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작은 한 편이지만, 문단의 내일은 이 더미 속에 있다.”

2026년 1월 발표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는 총 9113편이 몰렸다. 전년도 7384편보다 1700편 가까이 늘어나며 최근 5년 동안 이어진 응모 증가세를 다시 확인시켰다. ‘신춘문예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진단과 달리, 실제 투고 현장은 오히려 확장되고 있다.

올해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2026 매일신문 신춘문예의 폭발적 증가세다. 대구경북에서 발행되는 종합일간지 매일신문은 “6072편이 접수돼 역대 최다 응모 신기록”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3780편보다 2292편이나 증가했으며 종전 최고치였던 2021년(5346편)도 크게 넘어섰다. 단편소설 433편, 시 3170편, 시조 488편, 동시 1001편, 동화 197편, 수필 676편, 희곡·시나리오 107편 등 7개 전 부문에서 고르게 증가했다. 매일신문은 그 배경에 “텍스트 힙(text hip)— 글쓰기를 감각적·미적 소비로 즐기는 2030세대 문화 확산”을 꼽았다. 즉, 젊은 세대의 적극적 유입이 ‘투고 폭증’의 직접적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사진=매일신문

울산지역 종합일간지인 경상일보도 2026 신춘문예에 980명·2980편이 접수돼 역대 두 번째 규모를 기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메이저 신문사들도 같은 흐름을 보인다. 조선일보 신춘문예는 최근 5년간 7000~8000편대 규모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2023년에는 8359편이 접수됐으며, 2025년 공모에서도 유사한 수준이 예상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조선일보 심사위원들은 최근 몇 년간 반복해서 “전통적 시 언어와 새로운 시 언어가 동시에 두드러졌다”고 평가했다. 즉, 고전적 서정의 계보를 잇는 작품과 일상어·감각적 언어 실험이 동시에 강화되는 이중 구조가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경향신문 신춘문예(2023)는 변화의 방향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경향 심사평은 “기후 위기·동물 등 비인간 존재, 게임·시뮬레이션 기반 가상공간 이미지가 전면화됐다”고 지적했다. 팬데믹 국면에서 2022년까지 잔존하던 ‘재난·고립·질병’의 직접적 묘사는 줄고, 그 자리를 기후·존재·시뮬레이션·애도 등이 차지한 것이다. 또한 기존 주요 테마였던 청년·젠더·노동 소재가 다소 줄어든 반면, 상실의 정서가 깊어진 시·소설이 늘었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여기에 2024~2026년 응모작에서는 사회 현실이 더욱 노골적으로 스며든다. 2025 부산일보 예심평은 “비혼·돌봄·노인 문제 등 시대상이 고스란히 반영됐다”고 했고, 2026 경상일보 예심은 “청년 실업·부동산 격차·감정노동·환경 문제”를 주요 공통축으로 꼽았다. 팬데믹 이후 무너진 일상, 멈춘 성장, 불평등 구조, 기후 재난, 도시적 고립—이 모든 것이 투고 원고에 현실의 압력 그대로 투사되고 있다.

장르별 흐름도 선명하다. 시는 절대강자다. 동아일보 응모작 9113편 중 약 6800편이 시였다. 모바일 환경과 짧은 호흡의 글쓰기 확산, ‘누구나 시를 쓴다’는 젊은 세대의 문화가 결합하면서 응모 기반이 넓어지고 있다. 

매일신문은 특히 단편소설 부문에서 2030작가들의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았다고 했다. 심사위원들은 "SF,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작품들이 많다. 젊은이들의 신춘문예 도전이 늘어난 것은 웹소설의 인기가 크게 증가한 영향이 한몫 했을 것"이라며 "전반적으로 좋은 작품이 많아 최종 한 작품을 고르기 위해 격논이 펼쳐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신춘문예 응모 현황 (2025~2026)]

  연도  |  신문사   | 응모 편수 |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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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동아일보 | 9113편 | 전년도 대비 1700편 증가, 시 응모 약 6800편

2026 | 경상일보 | 2980편 | 역대 두 번째 규모, 청년 실업·부동산 격차 등 현실 반영

2026 | 매일신문 | 6072편 | 역대 최다, 2030세대·해외 응모 급증, 최연소 11세·최고령 84세 

2025 | 조선일보 | 7755편 | 8개 부문 역대 최다, 도시 불평등·욕망 소재

2025 | 문화일보 | 5053편 | 5년 만에 최다, 죽음·상실·고립 등 사회적 참사 반영

2025 | 서울신문 | 응모 30% 증가 | 20년 만에 최다, 한강 노벨상 수상 영향

2025 | 영남일보 | 시 3050편·소설 238편 | 역대 최다, 고령화·SF 요소 반영

형식적 변화 역시 눈길을 끈다. 여러 신문사 심사평에서 공통적으로 “난해성 감소”, “일상어 확대”, “장면 중심 구성”, “이미지의 치밀함” 등이 언급된다. 조선일보는 이를 “전통과 새 언어의 균형”으로 표현했고, 경향과 동아는 “말의 감각적 사용과 이미지 설계 능력이 작품의 힘을 좌우한다”고 평했다. 즉, 시든 소설이든 ‘쓰는 법’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완성도 문제는 여전히 핵심 과제다. 동아일보는 “신선한 소재에도 서사의 긴장감이 지속되지 못한 작품이 많다”고 밝혔고, 경향신문 역시 “새로운 소재보다 그것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능력”을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소재는 넘치지만, 그것을 어떻게 문학의 구조로 승화시키는가가 등단의 관건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분명하다. 2026년 1월의 신춘문예 봉투 더미는 지난 5년 한국 사회의 압축 기록이다. 팬데믹의 기억, 기후의 위협, 청년의 생존감각, 돌봄과 고립의 감정, 도시의 속도와 불안, 재난의 일상화, 새로운 글쓰기 세대의 등장이 모든 변화가 신춘문예라는 하나의 통로 안으로 유입되고 있다.

해마다 늘어나는 응모 편수는 문단의 호황이라기보다, 말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진 시대의 징후인지도 모른다. 수천 개의 문장 속에서 내년 문단의 얼굴이 태어난다는 사실만은, 변함없이 눈부신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