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한일 학계, 정책, 민간 전문가를 초청해 양국이 겪는 초저출생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제 포럼을 개최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이명선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생 현상에 직면해 있으며, 인구 절벽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정책을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합계출산율 개선이라는 ‘수치’ 중심의 접근을 넘어 개인 삶의 질 제고를 비롯한 가족 친화 정책과 사회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이번 포럼이 두 나라 간 일회성 교류에 그치지 않고,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저출생 문제에 직면한 아시아 주요 도시들과의 지속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되어 동아시아 지역 전체에 저출생 대응을 위한 가족 친화 정책의 청사진을 함께 그려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일본의 ‘다른 차원의 저출생 대책’

기조강연에서 오구라 마사노부(小倉將信) 전 일본 저출생 담당 장관은 2023년 기시다 정권의 핵심 정책인 ‘다른 차원의 저출산 대책’을 소개했다. 그는 “자녀를 갖고 싶은 사람이 직면하는 과제를 정책적으로 제거해 그 희망을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은 1994년 첫 저출산 대책인 ‘엔젤 플랜’을 수립한 이후 30년간 다양한 정책을 펼쳤으나 출산율은 개선되지 않았다. 현재 추세라면 2030년대에는 젊은 층이 지금의 2배로 감소한다. 

오구라 마사노부 전 장관이 소개한 ‘다른 차원의 저출산 대책’은 3가지 특징(예산, 지원 범위 확대, 육아 지원의 경제 사회화)이 있다. 

일본은 2024년부터 3년간 3조 엔 중반 수준까지 예산을 늘리고, 2030년대에는 어린이 관련 예산을 배증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는 GDP 대비 OECD 1위인 스웨덴 수준이다. 

지원 범위도 확대한다. 일회성 지원이 아닌 임신·출산기 상담 지원, 출산 비용 무상화, 다자녀 가구 대학 등록금 무상화까지 생애주기 전반을 포괄해 지원한다. 저출산 대책을 경제·사회 정책으로 확장했다.

일본은 출생자 수 감소보다 미혼율 상승이 더 심각하다. 비정규직 남성 미혼율은 정규직보다 3배 많다. 이에 고용 정규화와 청년 임금 상승을 저출산 대책으로 규정했다. 여성의 육아·가사 부담도 남성보다 5.5배 많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남녀 모두 일과 육아를 양립할 수 있는 시책을 포함했다

“출산율 증가에 즉효약 없어”

야마사키 시로(山崎史郎) 일본 내각관방 참여는 일본의 인구 감소와 저출생 대응을 발표했다. 그는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 사회경제 구조 전반을 아우르는 대책과 사회의식 개혁을 위한 장기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각관방 참여는 정책 자문역이다. 정책 자문을 위해 일본 총리가 임명하는 민간 전문가로 공무원 조직 밖에서 총리에게 직접 조언한다.

“‘어떻게든 되겠지’와 같은 근거 없는 낙관론, ‘이젠 어쩔 수 없다’와 같이 전략과 실행 없는 비관론을 배제하고 저출산의 원인을 이해해 사회 경제 구조 전체를 개혁해야 한다. 현재 1억2344만명 수준인 일본 인구가 2100년에는 6300만명이 된다. 인구 감소는 내수 시장 규모 축소로 이어지고, 이는 설비 투자 감소와 생산성 악화로 연결돼 발전이 멈추고 광범위한 ‘사회 심리적 정체’가 발생한다.”

야마사키 참여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의 출산율 저하가 두드러지고 있다”며 “출산율 증가에는 즉효 약이 없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각 대책을 종합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책에는 육아 지원, 고용·업무 방식 개혁, 결혼·출산 지원 등이 포함된다.

그는 스웨덴 가족 정책 이념을 소개하며 “육아를 부모만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모든 아이의 출산과 육아를 국가와 사회가 지원하는 보편적 가족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면서 “2030년까지를 저출산 대응의 ‘마지막 기회’로 삼아 종합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출산율이라는 숫자 아닌 생애를 주목해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이상림 책임연구원은 한국의 저출산과 서울 인구 변동의 특징을 발표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한국의 고령화 수준은 OECD(38개국) 회원국 중 아직 낮은 수준이지만 30년 내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령화 수준에 이른다”며 “한국의 고령화는 수준(정도)이 아닌 속도의 문제다. 빠른 고령화는 사회 전반에 걸쳐 경험하지 않는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빠른 고령화는 저출산이 누적된 결과다. 한국의 저출산은 두 차례 있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2002년 ‘위기적 저출산’이 시작됐다. 기업 구조 조정, 정리 해고, 비정규직 등 청년 삶의 불안정성이 증가했다. 2차 출산력 위기는 2016년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다. 외적 요인이 아닌 청년의 삶에 구조적 변화(집값 폭등, 일자리 부족 등) 때문이다.”

