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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공사가 책에서 말한 장성택 처형의 비밀은?

장성택이 데리고 놀다 죽인 젊은 여성들 오봉산 화장장에서 비밀 소각 처리도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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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의 행군 시절’ 김정일 명령으로 1999년 북한 유일의 火葬場 오봉산봉사사업소 완성
⊙ 부검한 시체만 火葬할 수 있는 화장장에 부검도 하지 않은 신원 미상의 젊은 여성의 시체 다수 옮겨져
⊙ “장성택과 최룡해가 놀고 버린 여자들”(고위 탈북자 A씨)
⊙ “노력영웅 칭호 받았던 오봉산관리소 소장 구금, 장성택이 데리고 놀다 죽인 여성 화장했다는 혐의”(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
⊙ “2002년 장성택 한국 방문 때 마음에 드는 여성과 잠자리 요구… 화류계 쪽에서는 유명한 이야기”(해당 여성의 남자친구 및 다수 업계 관계자의 2012년 증언)
⊙ “(장성택이) 남쪽에 가서 폭탄주도 배우고 해서, 아파서 쉬게 했다”(김정일이 2005년 6월 대북특사였던 정동영 의원에게)
⊙ 反장성택 세력 “지방 사람들은 장성택을 수령님(김정은)보다도 높은 사람으로 안다”고 김정은에게 보고, 이 같은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인지
⊙ 어렸을 때부터 장성택 원망한 김정은, 권력 쥐자마자 죽일 생각한 듯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대기근을 겪었다. 확인된 통계는 없지만,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이 시기에 최대 300만명까지 굶어 죽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당시 300만은 북한 전체 인구의 12%였다. 김정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인민들과 같이 죽 한 끼를 겨우 먹으며 인민들의 살림살이를 걱정한다. 적기가를 높이 부르며 오늘의 이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실제로 김정일은 한 끼에 1000만원도 넘을 고급 음식을 차려놓고 질펀한 파티를 벌였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때 죽은 사람들을 대동강 남쪽인 평양시 낙랑구역에 있는 오봉산에 묻었다. 산 전체가 무덤 터가 됐다. 김정일은 “곡식 지을 땅도 모자라는데, 산 전체가 무덤 터가 돼서야 하겠느냐”며 화장장 건설을 명령했다. 1999년 오봉산봉사사업소(화장장)가 완성됐다.
 
 
  북한 유일한 정식 화장장
 
원 안 화살표 모양이 가리키는 곳이 대동강 남쪽 평양시 낙랑구역에 있는 오봉산봉사사업소의 위치다. 사진=구글 지도
  오봉산봉사사업소가 1999년 완성됐다는 사실은 과거 《월간조선》이 일본인 납북자 요코다 메구미 씨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밝혀졌다. 당시 북한은 메구미 씨의 남편 김영남씨를 앞세워 메구미 씨가 1994년에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김영남은 “메구미를 오봉산봉사사업소에서 1997년 봄에 화장했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다수의 고위 탈북자는 “김영남씨가 요코다 메구미 씨를 1997년 봄에 화장했다고 주장했는데 오봉산봉사사업소는 1999년에 건설됐습니다. 만들지 않은 화장터에서 어떻게 화장을 합니까”라고 증언했다.
 
  오봉산봉사사업소는 북한의 유일한 정식 화장장이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북한에서 화장장을 사용하려면 몇 가지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사람이 죽으면 인민보안성(우리의 경찰) 분주소(지구대)에 신고한다. 분주소는 시신을 기술감정소(우리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剖檢)을 의뢰한다. 북한은 고위 간부든 일반 주민이든 50세 미만의 사람이 사망했을 경우 예외 없이 부검을 한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에서는 병원에서 오랫동안 앓다가 사망하는 등 정확한 사인이 밝혀진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시신에 대해 부검을 한다”며 “이는 사람이 죽으면 일단 살인으로 간주하고,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척부터 용의선상에 올리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의사들의 실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시신 해부를 법제화한 측면도 있다.
 
