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불탄 사과가 예술이 되다—양순열의 《금단의 열매》

뉴욕 온라인 전시 5월 19일 개막… 작년 경북 대형 산불 피해 현장을 작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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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Burnt Apples〉(2025)

2025년 봄 경북 대형 산불이 할퀴고 간 자리, 그을려 까맣게 탄 사과를 오브제로 삼은 양순열(梁順烈) 화백의 온라인 전시 《우리가 사는 땅이 곧 우리이다: 금단의 열매(WE ARE THE LAND: Forbidden Fruits)》가 5월 19일(현지시간) 개막했다.

 

뉴욕 기반의 큐레이토리얼 플랫폼 제니퍼 방(JENNIFER BAAHNG)이 기획한 이 전시는 6월 30일까지 온라인(https://www.baahng.com/we-are-the-land)에서 열린다.


재앙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오브제

 

전시의 출발점은 2025년 3월 22일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에서 시작된 대형 산불이다. 성묘객의 실화로 촉발된 이 산불은 의성을 넘어 안동·청송·영양·영덕 등 경북 북부 전역으로 번져, 소실 면적 약 9만9490ha를 기록하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단일 산불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이 산불로 천년고찰 고운사와 안동 만휴정 원림이 완전히 소실되었고, 안동 병산서원과 하회마을이 산불 영향권에 들었으며, 주왕산 국립공원 일부도 큰 피해를 입었다. 탄화된 사과들은 생태적 파괴와 일상의 소멸을 고스란히 담은 오브제로, 인간의 행위가 대지에 어떤 상흔을 남기는지를 묻는다. 안동에서 작품 활동 중인 양순열은 사과를 직접 태워 작품화했고 불 탄 사과나무들을 땅에 심어 고통을 내면화했다.

 

화면 캡처 2026-05-19 222837.jpg

〈A Burnt Apple〉(2025, 약 3.5×3.5×3.5인치)

 

화면 캡처 2026-05-19 222812.jpg

〈Apple Market〉(2025, 크기 가변)

 

사과의 미술사: 원죄에서 생태 위기까지

 

출품작은 세 점이지만 강렬하다. 〈A Burnt Apple〉(2025, 약 3.5×3.5×3.5인치)은 완전히 탄화된 사과 하나를 흰 배경 위에 단독으로 놓은 작업이다. 〈Burnt Apples〉(2025, 크기 가변)는 검게 탄 사과 수십 개를 쌓아올린 설치작으로, 유통망에 닿기 직전 소각돼버린 일상의 무게를 환기한다. 〈Apple Market〉(2025, 크기 가변)은 드론으로 내려다본 과수원 현장의 스틸 영상이다. 잿더미가 된 검은 대지 위, 홀로 선 인물이 탄 사과를 박스에 주워 담고 있다.

 

기획자 제니퍼 방은 이 전시를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의 '사회적 조각(social sculpture)' 개념과 잇닿은 작업으로 읽는다. 보이스는 모든 사람이 예술가이며, 사회 자체가 개인의 창의성과 행동, 사유에 의해 빚어지는 집합적 예술작품이라고 했다. 전시는 그 명제를 발판으로, 탄화된 사과를 단순한 재난의 잔해로 두지 않는다. 변용과 무상함, 현실의 불완전성을 응시하는 살아 있는 종합예술작품(Gesamtkunstwerk)으로 되살린다.

 

라틴어 'malus'가 '과일'과 '악(惡)' 두 뜻을 동시에 품듯, 사과는 오랫동안 원죄의 성경적 표상으로 기능해왔다. 모더니즘은 그 신학적 도식을 흔들었다. 세잔은 사과로 르네상스 원근법을 해체하며 다시점 기하학의 문을 열었고, 반 고흐는 동시대비(同時對比)로 색채 표현주의를 밀어붙였으며, 마그리트는 기표와 기의를 갈라놓음으로써 개념미술의 지적 토대를 쌓았다.

 

양순열의 탄화 사과는 그 계보의 현재적 끝점에 놓인다. 기후가 불러온 산불에 그을린 사과를 소재로 삼으면서, 모더니즘의 추상과 언어철학이 차지하던 자리를 기후 위기라는 생태 위기의 현실로 채운다.


잿더미 속에서 움트는 생명의 완강한 충동 포착

 

전시는 미술사 속 사과의 긴 계보를 함께 불러낸다. 기획자 측은 탄화된 사과들을 기후 재난이 남긴 집단적 트라우마의 응결된 기억으로 읽는다. 불에 그을린 사과는 다이아몬드처럼 압축되어 아름다우면서도 섬뜩한 오브제로 변모한다. 찰나의 생태 재앙이 그렇게 단단하고 영속적인 형태로 굳는다.


양순열은 현대의 폐허 사이를 배회하며 오랫동안 견고하게 유지돼 온 인간 문명의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애도한다. 그러면서도 잿더미 속에서 다시 움트는 생명의 완강한 충동을 놓치지 않는다. 대지는 스스로의 파괴 위에서 다시 싹을 틔우고 있다.

 

양순열 작가는....

 

안동 출신 양순열은 오래동안 국내 화단에서 회화·조각·퍼포먼스를 넘나드는 다학제적 작업을 이어왔다. 전통적 모티프와 동시대 초현실주의적 어법을 결합한 현상학적 작업이 그의 주된 방법론이다. 예상을 깨는 거대한 스케일과 반사 표면을 즐겨 활용하며, 무상함과 영속성이라는 물음을 정면으로 끌어안는 몰입적 환경을 구축해왔다. 경기도미술관, 대한민국 국회 등 국내 주요 기관에서 전시한 바 있다. 안동 출신 작가가 안동의 깊은 상흔을 내면화하여 만든 작품이 뉴욕에 초대되어 전시회를 갖게 되었다.

 

글=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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