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산대학교 노찬용 이사장이 이어령 선생을 추모하며 제1회 이어령 서거 1주기 국제학술대회 축사를 하고 있다.
해외 석학들은 고 이어령 선생을 어떻게 바라볼까.
이어령 서거 1주기 추모 국제학술대회가 영산대학교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정재서 소장)의 주최로 24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는 고인이 생전에 동아시아 학자들과 함께 10여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운영해온 문화재단이다. 시대가 바뀌고 선생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문을 닫았지만 영산대 노찬용 이사장과 부구욱 총장의 뜻으로 영산대 산하에 연구소가 다시 발족하게 되었다.
이날 학술대회에 직접 참여한 가미가이토 겐이치(上垣外憲一) 전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교수는 고인에 대해 회고하며 “선생이 쓴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구미의 학자들이 저술할 수 없었던 유니크한 일본론으로 일본 지식인들로부터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가미가이토 겐이치(上垣外憲一) 전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교수
“당시 세계에서 가장 진전됐던 일본의 반도체사업, 그 선구였던 ‘트랜지스터’까지도 일본인의 ‘축소지향’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확실히 사실에 해당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도 일본의 독자, 대중으로부터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일본의 산업계에서는 ‘중후장대’에서 ‘경소단박(輕小短薄)’이라고 하는 대형 유조선, 화학공업 플랜트와 같은 커다란 것이 아니고 반도체, 정밀기계와 같은 작은 물건을 만드는 것이 일본 공업의 미래를 닦는 일이라는 것이 1980년대 당시 널리 화제가 되었습니다. 일본 산업의 ‘작고 가벼운’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지향성에는 이어령 선생님의 《축소지향의 일본인》도 받아들였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미가이토 교수는 “이후 일본의 산업계로부터 강연 의뢰가 쇄도해서 가장 인기 있는 강연자가 되셨다”며 “이어령 선생님의 일본어는 일본 최고의 지식인들과 대등하게 넘나드는 수준이셨다. 아무리 일본어와 한국어가 닮았다고 하더라도 놀라울 만큼의 언어에 대한 재능이었다”고 회고했다.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토대 교수
교토대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수는 사전에 녹화된 영상으로 <이어령 비(非)체제의 세미오시스>를 강연했다. 그는 고인에 대해 “해방 후 한국이라는 시공간에서 정신 그 자체셨던 분. Der Geist이자 The Spirit”라고 강조했다.
오구라 교수는 가미가이토 교수와 하마다 요(濱田陽) 교수, 고하리 스스무(小針進) 교수와 함께 2019년 9월부터 그해 12월까지 모두 8차례 걸쳐 이어령 선생의 ‘오럴 히스토리’를 청해 들었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선생님의 자택을 방문하여, 매 번 몇 시간씩이나 선생님이 태어나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인생과 사상에 관하여 그 세세한 경위를 샅샅이 청해 들었다”면서 ‘오럴 히스토리’는 현재 최종 편집작업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했다.
오구라 교수는 “한국에는 두 가지의 서로 모순되는 거대한 동력이 있는데 ‘북학(北學)의 축’과 ‘동학(東學)의 축’이 있다”며 “전자는 경제발전과 이용후생을 중시하는 축, 후자는 민족적 주체성과 이념성을 중시하는 축”이라고 설명했다.
“이 두 가지 축이 잘 조회되면 좋겠습니다만, 오히려 양자가 대립하여 극단적인 투쟁을 초래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란, 이 두 개의 축, 이 두 가지 모습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쪽만이 한국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그 두 축, 그 두 가지의 모습을 종합적이고 포괄적으로 해석하여 사상으로 빚어낼 수 있는 사람이 드문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어령이 출현하고 이 성립되기 어려운 사상적 입장을 극적으로 실현시켰습니다.”
오구라 기조는 “이어령이야말로 진정으로 종합적인 사상가였고, 그 때문에 그의 인생은 지극히 고독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왕단(王丹) 베이징대 교수
베이징대 왕단(王丹) 교수는 사전 녹화된 영상으로 <이어령의 한중(韓中) 비교문화론>을 강연했다. 왕단 교수는 “그분(이어령)이 우리에게 남겨 준 소중한 유산인 《한중일 공용한자 808자》와 《이어령의 가위바위보 문명론》을 읽었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어령 선생은 《가위바위보 문명론》을 ‘손의 이야기’라 했고 ‘인간의 손이 불러온 가장 중요한 기능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라고 했습니다. ‘손의 이야기’, ‘동아시아 삼국의 이야기’라고 한 이 책은 결국은 ‘마음의 이야기’입니다.
수나라의 사상가 왕통(王通)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사람을 돈으로 사귀다가 돈이 떨어지면 잊혀지고, 이익으로 사귀다가 이익이 없어지면 흩어지기 마련이며, 권세로 사귀다가 권세가 상실하면 버려지고, 정으로 사귀다가 정이 끊어지면 상처받게 된다. 오로지 마음으로 사귀어야 비로소 오래 갈 수 있다.’
이 말을 마음으로 소통할 것을 제안한 이어령 선생의 영전에 바치고 한중 관계의 미래를 개척해 나갈 주체인 모든 분들에게 바칩니다.”
하마다 요(濱田陽) 테이쿄대 교수
일본 테이쿄대(帝京大) 하마다 요 교수는 학술대회에 직접 참석해 <이어령의 팡세>에 대해 강연했다.
하마다 교수는 10년 전 선생과 완전히 새로운 한일 문화론을 쓰기 위해 노력했고 가제 《두 나라 이야기(二國物語)》가 완성되었지만, 양국 관계와 세태가 악화되어 출간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 책은 이어령 선생이 제시한 타이틀로, 서로가 서로에게 미치지 못하는 흥미로운 양상으로 눈을 돌려, 넓은 세계로 통하는 광경을 찾자는 메시지를 담은 시도였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어령 선생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2019년에 만난 이후, 코로나 때문에 2022년 2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직접 만나지 못한 탓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이어령의 정신과 마음이, 육체와 함께 사라졌다고는 아무리 해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원망(願望)이 아니라, 솔직한 실감에 가깝습니다.
이런 마음을 마주하기 위해, 선생의 말을 다시 만나, 함께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새로운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음을, 희미하게 느낍니다. 고독한 내성으로 여겨졌던 이어령의 말이, 생기를 띠기 시작했음을 느낀다. 그것은 참으로 신기한 감각입니다.
우리에게도 생물학적 죽음은 찾아옵니다. 그렇지만, 평등하게 찾아오는 죽음의 관념으로는 도저히 정리할 수 없는, 우리가 기억하는 것으로 그 사람은 살아 간다라는 논리로는 납득할 수없는, 어떤 감촉이 남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