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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한국 프로야구 출범 40주년 40장면] <2> 청보 핀토스와 허구연 감독

삼미에게 바통 이어받은 비운의 구단 청보 핀토스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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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프로야구 40년의 역사를 대변하는 40장면을 소개한다. 이 장면들은 어쩌면 B컷일지 모른다. 전면에 놓이기에 뭔가 허전하지만 그래도 역사의 귀중한 자산으로 기록될 장면들일 것이다. 결정적 장면은 수많은 스포츠신문과 주요 매체에서 다 다뤘거나 다룰 예정이니 불필요한 소음에 동참할 필요가 없다. 6권의 프로야구 관련 책들의 도움을 받아 기술한다.

《이것이 야구다-프로야구 30년을 뒤흔든 100인의 한마디/ 명장면 200선》(2011)
《그라운드 20년 마이크 30년 허구연의 야구》(2008)
《한국 프로야구 결정적 30장면》(2011)
《한국 프로야구 난투사》(2015)
《프로야구 투타의 전설》(2010)
《철학자 하일성의 야구 몰라요 인생 몰라요》(2013)
구글에서 검색되는 청포 핀토스 허구연 감독 이미지들.

라면업계에 진출하고 삼미 슈퍼스타즈 야구단을 인수해 화제기업으로 등장했던 풍한(豊韓)방직 그룹 역시 경영난에 부딪혀 1987년 해체되는 비운(悲運)을 겪었다.


풍한은 연초에 이미 중구 을지로에 새로 지은 내외빌딩을 삼성그룹에 매각한데 이어, 프로야구단 청보 핀토스를 태평양화학에, 청보식품을 오뚜기식품에 넘기는 등 청보 자()가 붙은 회사들을 모두 매각처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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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1985629일 창단한 청보 핀토스는 19871031일 태평양화학에 넘어갔다. 청보 핀토스는 공식적으로 198838일 태평양 돌핀스로 유니폼을 갈아 입었다.


청보 핀토스는 인천공설운동장 야구장과 춘천공설운동장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청보 핀토스의 감독은 3명으로 우선 김진영 감독을 꼽을 수 있다.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 1985년 전기리그 도중 18연패의 책임을 물어 해임됐다가 팀이 청보로 바뀌면서 다시 돌아와 후기리그에서부터 지휘봉을 다시 잡았다. 그러나 1985년 시즌이 끝나면서 또 다시 해임됐다.

 

화면 캡처 2022-09-18 165507.jpg

조선일보 1985년 10월 18일 자 <핀토스, 해설가 허구연씨 전격 기용> 기사.


두 번째 감독이 허구연. 지금의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였다.

당시 나이가 34. 코치 경험 없이 감독에 임명돼 큰 관심을 끌었다.

 

허구연은 야구명문 경남고를 거쳐 고려대한일은 선수시절 강타자로 명성을 떨쳤었다. 특히 1971년 대학야구연맹전 홈런왕, 74년 대학야구 최우수선 수상을 받았으며, 76년 국가대표로서 일본 도쿄 올스타와 한국실업 선발과의 경기에서 부상당해 78년 5월 현역선수에서 물러났었다.

 

핀토스가 야구 지도경력이 전혀 없는 그를 감독으로 임명한 것은 팀의 이미지와 분위기를 새롭게 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핀토스는 당초 만년 하위를 벗어나기 위해 강력한 통솔력을 지닌 신용균(申鎔均) 코치를 감독으로 승격시킬 예정이었으나, 팬들에게 새로 출범한 핀토스 구단의 신선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인물을 영입하라는 김정우(金政宇) 구단주의 지시에 따라 갑자기 젊은 그를 감독으로 스카웃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즌(1986)이 시작되자마자 팀은 7연패로 추락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허구연 감독은 시즌 도중 자의반 타의반 일본으로 단기 외유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현장에 복귀했으나 반전에 실패했다.

부진한 성적(15402, 승률 273)으로 86년 한 시즌을 다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고 말았다.

 

당시 야구판에선 허구연에게 지면 안 된다는 말이 떠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경험도 없는 풋내기 감독한테 지면 망신살이 뻗친다는 얘기였다.


화면 캡처 2022-09-18 165403.jpg

조선일보 1986년 8월 7일자 <허구연 감독 전격 해임> 기사.


결국 허구연 감독은 그해 86일 전격 해임되고 말았다. 오죽 딱했으면 조선일보는 88일자 기사에서 프로야구 핀토스 구단의 감독은 파리 목숨인가라고 썼다. 이 기사의 제목은 <핀토스 감독은 속죄양인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삼미 때부터 4년 동안 감독이 13번이나 바뀌어 평균 수명이 5개월을 넘기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허구연 감독은 사령탑을 맡긴지 10개월도 안 돼 일방적으로 옷을 벗겼다.


화면 캡처 2022-09-18 212236.jpg

조선일보는 8월 8일 자 기사에서 프로야구 핀토스 구단의 감독은 파리 목숨인가라고 썼다이 기사의 제목은 <핀토스 감독은 속죄양인가>였다.