  실제 북한은 ‘최고 존엄’인 김일성, 김정일도 부검했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때도 병리해부검사를 시행했다고 발표했고, 2011년 12월 김정일이 죽었을 때도 사인(死因)을 ‘중증급성심근경색과 심장성 쇼크의 합병’이라고 발표하면서 “병리해부검사에서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되었다”고 밝혔다. 병리해부검사는 우리의 ‘부검’에 해당한다. 부검을 통해 사인이 밝혀지면 인근 병원 또는 진료소에서 사망진단서를 발급해 준다. 사망진단서를 화장장에 제출해야만 화장이 가능하다.
 
 
  “장성택이 놀다 죽인 젊은 여자들이 화장장에…”
 
오봉산봉사사업소에 언제부턴가 부검도 하지 않은 신원 미상의 젊은 여성의 시체가 다수 들어왔다. 시체를 화장하는 모습.
  이런 오봉산봉사사업소에 언제부턴가 부검도 하지 않은 신원 미상의 젊은 여성의 시체가 다수 들어왔다. 고위 탈북자 A씨는 “장성택(張成澤)과 최룡해가 놀고 버린 여자들”이라고 했다.
 
  “장성택이 많은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 가진 자식들이 15명도 넘는 것으로 안다. 그는 기쁨조를 관리했고, 그와 관계하지 않은 기쁨조 여성이 거의 없을 것이다. 자신의 비밀을 아는 젊은 여자들을 죽여 화장해 버린 것이다. 최룡해도 마찬가지다. 그도 김정일의 파티를 위해 흑인 모델들을 수입하고, 쾌락을 위해 여배우의 이를 뽑고 ××××(변태적 성행위)를 하게 한 인물로 유명하다. 성 도구로 사용하고 나서 쥐도 새도 모르게 다 처리한 것이다.”
 
  장성택이 부검도 하지 않은 시체를 오봉산봉사사업소에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북한의 ‘2인자’로 통하던 그가 노동당 행정부 부부장이었기 때문이다. 노동당 행정부는 국가안전보위부(우리의 국가정보원), 인민보안성(우리의 경찰청), 검찰소, 재판소 등 공안·사법기관을 관할하던 부서다. 장성택은 2007년 말부터 수장을 맡아 자기 세력의 뿌리를 내렸다. 앞서 설명했듯 부검을 담당하는 기술감정소는 보안성 산하 기관이다.
 
  A씨는 “시체 처리와 관련한 모든 부서가 장성택의 손아귀에 있었다. 김정은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마 장성택을 견제한 북한 보위사령부(현 보위국·우리의 군 기무사)가 김정은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보위국은 오래된 군사 정보기관이다. 군 내부 동향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게 주요 임무이지만 요즘은 탈북자 공작원을 이용한 테러와 정보 수집 공작을 병행하고 있다.
 
  북한 정보의 신뢰성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다. 일반 주민들이 모두 알 수 있는 정보는 신뢰성이 높은 편이지만 권력층 내부의 정보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A씨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믿을 수는 없다. 다행히 A씨의 증언은 사실에 근접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러 루트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특히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의 증언이 컸다.
 
 
  오봉산관리소 소장이 구금당한 이유
 
북한은 고위 간부든 일반 주민이든 50세 미만의 사람이 사망했을 경우 예외 없이 부검(剖檢)을 한다. 김정일 시신 사진이다. 북한은 김정일 시신도 부검을 했다.
  태 전 공사는 최근 발간한 《태영호의 증언-3층 서기실의 암호》에 이같이 썼다. 교보문고가 집계한 6월 1주(5월 31일~6월 6일) 베스트셀러 차트에서 《태영호의 증언-3층 서기실의 암호》는 1위를 내달리는 중이다.
 
  〈장성택의 자녀들이 ‘한 버스’가 된다는 말도 나돌았다. 영화 ‘줄기는 뿌리에서 내린다’에 출연한 여배우를 비롯해 ‘장성택의 여자’로 지목된 여러 연예인이 체포되어 사라졌다.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던 오봉산관리소 소장도 구금됐다. 장성택이 데리고 놀다 죽여버린 여성들을 화장했다는 혐의였다. 만경대구역의 금성고등중학교 교장도 ‘중앙당 5과’로 선발된 어린 여학생들을 장성택의 성 노리개로 바쳤다는 이유로 잡혀갔다. 이 사건으로 북한에는 딸 가진 부모들이 ‘중앙당 5과 대상’을 기피하는 새로운 풍조까지 생겼다.〉
 
