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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경제난 탓으로 분석 올 들어 문화재 도난 사건이 크게 늘었다. 문화재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도난당한 문화재는 17건 3백65점에 이른다. 이는 2003년 한해 동안에 도난당한 문화재 8건 1백9점에 이른 것과 비교만해 봐도 2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2004년 상반기에 도난당한 3백 65점 가운데 보물 제668호인 권응수장군의 가전보첩등 지정문화재가 11점이고 비지정문화재가 3백 54점이나 됐다. 그가운데 현재까지 회수된 도난 문화재는 5건 96점뿐이다. 문화재 절도범들이 노리는 도난 문화재 대부분이 비지정문화재로 지정문화재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비지장문화재는 관리가 허술하여 흠치기 쉽고 고미술시장에 내다 팔기가 쉽기 때문이다. 문화재 절도범들의 수법도 대담해졌다. 지난 3월 전북 고창에 있는 문수사 명부전에 소장돼 있던 1653년에 만들어진 사천왕상등 목조상들은 명부전이 찻길에서 200m 이상 떨어져 있고 목조상의 높이가 약 1m 20cm 정도나 돼 최소한 2인 이상이 들어내야만 흠칠 수 있다. 절도범들은 이곳 명부전에 별다른 보안 장치가 없다는 허점을 노려 그것도 천둥 번개치는 야밤, 악천후속에서 하나도 아닌 6개나 되는 목조상를 리어카를 대놓고 실어갔다. 2003년 3월 이라크전쟁 발발 당시 바그다드 시내 이라크 박물관의 28개 전시관과 라시드의 파이오니아 박물관, 하이파 박물관등에 전시돼 있던 고대에서 근세에 이르는 중동 문화 유물 수만점이 거의 약탈됐거나 파괴됐다. 전쟁통에 절도범들이 제일 먼저 노리는 것은 돈이 될만한 값진 문화재들이다. 이들의 눈에는 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들이 인류의 소중한 문화 유산이 아니라 황금덩어리나 막대한 돈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같이 문화재는 곧 돈이라고 생각하는 문화재 전문 절도범들이 우리나라에 전역에서 문화재들을 마구 흠처 내다 파는 사태는 IMF보다 더한 불어 닥친 경제 불황이 큰 몫을 하고 있다는 게 문화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때 부동산 억제정책으로 여유자금
한국인의 끈기는 99% 벼농사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벼농사는 힘이 드는 농사입니다. 나락농사에 이앙법이 도입된 후 마지기당 소출은 늘었지만 이에 들이는 노동의 양은 배가 되었습니다. 이 이앙법의 순 우리말이 ‘모내기’ 혹은 ‘모심기’란 말입니다. 이른 봄(4월말)이 되면 나락씨를 물에 불립니다. 이 과정에서 쭉정이 나락은 걸러집니다. 요즘은 이때 씨를 같이 소독하고 있습니다. 이후 못자리를 할 논을 정해 물을 가두고 못자리판을 장만해야 합니다. 이와 동시에 논을 갈아엎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경운기가 없던 시절에는 논에 물을 가두어 소로 논을 갈았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이런 작업도 할 수 없습니다.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구릉지대에 자연적으로 물이 생겨나는 논이나 「소(沼)」가 많아 1년 내내 무논 상태로 있는 논이 최고로 비싼 논으로 거래되었습니다. 비료가 없던 시절에는 논의 기운을 붇돋우기 위해 퇴비를 넣어야 했습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 퇴비증산에 총력을 쏟은 적이 있는데 퇴비를 넣지 않으면 농사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을철에 웃자란 억새풀이나, 기타 각종 풀을 지게로 져온 후 논에 쏟아 넣고 그것을 일일이 발로 밟아 논에 쑤셔 넣었습니다. 못자리 장만이 끝나면 씨를 모판에 뿌립니다. 1970년대 이후 모판에 비닐을 씌워 싹을 좀더 일찍 틔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5월 중순이후 모내기를 할 시기가 되면, 먼저 논을 삶아야 합니다. 논을 평평하게 만드는 이 작업을 써레질이라고 합니다. 모판에서 모를 쪄내서 한 다발씩 짚으로 묶습니다. 이렇게 묶어낸 모를 ‘모침’이라고 합니다. 못자리를 한 곳과 모를 심어야 할 논의 거리가 멀 경우 모침 나르는 작업도 보통 고된 일이 아닙니다. 지게로 모침을 한 가득 싣고 좁은 논둑길을 수없이 오르내리면서 써레질을 끝낸 논에다가 모침을 뿌려놓아야 합니다. 모침 나르는 작업은 여럿이 함께 하기도 하지만 주로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을 담자’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은 교실에서 꼼짝을 못한다. 체벌을 하거나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학생들의 카메라폰에 찍혀서 곤혹을 치르는 사례가 종종 신문이나 인터넷에 오르기 때문이다. 유명 연예인들이 나타나는 장소에 가면 예전에는 수첩에 사인을 받으려는 청소년들로 북새통을 이뤘지만 요즈음은 연예인 주변에 핸드폰 카메라를 든 청소년들이 장사진을 친다. 디지털 카메라가 내장된 카메라폰을 일제히 치켜든 청소년들은 말이나 글보다 이처럼 이미지를 선호한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듯 ‘디카(Dica)’가 신세대들 간에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인 1디카 시대를 반영하듯 2004년말 까지 우리나라에는 연간 400만대의 디카가 보급될 전망이다. 대학 강의실에서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힘들게 받아 적지 않고 즉석에서 디카로 찍어 나중에 출력을 하여 돌려본다. 디지털 카메라 시대에서 또 하나의 커다란 이점은 보고 싶은 얼굴 모습을 실시간에 인터넷으로 주고받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을 외국에 살고 있는 손주를 그나마도 인터넷으로 매일 볼 수 있고 군대에 간 보고 싶은 애인에게 본인의 일상생활을 디카나 카메라 폰으로 찍어서 e-메일로 전송한다. 이 모두 디카 덕분이다. ‘필카’(필름 카메라)의 시대는 가고 디카의 시대가 왔다. 필름 대신 전자 이미지센서인 CCD나 CMOS로 찍는 디카 사진은 필름값과 현상, 인화료가 들지 않는다. 필름으로 찍은 사진과 비교해 볼 때 화질에 있어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30만-40만원 代의 디카를 손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사진을 찍은 ‘다카族’이 늘고 있다. 디지털 사진은 이미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구입할 물건도 디카로 찍어서 서로 보고 의논하며 산다. 대형 서점에서는 비싼 전문서적을 돈을 내고 사는 대신 내용을 주인 몰래 디카로 찍어서 논문이나 과제물 제작에 인용하는 사례가 늘자 진열대에 사진촬영 금
