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쉽게 알아먹을 수 있는 바탕말로 묻고 따지고 푸는 일이 필요합니다. 외국에서 수입한 인문학·지식·개념은 참고용으로 쓰고, 한국문화와 한국말에 바탕을 둔 살림용 인문학·지식·개념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 “한국 인문학은 母國語의 맥락에서 나와야”
⊙ “조선 초에는 사람을 ‘어린이’와 ‘얼운이(어른)’로 나눠 인격 발달의 지침으로 삼아”
⊙ “오늘날 한국인은 도덕성 발달의 2단계(초등생 수준)에 머문 채 끊임없이 다투고 있다”
⊙ “한국의 인문학자는 중국·서양에서 가져온 말을 높이 받들며 우리말 업신여겨”
崔鳳永
⊙ 62세. 서울교대·건국대 영문과 졸업. 한국학중앙연구원 석·박사.
⊙ 조선사회연구회장, 교육사학회장, 한국인격교육학회장,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회장 역임.
現 한국항공대 교수.
⊙ “한국 인문학은 母國語의 맥락에서 나와야”
⊙ “조선 초에는 사람을 ‘어린이’와 ‘얼운이(어른)’로 나눠 인격 발달의 지침으로 삼아”
⊙ “오늘날 한국인은 도덕성 발달의 2단계(초등생 수준)에 머문 채 끊임없이 다투고 있다”
⊙ “한국의 인문학자는 중국·서양에서 가져온 말을 높이 받들며 우리말 업신여겨”
崔鳳永
⊙ 62세. 서울교대·건국대 영문과 졸업. 한국학중앙연구원 석·박사.
⊙ 조선사회연구회장, 교육사학회장, 한국인격교육학회장,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회장 역임.
現 한국항공대 교수.
최 교수는 그동안 ‘한국적인 인문학’을 외치며 우리말과 글, 물건을 중심으로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줄곧 탐구해 온 대표적인 한국학(韓國學) 학자. 그의 연구분야는 한국인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영역이다. 예를 들어 나, 너, 우리, 남, ~것, 맛, 멋, 봄, 떨림, 아름다움, 어울림 등과 같은 순우리말 속에 담긴 한국인의 정서와 닿아 있다.
이날 최 교수는 한국인의 도덕성이 크게 4단계를 따라 성장한다고 밝혔다. 그러고 보면 한국인이, 한국인의 세계관에 바탕한 ‘도덕성 발달이론’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심리학자들도 발표한 적이 없고, 미국의 심리학자 콜버그(Lawrence Kohlberg)가 고안한 도덕성 발달이론이 널리 알려져 있다. 최 교수의 4단계 도덕성 발달이론엔 그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담겨 있다.
1단계는 ‘저(나)만 좋은 상태’다. 제(내)가 저(나)만 알아주고 저(나) 밖에 있는 것은 몰라주는 상태다.
2단계는 ‘저들끼리 좋은 상태’다. 여기서 ‘저들’은 일종의 ‘가까운 내 주변’을 의미한다. 제가 저를 알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저와 같은 부류인 저들끼리만 알아주고, 저들 밖에 있는 것은 몰라주는 상태다. 하지만 ‘저들’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도덕성 발달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3단계는 ‘남까지 좋은 상태’다. 제가 저와 저들을 알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저와 같으면서 저와 다른 남까지 알아준다. 그러나 남의 밖에 있는 대상(세상)은 몰라주는 상태다.
그러나 4단계에 이르면 ‘모두가 좋은 상태’가 된다. 즉 제가 저들과 남을 알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저와 다른 모든 것까지 알아주는 상태다. 사람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아주는 도덕적 완성자, ‘큰 어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도덕성 발달과 ‘우리主義’
최봉영 교수의 도덕성 발달이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작은 나’의 단계를 넘어 ‘큰 나’인 ‘우리’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우리주의(主義)’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국인의 도덕성이 크게 4단계를 따라 커 나간다고 했는데 따로 연령대가 존재할까요?
