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NewsRoom Exclusive

[한국프로야구 출범 40주년 40장면] <21> 야구 관중의 역사

元年 100만, 95년 500만, 관중 1000만 시대는 언제쯤?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구름 관중. 1992년 10월 12일 한국시리즈 4차전이 열린 부산 사직구장 모습이다. 이날 롯데가 빙그레(현 한화)를 6-5로 이겼다. 당시 관중이 구름처럼 야구장에 모였다. 그해 롯데 자이언츠가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다. 사진=조선DB

한국프로야구는 40년간 양적 질적 성장을 이어왔다.

 

2022년 시즌은 총 720경기를 가졌다. 경기 평균 관중은 8439.

올해 전체 관중은 6076074명이 전국 야구장을 찾았다. 인구 5000만 명 기준으로 전 국민의 12%가 야구장을 찾은 셈이 된다.

코로나19로 영향을 많이 받았던 야구가 서서히 회복되는 추세다.


화면 캡처 2022-11-19 062911.jpg

 

화면 캡처 2022-11-19 061724.jpg

SSG 랜더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두 자리를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wire to wire)을 해서인지 올해 관중 동원력이 역대 최고였다. 981546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구도(球都) 인천이 야구로 들썩였음이 분명하다.

 

정규 시즌 2위팀인 LG 트윈스는 93163명이 야구장을 찾았다. 수도권 구단인 만큼 늘 관중 동원력과 충성도에서 타 구단에 밀리지 않는다.

다음으로 삼성 라이온즈(674452), 두산 베어스(644614), 롯데 자이언츠(631656), KIA 타이거즈(604394) 순이다.

NC 다이노스(369018)와 한화 이글스(358190), 키움 히어로즈(349773)는 저조했다.

 

59170b7d-3523-4496-a690-c3cb1f845ed1.jpg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SSG 선수와 정용진 구단주가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인천SK 행복드림구장의 모습이다. 사진=SSG 랜더스

 

01241999080280200223.jpg

1982년 3월27일 서울운동장에서 첫 프로야구가 개최되었다. 개막식 행사후 첫 경기는 MBC청룡 대 삼성라이온스경기가 열렸는데 이날 경기에서 연장10회말 청룡의 이종도 선수의 굿바이 만루홈런으로 청룡은 라이온스를 11대7로 이겼다. 사진은 이종도선수가 홈런을 치고 동료들의 횐영를 받고 있다. 사진=조선DB


한국프로야구 출범 첫 해인 1982년의 관중은 1438768명이었다. 당시 구단이 6개밖에 안 됐음을 감안하면, 야구장 시설이 턱없이 부족했음도 떠올려 보면,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박민규의 장편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2003)을 보면 1982년 당시의 대한민국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경제기획원은 우리 나라의 인구를 남자 1,9693,759, 여자 1,9335,580명으로 최종 집계하고, 전두환 대통령은 새 총리서리에 유창순(劉彰順), 부총리 겸 기획원장관에 김준성(金埈成)을 지명하고, 일본 마이니치신문(每日)은 한국 정부의 경제 협력 요구액이 외화 40억과 상품 차관 20억 등 60억 달러 규모였음을 발표하고, 친서를 통해 레이건 미 대통령이 전대통령의 통일 방안을 적극 지지하고, 다시 레이건은 516~22일을 한미 수교 100주년 기념 주간으로 선포하고, 물론 이와는 상관없지만 조달청이 미국 쌀 37만톤을 추가 도입한다는 계약에 합의하고, 물론 이와도 상관없겠지만 워커 주한미국대사가 "한국 국민은 민족주의적 자기 중심의 행동 양식을 지양하라"며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강연에서 영어로 역설하고(중략)어쨌거나 한국의 프로야구는 공룡의 화석이 발견되고, 토함산을 오르던 버스가 굴러 11명이 사망하던-숨 막히던 역사의 격동기 속에서 태어났다. >(10~12)

 

관중 200만 명이 돌파한 해는 1986년이었다. 2141112. 300만 명 시대는 1990년에 시작되었고 400만 명 돌파는 1993년에 이뤄냈다.

 

하일성이 쓴 야구 몰라요, 인생 몰라요에 따르면,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국내에 야구 종주국인 미국 스타일이 쏟아져 들어왔다. 국내 프로야구 경기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도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자연스레 프로야구가 더 재미있어지고 스토리도 풍부해졌다. 관중도 크게 늘어났다. 출범 30년을 넘어 일본식, 미국식을 벗어나 한국 스타일을 창조해 갔있다.


화면 캡처 2022-11-19 084641.jpg

조선일보 1995년 9월 11일 자 9면에 실린 <관중 사상 첫 500만 명 돌파기사


1995540만 명으로 500만 명 시대를 열었다.

다음은 조선일보 1995911일 자 9면에 실린 <관중 사상 첫 500만 명 돌파> 기사다.

 

<올시즌 프로야구 관중이 사상 처음 500만 명을 돌파했다. 이에 따라 입장수입도 200억 원을 돌파올해 프로야구는 가히 폭발장세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프로야구위원회는 9일까지 각 구장에 입장한 관람객이 5001512명에 관람수입이 201380만원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구장을 찾은 3835000여명보다 117여만명이 증가한 것이다. 관중은 30%입장수입은 54%나 증가했다. 지금까지 역대 최다관중은 934437000여명이다.

이 추세라면 올 시즌 관람객은 55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금까지 모두 94경기에서 입장권이 매진됐다. 최대 관중을 동원한 구단은 LG. 이날 현재 1108000여 명에 입장수입 51억여 원을 올렸다.