  ‘5과 대상’은 북한에서 널리 알려진 용어라고 한다. ‘5과’는 조선시대로 치면 대궐에서 일하는 궁녀 조직이라고 보면 된다. ‘5과’는 중앙당 조직지도부 산하 부서다. 조직지도부는 외형상 노동당 중앙위원회 산하 비서국을 구성하는 20개 안팎의 부서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규모와 기능, 역할과 권한은 실로 막강하며 여타 부서에 비할 바가 아니다. 조직지도부라는 이름에 붙어 있는 ‘지도’라는 낱말에는 다른 모든 부서를 지도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구체적으로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가 당의 조직지도부를 통해 구현되며 조직지도부가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대표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5과’가 뽑는 대상은 14~16세 사이의 여학생이다. 질병검사, 서류심사, 면접 등을 통해 선발한다. 선발 여학생은 직종별로 전문교육을 받는다. 전문교육을 거친 이들은 입대 방식으로 호위사령부나 봉화병원 등에 파견되는데, 이 가운데 미모가 출중한 학생은 김씨 가문의 전화수, 타자수, 경호원, 기쁨조, 간호원 등으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 전 공사의 증언이다.
 
  “5과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는 집에 갈 수 없으며 가족도 볼 수 없다. 언뜻 ‘어떤 부모가 딸을 보내려고 할까’라는 의구심이 들 수 있지만, 장성택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일반 주민에게는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5과에 딸을 보낸 가정에 각종 특혜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건 이후 ‘더 키 크지 마라’ ‘더 예뻐지지 마라’고 비는 엘리트 계층의 부모를 봤다. 예쁘게 키운 딸자식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급속히 퍼진 것이다.”
 
  5과에 들어가 일하는 여성들의 퇴직 연령은 26~27세. 퇴직 후에는 김정일이나 김정은을 얼마나 가까이 보좌했느냐에 따라 배우자가 결정된다고 한다.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좌했을 경우, 김씨 가문의 호위군관과 결혼한다는 게 태 전 공사의 설명이다. 그다음 부류는 외교관, 당 일꾼, 무역기관 성원 등 북한에서 인기 있는 직종의 종사자를 결혼 상대로 골라준다. 5과에서 퇴직한 여성은 대부분 기밀 유지를 위해 당 학교에 보내지며 졸업 후 당 기관에서 일한다.
 
 
  2002년 한국 방문한 장성택과 강남 텐카페
 
2002년 북한 경제시찰단으로 온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 당시 장성택은 남한에 머무는 동안 국정원 직원들과 함께 강남의 고급 술집에 간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 탈북자 A씨와 태 전 공사의 증언을 봤을 때 장성택의 여성 편력은 남달랐던 것 같다. 과거 그가 관리했던 은하수 예술단 단원들을 기쁨조로 활용하며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설’이 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자는 2012년 대선 당시 유력 대선 후보였던 한 정치인을 둘러싼 소문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강남 일대 최고급 룸살롱(텐프로, 텐카페) 관계자 다수를 만나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이들에게서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난 뒤로 기억한다.(그들은 월드컵이 있던 해라 시기는 정확하다고 입을 모았다.) 누군가 강남(청담동)에 있는 최고급 술집(그들은 텐카페라고 표현)을 통째로 빌렸다. 예약자는 아주 중요한 손님을 모셔야 하니, 괜찮은 선수(텐카페에서 일하는 아가씨)들로 ‘세팅’을 해달라고 했다. 가게 주인은 신경 써서 세팅했다. 예약 시각이 되자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아가씨들은 처음에는 돈 많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내 누구인지 대충 알게 됐다. 양복 깃에 김일성·김정일 초상이 들어간 배지를 단 사람이 있었기 때문.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녀들은 배지를 단 사람을 ‘빨갱이’로 지칭했다. 물론 앞에서는 ‘사장님’ ‘대표님’이란 존칭을 썼다. 소위 ‘빨갱이’는 그 자리에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었다. 가게 마담을 통해, 잠자리를 부탁한 모양인데 처음에는 거절했다. 텐카페 같은 고급 술자리에서 일하는 여성의 경우 손님과 잠자리를 갖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담에게 ‘굉장히 중요한 손님이니 (여성에게) 잘 좀 말해보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마담은 해당 여성에게 고가의 명품(시계인지, 가방이었는지는 기억이 희미했음)을 주면서 제발 한 번만 나가 달라고 부탁했다. 여성은 어쩔 수 없이 ‘빨갱이’ 손님과 함께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여성은 ‘빨갱이’라고 생각한 손님에게 먼저 씻으라고 한 뒤 도망쳐 나왔다. 그러고 남자친구에게 울면서 전화를 걸었다. ‘우리 가게에 빨갱이가 왔는데, 큰일 날 뻔했다고.’ 이 이야기는 ‘화류계’에서 오랜 시간 회자됐다.〉
 