최 교수는 “아직 말을 배우고 쓸 수 없는 아기는 저만 좋은 상태를 바라는 1단계에 머무른다”며 “남을 알아줄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실험결과를 보면, 말을 배우고 쓰지 못하는 시기도 남을 알아줄 수 있는 감정이나 정서의 싹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런 감정, 정서의 싹이 잘 자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감정, 정서의 싹이 제대로 못 자라면 자폐아가 될 수 있어요.”
그는 “사람이 말을 배우고 쓸 수 있게 되면서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도덕성 발달의 2단계로 나아간다”며 “사람은 모두가 함께 말하며 배우고, 쓰는 말을 바탕으로 소통하면서 저절로 주위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일에 눈을 뜨게 되고, 이로써 ‘저들끼리’ 좋은 상태를 바라게 된다”고 했다.
“어린 아이(유아)들은 나와 다른 것과 관계가 깊지 못해 아직 남을 알아주는 일을 잘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아이들은 도덕발달의 2단계에 머무른다고 볼 수 있어요. 다만 ‘저들’을 이루는 범위가 어디까지, 어느 정도로 나아가느냐에 따라 도덕성 발달속도가 달라집니다. 예컨대 극단적으로 자기 가족만을 ‘저들’로 여기게 되면 가족 이기주의에 빠질 수 있고, 자기 겨레만 ‘저들’로 여기면 민족 이기주의에 빠져들게 되지요.”
3단계는 나를 벗어나 남까지 나의 본질 속으로 들어오는 단계다. 최 교수는 “사람이 도덕성 발달의 3단계로 나아가는 일은 ‘저들’의 밖에 남아 있는 남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도덕성 발달의 3단계로 나아가는 일은 사람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개인차가 크다는 뜻이다.
“도덕성 발달의 3단계에 대한 자각이 어떤 이는 흐릿한 반면 어떤 이는 또렷한 것을 볼 수 있어요. 도덕성 발달의 3단계는 사람이라는 보편성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계속된 말이다.
“초등학교 2~3학년만 돼도 도덕성 발달의 3단계에 대한 가르침을 펼 수 있습니다. 4~5학년이 되면 여건에 따라 3단계에 대한 자각을 또렷이 가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사람이 ‘저들끼리’만의 좋은 관계에 매달리면 남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돼 도덕성 발달의 3단계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이론이란?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이론은 스위스의 발달심리학자 장 피아제(Jean Piaget)의 인지발달 이론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콜버그는 도덕성이 문화를 통해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인지구조의 발달에 따라 도덕적 판단의 양식이 변화되고 재구조화되면서 발달한다고 보았다. 연령의 증가와 함께 도덕성은 6가지 일정한 발달단계를 거쳐 발전한다. ①단계(2~6세): 벌과 복종에 의한 도덕성 ②단계(2~6세): 욕구충족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도덕성 ③단계(6~12세): 대인관계의 조화를 위한 도덕성(순응의 단계) ④단계(6~12세): 법과 질서를 중시하는 도덕성(법과 의무 이행이 도덕적 판단의 기준) ⑤단계: 사회계약 정신으로서의 도덕성(사회적으로 합의된 규칙에 기초해 도덕적 판단) ⑥단계: 보편적 윤리로서의 도덕성(법·규칙을 초월해 자신이 선택한 도덕적 원리에 따라 판단) |
‘고루’와 ‘두루’
—한국인에게 있어 ‘큰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우리말에 어른은 ‘얼운’이 시간이 흐르면서 얼운→어룬→어른으로 바뀐 것입니다. 조선 초에는 사람을 ‘어린이’와 ‘얼운이’로 나눠 인격발달의 지침으로 삼았어요. ‘얼운이’는 스스로 ‘어를 수 있는(사람을 달래거나 기쁘게 해주는)’ 힘을 가진 이를 말하고, 어린이는 아직 남의 도움으로 ‘어르어 가는’ 단계에 있는 이를 뜻합니다.”