올해 장마를 보니 모처럼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장마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반갑습니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장마철은 그야말로 장마라고 부르기가 뭣할 정도로 변덕스러웠습니다. 원래 우리나라 장마는 6월말 장마전선이 생기기 시작해 위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한달 가까이 이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와중에 때로는 천둥 벼락도 치고, 때로는 국지적 호우도 발생해서 물난리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올해처럼 차분하면서도 줄기차게 비가 오는 것이 우리나라 장마입니다. 어저께 라디오에서 한 여자 기상예보관이 『금년의 장마도 예년과 어김없이 게릴라성 폭우를 뿌리며 각지방에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라고 언급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마 이 기상예보관이 예년의 우리 장마철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거나, 우리나라의 장마 특성에 대해서 몰라서 한 말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정말 오랫만에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장마를 만나고 있는 것이지, 결코 게릴라성 폭우를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비오는 날은 저는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물론 시골의 부모님은 논둑이 터질까 봐 삽을 들고 이논저논 열심히 쫓아 다니시겠지만요. 국민학교 나닐 때 비가 오는 날이면 중학교 다니는 형과 누나들이 우산을 하나씩 가져가고 나면 저한테까지 우산이 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비오는 날 당연히 우산을 더 많이 쓰고 다녔겠지만, 지금 와서 보면 우산을 쓰지 않고 다닌 기억이 더 뚜렷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한시간 거리였습니다) 우산이 없을 때는 국민학교 다니는 바로 위 누나와 우산을 같이 쓰고 가면 비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큰 누나가 아니라 바로 위 누나와 같이 우산을 쓰고 학교에 가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누나와 같이 학교에 가면 자연스럽게 누나 친구들과 어울려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여자애들과 어울려 다닌다고 동네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기 딱 알맞
장마철 오름 수위를 기다린다 7월 3일 토요일 밤, 제7호 태풍 민들레의 북상으로 충북 음성의 원남지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단골꾼들은 우비를 챙겨 입고, 파라솔을 펴고, 텐트로 빗방울을 피해가며 밤새 찌불을 지켰다. 이곳의 특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원남지는 수위가 늘어나는 추세에 있어야 입질을 기대 할 수 있다. 특히 여름철엔 물이 늘어 육초밭이 잠길 때가 절호의 찬스다. 원남지는 매년 장마가 끝나 오름 수위를 이루는 7월 중순 이후, 논에 물을 대기 시작하는 8월초까지 ‘오름 수위 특수’를 누린다. 41만평 크기의 대형 수면을 자랑하는 원남지는 여름 시즌에 들어서면 상류지역에 포인트가 형성되다가 배수기인 8월초부터 중순까지 중류권으로 포인트가 이동된다. 토종붕어가 주류를 이루며 잉어와 메기, 끄리등 온갖 민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최근엔 간혹 떡붕어와 배스도 눈에 띈다. 입어료 24시간 1만원, 조황문의 음성 한라낚시 043-535-5756.
서울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서울 버스노선 변경 사업’이 큰 무리 없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바랍니다. 서울시가 추진한 버스 노선 변경의 근본이 옳다면 지금의 혼란은 곧 정상을 찾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서울시가 새로 칠한 버스 색깔을 아침 저녁으로 보고 있자니 입안에 가시가 돋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짙은 빨강, 파랑, 노랑, 녹색의 버스는 마치 벌레들이 먹이를 찾아 기어다니는 것처럼 보여 기분이 영 좋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해서 버스 색깔이 현대 도시의 버스 색깔치고는 너무 촌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일산과 광화문을 다니는 1000번 버스를 보면 청색과 백색이 잘 조화되어 그 색깔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1000번 버스뿐 아니라 서울 외곽을 오가는 다른 광역 버스도 나름대로 아름다운 색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전국의 수많은 고속버스와 관광버스, 스쿨버스 등은 저마다 아름다운 색깔로 개성을 뽐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색깔의 버스에 비해 서울시에서 새로 칠한 빨강, 파랑, 노랑, 녹색 버스는 보는 이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더구나 고급스러운 색깔을 가진 거리의 자동차와 원색적인 서울시내 버스 색깔이 대조되어 더욱 어색합니다. 우리의 버스는 일정 기간 운영을 하고 나면 그 상당수가 곧바로 러시아, 중동, 동남아 등지로 인기리에 팔려나갑니다. 저도 이라크에 다녀 온 적이 있는데, 이라크에 굴러다니는 버스의 대부분은 한국의 중고 (좌석)버스입니다. 러시아, 중동 등에 촌스러운 색깔을 한 서울의 시내버스가 굴러다닐 생각을 하니 끔찍합니다. 그렇다고 중고차에 색칠을 다시 해서 팔아 먹을 수도 없을 테니까요. 굳이 버스 색깔을 구분해야 한다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원하는 색감을 나타낼 수 있을 정도면 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현재 버스 전체를 원색으로 하는 것 대신 버스의 지붕 꼭대기만 녹색선, 빨강선을 한 줄 혹은 두줄 정도 긋던지, 아니면 버스 전방이나 옆면의 색깔을 조정하여 원하는 색감을 충분히 전달
