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에 자리한 뮤지엄 SAN이 올여름 한국 현대미술계에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영국 현대조각의 거장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1950~)의 조각 세계를 보여주는 개인전 《DRAWING ON SPACE》와 세계 최초의 곰리 작품 상설관 ‘GROUND’를 동시에 공개한다. 6월 20일부터 11월 30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조각과 건축, 자연을 접목한 감각적 전시다.

조각, 공간, 몸의 감각을 연결하는 대규모 회고

뮤지엄 SAN 청조갤러리 전관(1~3관)에서 열리는 《DRAWING ON SPACE》는 총 48점의 작품을 통해 곰리의 50년 가까운 조각 세계를 펼쳐 놓는다. 조각 7점, 드로잉 및 판화 40점, 대형 설치작 1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대표적 주제인 ‘인간 몸의 존재성과 공간과의 관계’를 실험적이면서도 직관적으로 풀어낸다.

LIMINAL FIELD FOIL_2015_190 x 50 x 50_4 mm square section mild steel bar

 특히  연작(청조갤러리 1관)은 가볍고 유동적인 인체 형상을 통해 고정된 형태 대신, 관람자의 움직임과 감각으로 완성되는 ‘존재의 순간’을 제안한다. 곰리는 이 작업을 통해 “공간은 조각의 배경이 아니라 조각과의 상호작용으로 새롭게 인식되는 장소”라고 말한다.

청조갤러리 2관에서는 곰리의 드로잉 세계가 펼쳐진다. ‘몸 안의 암흑’을 표현한 과 인간의 감각적 경계 지점을 탐색하는 연작은, 단순한 조각의 밑그림을 넘어 ‘공간적 사고의 시각화’라는 곰리의 예술 철학을 드러낸다.

3관에 설치된 는 우주의 중력 궤도와 양자적 움직임을 형상화한 대형 구조물이다. 관람객이 작품 사이를 통과하고 몸을 기울이며 직접 ‘작품의 일부’가 되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이 설치작은, 예술을 ‘정지된 오브제’에서 ‘행위와 경험의 장치’로 전환시킨다.

Antony Gormley, GROUND: RISE, 2024, Cast iron, 101.4 x 50.2 x 118.9 cm, Photograph by Stephen White & Co.

예술의 성소 ‘GROUND’, 공간과 조각의 신성한 결합

 이번 전시의 백미는 안토니 곰리와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협업한 상설 공간 ‘GROUND’다. 뮤지엄 SAN 플라워 가든 아래에 지하로 조성된 이 돔형 공간은, 지름 25m, 천고 7.2m, 지붕에 원형 채광창(oculus)이 뚫린 구조로, 고대 로마 판테온을 연상케 하는 숭고한 기운을 발산한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다. 건축과 조각이 불가분하게 연결된 하나의 ‘성소’다. 연작 7점이 공간 전반에 흩어져 배치되고, 관람자는 지상 입구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점차 내면으로 침잠하게 된다. 빛과 어둠, 공간의 울림 속에서 관람자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심리적 여정을 경험하게 된다. 곰리는 이 공간을 “조각과 건축, 그리고 자연이 통합되는 새로운 예술의 방식”이라 정의한다.

조각의 미래를 비추는 거장, 안토니 곰리

터너상을 수상한 안토니 곰리는 인간 신체를 중심으로 공간과 존재의 관계를 탐구해온 현대조각계의 선구자다. 그는 스스로의 몸을 석고로 캐스팅한 초기 작업부터, 우주적 차원의 조각적 언어를 구축한 최근 작품까지, 늘 조형 언어의 경계를 확장해왔다. 영국 게이츠헤드의 ‘북쪽의 천사(Angel of the North)’, 네덜란드의 ‘Exposure’, 호주의 ‘Inside Australia’ 등 세계 곳곳의 공공조형물은 그의 작업이 단지 미술관을 위한 조각이 아니라, 도시와 자연, 인간 존재를 연결하는 철학적 도구임을 보여준다.

  내년에는 전남 신안군 비금도 원평해변에서도 곰리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작품 '엘리멘탈(Elemental)'이다. 신안군은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초청해 신안군 주요 섬마다 미술관을 세우는 ‘1도 1뮤지엄 예술섬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비금도에는 곰리의 작품을 세운다. 신안군 도초도에는 올라퍼 엘리아슨(58)의 대지설치작품 ‘숨결의 지구’가 설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