최 교수는 “크게 ‘어를 수 있는’ 사람을 ‘큰 어른’이라고 말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크게 ‘어른다’는 것은 ‘저들’을 넘어서 남까지, 그리고 남을 넘어서까지 어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는 사람이 저들끼리를 넘어 남까지 모든 사람과 함께하는 보편적 사람의 단계로 나아가고, 다시 사람의 단계를 넘어, 사람이 아닌 다른 모든 것과 함께하는 존재의 단계로 나아간 것을 말합니다.”
그는 도덕성 발달단계를 설명하며 ‘고루’와 ‘두루’라는 부사어를 즐겨 쓴다. 순우리말 ‘고루고루’는 여럿이 다 차이가 없이 엇비슷하게나 같다는 뜻이고, ‘두루두루’는 여기저기 빠짐없이 골고루란 뜻이다.
“고루는 직접 함께하는 ‘저들끼리’ 고루고루 공정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두루는 직접 함께하지 않는 남까지 두루두루 공정하게 하려고 생각이 미치는 것을 말하죠. 고루와 두루는 한국인은 무수히 많은 ‘우리’로 함께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안에 있는 내(內)집단과 밖에 있는 외(外)집단을 모두 공정하게 만드는 잣대를 말합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도덕성 붕괴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한국인이 도덕성을 4단계로 확장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오늘날 한국인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도덕성 발달의 2단계에 머무른 채 이쪽과 저쪽이 끊임없이 다투고, 싸우는 상태에 놓여 있어요.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바른생활’이라는 과목을 배우다가 3학년이 되면 ‘도덕’이라는 과목으로 이름이 바뀝니다. 도덕이 무엇을 뜻하는지 머릿속에 또렷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최 교수는 “도덕교육은 흐릿한 개념이나 덕목을 가르치는 교육이 돼서는 안 된다. 스스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일에 대해 묻고 따지고 풀고자 하는 뜻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영문학 전공하다 한국학의 길로
최 교수가 풀어내는 논리는 외국에서 가져온 개념이나 이론이 아닌데도 낯선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인문학에는 ‘햇빛학문’과 ‘달빛학문’이 있습니다. 조동일(趙東一·서울대 명예교수) 선생은 ‘창조학문’과 ‘수입학문’으로 나누죠. 창조학문은 햇빛학문이에요. 햇빛 받아서 모든 게 자라니까요. 자기가 가진 바탕 위에 자기 논리들을 엮어내는 게 햇빛학문이죠.
햇빛 인문학은, 자기가 가진 문화와 말 속에서 구축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게 햇빛 인문학이 되는 거죠. 서구가 자신의 것을 바탕으로 그런 인문학을 만들어 왔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바탕으로 정말 치밀하게 존재론적 바탕, 인식론적 바탕, 방법론적 바탕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는 “한국의 인문학자는 중국이나 서양에서 가져온 말을 높이 받들면서 한국말을 업신여기는 버릇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인은 우리말에 담긴 논리·인식·가치체계·세계관 등에 대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의 인문학자들은 한국말에 바탕 둔 내 말과 내 생각을 하찮게 여기고, 외국말에 바탕 둔 남의 말과 남의 생각을 값지게 여기는 버릇을 갖고 있어요. 이들은 외국말 낱말들을 외우고 익혀 외국말 문장을 읽고 새기는 데 온 힘을 기울이기 때문에 생각을 깊이 있게 펼칠 수 있는 기회도 없었고 여유도 없었어요. 이러니 아무리 인문학의 중요성을 말해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최봉영 교수는 서울교대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를 하며 건국대 영문학과(야간)를 졸업했다. 연세대 대학원(영문학)을 다니다 방향을 틀어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들어간다.