인터뷰/韓佛 문화교류의 전령사 프랑스와 데스쿠엣 駐韓 프랑스 대사 『할머니의 정성이 담긴 김치의 맛이 최고이지요』 -프랑스 문화축제 「랑데부 드 서울」 주최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적 만남에 노력 -김치 50여 종 맛 본 김치愛好家 약력 국립행정대학원(ENA)ㆍ파리정치학교(IEP) 졸업, 파리국립大 법학 전공, 駐日 대사관 서기관(1977~81), 駐인도 문정과학 참사관(1981~85), 駐日 오사카ㆍ고베 총영사(1986~88), 외무부 구주국 부국장(1988~91), 駐우간다 대사(1993~98), 외무부 감사관(1998~2001), 駐韓프랑스 대사(2001년 7월~현재), 프랑스 국가공로훈장ㆍ레지옹 도뇌르 기사장 수상 白承俱 月刊朝鮮 기자 「랑데부 드 서울」 지휘 2001년 7월 부임한 프랑스와 데스쿠엣 駐韓 프랑스 大使는 韓佛 문화교류의 전령사로 통한다. 그는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적 「랑데부」(만남)에 힘써 왔다. 지난 5월 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 칸에서 개최된 제 57회 칸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대상作으로 선정된 것과 2002년 제55회 칸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데는 그의 숨은 노력이 밑거름이 됐다. 駐韓 프랑스 대사관이 주최한 제 2회 프랑스 문화축제 「랑데부 드 서울」이 6월11일부터 19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야외공연장 등에서 열린 이 축제에는 클래식ㆍ재즈ㆍ록의 콘서트와 영화ㆍ야외공연ㆍ인형극 등이 매일 소개됐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프랑스 영화제도 동시에 열렸다. 총 24편의 프랑스 영화가 소개됐다. 몇 몇 작품의 경우는 해당 감독과 배우가 직접 來韓(내한)해 한국팬들를 만났다. 프랑스 圖書 전시회도 열렸다. 데스쿠엣 대사가 부임한 후 韓佛간의 가장 큰 특징은 양국간 문화교류가 활발해졌다는 점이다. 駐韓 프랑스 대사관은 서울市 미근동에 위치한 경찰청 뒷편에 자리잡고 있다. 지난 6월8일 공관에서 만난 그는 한국
충주호를 사랑하는 꾼들은 비를 기다린다. 80~100mm 정도 비가 쏟아져 수위가 오르면 갈수때 드러났던 육초가 잠기면서 깊은 수심에서 올라온 씨알 좋은 붕어들이 죽죽 찌를 밀어 올린다. 금년에는 6월 하순부터 이른 장마가 진다는데 그때가 멀지 않았다. 6월3일 현재 충주호 수위는 129.53m. 지난해보다 5m 이상 높게 유지되고 있다. 오름수위의 폭이 짧은 것은 붕어낚시에 그리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연안이 더 넓게, 더 오래 드러나서 육초가 충분히 자란 뒤에 수위가 올라야 붕어는 경계심 없이 풀씨나 풀벌레 등을 먹으며 새물을 타고 오른다. 낚시터 관리인들은 오름수위가 시작되기 직전 트랙터로 연안을 정비해 걸림을 줄이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오름수위를 향해 부풀어 오르면서 충주호는 그 전주곡으로 여기저기서 대물 붕어를 한두 마리씩 토해내고 있다. 5월30일 내사리 문골낚시터(043-851-5079)에서 41.5cm 대형 붕어가 얼굴을 내밀었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6월1일엔 상류 청풍권 연론리에서 47.5cm짜리 떡붕어가 낚이기도 했다. 충주호에서 5짜 붕어를 한번 꿈꿔보는 것은 어떨까. 조황문의 : 충주낚시 043-848-1719.
백제 패망의 역사 현장 계백(階伯)장군이 이끄는 5천 명의 백제 군사가 황산벌에서 동으로부터 쳐들어 오는 신라 김유신 장군의 5만 군사와 혈전을 벌린다. 황산벌은 지금의 논산시 연산면과 양촌면 일대. 신라군의 침공을 막았던 벡제의 마지막 보루인 삼영(三營)은 황산성을 가운데 두고 북쪽으로는 노성산성, 남쪽으로는 신흥리산성이 있다. 서기 660년 여름 군사수에 있어서 열세이면서 승승장구 하던 계백 장군은 신라군의 진격을 막지 못하고 끝내는 이곳에서 궤멸한다. 계백장군 역시 이곳에서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다. 그후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 항복하고 당나라에 끌려가면서 백제는 이렇게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서울-조치원-공주를 거쳐 논산을 가다보면 노성읍내를 지나게 되는데 바로 읍내 뒷산이 노성산성이 있는 노성산(魯城山, 384m)이다. 동쪽에 있는 계룡산(845m)과는 노성천을 사이에 두고 있다. 노성산 정상에는 백제시대때 쌓은 삼태기 모양의 둘레 894m의 석성이 아직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노성산 기슭의 파평윤씨 집성촌에는 향토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다. 280년 전에 지은 백의정승 윤증(尹拯, 1629-1714)선생 고택과 조선시대때 지은 노성 향교가 있고 1717년 숙종 43년에 지은 공부자(孔夫子)의 영정을 모신 노성 궐리사(闕里詞)가 있다. 노성산성은 면사무소가 있는 노성읍내 시멘트길을 따라 산으로로 올라간다. 상월면 구야고개에서 면사무소 뒷산까지 이어지는 임도와 만난다. 10분 정도 오르면 능선 옆으로 난 산성으로 올라가는 길과 노성암-가곡리-구야고개로 가는 임도와 갈라진다. 산성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소나무 숲길이다. 바람결에 스치는 솔향기를 맡으며 걷는다. 숲속 저만치에 복원해 놓은 높이 7-8m쯤 돼보이는 노성산성이 나타난다. 남측 성벽인 이곳을 지나 4-5m 높이의 창끝처럼 뽀족하게 다듬어 놓은 기암 괴석들이 늘어선 바위 사이를 지난다. 곧바로 느티나무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진영 봉하마을 가로수에 노란리본이 내걸렸다고 합니다. 헌재의 노대통령 탄핵 선고를 앞두고 노대통령이 무사히 돌아오라는 뜻으로 김해지역 노사모와 동네사람들이 매달아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원래 노란 리본 혹은 노란 손수건을 거는 것은 미국의 풍습니다. 수감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는 남편을 환영하는 아내의 마음을 그린 유명한 팝송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라크와 전쟁 중인 미국에는 현재 노란리본이 걸린 지역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합니다. 이처럼 근래들어 서양풍습을 따라 하는 모습이 부쩍 눈에 많이 보입니다. 작년 10월, 한국의 부자 동네에 있는 많은 유치원에서 할로윈데이 행사를 하느라 부모들이 앞 다투어 경쟁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할로윈데이는 가장 서양적인 풍습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로 치자면 「귀신날」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귀신날은 정월 보름 다음날로 이날 대문밖에 「채」를 걸어 놓거나 신발을 거꾸로 뒤집어 놓는 풍습이 있습니다. 어릴 때 경험한 전통 풍습은 아이의 사고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정월대보름 전날 쥐불놀이를 한다든지, 정초에 연날리기를 하는 것, 단오 때 아버지가 뒤뜰 나무에 새끼줄로 만든 그네를 태워주던 기억 등은 머릿속에 평생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기 마련입니다. 아직 철도 들지 않는 아이들이 호박귀신 가면을 뒤집어 쓰고 할로윈데이 풍습부터 배울 때 우리의 귀신날은 아이들로부터 낯설고 멀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미국의 할로윈데이 때는 아이들이 가면이나 마녀복장을 하고 이웃을 찾아 다니며 사탕이과 과자을 얻곤 합니다. 우리나라 일부 유치원에서 경쟁적으로 벌였다는 그 할로윈데이가 좁은 유치원에서 가면만 뒤집어 쓰고 미국 흉내를 냈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할로윈데이를 제대로 흉내 내고 있는 것인지도 의심스럽습니다. 몇 달전, 모 인터넷
