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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당국이 원정화를 간첩으로 판단한 결정적인 이유는 '한국인 납치'

판결문 "대한민국 사람들 등 총 100여 명 두만강 호텔로 약취"... 원정화, 자신의 上線 김교학 사진 공개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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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조갑제닷컴'에 근무하던 2014년, 원정화 인터뷰를 비롯해 판결문 등 그의 사건 관련 기록을 정리해 《월간조선》(2014년 6월호)에 기고한 적이 있다. 원정화는 재중(在中) 북한 보위부의 지시하에 무역회사(단둥무역대표부) 내 보위부 간첩으로 활동하며 공작금을 받고 국군 장교들에게 접근, 군사정보 등을 빼내 북한에 넘겼다.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간첩·잠입탈출 등)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고, 2013년 7월 만기 출소했다. 수사당국뿐 아니라 재판부도 원정화가 간첩임을 확인한 셈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12년이 지났음에도 이 사건에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있다. 지난 11월 21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 사건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뉘앙스로 보도했다. 2014년 기자가 썼던 원정화 관련 기사 중 한국인 납치 관련 부분을 요약해 싣는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지난 21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발생한 '여간첩 원정화 사건'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뉘앙스로 보도했다.


원정화는 2008년 7월 15일, 간첩혐의로 우리 수사 당국에 검거되었다. 검거 당시 나이는 35세. 검찰은 원씨가 ‘최초의 위장탈북 남파(南派)간첩’이라고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원정화는 북한 보위부 소속으로 2001년 탈북자로 위장, 남파되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살면서 중국과 북한을 드나들며 간첩활동을 벌였다. 특히 재중(在中) 북한 보위부의 지시하에 무역회사(단둥무역대표부) 내 보위부 간첩으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원정화는 대표부로부터 공작금을 받고 국군 장교들에게 접근, 군사정보 등을 빼내 북(北)에 넘겼다.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간첩·잠입탈출 등)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고, 2013년 7월 만기 출소했다.


수사당국이 원정화를 간첩으로 판단한 결정적인 이유는 한국인 납치였다. 북한 보위부의 지시로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등을 납치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관여, 다수의 한국인들을 북으로 넘겼다는 것이다.


1심 판결문에는 원정화의 납치행각이 구체적으로 실려 있다. 참고로 원정화는 항소를 포기해 1심으로 형이 확정됐다.

 

  <피고인(원정화)은 1999. 9. 경 중국 연길(옌지) 서(西)시장 꼭대기에 있는 노래방에서 종업원으로 위장취업해 있을 때, 손님으로 놀러온 남한 사람 윤○○(남, 47세, 경기도 거주)을 알게 된 다음, 윤○○에게 자신은 탈북자인데 돈도 없고 있을 데도 없어 노래방에서 일을 한다면서 거짓말을 하여 윤○○으로부터 전화번호를 받은 후 다음날 윤○○에게 전화를 걸어 윤○○이 묵고 있던 우전호텔로 가게 되었고, 피고인은 위 호텔로 가기 전에 보위부 박○○ 과장에게 “윤○○이 내가 탈북자라고 이야기하자 관심을 보이며 전화번호를 주면서 호텔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을 보니 북한정보를 수집하는 남한 정보기관 사람이거나 그 앞잡이일 수 있다”는 취지로 보고를 하였다.>


원정화는 그 전에도 노래방 종업원으로 위장해 그곳을 방문한 한국인 등에게 접근, 호텔로 유인하는 수법을 쓴 적이 있다. 판결문 중 일부다.

 

<(피고인 원정화는) 박○○ 과장, 김진길 지도원 및 위 박○○ 과장이 동원한 중국 공안으로 가장한 중국 깡패들을 호텔 앞에 대기시킨 후 윤○○의 방으로 들어가 윤○○으로부터 “중국돈 1500원을 줄 테니 북한에 가서 북한 군부 내 기지나 군수품 공장, 북한주민 실상 등을 사진 찍어 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받고, “나는 북한에 쉽게 들어갈 수 있으니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윤○○을 안심시킨 다음 박○○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미리 약속한 은어로 “야, 내다. 내가 지금 좋은 사람 만나고 있는데 소개시켜 줄께”라고 말을 하자, 위 중국 공안 복장을 한 중국 깡패들이 윤○○의 방으로 들어와 수갑을 채우고, 방안을 뒤져 북한에서 찍은 사진이 많은 것을 확인한 다음 북한 보위부 요원들의 아지트인 두만강 호텔 301호실로 납치해 갔다. 피고인은 1999년 1월 경부터 2001년 10월 경까지 중국 옌지·훈춘 등지에서 위와 같은 방법으로 탈북자, 북한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대한민국 사람들 등 총 100여 명을 두만강 호텔로 약취하였다.>


원씨는 판결문에 나온 윤씨의 실명(實名)을 기자에게 말해 주었다. 그의 거주지가 경기도 이천이란 것, 윤씨의 아들 이름까지 이야기했다. 참고로 원정화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은 윤씨의 아들을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검찰 진술조서). 기자는 원정화에게 ‘윤씨의 직업 등 신분에 대해 아는 것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원정화의 이어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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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공안 차량 앞에서 촬영한 원정화. 사진=원정화 제공

 

“윤씨는 나에게 자신이 사업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어요. 내가 ‘왜 북한 내부의 사진을 찍으러 중국까지 오셨어요’라고 묻자 ‘내 친구가 부탁했다’고 말했어요. 북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어요.”