“영문학을 하면서 이것은 아니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영문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아무리 영문학을 배워도 전달자 역할밖에 못 할 것 같았어요. 외국인이 김소월(金素月)을 연구해서 깊이 있게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잖아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최 교수는 처음엔 조선시대 선비들이 읽었던 성리학의 기본 교과서에 나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학문을 시작했다. 서구학문에서 배운 여러 방법론을 응용해 《한국인의 사회적 성격》 《조선시대 유교문화》와 《한국문화의 성격》 《주체와 욕망》과 같은 책을 펴냈다.
“밖에서 빌려온 이론은 참고자료일 뿐”
![]() |
| 최봉영 교수의 책꽂이에 고서들이 꽂혀 있다. 《논어》가 보인다. |
“그때부터 한국말에는 한국인이 가꾸어놓은 바람과 슬기와 재주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국어학자는 아니지만 우리말의 짜임새와 생김새, 쓰임새 등에 대해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한자를 다 걷어내고 도대체 한국말에서 ‘있다’ ‘이다’ ‘하다’ ‘아니하다’ ‘못하다’가 뭘까, 이런 걸 생각하기 시작했죠. 그러니까 한국인이 우리 나름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방법들을 조금 알겠더라고요.”
그는 “지난 10여 년 동안 거의 밥맛을 잃어버릴 정도로 혼신의 힘을 기울여 나, 저, 우리, 남, 임, 아님, 바뀜, 있음, 없음, 참, 거짓, 속임, 가르침, 배움, 익힘, 어짊, 사랑, 다스림, 아름다움, 덕스러움, 슬기로움과 같은 한국말의 탐구에 매달려왔다”고 했다.
“제가 한국말에 깊이 빠져들게 된 것은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풀어내는 일을 넘어 사람과 문화가 무엇인지 그 바탕을 밝혀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서구나 중국에서 가져온 개념이나 이론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실마리들이 한국말을 통해 환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게 됐어요.”
최 교수는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얘기에 빗대어 이렇게 설명한다. 중국 제나라 왕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한 화가가 있었는데 왕이 그에게 ‘무엇을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려운가’하고 물었다고 한다. 화가는 ‘개나 말을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렵고, 귀신을 그리는 것이 가장 쉽다’고 답했다. 왕이 그 까닭을 묻자 화가는 이렇게 답했다.
“개나 말은 실체가 분명하니 꼭 같아야 하지만, 귀신은 형체가 없으니 아무렇게나 그려도 되기 때문입니다.”
최 교수는 “한국의 인문학자들이 밖에서 빌려온 개념과 이론으로 대충 학문을 하는 것은 마치 사람이 귀신을 그리는 일과 비슷하다. 잘 알 수 없는 귀신을 그리는 일은 누가 해도 그렇게 봐줄 수밖에 없다. 남의 것을 끌어다가 풀이하는 일 또한 누가 해도 그렇게 봐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인문학자들은 공자, 맹자, 주자,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롤스 따위를 끌어다가 학문을 말할 때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란 원전(原典)에 있는 것과 같은지 다른지에 대해 묻고 따지는 일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것조차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한국의 인문학자들은 학문의 뜻을 새기기 위해 한국인이 일상에서 하는 말로 학문을 해야 합니다. 밖에서 빌려온 개념이나 이론은 참고자료일 뿐입니다.”
한국인의 ‘나’와 영국인의 ‘I’, 중국인의 ‘我’
여기서 잠깐, 최 교수가 탐구한 ‘나(我·영어로 I)’의 이론을 들여다보자. 최 교수에 따르면, 한국말에서 나는 ‘나다’와 뿌리를 같이하는데, ‘난 것(태어남)’과 ‘나 있는 것(살아옴)’을 포함한다. 또 ‘나이(歲)’는 ‘나인 것’을 말하는 까닭에 나이를 말할 때, ‘나는 나이가 열 살이다’라고 한다.
