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내려다보이는 63빌딩 바로 옆, 반투명한 흰색 박스 건물 안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근현대 미술관이 들어왔다. 한화문화재단(이사장 이성수)이 프랑스 퐁피두센터와 파트너십을 맺고 설립한 '퐁피두센터 한화'가 6월 4일부터 일반 관람객을 맞는다.
2023년 계약 체결, 2년의 준비 끝에 문 열다
퐁피두센터 한화는 한화문화재단과 프랑스 퐁피두센터가 2023년 본 계약을 체결하고, 2년여에 걸쳐 준비해 온 결실이다. 서울시 영등포구 63로 50번지, 63빌딩 별관 건물을 프랑스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가 리노베이션해 미술관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이성수 이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파리의 상징 퐁피두센터와 서울의 랜드마크 63빌딩이 만나는 공식적인 첫 발을 딛는 자리"라며 "퐁피두센터 한화가 서울의 또 하나의 문화예술 거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타이밍도 절묘하다. 올해는 한국-프랑스 수교 140주년이자 한화문화재단 설립 20주년이다. 퐁피두센터 파리 역시 개관 5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로랑 르 봉 퐁피두센터 파리 이사장은 "퐁피두센터는 지금 세계 곳곳에 새로운 거점을 연결하는 '컨스텔레이션(Constellation·별자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며 "퐁피두센터 한화가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별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했다. 퐁피두센터 한화 공식 개관을 3~4주 앞둔 시점에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미술관을 방문한 것도 그 무게감을 반영한다.
개관전은 큐비즘 — 아시아 최대 규모
개관전으로는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을 택했다. 6월 4일부터 10월 4일까지 진행되는 이 전시는 큐비즘이 태동한 1907년부터 1920년대까지의 흐름을 퐁피두센터 소장품을 중심으로 폭넓게 조망한다. 한국과 프랑스의 공동 큐레이터십으로 기획되었으며, 총 54인 작가의 112점 작품이 선보인다. 퐁피두센터 컬렉션에서 나온 43인 91점과 한국 근현대 작가 11인 21점이다.
퐁피두센터 파리 국립현대미술관 근대 컬렉션을 총괄하는 크리스티앙 브리앙 큐레이터는 이 전시를 "지난 50년간 아시아에서 열린 가장 중요한 큐비즘 전시"라고 자평했다. 조르주 브라크, 파블로 피카소, 페르낭 레제, 후안 그리스, 로베르 들로네와 소니아 들로네, 프랑시스 피카비아, 프란티셰크 쿠프카 등 큐비즘의 거장들이 총출동한다. 특히 전시 작품 일부는 최근 퐁피두센터가 새로 소장한 것들로, 서울이 아시아 최초 공개지가 된다.

전시는 총 9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큐비즘의 시작(1907~1908)에서 분석적 큐비즘, 살롱 큐비즘, 오르픽 큐비즘, 종합적 큐비즘, 국경을 넘은 큐비즘을 거쳐 전쟁기 큐비즘(1914~1918), 1920년대의 큐비즘(1918~1927)으로 이어지는 연대기적 흐름 위에, 주제적 구성을 결합했다. 이번 전시가 규모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퐁피두센터 한화의 두 갤러리를 모두 사용하는 전시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로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레몽 뒤샹-비용의 청동 조각 '대형 말(The Large Horse)'이 관람객을 맞는다. 큐비즘 조각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퐁피두센터 소장품으로, 전시 입장 전 관람객이 처음 마주치는 작품이자 전시 경험의 서막이 된다.
KOREA FOCUS — "단순히 한국에 큐비즘이 있었다고 말하는 전시가 아니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축은 제2전시실 메자닌에 마련된 특별 섹션 'KOREA FOCUS: 모던 아방가르드를 향한 꿈의 지도'다. 퐁피두센터 한화 수석 큐레이터 조주현이 기획한 이 섹션은, 1920~30년대 식민지 시기 경성에서 출발해 큐비즘과 유럽 아방가르드가 한국 근현대미술 안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변형되었는지를 추적한다.