내성천은 낙동강의 큰 지류로서 경북 영주쪽에서 흘러나와 예천군을 돌아 거친 후, 안동에서 빠져나온 낙동강 원류와 합류하는 하천입니다. 이 내성천을 따라 백사장이 끝없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내성천의 수량은 그다지 풍부하지 않지만 넓은 백사장으로 인해 안동을 휘감아 흐르는 낙동강 원류보다 그 폭이 넓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 많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내성천을 따라 하류의 풍양까지 종일 걸어서 내려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백사장이 어느 곳 하나 끊어진 곳이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내성천의 모래는 부드럽고 촉감이 좋을 뿐 아니라, 건축용으로도 최상품의 모래로 평가가 나 있습니다. 위 사진은 지난 5월1일 시골에 내려갔다가 내성천의 모래를 파내는 현장이 눈에 띄어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곳은 경북 예천군 호명면 월포리 앞을 흐르는 내성천 백사장입니다. 입구 안내문에는 예천군에서 오는 7월까지 모래 채취 허가를 내주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문제는 과연 오는 7월까지만 모래를 퍼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사진은 사진 맨위의 모래 채취 현장에서 자동차로 3분 거리에 있는 예천군 호명면 오천동 앞을 흐르는 내성천의 모습입니다. 이곳은 1988년 경부터 무려 10년 가까이 모래를 파낸 현장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수십 대의 덤프 트럭이 쉴새 없이 모래를 퍼내더니, 제가 군에 갔다와도 모래 퍼내기는 계속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몇년 더 모래 퍼내기가 계속되었고, 급기야 진흙바닥이 나와 더 이상 긁어낼 모래가 없자 이 일은 중단되었습니다. 이 일대의 모래의 양이 얼마나 어마어마 했는지 짐작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모래가 너무 많이 쌓여 적당한 준설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1970년대 건설된 낡은 다리 바로 아래까지 모래가 차여 비만 오면 다리가 물에 잠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모래가 많이 쌓였다고 해도 10년 가까이 한 곳에서
뉴스의 人物/金石元 신임 전쟁기념관장 『전쟁은 역사책에나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예고 없이 우리 앞에 닥쳐오는 「현실」입니다. 애국심과 안보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비디오 세대들에게 視覺的으로 다가가는 기념관으로 거듭나겠습니』 지난 5월 10일 취임한 金石元(김석원ㆍ63) 신임 전쟁기념관장은 취임 一聲으로 『전쟁기념관을 模造品(모조품) 전시에서 탈피, 眞品(진품) 위주의 전시로 格을 한단계 높여나갈 방침』이라고 했다. 『6.25전쟁의 발발원인을 비디오 세대들에게 설명해도 피부로 느끼진 못합니다. 젊은세대들이 전쟁기념관의 전시물을 보면서 침략자가 누구인가하는 「解答(해답)」을 얻도록 하고, 戰禍(전화)를 이겨낸 한민족의 底力(저력)도 피부로 느끼도록 하는 게 전쟁기념관에게 주어진 임무입니다』 金관장은 부임한 지 나흘만에 부서 업무보고를 통해 업무 챙기기에 나섰다. 그는 遺物(유물) 확보를 위해 국립박물관과 협조하기로 하는 등 東奔西走(동분서주)하고 있다. 1994년 6월 출범한 전쟁기념관은 연평균 100만명의 국내외 관람객이 찾는 아시아의 名所(명소)다. 金관장은 전쟁기념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기념관으로 도약해 청소년들의 護國(호국)의 전당으로, 가족 나들이 코스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金관장은 軍 시절 「작전통」 지휘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주변에서는 金관장을 겸손하면서도 추진력이 강한 군인으로 기억한다. 그의 이런 스타일은 吳滋福(오자복) 現 성우회장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金관장이 15사단 39연대 작전주임으로 있을 때 吳회장은 39연대장이었고, 이때의 인연은 軍 복무기간 내내 이어졌다고 한다. 1940년 경북 영주 출생인 그는 영주 제일고를 졸업하고 1962년 갑종 166기로 임관했다. 1968년 2월, 그는 맹호부대(사단장 尹必鏞 소장) 기갑연대 3대대 작전장교로 베트남전에 참전한다. 그는 월맹군의 「구정 공세」 직후 戰場에 투입됐고, 「고보이 전투」등 越盟軍(월맹군)과 대대급 전투를 30여 차례를 치렀
미8군 사병 "SOFA 믿고 난동은 아니다" ------------------ 2004년 5월23일자 스포츠투데이에 실린 미 8군 사병 인터뷰입니다. 최근 주한미군 일부 병력의 이라크 차출과 관련, 미군들의 속내가 드러나 있어 눈길을 끕니다. 한동안 잠잠하던 서울 용산미군기지 앞이 최근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일부 미군의 칼부림 난동 사건과 미국 정부의 주한미군 이라크 파견 발표 등으로 미묘한 감정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20일 기자가 찾은 용산미군기지 앞은 전경과 시위대들로 북적거렸다. 부대 앞을 지나가는 미군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시위대를 애써 외면한 채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군당국에 따르면 미군들은 해외 파병이 필요할 경우 무작위 추첨을 통해 파병 인원을 결정한다. 또한 미국의 여러 해외 파병지 중 한국은 이라크에 이어 두 번째로 꺼려지는 곳이다. 전쟁 날 가능성이 크다고 여기기 때문. 이런 가운데 익명을 요구한 두 젊은 미군이 스투와 만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들은 “최근 다시 들끓는 반미감정 때문에 속이 상하지만 떠날때 떠나더라도 한국에 머무는 그날까지 주어진 임무를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온 지 2년이 지났다는 A하사(30). 