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각

-이동순

엄마는 거기서

나를 아주 잊으셨나

밤마다 꿈에도 안 오시고

엄마는 거기서

내가 안 보고 싶나 봐

이 아들은 그토록 기다리는데

엄마는 거기서

내 생각날 때 어찌 사노

난 엄마가 그리워 죽을 것 같은데

맞아 엄마는

내가 보기 싫었던가 봐

무덤 속에 뼈조차 하나 없던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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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길

왜 하필 그때

내가 엄마 뱃속에 들었을까

전쟁은 붉게 장미처럼 달아오르는데

침략군이 내일모레면

마을로 파도처럼 밀려온다는데

모두 피란길 떠났는데

엄마는 만삭이라

먼 길 못 떠나고 그 여름 삼십 리 길

걷고 걸어 산지기 집에 가셨지

누나들이 좌우에서

겨드랑 끼고 부축 걸음으로 비틀비틀

겨우 오른 높은 산

그 엄마 뱃속에

내가 들어서 엄마 힘들게 했지

나 아니라면 쉽게 오를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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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당신과 나는

어떤 인연으로 났기에

이토록 일찍 헤어지고 말았나요

나 태어나고

불과 열 달 만에 서둘러 가셨지요

그때 심정이 어떠셨을까

난 조금이라도 당신과의 시간 늘려보려고

배 속의 열 달 배 밖에서 열 달

사람들에게 늘 이렇게 말한답니다

열 달이나 스무 달이나

그게 그거지만 나에겐 대단하지요

내가 엄마랑 함께 지냈던 시간이니까

엄마 떠나신 지 수십 년

나는 지금도 엄마 생각만 합니다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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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시인 이동순(75)이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시를 모아 한 권의 시집을 펴냈다. 시집 제목은 《어머니》. 이 3음절의 큰 산이면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다.

이 시인은 지금까지 문학비평서나 평론집을 제외하고 23권의 시집과 10권짜리(전5부작) 서사시집을 펴냈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 사모곡 시집은 매우 특별하다.

시인에게 어머니는 배 속에서의 열 달과 출산 후의 열 달의 만남이 고작이지만 시집 어디를 펴봐도, 어떤 시를 읽어도 두 눈이 퉁퉁 붓고 남을 만큼 애뜻하다. 

시인은 그 스무 달의 시간을 평생 품어 살아 왔다. 이동순 시인은 "어쩌면 어머니가 나를 시인의 길로 이끌어주셨으리라. 어머니는 내 평생의 화두요 천형(天刑)이었다"고 말한다.

6·25 발발 무렵 그는 어머니 배 속 불과 8개월의 태아였다. 경북 김천 구성면 상좌원 마을에 북한군이 들어온 때는 그해 8월 초순.

어머니는 마을에서 약 8km가량 떨어진 나실(羅室)이라는 문중(門中) 종산(宗山)을 향해 걷고 또 걸어서 당도했다. 그가 태어나는 그 순간에도 국군과 북한군이 서로 맹렬히 쏘아대는 대포, 기관포 소리가 종일 하늘을 찢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출산 직후부터 몸이 회복되지 않은 채 시름시름 자꾸 나빠져만 갔다. 아기는 배고픔으로 줄곧 악을 쓰며 울어대기만 했다.

이동순 시인은 《월간조선》 2022년 11월호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병석에 누워서도 자나 깨나 어린 막내 생각으로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저 윗목의 어린것은 금방 저를 따라올 것이니 걱정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계모 설움 안 받도록 제발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조용히 숨을 거두셨습니다.

어머니가 없는 소년 시절의 애달픔은 이루 필설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와 형, 큰누나가 출근하고 없는 집에서 나는 작은누나랑 함께 지냈습니다. 그저 적막한 시간을 보낸 듯합니다.”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가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 정년퇴임 후 가요연구가로 활동 중이다.

다음은 시집 《어머니》에 실린 머리말 ‘내 평생의 화두였던 어머니’이다.

<세상에서 가장 결핍을 느낀 것은 '어머니'란 세 글자였다. 어머니 돌아가실 때 나는 불과 10개월이었다. 어머니는 마지막 유언에서 윗목의 저 어린것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하셨다. 왜냐하면 곧 당신을 따라올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한 아기가 자라서 한세상을 살았다. 지난 세월 가만히 돌이켜 보노라니 어머니 안 계신 삶은 텅 빈 공황이었다. 먹어도 허기는 여전하고, 그 어떤 것에도 언제나 궁핍과 결손이었다. 그 가혹한 고통 속에서 나는 시인이 되었다. 어쩌면 어머니가 나를 시인의 길로 이끌어주셨으리라. 어머니는 내 평생의 화두요 천형(天刑)이었다. 청소년 시절엔 일찍 떠난 당신을 원망도 했지만 자라면서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깨달았다. 어머니는 그렇게 홀연히 떠나셨지만 아주 떠나시지 않고 내내 아들 곁에 머물러 계신다. 내가 쓴 시 작품의 그 어디에도 어머니가 묻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오래전부터 어머니 테마로만 썼던 시 작품을 따로 모아서 한 권의 시집으로 엮어보려는 생각을 품었다. 그 결행을 오늘 하는 것이다. 2025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