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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이건희 '신경영 선언'의 현장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삼성

삼성 모니터-TV, 매장의 가장 좋은 위치에서 가장 비싼 값에 팔려....1993년 신경영선언 이후 저가 시장 철수, 고급화로 일류 기업 도약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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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며 '신경영'을 선언했다.

“아니, 17인치 TFT-LCD모니터를 이 가격에 내놓으면 우리는 어떻게 하란 말이야? 덤핑도 정도껏 해야지!”

16년 전 당시 월간조선사에서 발간하던 무크지 《월드빌리지4.-마이스터의 나라 독일》을 만들기 위해 독일 출장을 갔을 때였다. 프랑크푸르트 최대의 전자제품 매장인 메디아 마크트를 함께 돌아보던 삼성전자 직원이 비명을 질렀다.

그가 가리키는 제품은 일본과 독일의 합작기업인 후지쓰-지멘스에서 내놓은 것으로 399유로(당시 가격 약 60만 8600원)였다. 그리고 같은 크기의 삼성 모니터에는 479유로(약 72만원)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삼성전자 직원은 화를 냈지만, 나는 기분이 좋았다. 

‘기술대국 독일-일본의 합작기업이 내놓은 제품이, 독일 땅에서, 한국 제품을 상대로 덤핑을 하고 있다니....’ 

덤핑은 우리나라 제품이 외국 제품을 상대로 하는 것인 줄로만 여기고 있던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삼성의 컴퓨터 모니터나 TV는 매장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가장 비싼 값에 팔리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또 다른 삼성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소니는 내가 어렸을 때 쳐다볼 수도 없는 우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삼성이 소니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얘기에 진심으로 공감이 갔다. 고등학교, 대학 시절, ‘워크맨’으로 통칭되던 휴대용 녹음기를 사러 용산전자상가에 가면, 점원들은 소니나 아이와 같은 일제를 권했다. 그때만 해도 ‘국산품 애용’정신이 투철했던지라 "삼성 ‘마이마이’를 달라"고 하면, 점원들은 고개를 흔들면서 “삼성, 못 써요. 얼마 못 갑니다. 지금 돈 좀 더 주더라도 소니나 아이와로 하세요”라고 강권했다.

한 삼성 직원은 “얼마 전 프랑크푸르트 국제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가 ‘우리 아빠는 삼성에 근무한다’고 했더니, 급우들이 ‘네 아버지가 그 큰 회사에 다니느냐?며 놀라워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사원 모집을 하면 모토로라, 노키아 출신들이 몰려온다. 휴대폰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제 삼성전자 근무 경력이 자신의 경력 관리에 대단한 플러스가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는 직원도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2004년 말의 얘기였다. 삼성전자 TV는 2006년 소니를 꺾고 세계 1위로 등극했다. 2020년 현재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333조 1000억원으로 소니(117조 7000억원)의 3배 가까이 된다. 일본의 파나소닉은 24조 5000억원, 도시바는 17조원에 불과(?)하다. 모토롤라와 노키아는 휴대폰 시장에서 사라졌다.

당시 만난 삼성 직원들은 세계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한 것은 ‘최근 5~6년 사이’라고 했다. 1998년경부터였다는 얘기다.

하윤호 법인장은 “삼성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신(新)경영선언 이후부터였다”고 말했다. 

1993년 미국과 유럽을 둘러본 이건희 회장은  삼성 제품들이 매장 구석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6월 7일 이건희 회장은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서 삼성 사장단과 주요 임원, 해외 주재원 등 200여명을 모아놓고 ‘신경영’을 선포했다 (삼성독일법인은 이 회의 때 이건희 회장과 임원들이 사용했던 의자와 테이블 등을 가져다가 전시해 놓고 있었다). 그 유명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는 말이 이 때 나왔다. ‘양적(量的)성장’에서 ‘질적(質的)성장’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건희 회장이 ‘선언’으로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있던 애니콜 휴대폰에서 하자가 발생하자 150억원어치의 제품을 수거해서 불태워 버림으로써 ‘품질 경영’에의 의지를 다졌다.

국내에서만 충격요법을 쓴 것이 아니었다. 예컨대 독일시장에서 삼성은 TV는 20인치 이하 제품은 단종해 버렸다.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저가(低價)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버리기 위해 스스로 매장에서 철수하는 극약 처방을 선택했다. 이에 따르는 손해도 감수했다. 1992년 독일 시장에서 17만대였던 모니터 판매 대수는 1993년 8만 대, 1994년 5만대로 급감했다. 

대신 부가가치가 높은 LCD TV,플라즈마 TV, 프로젝션 TV 등 대형 고급제품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일반 시장에서는 철수했지만, 독일 유수의 기업들에 고급 컴퓨터 모니터를 납품하는데 주력했다. ‘삼성전자의 컴퓨터 모니터는 독일의 일류 기업들이 사용하는 고급품’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독일 소비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삼성전자 모니터가 일반 시장에 복귀한 것은 1998년이었다. 이후 삼성전자의 모니터나 휴대폰은 투박한 디자인의 독일제품들을 제치고 시장을 석권했다. 독일의 민간 시장조사회사인 GfK 자료에 의하면 독일에서 판매되는 휴대폰의 평균 판매가격을 100이라고 했을 때, 삼성 휴대폰은 2002년에는 172, 2004년 상반기에는 157에 판매됐다.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평균가격을 100이라고 할 때 삼성 제품은 128.7, 후지쓰-지멘서 제품은 106.4, 필립스 제품은 89에 판매되고 있었다. 

이후 삼성의 성공 스토리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몇 년 전 밀라노의 벼룩시장에서 만난 노인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오, 코리아! 삼성! 갤럭시!”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병철 선대 회장이 삼성을 세우고 한국 제일의 기업으로 만들었지만, 그 삼성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 키워낸 이건희 회장이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나라, 선비와 먹물의 나라에서 이병철, 이건희 같은 이들이 나온 것은 차라리 ‘기적’이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입력 : 2020.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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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lt;박정희 바로보기gt;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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