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들른 서울 마포구의 한 소고기 전문점. 문을 여는 순간 기름 냄새가 쏟아지듯 밀려왔다. 기자는 자리를 잡기 전 벽면 메뉴판부터 훑었다.

‘한우 안심 200g 2만9000원.’

몇 달 전 같은 가게에서 2만5000원 가까이 지불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주방에서 고기를 굽던 사장 김모(54)씨는 기자의 시선을 읽은 듯 먼저 입을 열었다.

“요즘 산지 가격이 멈출 틈이 없어요. 들어오는 물량이 줄어드니까 기존 가격으로는 감당이 안 됩니다. 마진은 예전보다 줄었어요.”

불판 위에서 고기가 구워지며 내는 치익 소리 속에서도 옆 테이블 대화는 묵직했다.

“200g이 3만 원 가까우면 회식이 힘들지.”, “이젠 특별한 날에만 한우 먹어야겠네.”

농담처럼 섞인 말이지만, 소고기 물가가 일상을 흔드는 현실을 드러낸다.

한우 안심 1년 새 11.6% 상승… 채끝·등심도 상승률 비슷

축산물품질평가원(축평원) 통계는 현장의 체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자료를 보면 올해 주요 한우 부위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안심·등심·채끝 등 소비 선호도가 높은 부위는 100g당 1만~1만6000원대 수준까지 올라섰다.

도매가 기준으로만 계산해도 안심 200g 원가는 약 2만8760원이다. 여기에 인건비·임대료·부가세·숯값 등을 더하면 식당 판매가는 3만 원에 바짝 근접한다.

경기도 성남의 정육점 사장 박모(61)씨는 이렇게 말했다.

“작년엔 100g에 1만2000원대였는데 지금은 1만4000원대예요. 손님들이 가격 보고 깜짝 놀라고 그냥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격 상승의 근본 원인은 사육두수 감소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9월 기준 한우 사육두수는 332만8000마리로, 전년 대비 2.3% 감소했다. 2020년 이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번식우(암소) 감소가 두드러진다. 사료값 폭등, 송아지 가격 하락으로 번식을 포기하는 농가가 늘면서 송아지 출생 두수 자체가 줄었다.

기자와 통화한 경북 안동의 한우 농가 이모(58)씨는 이렇게 말했다.

“사료값은 치솟고 송아지 값은 떨어지니 번식을 접는 농가가 많습니다. 젊은 농가들은 아예 폐업하는 경우도 있어요.”

송아지가 태어나 도축되기까지 30개월이 걸린다. 지금 도축되는 소는 2~3년 전 태어난 개체들이다. 물량 부족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강남은 12월 주말 예약이 11월 초에 이미 끝났다”

두 번째 요인은 연말 수요 폭발이다. 코로나 이후 사라졌던 회식 문화가 올해 들어 완전히 회복됐다. 수요가 집중되자 소고기 전문점은 연일 만석이다.

서울 강남구의 한 고깃집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12월 주말은 11월 초에 이미 예약 끝났고요. 평일도 단체 손님이 밀려들어요. 최소 한 달 전에는 예약해야 자리를 잡습니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24년 3분기 외식업 매출은 전년 대비 8.2% 증가했고, 그중 고깃집 매출이 가장 가파르게 올랐다.

서울 송파구의 한 식당은 11월 들어 안심 200g 가격을 2만7000원에서 2만9000원으로 올렸다.

“산지가 오르는데 회식 손님까지 늘어나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환율 1460원대… 수입육도 200g에 1만5000~2만 원대

세 번째 요인은 환율 강세다. 원·달러 환율은 최근 1460원대까지 올라 연초 대비 뚜렷한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 소고기 가격도 함께 오른다.

서초구의 한 대형마트 정육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산 등심이 요즘은 100g에 5000~6000원대예요. 수입육도 예전처럼 ‘싸다’는 말 하기 어렵습니다.”

실제 상황을 보면 ▲수입육 200g 원가: 1만~1만2000원, ▲식당 판매가: 1만5000~2만 원대다.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미국 내 도축두수는 올해 상반기 기준 전년 대비 2.1% 감소했다.

국제 공급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비축물량 방출과 할인행사를 통해 대응하고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번식우 숫자를 다시 늘리고 송아지 출생 두수가 정상화되려면 최소 1~2년은 필요하다. 수입 확대도 방법이지만 환율이 1460원대라 효과가 제한적이다.

불판 위 200g이 보여주는 한국 경제의 체온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는 여전히 고소한 냄새를 품고 있다. 그러나 그 옆의 ‘한우 200g 2만9000원’이라는 숫자는 한국 경제의 또 다른 진실을 말해준다.

사육두수 감소, 국제 공급 불안, 환율 강세, 물류비, 연말 회식 수요. 소고기 1인분(약 200g)에는 이런 변수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소고기 가격은 더 이상 단순한 식재료 가격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체온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생활지표가 됐다.

불판 위 고기가 익는 동안, 우리의 삶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더 비싸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