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하는데, 어느 현수막에 “폭음은 ‘좋은아침’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구청 보건소에서 걸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저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하고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
‘폭음하면 당연히 좋은 아침을 기대할 수 없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밥 안 먹으면 배고프다 라는 소리와 같지 아니한가’
그러나, 다시 가만히 생각해보니, 위 현수막에서 ‘좋은아침’이란 단어는 이중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우선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폭음하면 아침이 괴로울 것이다’라는 경고의 의미이고, 두 번째는 ‘좋은아침’을 아침인사 즉, ‘굿모닝’(Good Morning)이란 뜻으로 쓴 것입니다.
저는 이 문구를 보고 우리나라의 인사말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자라면서 들어온 인사말은 주로 “밥 먹었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아침 무렵 우리 집을 찾아오면 아버지께서 제일 먼저 건네는 말은 “아침 자셨니껴?(경북 북부 지방의 의문형 어미는 '껴'로 끝난다)”라는 인사입니다. 점심 때 누가 오면 점심을 먹었는지, 저녁 때면 저녁을 먹었는지 물어 봅니다.
요즘, 우리 주위의 사람들은 서로 간에 “식사했어?”라는 인사를 많이 합니다. 여기서 ‘식사(食事)’라는 단어는 일본말이지만, 어쨌든 “밥 먹었느냐”고 하는 우리의 인사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밥 먹었냐"는 그냥 인사말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우리 어머니들은 먼길을 떠나는 자식이 있으면 밥을 꼭 먹여서 보내곤 합니다.
도대체 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밥에 원한이 맺혔기에 남이 밥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까지 신경을 쓰면서 이 말을 인사말로 사용 했을까요?
“밥 먹었냐”는 인사말이 생겨난 것은 우리의 가난과 관계가 있습니다. 거기에다 사회(동네)라는 것은 가족이 확대된 것으로 알고 살아온 우리 민족이기에 남의 배고픔까지 생각하면서 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동네에 TV가 있는 집이 몇 안되었습니다. 남의 집에 TV를 보러 가면 아침은 물론, 점심 저녁을 넘기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집 주인은 TV보는 아이들에게 꼭 저녁 밥을 챙겨 먹여서 보내곤 했습니다.
심지어 동네를 오가며 장사를 하는 행상들도 해가 지면 아무 집 마루턱에 걸터앉아 밥을 한 상 얻어먹고 갔습니다. 들에서 일하다 참이나 밥을 먹을 때면 주변에 혹시 일하는 사람이 있나 살펴보고 있으면 꼭 불러서 같이 참을 먹었습니다.
조선시대 나그네들은 남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으면서 여행을 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큰 욕이 되지 않았습니다. 조금 여유 있는 집은 나그네에게 밥한 끼 정도 대접하는 것을 큰 미덕으로 생각했습니다. 경주 최부자 집에서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는 것을 가훈으로 이어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제가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가난했던 저의 큰 할아버지께서 어느 날, 경북 풍산 어느 곳에 있는 친구 집에 들렸다고 합니다. 큰 할아버지 친구는 쌀밥을 한상 차려 내왔습니다. 오랫만에 쌀밥을 본 큰 할아버지는 체면 불구하고 밥 한 그릇을 뚝딱 다 비웠습니다.
밥을 다 먹고 나자 큰 할아버지 친구가 말했습니다.
“자네 집에 다 큰 딸이 하나 있다며? 우리 집 아이하고 혼인 시킴세”
“그렇게 함세...”
큰 할아버지는 찢어지게 가난한 친구 집에 딸을 주기 싫었으나, 쌀밥을 한 그릇 다 비워놓은 마당에 차마 거절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지금 껄껄 웃으시면서 이 이야기를 하시지만, 가난했던 한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여담이지만, 그 가난한 집에 시집갔던 큰 할아버지 따님의 아들은 지금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요즘도 찬치 집에 다녀와서는 꼭 한마디 하십니다. 주로 고기가 푸짐하게 나온 잔치 집이면 ‘그 집 잔치 참 잘 한 집’이 되고, 음식이 야박하게 나오면 ‘영 배워먹지 못한 집’으로 낙인이 찍힙니다.
