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무역 협상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낙관적 기류 속에서도 '에너지 주권' 문제를 둘러싼 충돌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측이 중국에 대해 러시아와 이란산 석유 수입 중단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 "자국 이익에 따라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겠다"고 맞섰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7월 31일(현지 시각) X(구 트위터)를 통해 “중국은 강압과 압력에는 굴하지 않는다. 우리는 주권과 안보, 발전 이익을 단호히 지킬 것”이라며 미국의 요구를 일축했다. 이는 스톡홀름에서 열린 양국 간 이틀간의 고위급 무역 협상이 종료된 직후 나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최대 100%의 관세 부과를 경고한 데 대한 공개 반박이다.

이번 협상에 참여한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중국은 러시아산 석유 문제에 있어 자국 주권을 매우 중요시한다”며 “그래서 그들은 100% 관세도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또 베센트 장관은 CNBC 인터뷰에서 “중국은 협상에서 매우 강경하지만 그렇다고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합의의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100% 관세를 강행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브리엘 윌다우 '테네오(글로벌 컨설팅 & 어드바이저리 회사)' 전무이사도 "(관세 100%) 조치가 이뤄지면 지금까지의 진전을 모두 뒤엎게 되고 올가을 트럼프와 시진핑 간 무역 합의 발표 가능성도 날아갈 것"이라 주장했다. 

중국은 러시아와 이란의 가장 큰 석유 고객국 중 하나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이란의 석유 수출 중 80~90%가 중국행이다. 중국은 하루 평균 100만 배럴 이상의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 이란 의회가 지난 6월 미국의 핵시설 공습에 반발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을 언급했을 당시 중국은 해당 해협이 봉쇄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러시아산 원유 역시 중국에 중요한 에너지 자원이다. 키이우경제대학(KSE)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은 4월 기준 하루 130만 배럴을 넘었고 이는 전월보다 20% 증가한 수치다.

대니 러셀 아시아소사이어티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러시아와의 전략적 연대를 유지하면서도 헐값에 석유를 들여올 수 있는 이득을 놓치고 싶지 않다"며 "중국은 이란과 러시아의 석유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미 안보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의 외교정책 내 이란·러시아 문제에서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스콧 케네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석유 수입 등 입장을 일관되게 대응하고 있다. 미국의 압박을 오히려 협상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신취안 베이징 WTO연구소장은 "미국이 정말로 러시아 견제를 중시한다면 중국을 압박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라며 "중국은 미국이 끝까지 '에너지 안보' 문제를 밀어붙이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고 했다.

한편 미 상원에서는 러시아와 그 재정 후원국들에 대한 고강도 제재 법안도 추진 중이다.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지난 4월, 러시아산 원유·우라늄·천연가스 등 에너지 제품을 묵인하고 수입하는 국가에 최고 500%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성명에서 "중국이 푸틴으로부터 석유를 헐값에 사들이고 러·우 전쟁에서 러시아의 손을 강화하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글=백재호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