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는데, 평소 빨리 바뀌던 신호등이 시간이 지나도 바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삼청동 경복궁 담벼락 옆 삼청터널 가는 곳과 청와대 가는 갈림길 사이에 있는 신호등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는데, 교차로 인근에 있는 파출소에서 경찰 한명이 나오더니 우리 앞을 막아 섰습니다.
 
얼마 있으니 청와대 골목에서 차량 한 대가 앞 범퍼 부근에 번쩍번쩍하는 불을 켜면서 나타났고, 그 차 바로 뒤에 새카만 차량이 따라 나왔습니다. 또 그 새카만 차 뒤에는 경찰차가 불을 켜고 뒤 따랐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두 3대의 차량이 번개같이 지나가자 경찰은 우리가 지나갈 수 있게 신호를 바꾸었습니다. 
 
이 차량의 주인공은 아침에 청와대에 들어갔다 나오는 정부 고위 관료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이 차가 지나갈 때까지 평소보다 몇 분 정도를 더 기다린 것에 불과했지만, 뭐를 밟은 것보다 기분이 더 나빴습니다. 
 
그 사람이 장차관인지 아니면 다른 고위 관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수 많은 사람의 시간을 빼앗아 간 만큼 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바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자기가 고위 관료이란 이유만으로 그 많은 차량을 기다리게 하고 먼저 지나갔다면 이는 보통의 관존민비(官尊民卑) 사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청와대에 들어갔다 나오는 대한민국 고위관료 차량들이 다 이렇게 안하무인 식으로 길을 다니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아침에 그 모습을 보고, 조선시대 가마를 타고 거들먹거리며 지나가는 탐관오리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공무원 한 명이 길 지나가는데, 출근하던 수많은 시민을 꼼짝도 못하게 길가에서 붙들어 놓는 나라가 또 있는지 아시는 분이 있으면 연락 한번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예전에 신문 해외토픽란에서 외국의 경찰이 과속하는 장관 차량을 잡아서 딱지 떼었다는 이야기를 접하곤 했는데, 오늘 일을 겪고 나니 우리나라는 그런 일 자체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투 하나 썼다고 서울 시내 대로를 마치 전세낸 것처럼 사용하고 있으니 교통위반으로 딱지 떼일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한 명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을 이처럼 우습게 뺏을 정도의 배짱을 가진 사람이면 평소에도 이 사람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는 소린데,  이런 한심한 수준의 사람이 수장으로 있는 해당 관청의 분위기는  어떤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