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면역학자인 발리 플렌드란(Bali Pulendran·69) 스탠퍼드대 교수의 강연은 시종 진지하고 알찼다. 노화 연구에 관한 면역학 분야의 연구 성과를 친절히 설명하며 노인의 항(抗)바이러스 면역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흥미로운 제안을 해 박수를 받았다.

플렌드란 교수는 현재 스탠퍼드 의과대학에서 병리학 및 미생물·면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한 Stanford Institute for Immunity, Transplantation and Infection의 소장이기도 하다. 스리랑카 태생인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를 나와 호주 멜버른대에서 면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17년부터 스탠포드대에 재직 중이다.

그는 백신 면역학과 시스템 생물학을 접목한 연구로 유명한데 그의 학문은 시스템 백신학(Systems Vaccinology)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노화, 감염병, 자가면역질환 등 다양한 면역 반응 메커니즘을 탐구하고 있으며 Nature, Science, Cell 등 세계적 학술지에 다수 논문 게재한 학자다.

발리 플렌드란 교수는 작년 3월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초청으로 방한한 적이 있다. 이번이 두 번째 방한. 기자는 6월 20일 플렌드란 교수의 동시통역 강연을 꼼꼼히 받아적었다. 이날 강연록을 요약해 소개한다.

세계적인 면역학자인 발리 플렌드란(Bali Pulendran) 스탠퍼드대 교수. 사진=서울시니어스타워 제공

“(한국어로) 감사합니다. 여기 와서 영광입니다.”

플렌드란 교수는 한국어로 인사를 먼저 건넸다.

“저는 면역체계를 공부한 과학자다. 노화 전문가는 아니다. 노화와 함께 면역 체계에서 발생하는 변화에 대해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면역학 분야에서 동물 모델, 예를 들어 쥐나 또는 원숭이, 지렁이, 초파리 등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들 동물을 통해 면역학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노벨 수상자들, 특히나 면역학 분야에서의 노벨 수상자들을 보게 된다면 거의 대부분이 기초과학에서 동물모델을 활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약물이나 백신의 경우 동물에는 잘 작동하지만 반드시 인간에게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 면역학의 원칙 자체는 쥐와 사람 사이에 (면역 체계가) 유사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에서 굉장히 다르다. 인간의 다양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 개인조차 지금의 나와 20년 전의 나, 지금의 나와 20년 후의 내가 완전히 다르다. 시간의 화살표 때문에 사람이 바뀐다. 인구 집단 사이에서도 다르다.”

플렌드란 교수는 면역학 연구가 전임상 연구(Preclinical Research)를 거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전임상 연구란 신약이나 백신, 치료법이 사람에게 안전하고 효과가 있을지를 검증하기 위해 동물이나 세포 수준에서 연구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나 동물과 사람이 면역체계가 같을 수 없고 사람도 천차만별이다. 마찬가지로 노인과 젊은이를 동일 선상에서 논할 수 없다.

- 어떻게 백신과 면역체계 연구에 뛰어들게 되었나.

“백신을 일종의 인체 면역에 대한 탐색기로 써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사실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백신 접종 받는다. 나이가 들면서도 접종을 받는다. 지금 인증받은 백신이 다행히 27건이 넘는데 인체 내애서 면역 체계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활성화시킨다.

한편, 백신을 인간에게 투여하면 굉장히 정밀하고도 또 동기화된 면역 체계를 교란시킨다.

이제 황열병(Yellow fever)은 우리와 상관없는 질병이 되었다. 하지만 백신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특히나 사하라 이남이나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는 굉장히 심각한 질병이었다. 다행히도 7여년 전 아주 훌륭한 백신이 개발돼 99%의 효능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 생(生) 바이러스 백신은 ‘백신의 골드 스탠더드’라고 평가받지만, 수십 년 동안 이 백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기전 이해를 하지 못했다.

이 백신으로 면역 체계를 좀 더 연구를 해보자, 백신의 작동 방식과 면역학적 방식을 함께 연구해보자, 라고 결심했고 동물 모델이 아니라 인체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황열병 백신에 대한 접종 반응의 결과가 인체 내에 어떻게 이뤄지는지 강력한 연산학, 그리고 AI의 도움으로 ‘예측 유전자 시그니처’를 만들 수 있었다. 어쨌든 이것은 결국 시스템 백신학(Systems Vaccinology)의 최초의 적용 사례가 되었다.”

예측 유전자 시그너처(Predictive Gene Signature)는 말 그대로 특정 생물학적 반응이나 질병의 발생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유전자들의 조합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유전자 기반의 생체 신호등” 같다. 특정 유전자들이 어떤 패턴으로 발현되는지를 보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수많은 환자들의 유전자 발현 데이터를 수집한다. 특정 결과(예: 치료 반응, 질병 발생)와 관련 있는 유전자 패턴을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 예측력이 높은 유전자 조합을 ‘시그너처’로 정의할 수 있다.

