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NewsRoom Exclusive

[발자취] ‘사랑의 시인’ 김남조 별세(1927~2023)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김남조 시인의 생전 모습이다. 2009년 5월 7일 오후 이화여대에서 열린 모윤숙 시인 탄생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김남조 시인이 모윤숙의 시를 낭송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사랑의 시인김남조(1927~2023) 시인이 10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평생 19권의 시집을 냈으나 사랑의 시를 가장 많이 쓴데다가 남의 사랑 이야기를 듣기 좋아했다. 생전 별명은 김사랑’.

많은 시들이 사랑의 시로 가득했지만 8번째 시집 사랑 초서(草書)(1974)는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문학평론가 김용직 서울대 교수(작고)는 "시인은 사랑을 인간의 영혼을 구제, 고양하는 원초적인 힘으로 보았다"고 했다.

 

1

사랑하지 않으면

착한 여자가 못된다

소망하는 여자도 못된다

사랑하면

우물곁에 목말라 죽는

그녀 된다

 

2

하늘땅 끝머리

저승만이나 먼먼집에

아침엔

햇빛 나르고

저녁엔

바람 나르고

 

3

너무 굶기면

사랑도 죽네

더욱 물을 삼켜도 가슴 추운

병이 깊어

내 사랑, 사랑이여

눈감았음을

 

-김남조의 <사랑 초서(草書)> 일부

 

몇 해 전 김남조 시인을 찾아 뵌 적이 있다. 2021425일 김세중미술관에서다. 그때 휠체어를 타고 계셨다.

 

시인은 처음 만난 기자에게, 정확하게는 전화 통화만 한 기자에게 자신의 시전집(1983, 서문당)과 시선집(2002, 문학사상사)선물로 주었다. 그 무렵, 전국 헌책방에 있는 자신의 옛 시집들을 모으고 있노라고 했다. 자신의 지체와도 같은 시집들을 시인을 뵙기 위해 찾아오는 지인들에게 나눠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시인을 만나기 앞서 20203월 펴낸 19번째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 되어 버린 사람아, 사람아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시집 서문인 노을 무렵의 노래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시작(詩作)은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시는 어떤 맹렬한 질투 같은 걸 가지고 있어서 가령 시인이 어느 기간 다른 일에 몰입하였다가 되돌아오면 시는 철문을 닫고 오랫동안 열어 주지 않았으며 이럴 때 시인은 닫힌 문 앞에 힘겹게 서 있곤 합니다.>

 

평생 시를 써온, 시와 더불어 산 그가, 시 앞에서,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시를 읽으며 사랑에 관한 시인지, 절대적 존재에 관한 종교시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위가 바수어져

모래가 되기까진

2억 년의 세월을 요한다

빛과 바람과 시간이 힘을 모아 주면

그리된다 한다

한 알의 모래는

사람보다 칠백만 배의

고령자이다

 

하느님이 바위에서

부서지면서 살아라

부서지더라도 살아라고

풀무를 돌리시며

2억 년 동안 지켜보신다

 

-김남조 시인의 <바위와 모래> 전문

(시집 사람아, 사람아중에서)

 

 

책을 읽는다

책갈피 사이사이로 흐르는

사념의 혈류

 

나의 글은 어떤가

외출복을 차려입은 말들은

세상에 내보내고

상처 깊거나 죄의식에 멍든 말은

늑골갈피 속에 묻어 둔다

덧없어라 옷 없어 세상에 못 나가고

늙어 버린 말들

 

글의 진정성은 무엇인가

묻고 더 생각한다

문학이여

내 한평생길 가고 또 가도

출발 지점에

다시 와 있구나

 

-김남조의 시 <책을 읽으며> 전문

(시집 사람아, 사람아중에서)

 

기자는 시인이 1983년 펴냈다가 2017년 다시 간행한 시로 쓴 김대건 신부라는 시집을 갖고 있다. 이 시집은 원로시인 이근배 선생에게 선물로 받았는데, 읽고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신앙을 떠나 어떤 영적인 숭고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말할 수 없어라

온 세상의 말로서도

이 신비 나타낼 수 없어라

신의 특별하신 간택이

만인 중에서 가려 뽑은 자에게

성령의 불의 인(印)을 찍으심을

(....)

그 넘치고 모자람,

아름답고 미움을,

또한 의와 불의로

아직 어리고 흔들리며

덜 데워진 사람의 마음들을

잠잠히 지켜보는

성실한 염려와 축원의

김대건 신부, 그를

 

-김남조의 시집 《시로 쓴 김대건 신부》 중에서

 

기자는 시인의 7번째 시집 설일(雪日)(1971)에 실린 <설일>을 좋아한다. 2연의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의 구절이 오래 울림을 주었.

 

고인의 명복을 빈다.

 

겨울 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김남조의 <설일(雪日)> 전문

 

화면 캡처 2023-10-10 225525.jpg

1974년 문단 모임에서 서정주 선생과.

 

KakaoTalk_20231010_222854621_04.jpg

1972년 숙대 교정에서 제자들과.


() 김남조 시인의 연보

 

1927년 대구 출생

195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1951~1953년 마산고등학교,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

1953년 서울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강사

1955~1993년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명예교수

1990~2023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장

한국방송공사(KBS) 이사

방송문화진흥회(MBC) 이사

 

국민훈장 모란장(1993)

은관문화훈장(1998)

 

자유문협상(1958)

한국시인협회상(1975)

서울시문화상(1985)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88)

서울세계시인대회계관시인(1988)

3·1문화상(1992)

대한민국예술원상(1996)

일본세계시인제 지구문학상(2000)

영랑문학상(2006)

만해대상(2007)

김달진문학상(2014)

가톨릭문학상(2014)

정지용문학상(2017)

김삿갓문학상(2018)

입력 : 2023.10.10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사진

김태완 ‘Stand Up Daddy’

kimchi@chosun.com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