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남은 시간이 하루뿐이라면 어떤 음식을 드시겠습니까?”

독자 여러분이라면 이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겠는가.

그러면 '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였지'라고 생각하다가 저마다의 인생 음식을 내놓는다.

우리가 인생 항해를 마칠 때 가장 먼저 하려는 것은 솔푸드(soul food)를 찾아가는 일이다.

우리가 고향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솔푸드는 누구에게나 영원한 그리움이다.

천재 전문가이자 국제지니어스연구소장인 조성관 작가(전 주간조선 편집장)가 《천재들의 식탁에서 인문학을 맛보다》(자유의길)를 펴냈다.

이 책은 단순한 미식 탐방이 아니라, 한 끼의 식사를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줄 스토리텔링과 인문학적 감각을 담은 교양서다. 음식 속에는 역사, 철학, 예술이 스며 있으며, 우리가 먹는 한 접시에는 과거의 천재들이 남긴 흔적이 있다.

조선 문단의 ‘모던 뽀이’ 시인 백석(白石)은 미식가였다. 백석이 시집 ‘사슴’을 출간한 게 1936년 1월20일. 100부 한정판 자비 출간. 호화 양장본인 책값은 2원. 시집이 나오자마자 품절되었다.

시인 백석

백석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었다. 여기에 잘생긴 외모까지 더해져 백석 신드롬이 불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신문과 잡지에 실리곤 했다.

백석은 2년간의 조선일보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1936년 봄부터 함흥으로 내려가 영생고보의 영어교사로 근무한다. 함흥 시절 그는 하숙을 했다. 영생고보 시절 백석은 대단한 멋쟁이였다.

백석은 영생고보가 가까운 운흥리의 어느 할머니 댁에서 하숙했다. 백석은 생선류를 좋아했고 육류를 멀리했다. 하숙집 할머니는 이런 하숙생의 입맛을 배려해 가급적 육류 반찬을 내놓지 않았다.

백석이 최애한 음식은 ‘가자미구이’였다. 그중에서 특히 참가자미구이를 좋아했다. 백석은 흰밥에 참가자미구이를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이 글을 읽은 저자의 찐팬들이 8월 7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근처 ‘생선구이소반’ 가게를 찾아갔다. 네 명이 가자미구이 둘, 임연수와 볼락 하나씩을 시켰는데 한 참석자는 20여 년 전에 강릉에서 먹은 이후 처음이었단다.

그때까지 네 명 모두 가자미구이를 고추장에 찍어 먹어본 일이 없었다. 참가자미는 겨울이 제철이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가자미구이를 가운데 두고 머리를 맞댔다.

“가자미 생선내를, 고추장이 확 퍼지면서 잘 잡아 주네!”

그날 저자와 함께 찾은 식당은 백석 하숙집에서 걸어서 10분쯤 거리였단다(백석, 흰당나귀라는 와인바도 10분 안짝 서촌길에 있다).

가자미구이와 고추장

백석은 조선일보 1936년 9월2일자에 ‘가재미·나귀’라는 글을 실었다

<동해(東海) 가까운 거리로 와서 나는 가재미와 가장 친하다. 광어, 문어, 고등어, 평메, 횃대 생선이 많지만 모두 한두 끼에 나를 물리게 하고 만다. 그저 한없이 착하고 정다운 가재미만이 흰밥과 빨간 고추장과 함께 가난하고 쓸쓸한 내 상에 한 끼도 빠지지 않고 오른다.

나는 이 가재미를 처음 십전 하나에 뼘가웃씩 되는 것 여섯 마리를 받아들고 왔다. 다음부터는 할머니가 두 두릅 마흔 개에 이십오 전씩 사오시는데 큰 가재미보다는 잔 것을 내가 좋아해서 모두 손길만큼 한 것들이다 …

그동안 나는 한 달포 이 고을을 떠났다 와서, 오랜만에 내 가재미를 찾아 생선장으로 갔더니, 섭섭하게도 이 물선은 보이지 않았다. 음력 8월 초순이 되어서야 이 내 친한 것이 온다고 한다. 나는 어서 그때가 와서 우리들 흰밥과 고추장과 다 만나서 아침저녁 기뻐하게 되기만 기다린다. 그때엔 또 이십오 전에 두어 두릅씩 해서 나와 같이 이 물선을 좋아하는 H에게도 보내야겠다.>

저자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생선류가 좋아진단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일주일에 최소 한번은 생선구이를 먹지 않으면 어딘가 불안하다. 갈치를 노릇노릇하게 프라이팬에 구워 포슬포슬한 생선 살을 흰쌀밥에 얹어 먹을 때의 그 황홀함이란!

지난해 저자의 식도락사(史) 사건은 박대 맛을 다시 맛보았다는 것이다. 어릴 적 고향에서 어머니가 철마다 해주신 박대 맛. 서울로 올라온 이후 사십년 넘게 박대 맛을 잊고 살았다.

군산클럽에 강연을 하러 다니면서 박대를 다시 알았다. 한번은 강연 시작 전 저자게서 ‘박대 이야기’를 들은 경찰서장과 대학총장을 지낸 두 분이 박대구이 점심에 초대했다. 노릇하게 구어진 박대구이 생선을 놓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차마, 젓가락을 댈 수 없었다. 조심조심 박대살을 발라 입에 넣었다. 생선살이 입천장에 닿는 순간 프루스트의 마들렌 과자처럼 어린 시절이 피어올랐다.

천재연구가 조성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