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덥던 지난 금요일 서울 시내 모 주차장에서 저는 급히 차를 후진하다가 뒤에 서 있던 차가 울리는 경적소리에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흰색 차량이 꽁무니를 저쪽으로 향하고 제 차 바로 뒤에 있었습니다.
차문을 열때 제 차 뒤에 아무도 없었는데 시동을 걸고 잠시 라디오와 네비게이션을 만지는 사이 누군가 차를 제 차 뒤쪽으로 후진시켰던 모양입니다. 저는 잠시라도 한눈을 판 저를 책망하면서 그나마 뒤에 있는 차를 들이박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뒤쪽에 있던 차 주인이 차를 주차장 넓은 공간으로 이동시키더니 차에서 내려 뒤쪽 범퍼를 살피는 것 같았습니다. 제 또래의 젊은이였습니다. 저는 창문을 열고 “박혔어요?”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 차주인은 제가 자기 차 뒤쪽 범퍼를 박았다고 했습니다.
내려서 그 차주인이 가리키는 곳을 확인해보니, 페인트가 하얗게 긁힌 자국이 손톱만큼 나있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제가 박은 것 같지 않아 반신반의하면서 "이것이 방금 생긴 자국이냐"고 여러 차례 물었습니다. 그 차 주인은 "페인트가 벗겨졌을 뿐 아니라, 자세히 보면 안쪽으로 범퍼가 약간 찌그러졌다"고 말했습니다.
제 차 뒤 쪽 범퍼에는 아무런 박힌 흔적이 없었지만, 그 사람이 워낙 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에 저는 상황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습니다. 차의 상태를 보니 몇 만원에 합의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상대편의 기분을 나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얼마를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지금 바쁘니 명함을 한 장 달라”고 하고는 제 명함을 가지고 사라졌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명함을 주고 헤어지면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서, 심할 경우 상대편이 병원에 드러누워서 생떼를 쓰면 병원비를 물어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다음날인 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조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 사람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자기의 신분과 이름을 밝히지 않고, “범퍼 안쪽이 깨져서, 범퍼를 갈아야 할 상황이다. 적당한 금액을 물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분명 손톱만큼 페인트가 벗겨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범퍼 안쪽이 깨졌다니 저는 어이가 없었지만, “페인트 벗겨진 부분만 칠하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는 “그렇게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저도 화가 나서 “그럼 범퍼 교체 견적서를 보내라. 견적서 있는 금액 대로 물어주겠다”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모처럼 조카들과 시간을 내어 강가에 나들이를 나왔던 저는 기분이 완전히 엉망이 되었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작은 접촉 사고를 가지고 상대방에게 최대한 벗겨먹으려는 세상 인심에 화가 났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자기 혼자 아무리 세상을 깨끗하게 살려고 해도 안 될 때가 있구나....’
전화 통화 후, 저는 사고가 난 주차장에 CC TV가 설치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즉시 주차장에 전화를 해서 담당자에게 “당시 상황을 좀 봐 줄 수 있느냐”고 요청했습니다. 얼마 후 주차장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주차장 담당자는 상당히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야,, 이 놈 이거 아주 악질인데요. 전문 공갈단 같으니까. 아주 혼을 내주세요”
“내 차가 박기는 박았습니까?”
“박기는 뭘 박아요. 상대편 차하고 1m는 떨어진 곳에서 멈추었습니다. 이런 상태인데 자기 차가 박혔다고 해요? 범퍼를 간다고요? 이놈 진짜 나쁜 놈이네요.”
저는 순간 끓어오르는 화를 참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저는 젊은 친구가 왜 그렇게 세상을 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초반에 너무 쉽게 상황을 인정하고 사과한 저 자신도 미웠습니다. 어쨌든 이런 사기꾼을 그냥 두었다가는 자기 차의 약간 벗겨진 범퍼 흠집을 이용해 앞으로 계속 동일한 범행을 하고 다닐 것이 뻔했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야 했습니다.
월요일, 이 사람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녹음을 하면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범퍼 색칠하는데 견적을 내보니깐 17만원 정도 나오는데, 많이 봐줄테니 10만원만 입금을 하라”고 했습니다.
토요일 저에게 전화를 했을 때 “범퍼를 갈아야 겠다”고 하던 것이 어떻게 도리어 가격이 10만원으로 내려 간 것입니다. 범퍼 교체 견적서를 보내면 제가 보험 처리하겠다고 나올 것이고, 그러면 일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대충 10만원 정도만 받아내야 겠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지금와서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한 명의 사기꾼을 잡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저는 전화를 최대한 공손하게 받았습니다.