한국말에서 어떤 것의 ‘난 데(곳)’를 밝혀주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다’이고, 다른 하나는 ‘낳다’이다. ‘내다’는 어떤 것이 밖으로 모습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말하고, ‘낳다’는 어떤 것을 이뤄 밖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내다’는 ‘나+이+다’가 줄어든 말인데, 어떤 것을 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이가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예 ‘하느님이 나를 냈다’). 반면 ‘낳다’는 ‘나+히+다’가 줄어든 말이다. 사람이 어떤 것을 이뤄서 밖으로 모습을 드러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예 ‘엄마가 나를 낳았다’).
나는 ‘난 데가 없이’ 난 것이 아니라 ‘난 데가 있어’ 태어났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난 데’와 이어져 있다. ‘난 데’는 내가 비롯한 터전이자 뿌리다.
“결론적으로 한국인이 말하는 ‘난 것’과 ‘난 데’와 ‘낸 것’과 ‘낳은 것’은 내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다른 것과 함께하는 것임을 말합니다. 이는 ‘나’라는 존재가 낱낱으로 따로 하면서 모두로서 함께하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이죠.”
영국인은 나를 말할 때 ‘I’라고 한다. ‘I’를 언제나 대문자로 써서 크게 돋보이게 한다. 한국말과 달리, 영국말에서 ‘I’는 낳다를 가리키는 베어(bear)와 직접적 연관을 갖고 있지 않다. 나를 가리키는 ‘I’는 에이지(age)와도 직접적 연관이 없다. I는 I이고, bear는 bear이고 age는 age이다.
최 교수는 “한국인이 나를 ‘난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달리 영국인은 나를 ‘낳아진 것’, 곧 be born으로 말한다”고 강조했다. 영국인에게 나는 스스로 난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 낳은 존재이다. bear는 견디다(to endure)의 뜻을 지니는데, be born은 견디는 과정을 거쳐서 낳아진 것을 말한다.
중국인은 나를 아(我), 오(吾) 등으로 말한다. 최 교수는 “아(我)는 손(手)에 창(戈)을 쥐고서 나를 지키는 모습이다. 오(吾)는 언(言)과 뿌리를 같이하는 글자로서 사람이 입으로 남에게 말하는 모습을 뜻하는 글자다. 이런 까닭에 나를 뜻하는 아나 오는 ‘나다’를 뜻하는 생(生)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했다.
“중국인들은 내가 남을 나에게 담아서 나와 남을 나처럼 만드는 것을 즐깁니다. 아처(我妻·내처), 아가(我家·내 집), 아공사(我公司·내 회사), 아국(我國·내 나라) 등으로 말하죠. 중국인은 영국인이 we에 담아서 말하는 것조차 아에 담아서 말하려고 합니다.
중국인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나와 같게 만들어서 나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픈 욕망이 매우 강합니다. 중국인의 중화(中和), 중용(中庸), 중화(中華), 천하(天下), 천자(天子)와 같은 낱말은 모두 이러한 욕망을 담고 있어요.”
중국인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나와 같게 만들려 하는 버릇이 있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평준화시킨다고나 할까. 그래서 중국인은 나 본위다. 최 교수는 “중국인은 나의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일을 매우 중요시해 왔다. ‘나를 닦아서 남을 다스리는 일(修己治人)’이나 ‘나를 닦아서 가정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일(修身齊家治國平天下)’을 강조해 왔다”고 말했다.
