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공모전 응모작이 갑자기 폭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AI가 스토리를 짜고 초안까지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학계도 다르지 않다. AI에 의존한 논문 투고가 늘고, 심사자는 다시 AI로 심사한다. 학생은 과제를 AI로 해결하고, 교수는 또 다른 AI로 이를 적발한다.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는 최근 조선일보 칼럼에서 "지난 2~3년 사이 창작·교육·연구 생태계가 AI에 의해 지각 변동했다"며 "누가 창작했는지, 누가 평가하는지, 책임과 권위는 어디 있는지 불분명한 채로 생태계가 혼란스럽게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입은 안 뽑고 중견만 찾는다"

홍 교수에 따르면, 변화는 노동 시장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최근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신입 사원 채용을 급격히 줄였다. 코딩 능력만 보면 AI가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젝트 기획, 장기 전략 수립, 조직 내 조율 같은 중견 프로그래머의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대형 로펌도 신입 변호사를 줄이고 문서 검토와 분석은 AI에 맡긴다. 하지만 사건 방향 설정과 전략적 결정은 인간 전문가가 한다.

조직은 점차 "신입이 아니라 중견"을 필요로 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여기서 근본적인 모순이 발생한다. 신입을 뽑지 않으면 중견으로 성장할 인력 자체가 사라진다. 중견의 전문성은 오랜 훈련, 시행착오, 실전 경험이 축적돼 생긴다. 신입이 중견으로 성장하는 사다리가 무너지면 결국 조직도 붕괴한다.

반복 업무는 AI가 대체하고 전략·기획은 인간이 맡는 구조에서, 조직은 신입 인재의 성장 경로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AI로 약화되는 직무(신입 개발자·초년 변호사)와 강화되는 직무(전략·기획·조율) 사이의 격차를 사회는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까.

창작의 진정성, 평가의 공정성

AI가 만든 결과물과 인간의 창작물을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 창작의 진정성과 저작권은 어떻게 재정의돼야 하나.

AI가 교육·심사·채점에 깊숙이 개입하는 시대에 평가의 공정성과 책임 소재는 어떻게 확립할 수 있을까. AI가 제시한 답을 검증하는 인간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에, 교육은 비판적 사고와 해석 능력을 어떻게 강화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법률·교육처럼 전문성이 높은 직종에서 'AI 활성화'와 '전문가 판단력'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AI가 구현하는 평준화 이상의 시대에 인간의 학습·사유·경험 가치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향후 10년, AI와 인간의 역할 분담이 고착되기 전에 사회·정부·교육기관은 어떤 규범과 인프라를 구축해야 진정한 공생 체계가 가능한가.

답을 찾아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AI는 이미 우리 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고, 변화의 속도는 가속화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다음 세대의 일자리, 교육,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