-저는 전혀 뭔가와 충돌했다고 느끼지를 못했는데, 같이 뒤를 보는 상태에서 선생님은 어떻게 금방 제가 박았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아 글쎄, 내가 전에도 그런 사고를 한번 당해 보았는데, 박힌 차는 피해가 나지만, 박은 차는 아무 피해가 없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바로 알 수가 있었지요.”
-그날 제가 박은 것을 확실히 보았습니까?
“제차가 흔들거렸고, 확실히 선생님이 저를 박는 것을 보고, 클락숀을 울린 것입니다. 차가 박히는 것도 느꼈습니다.”
-혹시 저에게 박혀서 생겼다는 그 흠집은 다른 곳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까.
“아니, 내가 선생님한테 돈이나 뜯어내려고 이러는 것으로 보입니까? 분명히 그날 생긴 흠집입니다.”
-차가 박혔다면 그대로 두고, 피해정도를 살펴봐야 하는데 왜 박히자 말자 차를 멀리 뺐습니까?
"주차장 아래서 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많이 봐준 것이니 기어코 10만원을 입금하라고 했습니다. 거짓 사고로 돈을 뜯어 내려한 증거는 이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전화 통화를 마친 이 친구를 곧바로 경찰에 넘기려 했으나, 아무래도 목소리가 탈북자나 조선족같았습니다. 저는 확인 차 전화를 한번 더 걸어 탈북자가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름과 직업도 확인을 했습니다.
‘아주 못 된 것만 배운 놈이구나’
이 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선배 기자들에게 의견을 구해보니, “한번 불러서 혼을 내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경찰에 넘겨서 혼을 낼 수도 있지만, 탈북자이니까 좀 억울하더라도 충고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짓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선배들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고 이 탈북자에게 전화를 걸어 CC TV에 찍힌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와서 사과를 하면 용서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탈북자는 “내가 탈북자라고 무시 하냐”고 도리어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당신은 지금 무고한 사람에게 차를 박았다고 거짓말을 해서, 돈을 보내라고 협박을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당신을 생각해서 조용히 넘어가려고 지금 이렇게 전화를 하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CC TV가 있건 말건 내가 당신한테 사과할 일은 없을 것”이라며 큰 소리를 쳤습니다. 전혀 예상 못한 반응이었습니다.
이 탈북자는 “당신이 CC TV를 가지고 나한테 오라. 나는 견적서를 뽑아서 가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흥분하고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나인데, 도리어 막무가네로 나오는 탈북자의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저도 화가 나서 전화에 대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제가 법대로 해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선생님이 탈북자니까 제가 조용히 넘어가려고 전화를 드리는 건데 그렇게 이해가 안가세요? 내가 이렇게 전화비 들여가면서 전화할 이유도 없으니까. 내일 경찰서에 가서 CC TV 확인하세요.”
이 탈북자는 제가 물러서기를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기어코 견적서를 뽑아서 가겠다며 큰 소리를 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는 제가 자기를 압박하기 위해 CC TV 이야기를 꾸며내서 들먹이는 것으로 생각했나 봅니다.
제가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고 나자, 이번에는 이 탈북자가 계속해서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몇 차례 제가 받지를 않자 이번에는 우리 회사까지 달려와서 전화를 했습니다.
저는 회사를 찾아온 이 사람에게 컴퓨터에 담아 놓은 CC TV 화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화면을 보더니 “제가 잘못했구만요”하고는 사과를 했습니다. 사과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과연 제가 진짜 CC TV 화면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회사에 찾아 왔던 것입니다. 정말 뺨이라도 한 대 얻어 붙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참았습니다.
만약 이 탈북자와 내가 입장이 180도 바뀌었을 경우 그는 나를 너그럽게 용서했을까 생각하니 실망스러운 생각이 스쳤습니다.
거리가 거의 1m 가량 떨어진 상태에서 상대편이 자기 차를 박았다고 주장하고, 그나마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손톱만한 흠집을 가지고 “범퍼가 찌그러졌다” “얼마를 보내라” 하며 두 번에 걸쳐 협박성 전화를 하고, 제가 증거자료를 보여주기 직전까지 도리어 화를 내며 큰 소리치던 그 였기에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그 사람이 상대편을 용서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이 탈북자가 보여준 차마 말 못할 인간적인 배신감이 더 있지만, 이곳에서는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가 북에서 왔다고 너무 자격지심을 갖지 말고, 이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바라보기를 바랄 뿐입니다.