지난해에 비해 관중이 가장 많이 늘어난 구단은 롯데. 막판 프로야구를 흥미롭게 만들고 있는 상승세 롯데는 1102000여 명이 구장을 찾아 지난해 612000여명보다 80%나 늘었다.>

 

그러나 1996449만 명으로 주춤했고 IMF가 터진 97년엔 390만 명으로 움츠러들었다.

1998년부터 2006년까지는 프로야구 침체기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200~300만 명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였고 먹고살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하던 시절이었다. 삶에 지쳐, 삶에 바빠 야구장을 찾지 않았다.

 

01242006031631604781.jpg

2006년 3월 16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과 일본 경기 8회에서 2루타를 쳐 2. 3루 주자를 모두 불러 들인 이종범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며 1루로 달려가고 있다. 사진=조선DB

 

변화의 조짐을 보인 해가 2006년이었다. 그해에 미국 메이저리거까지 모두 참여하는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렸다. 한국의 저력이 무서웠는데 4강을 이뤄냈다. 2006313일 미국 LA애인절스 스타디움에서 한국이 미국 야구를 7-3으로 꺾었다.

박찬호, 김선우, 최희섭, 서재응, 김병현 등 메이저리거와 요미우리의 이승엽, 그리고 국내 프로야구 이종범, 이진영 등이 놀라운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0124200808240045EE00.jpg

베이징에서 금메달을 따낸 선수들도, 이를 지켜본 국민들도 모두 하늘을 나는 듯한 기쁨이었다. 야구대표팀이 2008년 8월 23일 베이징 우커송구장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쿠바를 3대2로 누르고 9전 전승으로 사상 첫 올림픽 우승을 차지했다. 병역미필선수 10명이 포함돼 베테랑과 조화가 잘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은 베이징올림픽에서 전승 우승을 차지한 뒤의 모습. 사진=조선DB


2007년부터 다시 관중들이 야구장을 찾아 410만명 시대를 열었고 2008525만명 시대를 이루었다. 2008년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가 금메달을 딴 해다. 메이저리거들이 대부분 빠졌지만 일본 프로야구의 이승엽과 류현진, 김광현, 이대호, 김태균 등 당시 신세대 토종 선수들이 주축이 된 한국 야구팀은 9전 전승으로 퍼펙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준결승에서 일본을 6-2, 결승에서 쿠바를 3-2로 꺾었다.

 

사람들이 다시 야구장을 찾기 시작했다. 2010592만명, 2012715만명, 2015(10구단 체제가 갖춰진 해다.) 736만명, 2017년에는 역대 최고인 840688명을 기록했다

특히 인구 약 350만명으로 야도(野都)라 불리는 롯데는 지난 2008~2012년 5년 연속 100만 관중 돌파라는 대단한 기록을 세웠었다. 당시 롯데는 암흑기를 탈출하면서 흥행 열기의 중심이었다. 

 

0124201107230101TG00.jpg

2011년 7월 23일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2011프로야구올스타전이 열렸다. 관중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사진=조선DB


이 사이에 NC 다이노스가 2013, KT 위즈가 2015년에 창단하면서 10구단 체제가 완성됐다. 경기 수는 팀당 144경기씩 총 720경기로 늘어났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터지면서 2020328317(평균 456)으로 내려앉았다. 그나마 20211228489(평균 1706)으로 회복되었었다.


40241993070400002284.jpg

1993년 7월 4일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 서군 선수들의 모습이다. 해태 선동열과 조계현, 빙그레 송진우 선수 등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조선DB


01242014111101767022.jpg

2014년 11월 1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넥센을 11대1로 꺾고 종합 전적 4승2패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삼성 선수들이 샴페인을 터뜨리며 기뻐하고 있다. 삼성은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이뤄냈다. 사진=조선DB


한국프로야구는 현재 새로운 변화와 출발점에 서 있다. KBO 허구연 총재는 꿈 같은 이야기지만 100만 관중 시대를 열겠다고 밝히고 있다. 10개 구단이 각 100만 명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KBO 야구발전실행위원회가 <프로야구 1000만 관중 시대 예측 보고서>2011년쯤 낸 적이 있었는데 작성 책임자는 허구연 총재이었다. 보고서에는 ‘좌석 점유율이 55%만 돼도 대구 광주 대전 목동 구장의 좌석 수가 25000석 이상이면 1034만 명 동원이 가능하다’고 적혀 있다. 결국 해답은 야구 인프라 확충이었던 것이다.

허 총재의 별명은 허구연에다 인프라를 더한 허프라. 요즘 대전 신()구장 건립에 부쩍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c81e0df5-19f3-42a9-aa40-dc623773d1b5.jpg

인천SK 행복드림구장을 찾은 SSG 랜더스의 팬들. 사진=SSG 랜더스


이만수 전 감독도 방역 지침이 완전히 해제된 시즌 후반기와 포스트 시즌의 관중수를 감안해 본다면 엄청난 흥행이었고, 내년에는 1000만도 훌쩍 넘길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고 했다.

 

한국프로야구가 더불어 질적 성장도 이뤄야 한다. 코로나로 인한 리그 중단 사태와 일부 선수들의 일탈, 승부조작 의혹, 그리고 국제대회 성적 부진 등 위기를 겪었다.

우물안 개구리식 야구는 곤란하다. 이만수 최동원 선동열과 같은 전 국민의 관심을 모을 스타탄생도 필요하다. 박찬호 류현진 같은 괴물 투수가, 이승엽 박병호를 넘을 새로운 홈런왕이, 이종범을 넘는 야구 천재가 나와야 한다.


2023년에는 야구 관중 1000만 시대가 열릴까.

입력 : 2022.11.19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사진

김태완 ‘Stand Up Daddy’

kimchi@chosun.com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