참고로, 예전에 손님들은 남의 집에서 밥을 먹을 때, 밥을 한 절만 쯤 먹고는 “아! 잘 먹었다”하고 남기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손님이 남긴 밥은 그 집 아이들 차지입니다. 가난한 시절, 서로서로 배려하던 마음이 밥상 예절이 되어 내려왔던 것입니다.
가난과 관련해서 또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옛날 우리 동네 주막집에서 일어났던 일이라고 합니다.
마당 한켠에서 고기를 굽던 주모가 잠시 부엌에 무엇을 가지러 갔습니다. 마침 술 집에 왔던 어느 노인이 앞에 놓인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 고기 한 지름을 얼른 입에 넣었습니다. 주모 몰래 씹지도 않고 고기를 삼키려다가 고기가 그만 목에 걸렸습니다. 노인은 그 자리에서 질식해서 죽었다고 합니다.
오래 전 미국에서, 유학중인 어느 일본 친구에게 맥주를 사 준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그 일본 친구는 나를 볼 때마다 “맥주 잘 먹었다. 고맙다”며 부담스러울 정도로 인사를 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와 슈퍼마켓을 갔습니다. 제가 라면을 몇 봉지 사고 뒤돌아서기가 무섭게 그 일본 친구가 계산대로 달려가 계산을 하는 겁니다.
그 일본 친구는 “전에 내가 맥주 얻어먹었으니 이 라면은 내가 사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나한테 얻어먹은 술은 다음에 한국사람 만나면 사주라”고 했습니다. 이 일본인 친구는 이해를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결국 라면 값은 그 일본인 친구가 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가 오늘 선배에게 술을 한잔 얻어먹었다면, 그 선배와 전혀 관계없는 제 3의 후배에게 사 주는 것으로 갚아 나갑니다. 내가 오늘 어느 일본인에게 술 한잔 받아 주었다면, 언제 누가 되었든지 그 일본인이 다음에 한국 사람을 만났을 때 술 한잔 사주면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기와 이해 관계가 전혀 없는 나그네에게 밥을 대접하고, 이 사람에게 밥을 얻어먹으면서, 저 사람에게 밥을 주는 행위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백년을 그렇게 살면서 가난을 함께 이겨나가는 법을 배워 온 것입니다.
저는 ‘저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하고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
‘폭음하면 당연히 좋은 아침을 기대할 수 없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밥 안 먹으면 배고프다 라는 소리와 같지 아니한가’
그러나, 다시 가만히 생각해보니, 위 현수막에서 ‘좋은아침’이란 단어는 이중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우선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폭음하면 아침이 괴로울 것이다’라는 경고의 의미이고, 두 번째는 ‘좋은아침’을 아침인사 즉, ‘굿모닝’(Good Morning)이란 뜻으로 쓴 것입니다.
저는 이 문구를 보고 우리나라의 인사말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자라면서 들어온 인사말은 주로 “밥 먹었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아침 무렵 우리 집을 찾아오면 아버지께서 제일 먼저 건네는 말은 “아침 자셨니껴?(경북 북부 지방의 의문형 어미는 '껴'로 끝난다)”라는 인사입니다. 점심 때 누가 오면 점심을 먹었는지, 저녁 때면 저녁을 먹었는지 물어 봅니다.
요즘, 우리 주위의 사람들은 서로 간에 “식사했어?”라는 인사를 많이 합니다. 여기서 ‘식사(食事)’라는 단어는 일본말이지만, 어쨌든 “밥 먹었느냐”고 하는 우리의 인사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밥 먹었냐"는 그냥 인사말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우리 어머니들은 먼길을 떠나는 자식이 있으면 밥을 꼭 먹여서 보내곤 합니다.
도대체 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밥에 원한이 맺혔기에 남이 밥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까지 신경을 쓰면서 이 말을 인사말로 사용 했을까요?
“밥 먹었냐”는 인사말이 생겨난 것은 우리의 가난과 관계가 있습니다. 거기에다 사회(동네)라는 것은 가족이 확대된 것으로 알고 살아온 우리 민족이기에 남의 배고픔까지 생각하면서 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동네에 TV가 있는 집이 몇 안되었습니다. 남의 집에 TV를 보러 가면 아침은 물론, 점심 저녁을 넘기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집 주인은 TV보는 아이들에게 꼭 저녁 밥을 챙겨 먹여서 보내곤 했습니다.
