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 길 라디오에서 어느 방송인이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밤새 추위에 떤 소녀는 손이 굽었고...”
“소녀는 굽은 손으로 성냥을...”
방송을 듣고 있던 저는 손이 굽었다기에 소녀가 추위에 밤새 떨다가 장애인이 된 줄 알았습니다.
추워서 손가락을 잘 못쓰게 되는 것은 ‘굽다’가 아니라, ‘곱다’라고 해야합니다. 이 두 단어는 ‘먹다’와 ‘막다’ 만큼 뜻이 분명하게 다릅니다. '추위로 손이 곱다'라고 할 때의 ‘곱다’의 발음은 앞 음절에 힘이 들어갑니다. 앞 음절에 강세를 넣지 않고, 장음으로 발음하면 ‘얼굴이 곱다’고 할 때처럼 ‘아름답다’라는 뜻이 됩니다.
만약 이 방송인이 방송작가가 써준 원고를 그대로 읽은 것이었다면 이 방송이 나가기 전까지 작가와 방송인 등 최소한 두 명이 ‘곱다’와 ‘굽다’의 기본적인 뜻을 몰랐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방송인들이 기본 단어의 뜻도 모르고, 장단음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방송 언어는 곧바로 국민들의 언어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옛날 어느 잡지에서 할머니가 키질 하는 사진 아래 ‘할머니가 키를 가지고 곡식의 쭉정이와 알맹이를 분리하고 있다’라는 설명을 달아 놓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잡지 편집인이 키질 할 때 쓰는 ‘까불다’라는 표현을 몰랐기 때문에 전원적인 시골 풍경이 이렇게 '삭막하게' 표현된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 ‘한국어 바르고 아름답게 말하기 운동본부’라는 단체의 학술모임 행사에 초청을 받아 가 보았습니다. 이 단체는 국어의 오염과 파괴를 보다 못한 몇몇의 뜻있는 분들이 만든 것입니다.
이날 행사는 서울교대의 강의실 하나를 빌려서 조촐하게 마련되었습니다.
제가 이곳 기자수첩에 우리말에 대한 글 몇 개를 올린 것을 초당大의 김창진 교수께서 보시고 저를 초청 해서 참석하게 된 것입니다. 金교수는 이 단체 사무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단체의 회원은 교수, 선생님, 성우, 기자, 사회인, 학생 등 다양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이날 학술 행사에 참석한 인원은 스무 명 정도 밖에 안 되었습니다.
이날 발표된 주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한국어의 母音의 장단과 리듬에 대하여(이현복 서울대 명예교수, 단체 대표)
2. 음성언어 전달과 모음의 중요성(유만근 성균관대 명예교수, 부대표)
3. 방송인은 국민의 언어 교사다(김병남 장단음 연구가, 부대표)
4. 敎師와 敎授 언어(백문식 화성 남양고 교장)
5. 漢字와 한글과 우리말 발음의 관계(김창진 초당대 교수, 사무국장)
저는 몇 명 안 되는 청중(단체 회원)에게 열과 성을 다해서 강의하는 이현복, 유만근 등 노교수들에게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김창진 교수는 이날 행사를 위해 광주에서 올라와 강연을 했습니다.(김창진 교수의 블로그: blog.chosun.com/stariver: 우리말 바로 쓰기에 대한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
이날 강연을 한 분들은 하나같이 우리말 오남용의 주범으로 한자를 국어에서 배제하고 있는 ‘한글전용정책’을 꼽았습니다. 이들은 “한자를 쓰지 않기 때문에 우리말에서 표현의 풍부성이 자꾸만 떨어지고, 한자어가 사라진 자리에 영어와 외래어가 대체되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들은 또 “지금 당장 예비 교사들에게 장단음 교육을 체계적으로 시키지 않으면 우리 말에서 장단음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지적도 했습니다.
국어 정책을 맡은 사람들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시류에 영합하거나 청소년들의 설익은 언어 생활과 타협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국어는 ‘총체적 위기’ 상황을 맡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국어와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국어 정책을 다루는 위치에 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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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어제 노무현 대통령이 연설을 하면서 ‘저희 정부’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국무총리에 이어 대통령까지 우리 나라나 나름없는 정부를 가리켜 ‘저희 정부’라고 했으니, ‘저희 나라’라는 말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상놈들이나 쓰는 천박한 ‘저희’란 말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대세라면 ‘열린 우리당’ 도 ‘열린 저희당’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밤새 추위에 떤 소녀는 손이 굽었고...”