이상림 책임연구원은 “저출산 위주 인구 정책에서 탈피해 출산 지표 향상이 목표가 아닌 청년 생애(生涯) 과정을 이해하는 데 주목해야 한다”며 “미시적 가족 지원에서 구조적 환경 개선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가족 형성이 사치재가 돼”

이상수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단순히 출산율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라고 했다. 이 교수는 과거 모두에게 공평했던 가족이라는 사회 제도가 오늘날에는 사회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이들만 누릴 수 있는 ‘사치재’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책적 접근이 단순한 일회성 지원이 아닌 청년층의 안정적 삶 보장, 성적으로 평등한 돌봄 체계 구축, 계층 격차 완화를 목표로 하는 종합적 전략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했다. 

“남성 근로 시간 줄면 출산율은 향상”

고무로 요시에(小室淑恵) ㈜워크라이프밸런스 창립자 겸 대표는 남성 근로 방식 개혁과 출산율 개선에 대해 말했다.

고무로 대표는 “교토대 시바타 유(柴田悠)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평일 남성이 주 6시간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현재 3조 엔 규모의 저출산 대책보다 5배 더 높은 출산율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남성이 장시간 노동하는 국가나 현(県)일수록 출산율이 낮다”고 했다. 

그는 근로 방식 개혁을 위한 구조 전환이 필요하며 전환에 성공한 조직은 3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이 세 가지는 ▲남녀 임금 격차 축소 ▲디지털 투자 확대 ▲잔업 수당 기본급 전환이다.

고무로 대표는 “업무 디지털화를 통해 업무 내용을 클라우드에 공유하면 재택근무자나 업무를 이어받은 사람도 일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며 “근무 시간·장소 제약이 있는 인력도 적극 채용·평가할 수 있어 인력난 완화에 도움이 된다. 이렇게 되면 휴가를 대체할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지고, 근무 시간이 아닌 성과 중심으로 평가가 이루어져 여성의 공정한 평가와 남녀 임금 격차 해소로 이어진다”고 했다.

“조부모에게 아이돌봄, 새로운 저출생 대응책”

민지선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책임연구원은 “가족 친화적인 직장 환경과 문화 조성이 저출생 대응을 위한 중장기적 과제라면, 단기적으로는 돌봄 공백을 메울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서울형 아이돌봄비 지원 사업(친인척형)’을 제시했다. 

민 책임연구원이 올해 실시한 ‘서울형 아이돌봄비 지원 사업’ 성과 분석에 따르면, 사업에 참여한 양육자는 미참여 양육자 대비 돌봄 비용 부담 완화, 양육 스트레스 감소, 일-가정 양립 어려움 완화를 경험했으며, 자녀의 건강한 성장에 대한 인식도 개선됐다.

민 책임연구원은 “이 사업은 조부모 세대의 돌봄 기여를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정당하게 보상하면서 양육 세대의 부담을 실질적으로 완화하는 새로운 형태의 저출생 대응 방안”이라며 “조부모 세대의 돌봄 노동을 사회적으로 가시화하고 정당한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세대 간 협력적 돌봄 구조를 형성하는 새로운 정책 모델로 기능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이선형·강은애 책임연구원은 서울시의 저출생 극복을 위한 정책과 앞으로의 정책 과제를 소개했다. 

“일터 조직 문화를 어떻게 바꿀지에 주목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 관행을 개선하고 돌봄과 가사에 대한 양성 평등한 참여를 당연시하는 조직 문화가 확산해야 한다. 서울시와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추진 중인 중소기업 워라밸 포인트제, 일상생활 균형 컨설팅, 대체인력 지원 등은 저출생 문제 해결의 주요 과제임을 짚은 정책이다. 이러한 정책을 더 많은 기업과 시민이 체감하도록 확대‧강화해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일터와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박정숙 대표는 “가족의 가치가 존중받고 모든 세대가 행복한 서울을 만들기 위한 정책 개발에 더욱 매진하겠다”며 “정례 포럼, 상호 연구 자문 등 온오프라인 교류 확대를 통해 저출생이라는 도전 과제를 기회로 전환하는 길을 모색하겠다. 한국과 일본이 함께 축적한 경험이 동아시아 전체의 지속가능한 저출생 대응 모델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