차문을 열때 제 차 뒤에 아무도 없었는데 시동을 걸고 잠시 라디오와 네비게이션을 만지는 사이 누군가 차를 제 차 뒤쪽으로 후진시켰던 모양입니다. 저는 잠시라도 한눈을 판 저를 책망하면서 그나마 뒤에 있는 차를 들이박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뒤쪽에 있던 차 주인이 차를 주차장 넓은 공간으로 이동시키더니 차에서 내려 뒤쪽 범퍼를 살피는 것 같았습니다. 제 또래의 젊은이였습니다. 저는 창문을 열고 “박혔어요?”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 차주인은 제가 자기 차 뒤쪽 범퍼를 박았다고 했습니다.
내려서 그 차주인이 가리키는 곳을 확인해보니, 페인트가 하얗게 긁힌 자국이 손톱만큼 나있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제가 박은 것 같지 않아 반신반의하면서 "이것이 방금 생긴 자국이냐"고 여러 차례 물었습니다. 그 차 주인은 "페인트가 벗겨졌을 뿐 아니라, 자세히 보면 안쪽으로 범퍼가 약간 찌그러졌다"고 말했습니다.
제 차 뒤 쪽 범퍼에는 아무런 박힌 흔적이 없었지만, 그 사람이 워낙 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에 저는 상황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습니다. 차의 상태를 보니 몇 만원에 합의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상대편의 기분을 나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얼마를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지금 바쁘니 명함을 한 장 달라”고 하고는 제 명함을 가지고 사라졌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명함을 주고 헤어지면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서, 심할 경우 상대편이 병원에 드러누워서 생떼를 쓰면 병원비를 물어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다음날인 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조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 사람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자기의 신분과 이름을 밝히지 않고, “범퍼 안쪽이 깨져서, 범퍼를 갈아야 할 상황이다. 적당한 금액을 물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분명 손톱만큼 페인트가 벗겨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범퍼 안쪽이 깨졌다니 저는 어이가 없었지만, “페인트 벗겨진 부분만 칠하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는 “그렇게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저도 화가 나서 “그럼 범퍼 교체 견적서를 보내라. 견적서 있는 금액 대로 물어주겠다”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모처럼 조카들과 시간을 내어 강가에 나들이를 나왔던 저는 기분이 완전히 엉망이 되었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작은 접촉 사고를 가지고 상대방에게 최대한 벗겨먹으려는 세상 인심에 화가 났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자기 혼자 아무리 세상을 깨끗하게 살려고 해도 안 될 때가 있구나....’
전화 통화 후, 저는 사고가 난 주차장에 CC TV가 설치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즉시 주차장에 전화를 해서 담당자에게 “당시 상황을 좀 봐 줄 수 있느냐”고 요청했습니다. 얼마 후 주차장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주차장 담당자는 상당히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야,, 이 놈 이거 아주 악질인데요. 전문 공갈단 같으니까. 아주 혼을 내주세요”
“내 차가 박기는 박았습니까?”
“박기는 뭘 박아요. 상대편 차하고 1m는 떨어진 곳에서 멈추었습니다. 이런 상태인데 자기 차가 박혔다고 해요? 범퍼를 간다고요? 이놈 진짜 나쁜 놈이네요.”
저는 순간 끓어오르는 화를 참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저는 젊은 친구가 왜 그렇게 세상을 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초반에 너무 쉽게 상황을 인정하고 사과한 저 자신도 미웠습니다. 어쨌든 이런 사기꾼을 그냥 두었다가는 자기 차의 약간 벗겨진 범퍼 흠집을 이용해 앞으로 계속 동일한 범행을 하고 다닐 것이 뻔했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야 했습니다.
월요일, 이 사람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녹음을 하면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범퍼 색칠하는데 견적을 내보니깐 17만원 정도 나오는데, 많이 봐줄테니 10만원만 입금을 하라”고 했습니다.
토요일 저에게 전화를 했을 때 “범퍼를 갈아야 겠다”고 하던 것이 어떻게 도리어 가격이 10만원으로 내려 간 것입니다. 범퍼 교체 견적서를 보내면 제가 보험 처리하겠다고 나올 것이고, 그러면 일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대충 10만원 정도만 받아내야 겠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지금와서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한 명의 사기꾼을 잡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저는 전화를 최대한 공손하게 받았습니다.