그는 다들 꺼리는 한국근무를 ‘자원’했다. “어렸을 때 태권도를 배우면서 알게된 ‘극동의 분단국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태권도 선생님의 나라를 내 손으로 직접 지켜주고 싶었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저를 반겨주지 않았어요. 연일 반미 시위가 일어나고 미군을 범죄자 취급했지요. 길거리에서 대놓고 손가락질하며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어요.” A하사는 “한국은 오랜 우방국가여서 우릴 반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얼마 안 남은 계약기간이 채워지면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아마 다시 한국에 오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는 요즘 부대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나이와 계급을 밝히기를 꺼린 B씨
'현산어보를 찾아서(청람미디어)'라는 책이 나왔을 때 저는 저자가 32살(현재 33세)의 젊은 교사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모두 다섯 권으로 이루어 져 있는 이 책은 각 권이 4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현산어보(혹은 자산어보)는 다산 정약용의 형님인 정약전이 1801년 흑산도에 유배생활을 하면서 쓴 흑산도 일대의 어류 보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산어보를 찾아서'란 책을 몇 장만 넘겨 보면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꼼꼼하게 자료 수집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책에 수많은 사진과 삽화 및 주석을 넣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으며, 정약전이 살았던 시대와 문화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고찰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이태원씨가 어제(19일) ‘신규장각’에서 개최한 ‘미래도서관 연구포럼’의 강사로 초청되어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날 두 분의 강사가 초청되었는데 이태원씨를 비롯 ‘다시 쓰는 택리지'를 쓴 신정일씨였습니다. 이 두분의 강사를 초청한 ‘新규장각’은 ‘광화문에 도서관을 세우자’라는 목표를 내걸고 활동중인 미래도서관 연구 단체입니다. 그저께 사단법인 등록을 마쳤습니다(홈페이지 주소: http://www.kyujang.org/, 네이버 카페 주소: http://cafe.naver.com/kyujang.cafe). 현직 고등학교 생물교사인 이태원씨는 이날 신규장각 포럼에 와서 ‘현산어보를 찾아서’란 책을 쓰게 된 동기와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이태원 선생님은 1996년 경 석사(서울대 생물교육학) 논문을 마치고 경남 마산에 있는 집에 갔다가 마산의 어느 서점에서 ‘자산어보’의 번역본(고 정문기 교수)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밤새 이 책을 읽어본 그는 200년 전 우리 조상이 이처럼 상세한 어류 조사보고서를 남겼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는 이 책의 내용을 하나씩 규명해 보고 자세한 번역본을 내겠다고 마음먹게 됩니다. 그 후 李선
시즌 맞은 계곡형 맹동지 신록의 골짜기마다 월척 몸부림 물에 잠긴 버드나무숲의 어른거리는 초록빛 수면에 떠있는 오색찌. 그 주변을 맴돌며 철퍼덕거리는 붕어들이 어신을 기다리는 꾼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산새들의 울음소리 울려 퍼지는 맹동지 상류의 새벽. 부스스 일어난 꾼들이 수몰 버드나무 근처로 조용히 찾아올 대물을 기다리고 있다.〉 5월2일 충북 음성군 맹동면 통동리에 있는 맹동지. 32만평 수면의 크고 작은 45개 골짜기마다 낚싯대를 드리운 ‘神仙’들이 가득하다. 서울을 비롯해 경인ㆍ충청지역에서 4백여 꾼들이 찾아와 모처럼 화창한 봄날의 신록을 만끽하고 있었다. 1983년 준공된 물 맑고 수심 깊은 계곡지인 맹동지 붕어는 이웃 초평지나 원남지보다 산란이 늦다. 이제야 상류와 중류 골자리로 올라붙은 붕어, 잉어, 향어들이 산란을 하느라 사방에서 소란을 피운다. 이때를 놓칠세라 꾼들이 맹동지로 몰려들어 대물을 연신 낚아내고 있었다. 맹동지 중상류권 호황은 5월 중순까지 이어지다가 이후 밤낚시 시즌을 맞는다. 조황문의 : 음성 중부낚시 043-535-1432. 맹동지 관리소 이재노씨 011-465-1898. (월간낚시 6월) 〈최상류 수몰 버드나무숲은 대물 붕어들이 우글거리는 최상의 포인트〉 〈“건너편에서 밤새도록 떠드니까 붕어들이 다 이쪽으로 몰려 왔나 봐요.” 최상류 관리사무소 건너편 산비탈을 타고 내려가 자리를 잡은 이천꾼 한상진씨는 1박2일 동안 40여수의 붕어를 낚았다.〉 〈5월1일 직장 동료들끼리 밤낚시를 왔다는 박용규, 김경호, 이한영, 유형근(왼쪽부터)씨가 밤사이에 잡은 준척 월척 붕어들.〉 〈문정규(왼쪽)씨가 낚은 40cm 향어를 친구 김영민씨가 들어 보이고 있다.〉 〈“우리 아빠가 낚은 토종붕어래요!” 중류 밭자리에서 아빠가 잡은 뼘치붕어를 동생과 함께 살펴보는 윤혜리양.〉 〈글루텐떡밥을 투척하고 있는 서울꾼 황용하씨. 그는 아침8시경 상류 4번 골자리
지난 5월2일 일요일 종묘제례에 참여했습니다. 재 작년인 2002년의 종묘제례가 월드컵으로 인해 밤에 거행되어서 아쉬움이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낮에 꼭 보고 싶었습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때문에 종묘제례가 제대로 치루어 질 수있을 지 걱정을 하면서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습니다. 이날 종묘제례를 본 느낌을 이곳에 글을 쓰려던 차 마침 오늘(7일) 자 조선일보에 종묘제례 참석자가 쓴‘독자의 편지’가 있어 여기에 먼저 소개합니다. --------------조선일보 독자의 편지에서---------- 추한 한국인 모습 제발 벗어나자 지난 2일 아이들과 함께 종묘대제(宗廟大祭)를 관람하러 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제례와 제례악을 관람하려는 외국인 관광객과 일반관람객으로 붐볐다. 보슬비가 내렸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자녀들에게 우리 전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혼잡은 문제되지 않았다. 자녀에게 자세히 보여주려고 한 손으로 우산을 든 채 2시간여 앞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렸다.