김환기, 유영국, 박래현, 이수억, 함대정 등 한국 근현대 작가 11인의 작품 21점이 소개된다. 섹션의 시작점은 실험적 한국 큐비스트였던 시인 이상(李箱)이다. 건축·문학·시각예술을 넘나들었던 이상의 드로잉이 영상 설치 형태로 펼쳐지고, 안그라픽스와 AG랩의 사운드·아카이브·애니메이션 작업도 함께 선보인다.
조주현 큐레이터는 "KOREA FOCUS는 단순히 한국에 큐비즘이 있었다고 말하기 위한 전시가 아니다"라며 "한국의 근대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고 충돌하면서 새로운 감각을 생성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컨대 이수억의 <6.25 동란>(1954)은 큐비즘을 전쟁이라는 극한 현실을 표현하기 위한 조형적 방법론으로 활용한 사례이며, 박래현의 <노점>(1956)은 동양화 재료와 입체주의적 구성을 결합해 서구 큐비즘이 한국적 생활 세계 속에서 독자적으로 변용된 과정을 보여준다.

퐁피두센터 한화는 전시를 넘어 복합 문화예술 공간을 지향한다. 지층(GF)에는 매표소와 뮤지엄숍이, 1층에는 오디토리움·스튜디오·멀티스테이션 등 교육·강연 공간이 들어선다. 통창을 따라 배치된 카페에서는 야외 정원 '아우돌프 가든'을 바라볼 수 있다. 2·3층의 두 전시실 중 제1전시실은 층고 7m의 더블하이트 공간이며, 제2전시실은 메자닌을 갖춘 복층 구조다. 4층에는 한강을 조망하는 옥상 공간과 레스토랑이 마련된다.
한국 미술 세계 무대에 올리는 거점으로
한화문화재단은 이미 퐁피두센터와의 협업 외에 두 가지 인프라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4년간 한국 작가들의 창작과 국제 교류를 지원해 온 영민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 그리고 지난해 말 뉴욕 맨해튼 트라이베카에 문을 연 비영리 전시 공간 '스페이스 제로원'이다.
이성수 이사장은 "퐁피두센터 한화는 퐁피두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거점 역할도 맡겠다"고 밝혔다. 이번 개관전에서 KOREA FOCUS 섹션을 포함시킨 것, 개관 전 마크롱 대통령 방문 당시 한국 작가들을 같은 자리에 초청한 것도 그 일환이다.
임근혜 전시총괄 디렉터는 향후 전시 계획도 공개했다. Gallery 1(퐁피두센터 소장품전)은 큐비즘 이후 야수주의, 초현실주의, 여성추상미술, 그리고 마르크 샤갈·바실리 칸딘스키·콘스탄틴 브랑쿠시 모노그래프 전시로 이어진다. Gallery 2(동시대 글로벌 미술 기획전)는 올해 말 첫 전시를 시작하며, 디지털 영상, 인터랙티브 설치, AI, XR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몰입형·융복합 전시를 지향한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6월 6일(토) 김영나 서울대 명예교수(전 국립중앙박물관장)가 '큐비즘과 한국 현대미술'을 주제로, 6월 17일(수)에는 우정아 포스텍 교수가 '큐비즘의 확장: 해체된 시각, 움직이는 세계'를 주제로 강연한다. 7월 2일(목)에는 크리스티앙 브리앙, 조주현, 서지은 큐레이터가 참여하는 큐레이터 토크가 예정돼 있다.
관람 시간은 화·목·금·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수·토요일은 오후 9시까지 연장 운영한다. 월요일은 휴관. 관람료는 성인 기준 2만 8,000원이며, 퐁피두센터 한화 홈페이지(www.centrepompidou-hanwha.kr)에서 사전 예약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