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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는 어떻게 노조를 굴복시켰나?

노동법 개정, 파업시에 대비한 석탄 비축 등 사전 준비 철저...'폭력의 지배 vs.법의 지배' 내걸고 여론전 승리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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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7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을 벌여온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파업이 6월 14일 종료됐다. 이날 국토교통부와 화물연대는 “올해 말로 종료되는 안전운임제를 지속 추진하고, 컨테이너‧시멘트로 제한된 품목의 확대 등을 논의 한다”는 데에 합의했다. 산업의 동맥이라고 할 수 있는 물류를 쥐고 흔드는 화물연대의 파업에 윤석열 정부가 사실상 백기를 든 셈이다. 우크라이나전쟁 등으로 인해 촉발된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정부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총파업을 단행한 광부노조와 1년여 동안 싸움을 벌인 끝에 노조를 굴복시키고 영국병(英國病)을 치유하는데 성공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윤석열은 왜 그렇게 단호하게 하지 못하느냐?’고 탓하는 소리가 나온다.

물론 대처가 단호한 의지로 노조의 파업에 맞서 이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의 영역에서 단호한 ‘의지’만 갖고 정치적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처는 노조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를 위해 치밀하게 준비를 해 두었던 덕분이었다.

영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노조의 힘이 막강했다. 그 중심에는 광부노조가 있었다. 해럴드 맥밀런 전 영국 총리는 영국에서 총리조차 손을 댈 수 없는 세 집단으로 가톨릭교회와 근위여단, 그리고 광부들을 꼽은 적이 있을 정도였다. 광부노조가 1969년, 1974년, 1979년에 벌인 총파업은 정부를 무너뜨렸다.

광부노조가 1979년 총파업으로 노동당 정부를 무너뜨린 덕분에 정권을 잡은 대처는 노조와의 전쟁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우선 1980년부터 노동관계법들을 차례로 개정했다. 불법파업을 저지른 노조에게 벌금을 부과하고, 불법파업으로 발생한 비용을 면제해 주던 관행을 폐지했다. 그리고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만 고용할 수 있게 한 클로즈드숍 제도의 지나친 보호조항을 개정했다.

이러한 법 개정으로 노조는 파업을 시작하기 전에 파업 여부를 두고 사전투표를 해야 했다. 또 노조의 결정에 반대할 수 있는 개별 노동자들의 권리가 확대되었다.


둘째, 노조가 총파업을 벌이면 정부가 개입해서 사태를 수습하는 관행을 깼다. 1980년 철강노조가 파업을 일으켰다. 대처 정부가 이언 맥그리거라는 전문경영인을 기용해 적자투성이인 영국철강(British Steel)의 구조조정을 시도한 것이 발단이었다. 맥그리거가 적자 공장들을 폐쇄하자 노조는 파업으로 응수했다. 경영진과 노조는 티격태격하면서 정부가 개입하기를 기다렸다. 그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대처 정부는 영국철강의 노사분규에 개입하지 않았다. 야당인 노동당 당수 캘러헌을 비롯해서 “정부는 뭐 하고 있느냐?”는 비난이 빗발쳤다. 대처는 “일자리를 파괴하는 것은 납세자들로부터 더 많은 돈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는 노동자들 자신”이라고 받아쳤다.

철강노조는 공기업은 물론 다른 민간 기업의 노조들까지 끌어들이는 ‘동조파업’을 유도했고, 이로 인해 폭력사태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대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3개월 후 영국철강 노사는 임금을 16% 인상하는 대신 생산성을 높이기로 합의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노조가 이긴 것 같지만 아니었다. 임금인상율 16%는 당시 물가상승률 20%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생산성 향상’에 노사가 합의한 것을 근거로 이후 영국철강은 적자 공장들을 문 닫고 노동자들을 거의 절반 가까이 해고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 있었다. 영국철강은 만성적인 부실을 털어내고 견실한 기업으로 거듭났고, 5년 후에는 민간기업이 되었다. 


셋째, 광부노조의 파업이 벌어질 경우에 대비해 인프라 차원의 대비를 철저히 했다. 우선 대처와 석탄공사는 석탄을 발전소로 옮겨 비축해 놓았다. 이전에 파업이 일어났을 때 석탄 비축량 자체는 충분했지만, 그 석탄들이 탄광에 쌓여 있었기 때문에 광부노조가 이를 반출하지 못하도록 막았고, 그로 인해 산업이 멈추고 일반 가정에서는 난방을 못해 결국 정부가 굴복했던 경험 때문이었다. 정부는 철도보다는 화물트럭을 이용해 조용히 석탄들을 반출해 발전소에 충분히 비축해 놓았다. 대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유사시에 대비한 석탄 긴급수입계획을 세우고, 석탄 사용을 줄이고 석유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발전(發電)체계를 개편했다. 또 파업이 발생할 경우 물류에 지장이 없도록 비노조원 운수노동자들을 확보했다.