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뒤쪽 처마에서 비를 피하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주변은 시장바닥처럼 소란스러워졌다. 밀치고 들어온 한 아주머니는 일본인 관광객 사이에 자리를 잡았고, 뒤에 있던 친구까지 끌어들였다. 한쪽에선 30대 초반 여인이 앞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자녀를 야단치고 있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러 참석한 외국인들의 불쾌해 하는 표정을 보았을 때는 비참했다. 무례한 한국인이란 인상을 갖고 떠날 외국인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편치 않다. 남을 배려해야 축제가 멋있어 진다. 김영서·서울보건대학 교수·경기 성남시 ------------------------------------------------------ 저는 30분 늦었기 때문에 위에 글을 쓴 교수님이 지적한 시간의 상황은 보지 못했지만, 위 지적이 아니더라도 종묘제례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이를 진행하는 주최측의 모습이 실망
엊그제 몇몇 일간지에 ‘우리의 김치가 일본의 기무치를 누르고 일본 자위대에 납품되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 내용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김치가 일본에서 생산된 김치를 누르고 납품되었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문제는 언론이 이런 기사를 쓰면서 꼭 ‘김치’와 ‘기무치’가 마치 다른 음식인양 구별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기무치’는 ‘김치’의 일본식 발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우리가 미국의 ‘맥도날드’를 미국에서 발음하는 것같이 정확하게 발음 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노력해서 발음하듯이, 일본도 김치를 최선을 다해 원음(한국어)에 가깝게 표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굳이 “한국의 ‘김치’가 일본의 ‘기무치’를 이겼다”는 식으로 표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일본에서 생산된 김치가 일본인의 입맛에 변형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입니다. 맥도날드 한국지사에서 김치 햄버거, 불고기 햄버거를 만들어 팔듯이 일본도 그들의 입맛에 맛게 김치를 개발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김치는 맥도날드처럼 어느 한 회사가 개발한 고유 브랜드가 아니고 음식 자체이기 때문에 일본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김치를 자기 입맛에 음식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기무치’가 자위대에 납품되었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단지 일본에서 생산된 김치가 납품되었다는 뜻이지 우리 김치가 맛이 없다거나 우리가 음식 전쟁에서 졌다는 의미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일본인들이 자기 입맛에 맛는 김치를 ‘선택’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최선을 다해 김치를 ‘기무치’로 불러주는 것을 우리가 고마워 하지는 못할 망정 김치와 기무치가 다른 음식인 것처럼 구별하려고 달려드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고 봅니다. 일본이 ‘비빔밥’을 ‘비빈파’라고 부르면서 일본인이 좋아하는 바다 음식 몇 가지를 넣어 먹는다고 비빔밥의 국적이 어디 달아나지 않듯이 말입니다. 우리도 인도의 ‘카레’라는 음식을 먹으면서 밥을 섞어 먹기도 하고,
만민(萬民)이 기대고 산 ‘生居鎭川’의 진산 만뢰산성 어디나 명산에는 대찰(大刹)이 있다. 그 뿐인가. 나무와 바위와 계곡에는 저마다 전설이 열려있다. 명산 기슭에서는 그 산의 정기를 타고 태어난 명인들이 있다. 높기만 하다고 다 명산이 아니다. 산이 낮다 해도 산세나 풍기는 분위기가 뭔가 다른 산들이 있다. 김제의 금산사가 그렇고 경주 남산이 그렇다. 또 하나 옛부터 들이 넓고 물산이 풍부하여 살기 좋다 해서 ‘살아 진천, 죽어 용인’이라는 말 있었다. 그 말마따나 ‘생거진천(生居鎭川)’의 으뜸으로 알려진 만뢰산(萬賴山, 611.7m)이 진천에 있다. 일명 보련산·만노산·금물노산·이흘산이라고도 불렸던 이 산은 충남 천안시와 충북 진천군의 경계인 진천 연곡리와 백곡면 대문리에 솟아 있다. 만뢰산 기슭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3층목탑이 있는 보탑사가 자리잡고 있는가 하면, 통일신라시대 명장 김유신(金庾信) 장군의 탄생지가 있다. 수해(樹海) 한가운데 펼쳐져 있는 만뢰산 연봉들은 활짝 핀 연꽃을 닮아 꽃잎처럼 부드럽다. 만뢰산 정상은 그 가운데 제일 큰 꽃잎이다. 우리나라 불교건축의 정수로 꼽히는 보탑사 3층목탑은 바로 연꽃술에 해당하는 곳에 앉혀져 있다. 진천군에서 제일 높다는 만뢰산은 옛날부터 군사요충지였다. 정상에는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쌓았다는 둘레 1,300m나 되는 석성이 있다. 빗물을 모아 두었다가 썼을 우물터와 망루터·깨진 토기와 와당 그리고 이곳저곳에 나뒹구는 돌무더기를 들춰보면서 1,500년 전의 만뢰산성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러나 최근 만뢰산의 모습이 확 바뀌었다. 우리나라에 3기 뿐인 고려 초기 때의 것으로 보이는 백비(白碑, 비문이 새겨있지 않은 비, 보물 제404호)와 5층 석탑만이 뒹굴던 비선골(碑立洞)에 큰 절이 섰다. 바로 그 절터에 우뚝 선 보탑사 3층목탑을 보려고 전국에서 수많은 산도들이 찾아온다. 20여 농가가 계단식 논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살던 비선
