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 월간조선

질병을 예방하는 백신은 천연두 예방을 계기로 탄생했다. 인류는 수천 년간 천연두로 고통받았다. 18세기 유럽에서만 매년 40만명이 사망했다. 감염자의 20~60%가 목숨을 잃었다. 천연두 예방법으로 인두법(variolation)이 있었다.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건강한 사람에게 접종하는 방법이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200년경부터 천연두 딱지를 말려 코로 흡입시켰다. 인도에서는 천연두 농포 고름을 피부에 주입했다.

1717년 영국 대사 부인 메리 워틀리 몬태규가 오스만제국에서 인두법을 목격했다.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 두 딸에게 인두법을 시행했다. 이후 인두법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인두법은 자연 감염보다 안전했다. 치사율이 2~3%로 천연두 자연 감염 치사율 30%보다 낮았다. 하지만 접종자가 다른 사람에게 천연두를 전파하는 문제가 있었다. 매독이나 간염 같은 다른 질병도 함께 전파됐기 때문이다.

18세기 영국 농촌에서는 소젖을 짜는 여성들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들은 우두(cowpox)에 감염된 후 천연두 면역을 얻었다.

1774년 도싯주 농부 벤저민 제스티(Benjamin Jesty)가 이 민간 전승을 실험으로 옮겼다. 천연두가 유행하자 그는 아내 엘리자베스와 두 아들을 체트놀로 데려갔다. 우두에 감염된 소가 있는 곳이었다.

제스티는 바늘로 소의 우두 농포 고름을 긁어 가족의 팔에 접종했다. 두 아들은 가벼운 반응만 보였지만, 아내의 팔은 심하게 부었다. 하지만 회복 후 세 사람 모두 천연두에 감염되지 않았다.

제스티는 비난받았다. 이웃들은 그를 비인간적이라 불렀다. 사람들은 동물 질병을 인간에게 주입하면 뿔 달린 짐승으로 변한다고 두려워했다.

제스티는 과학자가 아니었다. 논문을 쓰지 않았다. 실험 결과를 공표하지 않았다. 22년 후 에드워드 제너가 같은 실험을 했다.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는 1749년 글로스터셔 버클리에서 태어났다. 13세에 외과의사 견습생이 됐다. 그때 한 소녀는 “나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 우두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1796년 5월 14일 제너는 실험을 시작했다. 소녀 사라 넬름스(Sarah Nelmes)의 손에 우두 농포가 있었다. 제너는 이 고름을 8세 소년 제임스 핍스(James Phipps)의 팔에 접종했다. 핍스는 가벼운 열과 불편함을 느꼈다.

7월 1일 제너는 핍스에게 천연두 고름을 접종했다. 핍스는 천연두에 감염되지 않았다. 우두가 천연두 면역을 준다는 증거였다.

제너는 1797년 실험 결과를 왕립학회에 제출했지만 거절당했다. 1798년 제너는 사례를 추가해 소책자를 출판했다. 제목은 〈우두의 원인과 효과에 관한 탐구〉였다.

제너는 이 예방법을 ‘vaccination’이라 불렀다. 라틴어 ‘vacca(소)’에서 유래했다. 우두는 소에서 온 질병이었다. 제너는 이 단어로 인두법(variolation)과 구분했다.

1800년 ‘vaccine’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됐다. 1891년 루이 파스퇴르가 이 용어를 확장했다. 모든 감염병에 대한 인공 면역 유도를 ‘vaccine’이라 부르기로 했다. 제너를 기리는 의미였다.

제너는 백신을 무료로 나눠줬다. 1802년 영국 의회는 제너에게 1만 파운드를 지급했다. 1807년 2만 파운드를 추가 지급했다. 1800년 의사 존 헤이가스(John Haygarth)가 제너로부터 백신을 받았다. 그는 하버드대 교수 벤저민 워터하우스에게 백신을 보냈다. 워터하우스는 뉴잉글랜드에 백신을 도입했다.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 백신을 지지했다. 워터하우스를 국립백신연구소 백신 담당자로 임명했다. 미국 전역에 백신 접종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나폴레옹은 프랑스군 전원에게 백신을 접종했다. 제너에게는 메달을 수여했다. 제너의 요청으로 영국인 포로 2명을 석방했다. 1803년 제너가 쓴 책은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로 번역됐다. 스페인 국왕은 백신 원정대를 파견했다. 미주와 극동 지역에 백신을 전파했다.

1840년 영국에서 인두법이 금지됐다. 백신이 인두법을 완전히 대체했다. 1840~1850년대 영국과 미국 일부 지역에서 백신 접종이 의무화됐다. 1900년까지 일부 유럽 지역에서 천연두가 사라졌다. 하지만 식민지와 다른 대륙에서는 여전히 매년 200만 명이 사망했다.

백신은 의학사 최대 발명품이다. 천연두 백신 이후 다양한 백신이 개발됐다. 1872년 루이 파스퇴르가 닭콜레라 백신을 만들었다. 최초의 실험실 제조 백신이었다. 1885년 광견병 백신이 개발됐다. 1937년 황열병 백신, 1939년 백일해 백신, 1945년 인플루엔자 백신, 1955년 소아마비 백신이 등장했다.

백신은 수억 명의 생명을 구했다. 천연두는 1979년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인류가 완전히 박멸한 첫 전염병이다. 제너는 자신이 예측한 대로 천연두 퇴치를 목격하지 못했다. 1823년 74세로 사망했다. 하지만 그의 개념은 살아남아 인류를 구했다.

‘vacca’에서 시작된 단어 하나가 면역학의 기초가 됐다. 소 한 마리가 인류를 천연두로부터 해방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