다음은 기사 중 일부.

 

<당사자인 허()감독의 말처럼 프로야구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닌데 핀토스 구단주나 관계자들은 무조건 좋은 성적을 거두라고 다그치기 일쑤였다. 핀토스가 삼미시절부터 만년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감독이나 코치들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선수층이 얇기 때문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

()

핀토스는 7일 오후 3시 인천 송도호텔에 구단 관계자및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감독 이취임식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불만을 품은 허() 감독의 불참으로 강태정(姜泰貞) 감독대행의 취임식만 가져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화면 캡처 2022-09-18 170333.jpg

구글에서 검색되는 청보 핀토스 허구연 감독 이미지들.


핀토스 구단 측은 돈을 투입해서라도 유능한 선수를 확보하는 일은 소홀히 한 채, 감독교체만 되풀이했다.

트레이드를 통해 다른 구단에서 역량 있는 선수를 데려오거나 퇴물아닌 싱싱한 재일동포 선수를 영입, 프로구단으로서 최소한의 전력을 갖춰야했었다.


홍윤표 기자가 쓴 한국 프로야구 난투사(2015)에는 그날의 사건이 적혀 있다. 1986630일 인천구장에서 일어났던 그 비운의 전말을.


<630일 인천구장, 허구연 감독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롯데 자이언츠와 야간경기를 벌인 청보는 1-2로 뒤지고 있던 6회초 롯데 공격 때 선발투수 김기태(재일교포)3타자 연속 볼넷을 내주어 무사 만루로 몰렸다. 롯데 6번 타자 김한조가 포수 앞 땅볼을 친 뒤 1루로 뛰었고 공을 잡은 청보 포수 김진우가 홈플레이트를 찍은 다음 1루수 김경갑에게 공을 던졌다. 하지만 이 공은 타자주자 김한조를 맞추고 말았다. 기록은 포수 에러. 그리고 1사 만루가 됐다.

 

화면 캡처 2022-09-18 170057.jpg청보 핀토스 감독 시절의 허구연의 얼굴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허구연 감독이 더그아웃에서 뛰쳐나왔다.

상대 타자주자가 라인 안쪽으로 뛰는 바람에 김진우가 던진 공에 맞았는데 왜 세이프냐?”

허구연 감독의 그런 요지의 항의에 이근우 1루심은 막무가내로 고개를 내저었다.

허 감독은 개막전을 비롯해 비슷한 상황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여겨 그 동안 누적돼 온 심판, 특히 이근우 심판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당시 허구연한테 지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감독을 관두는 한이 있더라도 그냥 물러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똑같은 룰을 적용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래서 땅을 박차면서까지 항의를 한 것이다.”

허구연 감독의 항의는 계속됐고 경기는 무려 53분간이나 중단됐다.

()

허구연 해설위원의 프로야구 감독 경험은 그 사태를 고비로 짧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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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연 총재는 19931013일 주간야구 칼럼에서 이런 속내를 털어놨다.

이 글은 그가 쓴 그라운드 20년 마이크 30년 허구연의 야구에 실려 있다.


<야구감독이란 직업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어려운 자리다.

성적에 대한 강박관념, 구단 학교 측의 승패에 대한 예민한 반응, 팬 동문들의 성적부진에 따른 수준 이하의 입방에 이르기까지 국내 감독들이 야구 외적으로 시달려야 할 일들이 많다.


() 대체로 감독들의 수명은 짧다. 일찍이 국내 야구계를 개척하고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몇몇 선배들만 보더라도 김일배, 김영조, 김계현, 강대중, 서영무, 허정규, 배수찬 씨 등 기라성 같은 분들이 좀더 오랫동안 후배들을 지도하고 보살펴 주지 못한 채 타계하고 말았다.

 

() 이처럼 감독들이 스트레스, 불규칙적인 생활로 인한 리듬 파괴도 문제지만 감독들을 괴롭히는 것 중의 하나가 주위사람들의 함부로 내뱉는 혹평과 편견이다.

국내 감독들은 그 직을 맡는 순간부터 도마 위의 생선처럼 약해지는 데 꼬인 실타래는 누구의 잘못인지를 논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그중 많은 부분은 야구인들 스스로 책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서로가 감싸 주지 못하는 풍토, 프로세계 입문도 못해본 사람들의 예사스런 혹평과 몰아붙이기 풍토가 지속된다면 야구인의 수명은 더욱 짧아질 수도 있다.>


올해도 삼성 라이온즈 허삼영 감독이 시즌 도중 자진 사퇴했다. 팀이 13연패하자 부담감을 떨치지 못한 것이다. 작년 정규시즌 2위(최종 3위)까지 올랐지만 올 시즌 선수들의 부상으로 9위까지 추락했다. 사실상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감독부터 자른 것이다.


프로야구 출범 40년 동안 수 많은 감독이 사라져갔다. 그 중에서 가장 불운한 감독은 단연 허구연 감독이 아닐까. 그러나 그런 실패의 경험이 좋은 해설가로 만들었고, KBO 총재까지 오르게 만든 밑거름이 되었다.

입력 : 202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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