진달래는 ‘참꽃’이라고도 합니다. 이른 봄 개나리와 함께 온 산을 분홍색으로 물들이는 진달래는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추억에 잠기게 되는 참으로 ‘신기한’ 꽃입니다. 초등학교 3~4학년 때입니다. 하루는 학교를 마치고 가까운 산 중턱에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일행 4~5명은 산으로 우르르 올라갔습니다. 진달래는 꽃이 연하고, 꽃을 따먹으면 별 맛이 없지만 그래도 조금 단맛이 나기 때문에 먹을 만합니다. 학교를 오가며 '뭐 재미있는 것 없나'하며 두리번거리며 다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먹음직스러운 진달래가 눈 앞에 잔뜩 있는 것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촌 아이들의 습성상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진달래’를 열심히 따먹었습니다. 한참이나 따먹은 후 갑자기 아이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 앞이 캄캄해지고 머리가 헤롱헤롱하고 정신이 몽롱하여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드러누워 잠을 잤습니다. 같이 꽃을 먹은 일행 중 두 명은 그래도 정신이 말짱한지 집으로 무사히 가서 부모님들께 아이들이 산에서 자고 있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먹은 꽃은 진달래가 아니라 진달래와 비슷한 ‘철쭉’이라고 부르는 꽃이었습니다. 철쭉은 꽃에 독성이 있어 많이 먹으면 위험하다고 합니다. 시골 아이들은 먹는 풀과 못 먹는 풀을 웬만하면 구별하는데 어떻게 시골 촌놈들이 대낮에 떼거지로 그런 실수를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어른들도 설마 떨떠름하고 맛없는 철쭉을 아이들이 따먹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하고 별로 주의를 주지 않았나 봅니다. 꽃 중에 제일 맛있는 것은 ‘아카시아 꽃’이라고 장담합니다. 5월이 되면 동구 밖의 아카시아 나무에서 풍겨나오는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찌릅니다. 낮은 곳에 있는 아카시아는 나름대로 열심히 따먹지만 키가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는 것은 누나나 형들을 졸라 따 먹곤합니다. 아카시아는 꽃을 하나하나 따 먹는 것이 아니고, 꽃송이
모 인터넷 사이트에서 재미있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아마 언어에 관심이 있는 서울에 사는 어느 학생이 쓴 글 같은데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먼저 본인 허락 없이 옮겨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아래에 인용 해 보겠습니다. ---------------------- 아 래 --------------------- 제가 흥미로운 예기 하나 해보려구요. 물론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줄곳 서울에서 자란 서울 토박이지만. 예전에 경상도 사투리에 관한 글을 본적이 있어서 그 기억을 더듬어보며 경상도 말의 장점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경상도 말은 서울 표준어보다 압축률도 뛰어나지만 또 다른 큰 장점이 있으니 바로 말의 높낮이로 표준어의 동음이의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네요.. 예를 들자면 한국어 "가지"란 말이 있습니다. "가지"는 1. 먹는 가지 2. 나뭇 가지 3. 갯수 셀 때(한 가지 두 가지) 4. 동사 (집에 가지) 의 여러 의미가 있지만 표준어에서는 동음이의어 문제는 다만 음의 장단 즉 발음을 길게 하거나 혹은 짧게 함으로 파악을 하거나 혹은 단순히 문맥으로 유추를 할 수 밖에 없죠. 하지만 경상도 방언은 다양한 음의 높낮이(Pitch)가 존재해서 단순히 음을 높였다가 내리던가 혹은 내렸다가 올리는 방식만으로도 동음 이의어를 경상도 주민들은 그게 무슨 단어인지 파악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리적으로 볼 때 중국에는 4성이라는 성조가 있어서 음의 높낮이를 파악 할 수 있을뿐더러 베트남은 더 심한 5성, 게다가 일본도 이와 같은 음의 높낮이 (Pitch)가 존재 한다고 하네요. --------------------------------------------------------- 아울러 이분은 우리 말이 서울 지방의 말로 흡수되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말이 오히려 퇴보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는 이야기를 덧붙혔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국수주의적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한국어 자체가 언어 발달 단계상
아산 백제성터 꾀꼴성·물앙성터를 찾아서 “우리 동네 허물어지긴 했어두 백제 때 쌓았다는 산성이 있는 산이 있었유. 가을에 한번 가보니까 숲이 우거져 하늘이 안보이고 밤이 지천에 깔려 있던 데유. 가을에 밤 줍기 아주 좋아유. 봄에는 지나다 보면 온 산이 빨갛게 진달래꽃으로 물들어유. 건너편 산에 산성이 하나 더 있다구 하드먼유.” 천안 에델바이스 산악회 최인묵 회장은 천안 주변 고을의 지리와 풍수에 훤하다. 문화재에도 관심이 많아 천안의 유, 무형 문화유산를 찾아 현장 답사를 열심히 다니며 사진도 찍는다. 그를 따라 천안에서 아산방조제로 가는 628번 도로를 지나면서 스치는 아산시 음봉면의 꾀꼬리(=꾀꼴산)산과 물한산을 오른다. 산 정상에 백제시대 때 쌓은 석성이 두 군데나 있다는 것이다. 산에 널린 문화재를 둘러보려면 수풀이 덮인 여름이나 가을철보다는 낙엽이 진 겨울이나 새순이 돋기 전인 봄철이 제격이다. 산등성이나 산꼴짜기에 자리 잡은 성벽이나 고분들과 깨진 기왓장이며 토기 조각들이 널려 있는 옛 집터나 절터를 둘러보려면 3~4월이 제철이다. 문화재 뿐만 아니라 산 구석에 자리 잡은 너럭바위나 기암괴석을 둘러보는 시기도 바로 지금이다. 충남 아산시 음봉면 송촌리 느티나무 앞에 차를 세워두고 꾀꼴성이 있다는 마을 뒷산을 오른다. 마을을 지나니 절의 규모는 잘 갖췄으나 지은 지가 얼마 되지 않은 청계사에 다다른다. 답사 산행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절 앞까지 차로 갈 수 있다. 널찍한 산길을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나지막한 산마루에 올라선다. 1천 5백여 년 전에 쌓았으리라고 짐작이 되는 석성을 찾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꾀꼬리산 정상을 향해 줄달음친다. 산성이 자리 잡은 산들이 다 그러하듯 꾀꼬리산 산성에 오르니 아산시와 천안 일대가 다 내려다보인다. 꾀꼬리 앵(鶯)자를 넣어 앵리산성(鶯里山城)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둘레가 375m, 높이 3m의 석성으로 축성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백제가 공
아, 대한민국에 이런 멋진 낚시터가 있었다니! 중부고속도로 진천IC를 나와 초평 쪽으로 가다가 우측으로 진입하는 초평농공단지 주차장에서 내려다본 초평지 최상류. 바둑판같은 논두렁에 앉아 봄의 흙냄새를 맡으며 꾼들이 휘두르는 낚싯대와 낚싯줄이 사방에서 반짝인다. 갓 피어난 연두빛 물버들가지를 오가며 끊임없이 지저귀는 박새 소리를 들으며 봄기운을 온몸에 쬐고 있는 수많은 꾼들이 초평지 최상류의 초봄 명낚시터 농공단지 둠벙과 수몰 논바닥을 가득 메웠다. 농공단지는 물빼기 전 산란기에 폭발조황을 보이는 곳으로 중부권꾼들에게 인기가 높다. 현재 만수위로 물이 올라 찬 둠벙과 샛수로마다 삭은 수초더미 사이에서 때깔 좋은 붕어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조황문의 음성낚시 043-535-1432.