-Diminished transcriptional response antiviral signature in the elderly

“이 연구를 통해 바이러스(백신)에 대한 노인의 유전자 반응이 저조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독감 백신에 대한 항체 반응이 고령 인구에서 눈에 띄게 더 낮았다. 마찬가지로 독감 백신에 대한 반응이 나이와 함께 ‘음’의 반응을 보이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젊은 인구 대비 고령 인구가 유전자 발현의 반응이 훨씬 더 낮았는데, 인터페론(IFN)이란 유전자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인터페론은 바이러스 감염을 조절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 인터페론 같은 항바이러스 물질을 만드는 유전자들이 충분히 활성화되지 않아서, 감염 초기 방어가 노인에게 약해질 수 있다.”

플렌드란 교수는 노인의 백신 반응을 예측할 때 이런 감소된 유전자 시그너처를 중요한 지표로 활용한다. 예를 들어, 젊은 사람은 백신 접종 후 항바이러스 유전자들이 활발히 작동하지만, 노인은 그렇지 않았다.

사진=서울시니어스타워 제공 

- 노화가 면역체계에 미치는 영향은?

“폐렴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폐렴 구균 백신은 Pneumovax 라는 다당류 백신과 Prevnar라는 결합 백신이 있다.

다양한 집단, 예를 들어 25~45세, 60~69세, 70~89세를 상대로 Prevnar와 Pneumovax의 접종 전후의 유전자 발현을 보면 사람마다 이질성이 굉장히 높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결론은 나이가 들수록 유전자 발현을 보면 단핵구(monocyte)가 증가하고 염증도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이게 바로 노화를 겪는 면역체계의 특징 중 하나이다.”

노인의 면역체계와 염증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관계를 “염증성 노화(Inflammaging)”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노화 과정에서 면역 시스템이 약해지면서 동시에 만성적인 염증 상태가 지속된다.

안타깝게도 노화는 면역세포의 수와 기능을 저하시킨다. 예를 들어 T세포, B세포의 생성이 줄고, 반응 속도도 느려진다. 면역 균형도 붕괴된다. 병원균에 대한 방어가 약해지는데, 반면 염증 반응은 오히려 과도하게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The impact of the microbiome on vaccine response : implications for aging.

“마이크로바이옴(미생물 군집)이 백신 반응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면 이렇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노화의 기전적인 이해를 돕는다. 유전자 패턴과 관련해서 TLR5라는 유전자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이 유전자는 박테리아를 인식하는 단백질을 코딩하는 기능을 한다. 쥐에게 TLR5라는 유전자를 제거를 한 뒤 독감 백신으로 접종하니 면역반응이 두드러지게 떨어졌다. 왜 그럴까?

마이크로바이옴이 박테리아 유전자 센서를 활성화시키고 면역 반응을 강화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이크로바이옴이 없는 멸균쥐를 가져다가 실험을 하니 백신의 면역반응이 확연히 떨어지더라. 따라서 면역반응에서 마이크로바이옴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은 우리 몸, 특히 장에 사는 수많은 미생물(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등)들의 집합이다. 면역학에서 마이크로바이옴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해롭지 않고 오히려 우리 몸을 돕는 ‘좋은 균’들이 많다. 장(腸) 속 면역세포의 70% 이상이 마이크로바이옴과 직접 접촉한다. 마치 면역 시스템의 훈련 파트너 같은 역할을 한다. 나쁜 균(예: 알레르기, 자가면역질환, 장 질환(크론병, 과민성 대장 증후군 등)이 많아져 면역 시스템이 과잉 반응하거나 약해질 수 있다. 반대로 건강한 마이크로바이옴은 병균 침입을 막아주고 염증도 줄여준다.

계속된 플렌드란 교수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쥐의 결과가 사람에 통할까. 우리가 백신 접종을 받고, 항생제도 투약하는데, 이 둘 사이의 상관관계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인간 연구를 했다. 여러 대조군을 두고 임상실험한 결과 역시 마이크로바이옴이 면역체계에 상당한 영향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거의 인과관계를 볼 수 있었다.

사람에게 항생제를 주입하면, 혈액에서 유전자 패턴을 볼 수 있었는데, 유전자 발현이 염증 시그니처처럼 작동하더라.

예를 들어 항생제를 인체에 투입하면 대장에 박테리아가 없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염증 유전자가 갑자기 올라간다. 젊은 세대, 노인 세대 할 것 없이 같은 염증 패턴을 보았다. 즉 건강한 사람에게 항생제를 투약해서 마이크로바이옴을 리셋하게 된다면, 노인이 염증반응과 같은 반응이 나타난다.”

염증이란 우리 몸이 외부 침입자(세균, 바이러스 등)나 손상에 반응하는 방어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이 반응이 지속되거나 과도하면, 오히려 몸에 해로운 만성 염증이 생길 수 있다.