 

원씨는 중국 공안과 북한 보위부 요원들이 호텔 방을 급습하고 윤씨를 납치했을 때의 상황도 설명했다.

 

“윤씨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와 요원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어요. 나는 그에게 ‘죄송해요. 미안하게 됐어요. 따라가세요’라고 냉정히 말했죠. 깡패들은 윤씨에게 수갑을 채웠고, 사람이 많은 로비를 빠져나갈 때 윤씨가 저항할 것을 우려해 ‘네가 조용히 나가면 살 것이다’라고 협박하기도 했어요. 윤씨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깡패들에 의해 호텔 밖으로 끌려 나갔습니다.”


원정화는 1999년 무렵 중국 옌지교회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던 한국인 선교사 납치를 도왔다고 한다. 원정화는 그 선교사가 탈북자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 원정화 자신이 탈북자인 것처럼 위장해 옌지교회에 침투했다. 당시 선교사의 집은 2층이었는데, 2층에 탈북 여성 7명이 있었다고 한다. 원정화의 증언이다.

 

“나는 그중 나이가 제일 어렸던 19살 영순이를 알게 되었어요. 내가 선교사 집에 온 첫날 탈북 여성 중 한 명은 내게 ‘여기 오면 선교사와 잠자리를 가져야 한다’고 귀띔해 줬어요. 나는 ‘여성을 돌봐 준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성(性)을 착취한다’는 생각에 화가 났죠. 선교사가 없는 틈을 타 영순이를 데리고 2층에서 뛰어내려 탈출했어요.”

 

탈출한 원정화는 곧바로 옌지 시내에 있던 보위부 과장에게 상황을 보고했다고 한다. 보위부 과장은 원정화의 보고를 받은 뒤 중국 공안과 함께 선교사의 집을 급습했고, 선교사를 데리고 갔다고 한다. 


원정화는 “중국 공안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선교사가 ‘미(美) 영주권자’로 확인되어 추방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미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를 납치할 경우, 미·북(美北) 간의 외교문제로 비화될 수 있어 납치자의 국적이 어디냐에 따라 북송 여부가 결정된다고 했다.

 

한국인 납치 과정에 중국 공안이 북한 보위부를 도와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원정화의 주장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판결문은 “(원씨가) 대한민국 사람들 등 총 100여 명을 두만강 호텔로 약취하였다”고 밝혀 원정화가 기자에게 증언한 것 이외에 더 많은 수의 피랍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100여 명이란 숫자는 납치에 관여한 직간접적인 사례를 다 포함한 것이라고 한다.


판결문에는 김교학이란 이름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김교학은 단둥무역대표부 부대표로, 원씨가 한국에서 간첩활동을 할 때 그의 상선(上線)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판결문에는 김교학이란 이름이 132회나 등장한다. 김교학은 원정화가 국내에서 활동할 당시 ▲군부대 촬영 ▲한국 정보기관 요원 접촉 ▲공작금 송금 등 대남공작과 관련된 각종 지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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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교학. 사진=원정화 제공

 

원정화는 기자와 만나는 자리에 두툼한 앨범을 가지고 나왔다. 그 속에서 중년 남성의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사진 속의 인물이 김교학이라고 했다. 사진 속의 김교학은 김일성-김정일 초상화 앞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원정화는 김교학에 대해, “북한 보위부에서 단둥무역대표부에 파견한 인물로 수완이 매우 좋아 윗선에서도 함부로 자르지 못할 정도였다”고 평가했다. 김교학은, 원씨가 우리 당국에 검거됐을 때 북한으로 소환됐지만 얼마 전부터 단둥 지역을 중심으로 다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판결문에는 원정화가 김교학의 지시로 국내의 모 종북(從北)단체를 방문한 기록도 있다.

 

<피고인은 2006년 여름 경 김교학으로부터 지시받은 비전향 장기수의 거처를 파악하기 위하여 자신의 집에서 인터넷으로 ‘○○○’(注: 판결문엔 단체명이 나와 있으나 여기선 익명 처리)의 전화번호를 확인해 그곳으로 전화를 걸어 위치를 파악한 다음, 금정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하여 서울역까지 가서 ○○○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원정화가 방문한 단체는 대법원에 의해 이적(利敵)단체로 판시된 바 있다. 원정화는 “단체의 직원들이 내 신분을 확인하는 데에만 하루가 걸렸다. 결국 그 다음 날에야 단체 관계자를 만났고, 김교학의 지시대로 봉투를 건네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봉투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그 사무실엔 대학생들과 종교계 관계자들이 많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정화의 간첩행위를 종합적으로 확인·판단했다. 윤씨 납치를 비롯해 ▲6만 달러가 넘는 공작금 수수 ▲북한 공작원과 회합 ▲군사상 기밀 내지 국가기밀 탐지·수집 ▲대한민국 군인과 정보기관 요원 약취·유인 시도 등을 원씨의 주요 범행사실로 적시했다. 


재판부는 “다른 간첩의 사례와 비교하여서도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위험성이 보다 크다”고 결론지었다. 다만 원정화가 어린 딸과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는 내용의 전향서를 제출하는 등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이를 참작해 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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