“소녀는 굽은 손으로 성냥을...”
방송을 듣고 있던 저는 손이 굽었다기에 소녀가 추위에 밤새 떨다가 장애인이 된 줄 알았습니다.
추워서 손가락을 잘 못쓰게 되는 것은 ‘굽다’가 아니라, ‘곱다’라고 해야합니다. 이 두 단어는 ‘먹다’와 ‘막다’ 만큼 뜻이 분명하게 다릅니다. '추위로 손이 곱다'라고 할 때의 ‘곱다’의 발음은 앞 음절에 힘이 들어갑니다. 앞 음절에 강세를 넣지 않고, 장음으로 발음하면 ‘얼굴이 곱다’고 할 때처럼 ‘아름답다’라는 뜻이 됩니다.
만약 이 방송인이 방송작가가 써준 원고를 그대로 읽은 것이었다면 이 방송이 나가기 전까지 작가와 방송인 등 최소한 두 명이 ‘곱다’와 ‘굽다’의 기본적인 뜻을 몰랐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방송인들이 기본 단어의 뜻도 모르고, 장단음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방송 언어는 곧바로 국민들의 언어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옛날 어느 잡지에서 할머니가 키질 하는 사진 아래 ‘할머니가 키를 가지고 곡식의 쭉정이와 알맹이를 분리하고 있다’라는 설명을 달아 놓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잡지 편집인이 키질 할 때 쓰는 ‘까불다’라는 표현을 몰랐기 때문에 전원적인 시골 풍경이 이렇게 '삭막하게' 표현된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 ‘한국어 바르고 아름답게 말하기 운동본부’라는 단체의 학술모임 행사에 초청을 받아 가 보았습니다. 이 단체는 국어의 오염과 파괴를 보다 못한 몇몇의 뜻있는 분들이 만든 것입니다.
이날 행사는 서울교대의 강의실 하나를 빌려서 조촐하게 마련되었습니다.
제가 이곳 기자수첩에 우리말에 대한 글 몇 개를 올린 것을 초당大의 김창진 교수께서 보시고 저를 초청 해서 참석하게 된 것입니다. 金교수는 이 단체 사무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단체의 회원은 교수, 선생님, 성우, 기자, 사회인, 학생 등 다양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이날 학술 행사에 참석한 인원은 스무 명 정도 밖에 안 되었습니다.
이날 발표된 주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한국어의 母音의 장단과 리듬에 대하여(이현복 서울대 명예교수, 단체 대표)
2. 음성언어 전달과 모음의 중요성(유만근 성균관대 명예교수, 부대표)
3. 방송인은 국민의 언어 교사다(김병남 장단음 연구가, 부대표)
4. 敎師와 敎授 언어(백문식 화성 남양고 교장)
5. 漢字와 한글과 우리말 발음의 관계(김창진 초당대 교수, 사무국장)
저는 몇 명 안 되는 청중(단체 회원)에게 열과 성을 다해서 강의하는 이현복, 유만근 등 노교수들에게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김창진 교수는 이날 행사를 위해 광주에서 올라와 강연을 했습니다.(김창진 교수의 블로그: blog.chosun.com/stariver: 우리말 바로 쓰기에 대한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
이날 강연을 한 분들은 하나같이 우리말 오남용의 주범으로 한자를 국어에서 배제하고 있는 ‘한글전용정책’을 꼽았습니다. 이들은 “한자를 쓰지 않기 때문에 우리말에서 표현의 풍부성이 자꾸만 떨어지고, 한자어가 사라진 자리에 영어와 외래어가 대체되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들은 또 “지금 당장 예비 교사들에게 장단음 교육을 체계적으로 시키지 않으면 우리 말에서 장단음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지적도 했습니다.
국어 정책을 맡은 사람들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시류에 영합하거나 청소년들의 설익은 언어 생활과 타협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국어는 ‘총체적 위기’ 상황을 맡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국어와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국어 정책을 다루는 위치에 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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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어제 노무현 대통령이 연설을 하면서 ‘저희 정부’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국무총리에 이어 대통령까지 우리 나라나 나름없는 정부를 가리켜 ‘저희 정부’라고 했으니, ‘저희 나라’라는 말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상놈들이나 쓰는 천박한 ‘저희’란 말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대세라면 ‘열린 우리당’ 도 ‘열린 저희당’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