장(腸)내 마이크로바이옴은 면역세포의 반응을 조절한다. 건강한 마이크로바이옴은 염증을 억제하는 물질을 만들어 면역 균형을 유지한다.

만약 불균형(dysbiosis)이 문제가 생기다면, 즉 마이크로바이옴의 다양성이 줄어들거나 나쁜 균이 많아지면, 면역 시스템이 과잉 반응하게 된다. 마이크로바이옴이 무너지면 장벽이 약해지고, 염증 유발 물질이 혈류로 들어가 전신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이로 인해 자가면역질환, 염증성 장질환(IBD), 아토피, 천식 등이 유발될 수 있다. 궤양성 대장염 환자들은 건강한 사람보다 장내 미생물 다양성이 낮고, 염증 유발균이 많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심지어 비만, 당뇨, 심혈관 질환도 마이크로바이옴 불균형과 관련된 저등급 만성 염증과 연관이 있다.

사진=서울시니어스타워 제공 

발리 플렌드란 교수는 <서울시니어스 포럼 2025>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1. Vaccination induced antibody responses are impaired in the elderly.

2. In the elderly, a baseline signature of monocytes/inflammation is negatively correlated with antibody response to vaccination.

3. Ablation of the microbiota with antibiotics induces an inflammatory signature of aging and diminished vaccine responses.

4. Adjuvanted vaccines induce persistent epigenetic imprinting of monocytes resulting in suppressed inflammation and enhanced antiviral immunity.

This suggests that “EPIGENETIC ADJUVANTS” may be useful in reversing

inflammaging and enhancing antiviral innate immunity.

1. 노인에서 백신 유도 항체 반응이 저하된다 : 노인은 백신을 맞아도 충분한 항체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면역세포의 노화, 염증 환경, 유전자 반응 저하 등이 원인이다.

2. 노인의 단핵구/염증 관련 유전자 시그너처는 항체 반응과 음의 상관관계를 가진다 : 노인의 면역세포(특히 단핵구)가 염증 유전자를 많이 발현하고 있을수록, 백신에 대한 항체 반응은 더 약하다는 뜻이다. 즉, 염증이 많을수록 백신 효과가 떨어진다.

3. 항생제로 마이크로바이옴을 제거하면 노화형 염증 시그너처가 유도되고 백신 반응이 약화된다 : 장내 미생물을 항생제로 없애면, 노화와 유사한 염증 반응이 생기고, 백신 효과도 더 나빠진다. 이는 마이크로바이옴이 면역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4. 보조제가 포함된 백신은 단핵구에 지속적인 후생유전학적 각인을 남겨 염증을 억제하고 항바이러스 면역을 강화한다 :특정 백신 보조제(adjuvant)는 단핵구에 ‘면역 기억’ 같은 유전자 조절 흔적(epigenetic imprinting)을 남긴다. 그 결과, 염증은 줄고, 항바이러스 면역은 더 강해진다.

“Epigenetic Adjuvants”는 노인의 염증성 노화(Inflammaging)를 되돌리고 항바이러스 면역을 강화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유전자 조절을 통해 면역세포의 기능을 바꾸는 ‘후생유전학적 보조제’는 노인의 만성 염증 상태를 완화하고, 백신 효과를 높이는 새로운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발리 플렌드란 교수의 주장이다.

-“면역 기억”이란?

플렌드란 교수는 “면역 기억(Immune Memory)”이란 개념을 강조한다. 면역 기억은 단순히 병원체를 ‘기억’하는 것 이상의 개념이다. 그는 이 개념을 면역 시스템의 ‘학습 능력’과 ‘지속적인 재프로그래밍’으로 확장해서 설명한다.

한 번 감염되거나 백신을 맞은 후, 면역계가 그 병원체를 ‘기억’하고, 다음에 다시 들어오면 더 빠르고 강하게 반응하는 능력이 있다. 이 ‘기억’은 기억 B세포와 기억 T세포에 저장된다.

그는 선천면역(Innate Immunity)도 일정 수준의 기억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trained immunity” 또는 “innate immune memory”라고 부른다. 또 후생유전학적 각인(epigenetic imprinting)이란 개념도 강조하는데, 백신이나 감염이 유전자 발현 패턴을 바꾸고, 이 변화가 장기적으로 ‘기억’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서 보조제(adjuvant)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정 보조제가 기억 형성을 강화하고, 염증을 억제하면서도 항바이러스 반응은 증폭시킬 수 있다. 따라서 염증성 환경 때문에 면역 기억이 약화된 노인을 후생유전학적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발리 플렌드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어떤 백신은 단순히 항체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면역세포의 유전자 상태를 재프로그래밍해서 장기적인 면역 기억을 형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S03 보조제를 포함한 백신은 단핵구(monocyte)에 염증 억제와 항바이러스 반응 강화라는 이중 효과를 남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