상징처럼 연출되었사옵니다. “나는 일을 잘 한다”, “너는 일을 못 한다”, “나는 대통령이고, 너는 일개 공사 사장이다”라는 위계가 말의 결마다 또렷이 새겨졌사옵니다. 이는 전하를 지지하는 백성들에게는 통쾌함을 주었을지 모르나, 제물포공항공사 행정 조직 안에서는 두려움을 키웠을 개연성이 크옵니다. 상급 관서인 공조와 공사 내부에서 추가적인 간섭과 질책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감이 먼저 들었을 것이옵니다. 두려움은 성과를 낳지 못하고, 침묵만 키울 뿐이옵니다.

대저 전하의 한 말씀은 개인의 말이 아니라 조정의 말이 되고, 농담조차 기록이 되며, 언성은 오래 남는 사료가 되옵니다. 공개된 자리에서의 말은 그 자리에 선 이 한 사람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이를 바라보는 수많은 실무자와 백성들의 기억 속으로 스며들게 마련이옵니다. 소인은 혹 이 장면들을 지켜본 이들이 정책의 취지보다, 말의 여운과 위계를 먼저 배우게 되지는 않을지 염려되옵니다.

외화 반출의 문제는 더욱 그러하옵니다. 이는 제물포공항공사 하나의 소홀로만 돌릴 일이 아니라, 공조와 호조(戶曹, 세관), 포도청(捕盜廳, 검경) 등 여러 관서가 함께 머리를 맞대어 살펴야 할 구조의 문제이옵니다. 그럼에도 한 사람의 답변과 한 장면만 부각될 경우, 문제는 남되 해법은 흐려질까 소인은 두렵사옵니다.

옛 기록을 살펴보면, 선왕들 또한 엄격하지 않으신 분이 아니었사오나, 말의 쓰임에는 늘 조심스러움을 앞세웠다 하옵니다. 세종은 신하의 허물을 지적하되 사람을 세우려 했고, 정조는 질책하되 체면을 남겨 다시 일할 길을 끊지 않았사옵니다. 이는 인정을 베푼 까닭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꺾이면 일 또한 함께 꺾인다는 이치를 알았기 때문이라  여겨지옵니다. 전하께서는 혹시 세종과 정조를 넘는 새로운 통치방식을 꿈꾸고 계시옵니까? 그렇다면 소인은 그 방식의 이름을 이렇게 제안하옵니다. '망신주기 경영법' '공개망신 리더십' '방송용 질책술' 이렇게 이름붙여 보는 것은 어떠하옵니까?

소인은 전하께서 결코 사람을 낮추거나 스스로를 드러내고자 하신 뜻은 아니었으리라 믿고 싶사옵니다. 다만 전하의 말씀이 워낙 무거운 자리에 있다 보니, 뜻보다 소리가 먼저 닿았을 가능성을 감히 아뢰는 것이옵니다. 말씀이 조금만 낮아지면, 그 뜻은 오히려 더 멀리 닿을 것이라 소인은 생각하옵니다. 소인이 우려하는 것은 이것이옵니다. 전하께서 지금처럼 '소리'만 키우신다면, 곧 백성들은 '뜻'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소리'만 즐기게 될 것이옵니다. 그때가 되면, 전하의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싸움이고 이전투구이며 냉소이자 자멸이 되고 말 것이옵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앞으로도 엄정함은 유지하시되, 공개된 자리에서는 사안을 먼저 세우고 사람은 한걸음 뒤에 두어 주시옵소서. 그러하다면 조정의 기강은 두려움이 아니라 책임으로 바로 설 것이며, 전하의 권위 또한 더욱 깊어질 것이옵니다.

소인은 그저 기록에 남을 전하의 말씀이 훗날에도 나라를 걱정한 언어로 읽히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헤아려 주시옵소서. 삼가 아뢰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