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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취] KBO리그 원년 우승 사령탑 김영덕 전 감독 별세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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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영덕 전 감독. 사진=조선DB

프로야구 원년 감독이자 가장 먼저 700승을 달성한 명장 김영덕(金永德) 감독이 21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현역 감독 시절, 해태 김응용 감독과 더불어 프로야구 두 산맥으로 통했다. 양김(兩金)의 자존심 대결을 치열했다. 

화면 캡처 2023-01-22 130950.jpg

조선일보 1991년 10월 6일 자 기사 〈’야구 兩金’ 자존심 한판 〉

 

김영덕 감독은 점잖은 모습이나 정교하고 섬세한 관리야구의 대가였다. 강팀이었던 OB와 삼성, 빙그레의 지휘봉을 맡아 약팀을 힘으로 찍어 누르는 감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일본에서 고교를 나와 난카이(南海) 호크스에서 투수로 활약하다 국내로 돌아와 대한해운공사, 크라운맥주, 한일은행 등에서 에이스 투수로 활약했다.

 

한일은행 감독(1969~71년)을 맡았고 프로야구 원년 감독으로 국내 최초로 500승, 600승, 700승 고지에 먼저 올랐다. 지난 2010년 7월 2일자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일본에서 야구할 때 ‘조센진’이라며 온갖 설움을 받았어요. 숙소에서도 끼어주질 않아 혼자 셰도 피칭만 하곤 했어요. 야구가 좋아 한국으로 와보니 여기선 ‘반쪽바리’라고 외면을 당했죠. ‘무조건 실력으로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모질게 야구만 했어요.”


700승은 빙그레 감독시절인 1993년 9월 10일 쌍방울을 4대 1로 누르며 달성했다. 당시(9월 11일 자) 조선일보 보도는 이랬다. 문갑식 기자가 썼다.


<...대전 경기서는 빙그레가 쌍방울을 4대1로 눌렀다. 빙그레 김영덕 감독은 지난 82년 OB에서 지휘봉을 잡은 이후 맨 처음 개인 통산 7백승 고지에 올랐다. 김 감독은 모두 1천1백98 게임에 출전, 7백승 4백78패 20무로 승률0·593을 기록 중이다....>

 

화면 캡처 2023-01-22 131604.jpg

조선일보 1993년 9월 11일 자 기사 〈김영덕 감독 첫 700승 고지〉

 

너무 강한 팀만 골라다니는 등 변덕이 심하고 에이스를 혹사시킨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당시 프로야구 감독 중 혹사 논란에 자유로운 감독은 없다. 그만큼 선수층이 얇았기 때문이다.


한일은행 감독 (1969~1971)

장충고등학교 감독 (1977)

북일고등학교 감독 (1977~1981)

OB 베어스 감독 (1982~1983)

삼성 라이온즈 감독 (1984~1986)

빙그레 이글스 감독 (1988~1993)

LG 트윈스 투수 인스트럭터 (1996)

LG 트윈스 2군 감독 (1997~1998)


모두 8차례 실업야구와 프로야구 1군, 2군 감독을 역임했다. 통산 1207경기에서 707승 480패 20무(승률 0.596)를 기록했다.

 

큰 경기, 우승을 다투는 라이벌팀과의 경기에서 집요했고, 특히 한국시리즈 등 큰 경기에서는 상대편도 그렇지만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했기에 이때 자주 맞붙었던 팀들과 껄끄러운 이미지를 남기기도 했다.

 

원년 우승팀 OB 베어스 감독으로 첫 우승을 거머쥐었고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3년간 우승(85년)과 준우승(84, 86년)을 거뒀다. 1988~93년까지 빙그레 감독으로 두 차례나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다.

또 한국시리즈에 4차례(1988년, 89년, 91년, 92년) 진출해 모두 준우승을 차지했다. 3번은 해태 김응용 감독에게, 1번은 롯데 강병철 감독에게 패했다.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에 네번 졌어요. 롯데와도 두번 붙어 모두 졌지만 그건 전적으로 감독인 나의 책임이고. 해태는 선동열 이외에도 좋은 투수와 강타자가 즐비해서 누구라도 당시에 이기기가 어려웠다고 봅니다. 천안북일고―동아대를 거치며 최고의 투수였던 지용규(현재 북일고 코치)와 한양대 구대성(한화이글스)만 들어오면 해태하고 붙어볼만 하다고 이를 갈고 있었어요. 그런데 둘 다 입단하자마자 부상이 드러나서 눈물을 삼켰죠.”(2010년 7월 2일자 문화일보)


KBO 허구연 총재는 저서 허구연의 야구(2008)에서 김영덕 감독이 한국 야구에 끼친 공이 크다며 이렇게 썼다.

 

<우리 야구계의 김영덕김성근 감독에 대한 평가가 그분들이 남긴 성적과 기여도에 비하면 아직도 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김영덕 감독은 가장 먼저 700(통산 717)을 돌파한 감독이자 원년 우승을김성근 감독은 프로아마 야구를 가리지 않고 후배들을 지도하면서 많은 제자를 두고 있는 것은 단순히 감독으로서의 승리 횟수보다 한국 야구에 끼친 공이 더 크다고 본다.

 

그러면 왜 많은 재일동포 야구인들이 고국을 떠나 일본으로 다시 회귀하거나국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까난 재일동포 야구인들이 국내에선 반일본인 같은 대접을 받기도 했으며배타적인 우리 사회 분위기에 제대로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본다. (중략)

 

한국 야구는 재일동포 야구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역사는 중요한 것이고후배들도 우리 야구에 대한 역사는 제대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입력 : 202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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