  당시 기자에게 이 말을 해준 이는 해당 룸카페 마담의 지인(다른 가게 마담)과 여성이 울면서 전화를 한 남자친구(당시 호스트바 남자 접대부)였다. 다수의 업계 관계자들이 이 이야기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김일성·김정일 초상이 들어간 배지를 단 사람의 이름은 몰랐다.
 
  과거 취재 수첩을 꺼낸 이유는 배지를 단 사람의 정체가 장성택일 가능성이 커서다. 장성택은 2002년 월드컵 후인 10월 26일 북한 경제시찰단(단장 박남기 당시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등 18명)의 일원으로 8박 9일간 서울을 방문했다. 북한이 7·1 경제관리개선조치 등 개혁·개방 드라이브를 걸 때다.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었던 장성택은 삼성전자와 코엑스몰, 지방 공장 등을 둘러보고 서울의 지하철과 노래방도 경험했다. 단란주점을 찾았다는 소문도 돌았다. 기자는 2012년 취재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를 기회가 될 때마다 탈북자들을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한 탈북자는 “기지를 발휘해 도망친 여성 이야기까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장성택이 국정원 직원들과 함께 고급 술집에 간 것은 팩트”라고 했다. 이 탈북자는 현재 종합편성채널의 인기 패널 중 한 명이다. 이 탈북자의 증언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2003년, 2002년도의 빚을 갚겠다고 만찬 베푼 장성택
 
통일부 장관이었던 정동영 의원이 2005년 6월 17일 오후 평양 대동강 영빈관에서 김정일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당시 김정일은 정 의원이 장성택의 안부를 묻자 “남쪽에 가서 폭탄주도 배우고 해서, 아파서 쉬게 했다”고 밝혔다.
  2003년 12월 16일 자 《중앙일보》 기사의 일부분이다.
 
  〈장성택은 북한 최고위층 가운데는 드물게 서울을 방문했던 인사다. 그의 행적이 우리 측 인사들의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다는 의미다. 그가 서울을 찾은 건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10월 26일이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방한한 경제시찰단의 ‘단원’ 자격으로 입경했다. 당시 장성택은 고급 비둘기색 양복에, 옅은 갈색 컬러가 섞인 안경을 쓰고 있었다. 왼쪽 가슴에 달고 있는 김일성 배지(초상휘장)만 없었다면 북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발렌타인 30년산 고급 양주로 폭탄주를 마시고, 유흥주점에도 가보자고 했었을 만큼 자유분방한 행동을 보였다는 게 당시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2003년 1월 노무현(盧武鉉) 당시 대통령 당선자의 특사로 임동원(林東源)-이종석(李鍾奭) 전 통일부 장관이 방북했을 당시의 일이다. 두 사람의 김정일 면담은 결국 불발로 끝났지만 2002년 10월 경제시찰단 일원으로 서울을 찾았던 장성택이 ‘빚을 갚겠다’며 성대한 만찬을 베풀었다고 한다. 두주불사(斗酒不辭)형으로 알려진 장성택은 연신 “쭉 냅시다(‘원샷’을 하자는 뜻)”를 외쳤고 술이 약한 이종석 전 장관은 얼마 안 가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처방해 준 ‘약물’의 힘으로 겨우겨우 버텨낸 것으로 알려졌다. ‘빚을 갚겠다’는 장성택의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후 장성택은 2003년 7월부터 2006년 1월 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복귀할 때까지 2년간 지방에 유배돼 이른바 ‘혁명화’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북한 전문가들은 “장성택에게 힘이 지나치게 쏠리자 분파주의로 보고 김정일이 견제한 것”이라고 분석했지만, 북한에서는 서울에 왔을 때 “자본주의 문화를 맛보자”며 룸살롱에 간 것이 계기가 됐다는 게 기정사실로 돼 있다. 정동영(鄭東泳) 민주평화당 의원은 “2005년 6월 특사로 평양에 갔을 때 장성택의 안부를 묻자 김정일은 ‘남쪽에 가서 폭탄주도 배우고 해서, 아파서 쉬게 했다’며 웃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방에서는 수령님이 아닌 장성택이 ‘왕’인 줄 안다”
 
