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문턱입니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가을의 전령사인 잠자리를 흔하게 볼 수 있어 좋습니다. 8월 마지막 주 늦은 여름휴가를 내어 시골에 다녀왔습니다. 하늘이 하루하루 높아지더니 휴가를 마칠 때쯤은 완연한 가을 냄새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골에 가니 코스모스가 망울을 터뜨리고, 잠자리가 여기저기 날았습니다. 그런데 이맘때쯤 온 하늘을 휘젓고 다녀야 할 제비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비를 못 것이 벌써 10년은 된 것 같습니다. 언제 마지막 제비가 시골에 날아들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를 찾는 제비는 제가 알기로 크게 두 종류입니다. 절벽이나 다리밑에 굴뚝 모양의 집을 짓는 ‘굴뚝제비’와 집 처마 아래 집을 짓는 ‘참제비(집제비)’입니다. 굴뚝제비는 굴뚝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제비집을 에스키모인들의 얼음집을 거꾸로 엎어 놓은 것 같이 입구를 굴뚝 모양으로 만들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종류의 제비가 서로 먹이를 잡으려고 들판에서 어울려 날면 어느 것이 굴뚝제비인지, 집제비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습니다. 사실 두 종류가 같이 어울리는 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잠자리는 제비의 가장 좋은 먹잇감입니다. 한참 벼 이삭이 익을 무렵 시골 들판은 그야말로 잠자리 반 제비 반으로 가득차곤 했습니다. 제비는 보통 너덧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신통하게도 새끼들 중에 낙오자가 거의 없습니다. 어미가 그 정도로 부지런히 먹이를 날라다 주기 때문인가 봅니다.
 
예전에 우리 집 처마 밑에 둥지를 튼 제비 한 쌍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마리가 우물가에 잠시 물 마시러 내려 앉았다가 우리 고양이에게 그만 잡아 먹혔습니다.(제가 이곳 기자수첩 2003년 10월2일 쓴 ‘고양이 이야기-고도리’란 글에 그 제비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언급되었습니다)
 
고양이에게 잡아먹힌 놈이 암놈인지 숫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남은 한 마리가 다섯 마리나 되는 새끼를 한 마리도 낙오 없이 키우는 것을 보고 저는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지금 시골에 가면 근 10여 년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메뚜기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고, 잠자리도 그런대로 많이 눈에 띕니다. 그런데 유독 제비만은 한번 사라지더니 도통 나타나질 않습니다.
 
제비는 철새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환경에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겨울을 나는 베트남, 태국, 필리핀 현지의 환경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또 요즘 시골 집이 많이 개량이 되어 처마와 마루 사이를 알미늄 창문으로 막아 놓은 곳이 많기 때문에 제비가 집을 짓기 힘든 점도 있습니다.
 
우리 시골 집도 처마와 봉당 사이가 창문으로 막혔는데도 제비는 한 해도 빠짐없이 우리 집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제비가 집을 지으면 외부 창문을 열어 놓아 제비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게 했습니다. 덕분에 여름 내내 우리는 창문을 닫을 수가 없어서 방으로 몰려드는 모기 파리와 전쟁을 해야만 했습니다. 뭐 어차피 시골 집은 여름에 문을 활짝 열어놓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모기 파리가 방에 들어오는 것을 굳이 제비 때문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이른 봄에 찾아온 제비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집을 짓는 일입니다.

제비는 주로 물을 댄 논바닥이나, 연못 가의 부드러운 진흙을 입에 물고 와 집을 짓습니다. 진흙 사이사이에는 마른 풀을 섞어 완성된 제비집은 생각보다 훨씬 단단합니다. 작년에 쓰던 제비집에 둥지를 튼 제비는 집을 지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곧바로 새끼를 칩니다.
 
10월 늦가을이 되고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제비는 하나 둘 둥지를 떠나기 시작합니다. 제비가 떠날 때쯤이면 온 동네 제비가 한 곳에 모여서 한바탕 장관을 연출합니다. 전봇대가 새카맣게 제비가 몰려 앉아 있다가 어느 날 모두 사라집니다. 간혹 새끼를 늦게 낳은 제비가 무척 쌀쌀한 날씨에도 새끼를 키우느라 늦게까지 고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천으로 널려 있던 생물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 기분이 영 좋지 않습니다.
개구리가 1988년을 전후해서 시골에서 싹 사라졌습니다. 메뚜기도 이때쯤 거의 씨가 말랐었습니다. 뱀도 거의 사라졌었습니다. 개구리는 요즘 다시 눈에 많이 보이기 시작해 반갑습니다. 메뚜기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뱀도 자주자주 만납니다. 그러나 나락 메뚜기와 방아깨비(경북 북부지방은 ‘항굴레’라고 함)는 새로 보이지만, 풀무치(경북 북부지방은 ‘푸랭이’이라고 함)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마당의 닭처럼 들판에 널려있던  ‘뜸부기’도 제가 마지막으로 본 것이 1980년 후반입니다. 어렸을 때 지천으로 날아다니던 종달새(노고지리)는 상당히 이른 시기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노고지리는 보리밭이나, 들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곤 합니다. 휘파람 소리를 내며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땅으로 내리치는 모습이 아주 일품인 새였습니다.
 
제가 알기로 민들레처럼 발에 숱하게 밟히던 꽃식물도 사라진 것이 많은데, 제가 그 모양만 기억하고 이름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곳에 쓰지를 못하겠습니다.
 
흔하디 흔하던 어느 한 종이 거의 멸종을 한 상태로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는 정부와 학자들은 그 원인과 향후 영향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반드시 써서 남겨야 합니다. 심지어 그것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나비나 벌레라도 말입니다.

다음에는 무엇이 사라질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