넷째, 노조에 굴복하지 않을 사람을 석탄공사 사장으로 기용했다. 바로 영국철강 사장으로 철강노조의 파업에 굴하지 않고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이안 맥그리거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1983년 9월 석탄공사 사장으로 임명된 이안 맥그리거는 채산성이 떨어지는 탄광들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드디어 결전이 벌어졌다. ‘아서(아더)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광부노조 위원장 아서 스카길은 ‘대처로부터 영국을 구해 낼 혁명적인 전위대’를 지휘한다고 주장하면서 1984년 3월 총파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과거에 광부노조가 여러 차례 정부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던 데 자만해서인지 스카길은 몇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첫째, 그는 파업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무시했다. 당시 노조 규약에 의하면 전국적 총파업을 하려면 55%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했다. 스카길은 지역 단위로 파업에 들어가게 하는 편법을 썼다. 1982년과 1983년에 세 차례에 걸쳐 전국적 총파업에 들어가려 노조원 투표를 했다가 무산됐던 경험 때문이었다.

스카길의 무리수에 영국 사회는 물론 노조, 특히 광부노조 내에서조차 반발이 일어났다. 탄광 폐쇄 가능성이 낮은 지역의 노조들은 물론, 탄광노조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지역노조들조차 스카길의 독단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은 ‘민주탄광노조’를 만들어 스카길의 탄광노조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거기에 더해 스카길은 ‘나는 피켓’이라고 하는 전위조직을 앞세워 폭력시위를 일삼았다. 이들은 파업에 동조하지 않는 노조원들을 공격하고, 그들의 처자식들을 협박했다. 이들은 1984년 11월에는 파업에 동참하지 않고 출근하는 광부들이 탄 차량에 3피트짜리 콘크리트 더미를 던지는 만행을 저질렀다. 운전기사가 즉사하고 여러 명의 광부들이 크게 다쳤다. 광부노조 본부가 있는 오그리브에서는 5000명의 시위대가 중무장한 경찰과 3주 동안 대치했다. 첫날에만 104명의 경찰과 28명의 시위대가 부상당했다.

대처는 단호하게 대처했다. 대처는 ‘폭도의 지배’와 ‘법의 지배’ 중 어느쪽을 택할 것인지를 국민들에게 요구했다. 결국 광부노조 위원장 스카길을 비롯해 수백명이 체포됐다.

 

여러 가지 상황이 대처를 도왔다. 철강노조, 운수노조, 부두노조 등은 물론 노동조합총회도 스카길의 편을 들기를 거부했다. 개별 노조, 노동자들의 이해관계 때문이기도 했지만, 스카길의 오만과 독선이 같은 노동자들조차 등을 돌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봄에 파업을 선택한 것도 스카길의 실수였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에 파업을 벌였으면 정부는 훨씬 불리한 처지에 놓였을 것이다.

1년간의 싸움 끝에 대처는 결국 노조를 굴복시켰다. 언론은 대처의 승리를 알리면서 “‘아서 왕’이 ‘철의 여인’에게 패했다”는 제목을 달았다.


대처의 승리는 자유주의 시장경제라는 철학에 근거해서 ‘영국병(英國病)’을 고치기 위해 신념을 가지고 투쟁한 결과였다. 대처는 광부노조를 ‘내부의 적’이라고까지 극언했는데, 이는 대화와 타협을 중시해오던 1945년 이후 영국 정치의 전통과는 거리가 먼 것이어서 큰 충격을 주었다. 여담이지만 영화와 뮤지컬로 만들어진 ‘빌리 엘리어트’는 이 시기 탄광노조의 투쟁과 좌절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대처가 승리한 것은 노조와의 싸움을 예견하고 치밀하게 대비한 결과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신념은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세력이 얼마나 전투적이고, 이념편향적인지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임기 초에, 세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갑자기 화물연대의 기습을 받고 보니 결국 굴복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화물연대의 파업은 윤석열 정부의 의지와 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좌파 노동운동세력의 테스트에 불과했다. 이제 윤석열 정부를 향한 좌파세력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또다시 거기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다양한 돌발사태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에 대비한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입력 : 2022.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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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lt;박정희 바로보기gt;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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