  장성택이 사형당하기 전 오봉산 화장터에 그가 놀고 버린 젊은 여성들의 시체가 넘쳐난다는 사실을 보위사령부는 김정은에게 보고했다. 비슷한 시점에 반장성택 세력은 김정은에게 또 한 가지 보고를 했다.
 
  “장성택이 지방 시찰을 갈 경우, 지방의 유력 관계자들이 몇km 앞에서부터 도열을 하고, 맞이하는 등 수령급 의전을 하고 있다. 지방 사람들은 장성택을 수령님(김정은)보다도 높은 사람으로 안다. 본인(장성택)도 왕처럼 행동한다.”
 
  이와 같은 내용은 거의 실시간으로 박근혜(朴槿惠) 전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
 
  김정은은 2013년 12월 12일 장성택을 죽였다. 사정 당국은 기관총으로 쏴서 죽였다고 판단했다. 장성택의 측근인 장수길(노동당 부부장)과 리룡하(노동당 제1부부장)를 4신 고사 기관총으로 총살했기 때문이다.
 
  태 전 공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장수길과 리룡하를 총살하던 날, 북한 고위급은 아연실색했다. 이날 당과 군부의 중간 간부들은 평양 교외 강건 군관학교 사격훈련장에 모였다. 고위급을 총살하는 처형장이었다. 간부들은 대단히 놀랐다. 사격장에는 평소 총살할 때 사용하던 자동보총(소총) AK-47 대신 처음 보는 4신 고사 기관총 8정이 설치돼 있었다. 정면에는 흰 천이 둘려 있었고 그 뒤에 누군가가 있는 듯 보였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해 중앙당 비서, 부장, 부부장들이 내렸다. 뜻밖에도 장성택은 다른 버스에서 내렸다. 중앙당 비서 등 고위 간부를 태운 버스에 타야 할 장성택이 일반 직원 버스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고 다들 의아해했다. 이미 이때 장성택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윽고 연단에서 ‘반당반혁분자’ 장수길과 리룡하의 죄행이 낭독되었고 총살이 선고됐다. 흰 천이 벗겨졌다. 장수길과 리룡하가 말뚝에 묶여 있었다. 8정의 4신 고사 기관총이 두 명을 향해 불을 뿜었고 고위 간부들은 얼이 나갔다. 며칠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여성 편력 때문에 장성택을 죽였을까?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2013년 12월 13일 장성택 당 행정부장이 ‘국가전복 음모의 극악한 범죄’로 12일 처형됐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장 행정부장이 법정에서 국가안전보위부원들에게 끌려가는 장면이다.
  북한이 공개한 장성택 사형집행 판결문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장성택은 권력을 남용해 부정부패행위를 일삼고 여러 여성과 부당한 관계를 가졌으며, 고급식당의 뒷골방들에서 술놀이와 먹자판을 벌였다. 놈은 오래전부터 더러운 정치적 야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에는 감히 머리를 쳐들지 못하고 눈치를 보면서 동상이몽, 양봉음위하다가 혁명의 대가 바뀌는 력사적 전환의 시기에 와서 드디여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보위사령부와 장성택 반대 세력의 두 가지 보고가 김정은이 장성택을 죽인 이유로 볼 수 있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를 지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가명)는 “장성택의 처형 원인은 김정일을 위한 기쁨조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장성택이 저지른 여성 편력 때문”이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여성 편력에 반감을 가진 김정은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으면서 장성택의 이런 비도덕적인 행동에 매우 분노해 그를 신속하게 처형했다”고 했다.
 
