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논란 자초한 '21세기 대군부인'...대군은 '제후국 왕'의 적자에게 주던 작위

'대군'에는 침묵하고 '천세'는 비판하는 이들의 뒤늦은 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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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최근 종영한 MBC 금토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을 둘러싼 여론의 움직임은 대한민국 대중문화계의 고질적인 두 가지 병폐를 동시에 드러냈다. 하나는 역사적 인과관계와 해당 작품 배경 설정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점, 다른 하나는 애초에 제목부터 중화를 사대하는 '제후국' 설정을 표방한 드라마의 마지막회에서 '천세'를 외치고, 왕이 구류면류관(중국 제후국 군주가 쓰던 왕관의 일종)을 쓰고 나오자 뒤늦게 비판을 하며 '역사왜곡'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해당 드라마의 배경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다. 이 작품은 실제 역사 속 조선 제22대 왕 정조와 의빈 성씨의 장자인 문효세자가 요절하지 않고 살아남아 왕위를 계승했다고 가정하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입헌군주국으로 설정한 소위 '대체역사물'이다. 

 

문제는 해당 드라마의 제목이 '21세기 대군부인'이란 점이다. 대군(大 君)이란, 중국 제후국 왕의 적자에게 주던 작위다. 이를 고려하면 해당 드라마 제작진은 애초부터 그 가상의 입헌군주국을 중국 왕조의 '제후국'이라고 설정했다는 얘기가 된다. 극 중 군주의 어머니를 황제국의 '태후(太后)'가 아닌, 제후국의 격식인 '대비(大妃)'라고 부르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제작진이 스스로 제후국 세계관을 자처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인 셈이다.

 

외왕내제(外王內帝)를 했던 고려에서는 왕의 후계자는 '태자(太子)', 후계자가 아닌 적자에게는 평양공, 계림공과 같은 공(公) 또는 개성후, 변한후와 같은 후(侯)의 작위를 내렸다. 소위 원(元) 간섭기 이후 태자는 세자(世子), 공과 후는 군(君)으로 격하됐다. 

 

이렇게 격하된 제후국식 체제는 조선조에서 법제화됐다. 전통적인 동아시아의 조공-책봉 체제 안에서 조선은 명(明)을 사대하고, 스스로를 제후국으로 낮췄다. 조선국왕은 외방(外邦)의 신하를 자처했다. 조선 국왕의 후계자는 세자, 적자는 '대군'으로 불렸다. 

 

이와 같은 세계관은 청(淸)나라가 패배한 청일전쟁(1894~1895년)을 종결하는 시모노세키 조약의 제1조 '중국은 조선국의 완전무결한 독립자주를 확인한다'로 붕괴됐다. 그 뒤에 서재필이 이끌던 독립협회 국민성금을 모금해 중국 사신을 맞던 영은문 자리에 세운 게 바로 '독립문'이다. 그 독립문 완공 한 달 전에 조선 26대 국왕 고종이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선포하고 황제에 즉위했다. 

 

 

비록 대한제국 선포가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말장난에 불과했으며, 그 후 고종이 행한 일련의 '광무개혁'이 근대화라는 허울 좋은 명분 뒤로 전제군주정 체제 구축과 국가 재정 사유화를 목적으로 한 '수구반동'적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학계의 통렬한 평가는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칭제건원 이후 왕실의 호칭이 세자에서 '황태자'로, 왕자에서 '친왕(親王)'으로 격상되었다는 점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해당 드라마에서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은 일어나지 않은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부터 해당 드라마가 내포한 모든 모순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들이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해당 드라마의 공간적 배경은 대한민국이다. 국호가 '대한(大韓)'이란 얘기다.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가 없었고, 그 뒤 일제의 식민지배도 없었고,  민족구성원이 '독립의 주체'이고 독립 목적이 '각개 인격의 발달'이라고 선언한 '기미독립선언서'와 3·1운동(1919년)도 없었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도 당연히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뜬금없이 국호가 '대한'이 됐던 것인가?

 

 

또한 '민국(民國)'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주권재민'의 나라를 뜻한다. 우리 대한민국의 근본 규범인 헌법 제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1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2항)"라고 규정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해당 드라마는 제작진은 왕실이 존재하는 입헌군주국 체제에 '민국'이라는 공화정의 국호를 붙여 그 무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21세기 대군부인'이란 제목도 마찬가지다. 상기한 것처럼 '대군'은 중화질서 안에서 제후국 왕의 적자에게 부여한 작위다. 그런 작위가 21세기에도 이어지려면 제작진이 강변했던 '입헌군주국 대한민국'의 '상국(上國)'이 있어야 한다. 그 상국에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는 관계가 이어져야 한다. 그럼 드라마에 등장하는 '입헌군주국 대한민국'의 상국은 어디인가? 해당 드라마에서는 여전히 중국이 황제국인가? 아니면, 중국을 대신하는 다른 '상국'이 있는 것인가? 그 상국도 과거 중국식 예법을 제후국에 강요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해당 드라마 속 대한민국은 상국도 없는데 왜 스스로 제후국을 자처하고 그 왕실은 제후국의 호칭과 작위를 고수한 것인가? 황제국이 없는데 왜 드라마 속 '대한민국'은 '제후국의 예법과 격식을 현대까지 계승한 국가'로 남아있어야 하는 것인가? 해당 드라마 제작진은 왜 애초에 이런 기본적인 세계관 설정도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고, 논란을 자초한 것인가? 그저 '왕실 로맨스' ‘조선풍 판타지’에 매몰됐던 것일까?

 

애초에 '대군부인'이란 제목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마지막회에 등장한 문제의 즉위식 장면도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제후국의 왕은 황제가 쓰는 십이류면류관이 아닌 구류면류관을 써야 한다. 국왕에 대한 찬양 구호도 '만세(萬歲)'가 아니라 '천세(千歲)로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왜 지금껏 해당 드라마를 소비한 이들은 뒤늦게 천세와 구류면류관에 분노한 것일까. 왜 '역사 왜곡'이라고 부르짖으며 '동북공정'을 얘기하고, 중국 자본의 문화침투까지 주장하는 것일까. 그들의 역사의식과 복색에 대한 관심, 고증 오류와 제후국 설정에 대한 분노를 감안하면, 애초에 ‘대군’이라는 작위가 제목으로 쓰인 점에 대해서는 왜 일찌감치 비판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 왜 그들은 모든 문제와 모순을 내포한 '21세기 대군부인'이란 제목 자체에 대해 분노하지 않았을까?

 

또한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역사 강사나 관련 전문가들의 행태도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역사에 대해 관심이 적거나, 드라마를 '드라마'로 소비하는 대다수 시청자들와 다를 수밖에 없는 역사전문가란 이들은 왜 해당 드라마 제목과 각종 설정, 그에 따른 논리적 모순 등을 처음부터 지적하지 않고, 방영 내내 침묵하고 있다가 돌연 목소리를 높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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