심지어 동네를 오가며 장사를 하는 행상들도 해가 지면 아무 집 마루턱에 걸터앉아 밥을 한 상 얻어먹고 갔습니다. 들에서 일하다 참이나 밥을 먹을 때면 주변에 혹시 일하는 사람이 있나 살펴보고 있으면 꼭 불러서 같이 참을 먹었습니다.
조선시대 나그네들은 남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으면서 여행을 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큰 욕이 되지 않았습니다. 조금 여유 있는 집은 나그네에게 밥한 끼 정도 대접하는 것을 큰 미덕으로 생각했습니다. 경주 최부자 집에서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는 것을 가훈으로 이어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제가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가난했던 저의 큰 할아버지께서 어느 날, 경북 풍산 어느 곳에 있는 친구 집에 들렸다고 합니다. 큰 할아버지 친구는 쌀밥을 한상 차려 내왔습니다. 오랫만에 쌀밥을 본 큰 할아버지는 체면 불구하고 밥 한 그릇을 뚝딱 다 비웠습니다.
밥을 다 먹고 나자 큰 할아버지 친구가 말했습니다.
“자네 집에 다 큰 딸이 하나 있다며? 우리 집 아이하고 혼인 시킴세”
“그렇게 함세...”
큰 할아버지는 찢어지게 가난한 친구 집에 딸을 주기 싫었으나, 쌀밥을 한 그릇 다 비워놓은 마당에 차마 거절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지금 껄껄 웃으시면서 이 이야기를 하시지만, 가난했던 한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여담이지만, 그 가난한 집에 시집갔던 큰 할아버지 따님의 아들은 지금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요즘도 찬치 집에 다녀와서는 꼭 한마디 하십니다. 주로 고기가 푸짐하게 나온 잔치 집이면 ‘그 집 잔치 참 잘 한 집’이 되고, 음식이 야박하게 나오면 ‘영 배워먹지 못한 집’으로 낙인이 찍힙니다.
참고로, 예전에 손님들은 남의 집에서 밥을 먹을 때, 밥을 한 절만 쯤 먹고는 “아! 잘 먹었다”하고 남기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손님이 남긴 밥은 그 집 아이들 차지입니다. 가난한 시절, 서로서로 배려하던 마음이 밥상 예절이 되어 내려왔던 것입니다.
가난과 관련해서 또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옛날 우리 동네 주막집에서 일어났던 일이라고 합니다.
마당 한켠에서 고기를 굽던 주모가 잠시 부엌에 무엇을 가지러 갔습니다. 마침 술 집에 왔던 어느 노인이 앞에 놓인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 고기 한 지름을 얼른 입에 넣었습니다. 주모 몰래 씹지도 않고 고기를 삼키려다가 고기가 그만 목에 걸렸습니다. 노인은 그 자리에서 질식해서 죽었다고 합니다.
오래 전 미국에서, 유학중인 어느 일본 친구에게 맥주를 사 준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그 일본 친구는 나를 볼 때마다 “맥주 잘 먹었다. 고맙다”며 부담스러울 정도로 인사를 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와 슈퍼마켓을 갔습니다. 제가 라면을 몇 봉지 사고 뒤돌아서기가 무섭게 그 일본 친구가 계산대로 달려가 계산을 하는 겁니다.
그 일본 친구는 “전에 내가 맥주 얻어먹었으니 이 라면은 내가 사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나한테 얻어먹은 술은 다음에 한국사람 만나면 사주라”고 했습니다. 이 일본인 친구는 이해를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결국 라면 값은 그 일본인 친구가 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가 오늘 선배에게 술을 한잔 얻어먹었다면, 그 선배와 전혀 관계없는 제 3의 후배에게 사 주는 것으로 갚아 나갑니다. 내가 오늘 어느 일본인에게 술 한잔 받아 주었다면, 언제 누가 되었든지 그 일본인이 다음에 한국 사람을 만났을 때 술 한잔 사주면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기와 이해 관계가 전혀 없는 나그네에게 밥을 대접하고, 이 사람에게 밥을 얻어먹으면서, 저 사람에게 밥을 주는 행위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백년을 그렇게 살면서 가난을 함께 이겨나가는 법을 배워 온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