| 한국의 德과 중국의 德 우리말에서 도덕(道德)은 모든 것을 꿰고 있는 ‘도(道)’와 서로가 서로를 알아주는 ‘덕(德)’이 어우러진 말이다. 사람이 사람다움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한국인이 쓰고 있는 덕은 본디 중국의 한자지만 낱말의 겉모습은 같아도 뜻은 중국과 다르다. 한자에서 덕(德)은 덕(悳)과 같은 글자다. 사전을 찾아보면 덕(悳)은 덕(德)의 옛글자로 나온다. 덕(悳)은 ‘直+心’으로 이뤄진 글자로 ‘곧은 마음에 바탕을 둠’을 뜻한다. 덕(德)은 ‘行+直+心’으로 이뤄진 글자다. 즉 ‘곧은 마음에 바탕을 두고서 이뤄진 행동’을 뜻한다. 그런데 조선시대 간행된 《훈몽자회》 《천자문(석봉·광주)》 등에는 덕(德)을 ‘큰 덕’으로 썼다. 요즘 현대어 한자사전에는 ‘덕 덕’이나 ‘어질 덕’으로 쓰고 있다. 왜 옛날 사람들은 덕을 ‘큰 덕’으로 썼을까. 최 교수는 “한국인이 덕을 ‘큼’으로 풀이한 것은 ‘내가 저밖에 모르는 사람에서 저의 밖까지 알아내고 알아내는 사람’으로 나아가서, 나와 남이 함께 ‘우리’를 이루어 나를 더욱 큰 사람으로 만드는 바탕을 덕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나는 덕을 바탕으로 나를 넘어, 남과 함께 어울려, 우리를 이룸으로써 ‘큰 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
한국인의 ‘中’, 중국인의 ‘中’
한국인은 ‘중(中)’을 ‘가운데 중’으로 새기지만, ‘중’과 ‘가운데’는 바탕이 매우 다르다. 한자에서 중은 중심(中心)으로서 나의 심장이 자리하고 있는 곳을 말하고, 한국말에서 가운데는 ‘가에서 온 데’로서 가장자리에서 자리한 이쪽과 저쪽의 사이를 말한다.
“중국인이 중심, 중화, 중용, 중화라고 말하는 중은, 철저하게 저마다 따로 하는 나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인이 말하는 가운데는 이쪽과 저쪽의 사람이 함께 어울려서 일을 벌이는 곳으로서 ‘우리’로서 함께하는 나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한국인은 저마다 따로 하는 나와 남이 함께 어울려 하나의 우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 때문에 한국인은 모든 것을 하나인 우리에 담아서 ‘우리 마누라’ ‘우리 남편’ ‘우리 자식’ ‘우리 회사’라고 합니다.”
최 교수는 “나와 남이 하나의 우리를 이뤄, 한국인은 나를 위하는 일과 남을 위하는 일을 우리를 위하는 일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 나와 남이 우리로서 함께하기에 이쪽 또는 저쪽이 더할 수도 있고, 덜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한국인은 우리를 통해서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에서 비롯되는 이기(利己·나를 위하는 일)와 이타(利他·남을 위하는 일)의 이분법을 쉽게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인의 경우 ‘우리’라는 말이 없기 때문에 나와 남으로 나누어진 이기와 이타의 이분법을 넘어서기 어렵게 되죠.”
그는 “한국말과 중국말이 서로 달라 한국인과 중국인이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 또한 다른 점이 많다”고 했다.
“한국인이 중국에서 한자 낱말을 많이 가져다 쓴다고 해서, 한국인이 중국인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단일한 한자 개념으로 한중일(韓中日)을 하나로 풀어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開化期 海州白磁의 정신
![]() |
|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만들어지고 쓰이던 백자들. |
큰 항아리인 해주백자 수십 점이 거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안방 문을 여니 자개로 만든 벼루함, 쟁반이 방바닥에 잔뜩 늘어 있었다. 방을 여는 족족 아기자기한 한국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물건들로 넘쳐났다. 기공식이나 개청식을 기념해 만든 동판, 장승을 비롯해 각종 목각인형, 돌하르방, 은제 컵, 재떨이, 편지꽂이 수십 종이 주렁주렁 벽에 걸려 있었다. 앞뒤 베란다도 도자기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모두 19~20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해주백자에 대해 큰 애착을 드러냈다.
“일제 식민지 한국인이 만든 공예품 가운데 한국인의 속내를 가장 잘 담아낸 것이 해주백자입니다. 해주를 중심으로 주변의 여러 지역에서 만든 해주백자는 형태, 그림, 글씨가 당대 한국인의 속내를 생생하게 담고 있어요. 특히 장인들은 덩치가 아주 큰 백자 단지를 만들어놓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마음에 간직한 속내를 거침없이 털어놓았어요.”