鄭東泳 사퇴는 鄭夢準 철회(2002 大選)와 동일효과? 1.양당구도 (2002년)한나라당對민주당 (2004년)한나라당對열린당 2.당대표간 대결 (2002년) 이회창 對 노무현 (2004년) 박근혜 對 정동영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인물 검증은 關心事 밖의 일 3.주요 이슈 (2002년)서민론,감성자극ex)노무현의 눈물TV광고 (2004년)탄핵심판,감성자극ex)3월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당 의원들의 눈물, 박근혜의 눈물 ==>정책 대신 感性만 자극하는 선거전략 4.선거 한달 전 돌출사태발생 (2002년)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합의->노무현 지지도 급상승 (2004년)국회탄핵안 가결->열린당 지지도 급상승 ==>돌출사태 前 한나라당의 자세: 대선 때는 大選승리를, 이번 總選때도 승리를 기대 5.선거 직전 돌발상황 발생 (2002년) 12월18일, 정몽준 노무현 지지철회->민주당(노무현) 지지자 결집현상->노무현 당선 (2004년) 4월12일, 정동영 선대위원장(비례대표) 사퇴->열린당 지지자 결집?->열린당 과반 획득? ==>노무현(열린당) 지지자들의 결집 현상이 총선에서 주요 관심대상
정동영 열린당 의장이 60대ㆍ70대는 투표 날 집에서 쉬어도 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젊은이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한 표현을 하다보니 말이 그렇게 되었다』고 변병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명색이 여당 당수라는 사람이 선거를 앞두고 기자와 카메라 앞에서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평소 그의 인격과 사고의 깊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열린당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별것 아닌 일로 말꼬리 잡고 늘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말이란 천금과도 같은 것이기에, 특히 일국의 지도자 급에 있는 사람의 말은 더욱 분별이 있어야 하기에 말꼬리를 잡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뭔가 나사 빠진 상태가 된 가장 큰 이유를 전통과 현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하는 것에서 찾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도 이곳에 「재너머 이야기」란 제목을 붙여 놓고 글을 쓰면서, 아버지 세대와 우리 젊은 세대를 이어줄 수 있는 공감대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노인 공경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습니다. 노인 공경은 자기 부모나 조부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노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노인들은 물질적 풍요는 부족할 지 몰라도 자부심을 가지고 사회의 일원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70세 이상의 노인들은 사형수라도 사형을 면해주었고, 아버지의 감옥생활을 자식이 대신 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임금은 일정 기간마다 70세 혹은 80세, 100세 이상의 노인들 현황을 파악해 수시로 궁으로 초청해 잔치를 열었으며, 70세 이상의 원로 신하들을 위해서는 기로소를 두어 돈독한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심지어 80세 이상의 노인들은 천민이라도 천민신분을 벗어나게 해 주고, 형식적인 벼슬을 주어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니 노인들을 국가차원에서 이처럼 깎듯이 대한 나라는 세계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이 들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이처럼 나라의
총선을 보름 앞두고 있습니다. 최근 60~7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주축이 된 한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YS정권 당시 청와대 고위직을 지냈던 사람과 여론조사기관의 대표도 참석했습니다.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에 대해 참석자들간에 진지한 얘기가 오갔습니다. 탄핵, 총선, 盧武鉉 정부의 성격,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現위치 등에 대해 토론이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대목만 소개하겠습니다. 『역량 있는 者가 미래를 이끌어 가야한다.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제3의 대안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보수세력에 대한 외면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동안 한국은 해방이후 한 쪽만이 집권해온 세상이었다. 이제 그 반작용으로 이른바 진보를 앞세운 세력이 등장하고 있다. 국민들도 기존 집권세력에 대한 실망으로 열린당과 같은 새로운 세력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라는 것이 正反合과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반드시 발전한다는 보장은 없다. 正과 反이 대결하면서 합리적 모델인 合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방향을 갈 수 있는 것이 사회이고 국가이다』 『지금은 소수의 정보생산자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 세상이다.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던 날 열린당 의원들이 「민주주의 수호」, 「국회 쿠데타」를 외치며 눈물흘리던 장면을 방송이 전국에 생방송했다. 국민들은 그것을 보고 분노하고 있다』 『문제는 정보의 왜곡이다. 그것이 과연 옳은가이다. 현재 한국의 인터넷 기반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아쉽게도 인터넷 기반 위에 흐르는 정보는 쓰레기 같은 잡스러운 것이 너무나 많다』 『열린당은 사람을 기분좋게 만들어주는 기획력을 가지고 있다. 大衆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능력 때문에 지지를 받고 있다. 지금은 「다수의 지지한다」는 수치가 正義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사람들이 그것을 옳은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CEO라면 그 다수의 결과에 토대로 영업전략을 수행하
'지방선거 구인난' 국민의힘, 추미애에 맞설 경기도지사 후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