  사실 이 두 이유가 아니었어도 장성택은 김정은으로부터 죽임을 당했을 것으로 보는 게 맞다. 김정은이 어릴 때부터 고모부 장성택에 대한 원한이 컸던 탓이다. 김정은의 친모인 고용희(김정일 셋째 부인)는 정철·정은 형제 중의 하나가 후계자가 되지 않으면 결국 온 가족이 숙청당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김일성 생전에 자신의 아이들을 인사시키고 인정받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김정은은 할아버지(김일성)와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 김일성과 찍은 사진 한 장만 있었다면 스스로 백두혈통이라고 백 번 외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김정은이 김일성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데에는 장성택의 역할이 컸다. 장성택은 김일성이 김정일이 성혜림(김정일 둘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김정남을 낳은 것을 집안의 망신이라고 화를 낸 것을 상기시키며 ‘수령님에게 고용희 모자를 절대로 데려가서는 안 된다’며 김정일을 만류했다고 한다. 게다가 장성택은 김정은과 김정남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기’를 하고 있었다. 장성택이 앞에서는 김정남 등과의 후계자 경쟁 과정에서 김정은을 지지했지만, 김정남이 해외에서 돈을 보내 달라고 하면 심복을 시켜 은밀히 보내줬다. 이후 고용희는 장성택과 김경희(김정일 여동생) 부부에게 원한을 품게 됐고, 그 감정은 고스란히 김정은에게 전해졌다.
 
 
  김정은, 정권 잡자마자 어렸을 때부터 원한 품은 장성택 죽이려 마음먹은 듯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는 “장성택이 데리고 놀다 죽인 젊은 여성을 화장해 준 오봉산관리소 소장도 구금당했다”고 증언했다.
  태 전 공사는 책에 이렇게 썼다.
 
  〈나는 김정은이 아이 때부터 장성택을 미워한 것으로 본다. 김정은이 북한의 절대 권력자가 되자 장성택은 불안에 떨었다. 평소 김정은보다 김정남을 더 가까이했던 장성택은 자신에 대한 김정은의 원한을 알았고, 신변의 위협도 느꼈다. 장성택에게는 당과 군대 무역 부문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친척이 많았다. 그는 2012년경에 이미 친척들을 모아 놓고 ‘이제 장사 다 정리하고 나와라, 우리에게 검열이 붙을 수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장사’란 이권 사업을 뜻하는 표현이다. 나의 베이징 외국어대학 동창 가운데 조성규라는 친구가 있다. 부인 이름이 전은영이다. 그 부친은 장성택의 매형이며 쿠바 대사 출신인 전영진이다. 전은영은 평양의 신도심인 창전거리에서 찻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찻집을 꾸리는 데 8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한다. 어느 날 전은영이 내게 ‘장성택이 찻집을 접으라고 한다’며 걱정을 하던 기억이 난다.〉
 
  김정은이 장성택을 죽이려 마음을 먹은 것은 2012년 3월로 추정된다. 김정은이 김정일의 뒤를 이어 3대 세습 통치를 시작한 초기다. 3월 31일 김정은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보고서에 없는 말을 했다.
 
  “핵무기를 완성하는 길은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 중국 등 강국들이 별짓을 다 해 막으려고 할 것이다. 미국과 다툼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과의 전쟁에 앞서 우리 내부에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내부의 사상과 의지의 대결부터 이겨야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당시 김정은의 ‘내부의 적’은 장성택을 암시한 것이었다는 분석이다. 결론적으로 김정은은 권력을 쥐자마자 어렸을 때부터 원한을 품은 장성택을 죽이기 위한 명분을 찾았고, 때마침 두 가지 보고를 받았다. 이를 빌미로 장성택을 처형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두 가지) 보고를 받고 김정은은 내심 미소를 지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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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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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partially    (2018-07-16)     수정   삭제 찬성 : 16   반대 : 6
정성택이 죽을 짓을 햇네 김정은 여자 문제는 깨끗하구만. 가정적이고...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추악한 기쁨조 성적 유린을 안하는 것 같구나.
  이박리    (2018-06-29)     수정   삭제 찬성 : 21   반대 : 1
완전 왕조 사회군요. 이런 정권을 살리려고 고군분투하는 현 정권....
  ikik814    (2018-06-19)     수정   삭제 찬성 : 57   반대 : 8
공산당 권력은 완전 피라미드형 인민살인능력을 쥔 계급사회
  inucoyt    (2018-06-19)     수정   삭제 찬성 : 22   반대 : 36
김정은이를 이런식으로 세탁해주는구나..월간조선이.

20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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