-저는 전혀 뭔가와 충돌했다고 느끼지를 못했는데, 같이 뒤를 보는 상태에서 선생님은 어떻게 금방 제가 박았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아 글쎄, 내가 전에도 그런 사고를 한번 당해 보았는데, 박힌 차는 피해가 나지만, 박은 차는 아무 피해가 없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바로 알 수가 있었지요.”
-그날 제가 박은 것을 확실히 보았습니까?
“제차가 흔들거렸고, 확실히 선생님이 저를 박는 것을 보고, 클락숀을 울린 것입니다. 차가 박히는 것도 느꼈습니다.”
-혹시 저에게 박혀서 생겼다는 그 흠집은 다른 곳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까.
“아니, 내가 선생님한테 돈이나 뜯어내려고 이러는 것으로 보입니까? 분명히 그날 생긴 흠집입니다.”
-차가 박혔다면 그대로 두고, 피해정도를 살펴봐야 하는데 왜 박히자 말자 차를 멀리 뺐습니까?
"주차장 아래서 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많이 봐준 것이니 기어코 10만원을 입금하라고 했습니다. 거짓 사고로 돈을 뜯어 내려한 증거는 이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전화 통화를 마친 이 친구를 곧바로 경찰에 넘기려 했으나, 아무래도 목소리가 탈북자나 조선족같았습니다. 저는 확인 차 전화를 한번 더 걸어 탈북자가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름과 직업도 확인을 했습니다.
‘아주 못 된 것만 배운 놈이구나’
이 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선배 기자들에게 의견을 구해보니, “한번 불러서 혼을 내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경찰에 넘겨서 혼을 낼 수도 있지만, 탈북자이니까 좀 억울하더라도 충고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짓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선배들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고 이 탈북자에게 전화를 걸어 CC TV에 찍힌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와서 사과를 하면 용서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탈북자는 “내가 탈북자라고 무시 하냐”고 도리어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당신은 지금 무고한 사람에게 차를 박았다고 거짓말을 해서, 돈을 보내라고 협박을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당신을 생각해서 조용히 넘어가려고 지금 이렇게 전화를 하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CC TV가 있건 말건 내가 당신한테 사과할 일은 없을 것”이라며 큰 소리를 쳤습니다. 전혀 예상 못한 반응이었습니다.
이 탈북자는 “당신이 CC TV를 가지고 나한테 오라. 나는 견적서를 뽑아서 가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흥분하고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나인데, 도리어 막무가네로 나오는 탈북자의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저도 화가 나서 전화에 대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제가 법대로 해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선생님이 탈북자니까 제가 조용히 넘어가려고 전화를 드리는 건데 그렇게 이해가 안가세요? 내가 이렇게 전화비 들여가면서 전화할 이유도 없으니까. 내일 경찰서에 가서 CC TV 확인하세요.”
이 탈북자는 제가 물러서기를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기어코 견적서를 뽑아서 가겠다며 큰 소리를 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는 제가 자기를 압박하기 위해 CC TV 이야기를 꾸며내서 들먹이는 것으로 생각했나 봅니다.
제가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고 나자, 이번에는 이 탈북자가 계속해서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몇 차례 제가 받지를 않자 이번에는 우리 회사까지 달려와서 전화를 했습니다.
저는 회사를 찾아온 이 사람에게 컴퓨터에 담아 놓은 CC TV 화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화면을 보더니 “제가 잘못했구만요”하고는 사과를 했습니다. 사과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과연 제가 진짜 CC TV 화면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회사에 찾아 왔던 것입니다. 정말 뺨이라도 한 대 얻어 붙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참았습니다.
만약 이 탈북자와 내가 입장이 180도 바뀌었을 경우 그는 나를 너그럽게 용서했을까 생각하니 실망스러운 생각이 스쳤습니다.
거리가 거의 1m 가량 떨어진 상태에서 상대편이 자기 차를 박았다고 주장하고, 그나마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손톱만한 흠집을 가지고 “범퍼가 찌그러졌다” “얼마를 보내라” 하며 두 번에 걸쳐 협박성 전화를 하고, 제가 증거자료를 보여주기 직전까지 도리어 화를 내며 큰 소리치던 그 였기에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그 사람이 상대편을 용서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이 탈북자가 보여준 차마 말 못할 인간적인 배신감이 더 있지만, 이곳에서는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가 북에서 왔다고 너무 자격지심을 갖지 말고, 이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바라보기를 바랄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