일제 식민지 시절, 국권을 잃은 한국인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길은 극히 제한됐다. 최 교수는 “다만 예술영역에서 창작활동을 통해 탈출구를 마련할 수 있었기에 신명을 낼 수 있었다”고 했다. 일제시절,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知識人) 대부분이 문예(文藝)의 길로 나아가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을 달랬다.
![]() |
|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유행하던 목각 인형들. 보따리를 머리에 인 목각 인형이 눈길을 끈다. |
“해주백자를 도공에게 의뢰한 이는 당대 신흥 부르주아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득의와 성취에서 비롯되는 힘찬 욕망과 포부가 담겨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20세기 초반에 한국인이 시련을 꿋꿋이 이겨내며 살아가는 굳센 모습이 해주백자에 더욱 잘 드러나 있죠.”
—해주백자 속에 당대 한국인의 속내가 들어 있다는 것인가요?
“그렇죠. 저는 여러 해주백자를 접하면서 당대 한국인의 모습이 크게 3가지로 나뉜다고 느꼈습니다. 첫째, 마음이 내키는 대로 갖가지 것을 새롭게 해보는 모습, 둘째 뜻을 세운 것을 힘차게 펼치는 모습, 셋째 멋을 부리려고 이것과 저것을 신나게 어우르는 모습입니다. 해주백자에는 예술에서만큼은 굴레 벗은 한국인이 마음이 내키는 대로 갖가지를 새롭게 해보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어요.”
“나의 거울이 깨끗하게 닦아져야”
20세기 한국인이 살아가는 모습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나라를 잃은 백성들이 저마다 살길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는 “당대인들은 과감함과 소심함, 대담함과 옹졸함, 활기참과 소침함, 적극성과 소극성, 진취성과 보수성을 아울러 보여주었다”고 했다.
“20세기 초 한국인에게서 볼 수 있는 과감하고 대담하며 활기차고 적극적인 모습이 해주백자에 매우 잘 나타나 있어요. 해주백자는 한국인이 일터에서 힘차게 앞날을 일궈가는 기상과 보람을 담고 있어요. 이런 점이 바로 우리가 해주백자에 마음이 끌리는 까닭이고 해주백자가 우리에게 가지는 가치입니다.”
21세기 한국 역시 혼란스럽고 진취적이며 역동적이고 보수적인 모습으로 끓어오르고 있다. 한국의 인문학 역시 안팎에서 위기를 겪고 있다.
“한국에서 진정한 근대 인문학은 제대로 시작을 안 했어요. ‘사랑’에 대해,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을 해주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의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있어야, 서구의 뷰티(beauty), 중국인의 미(美)가 비교가 되잖아요. ‘아름다움’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뷰티와 미도 흐릿하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나의 거울이 깨끗하게 닦아져야 다른 게 보이죠.
이 땅에 제대로 된 인문학이 없어요. 인문학은 자기가 바탕으로 삼는 모국어의 맥락, 그 삶의 맥락을 파고드는 학문이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없는 거죠.”
그는 다른 인문학자들이 들여다보지 않았던 한국말 속에, 그러니까 나, 저, 우리, 남, 아님, 바뀜, 있음, 없음, 참, 거짓, 속임, 아름다움, 덕스러움, 슬기로움과 같은 말을 묻고 따지고 풀어왔다.
“제가 한국말에 깊이 빠져들게 된 것은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풀어내는 일을 넘어 사람과 문화가 무엇인지 그 바탕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저는 한국말을 풀이하면서 서구나 중국에서 가져온 개념이나 이론만으로 찾기 어려운 새로운 실마리를 보게 됐습니다.
한국인이 정신을 제대로 차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쉽게 알아먹을 수 있는 바탕말로 묻고 따지고 푸는 일이 필요합니다. 외국에서 수입한 인문학·지식·개념은 참고용으로 쓰고, 한국문화와 한국말에 바탕을 둔 살림용 인문학·지식·개념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