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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초대형 복합경제위기가 온다

1997년 IMF위기 때와 같은 점, 다른 점

大 지진 닥치는데 요행수만 바라는 한국 경제

글 :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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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上 初有의 ‘트리플 마이너스’… 마이너스 金利, 마이너스 물가, 마이너스 성장률
⊙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세계적으로 경제호황이어서 V자 회복 가능했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위기 국면
⊙ 한국, 자본시장 자유화 결과 ‘東아시아의 현금인출기’ 소리 들을 정도… 美·日과의 관계 악화로 통화스와프 와해, 유사시 友軍 없어
⊙ 反기업·親노조 정책으로 경제 펀더멘털 약화, 재정赤字 급증, 老齡化 등 惡材만 산적

申璋燮
1962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 박사 / 기획재정부 장관 자문관, 한국금융연구원 초빙 연구위원, KDI정책대학원 초빙 교수. 現 싱가포르국립대학 경제학 교수
한국이 갖고 있는 4000억 달러 규모의 외환보유고는 유사시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사진=뉴시스
  세계경제에서는 지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금융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金利), 마이너스 물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합쳐 ‘트리플 마이너스’로 불리는 현상이다. 세계경제가 주기적으로 불황(不況)을 겪어왔지만 이렇게 트리플 마이너스가 나타난 적은 그동안 한 번도 없었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 때에도 마이너스 물가와 마이너스 성장률은 함께 나타났지만 금리는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런데 지금은 돈이 굉장히 많이 풀려 있는 상태에서 경기침체가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돈을 더 많이 푼다 하더라도 경기침체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공포’가 국제금융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공포에 사로잡힐 때 국제금융시장은 요동친다. 전 세계에 풀려 있는 부동(浮動) 자금이 손실을 줄이기 위해, 혹은 좀 더 높은 수익률을 찾아 급격히 이동하기 때문이다. 이 흐름을 활용해서 취약한 국가들의 환율이나 주가(株價) 등을 흔들어 큰 투기수익을 올리려는 각종 움직임도 벌어진다.
 
  지금과 같이 전례 없는 시장 상황이 벌어질 때만이 아니었다. 원래부터 국제금융시장은 위기로 점철되어 있다. 20세기만 살펴보더라도 선진국에서 약 100차례, 신흥국에서 150차례의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다. 가깝게 보아도 1997년에 아시아 금융위기가 있었고, 2008년에 세계 금융위기가 터졌다. 국제금융시장은 ‘지뢰밭’이라고 보는 것이 낫다. 그런데 이번에 지뢰가 터지면 그 폭발력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한국 경제는 국제금융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취약성을 노출해왔다. 아시아 금융위기 때에는 외환(外換)위기에 빠져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갔다. 세계 금융위기 때에는 외환위기를 겪지는 않았지만 원화 가치가 IMF 구제금융을 받은 아이슬란드의 크로나보다도 더 많이 절하(切下)되기도 했다. 올해 세계경제가 흔들리면서 원화는 다시 크게 요동치고 있다. 한때 달러당 1200원을 뚫기도 했다. IMF 구제금융을 받은 파키스탄의 루피화를 제외하고는 아시아 통화 중 가장 많이 절하된 상태다.(〈그림1〉 참조)
 
  그렇지만 정부는 국제금융시장의 격변과 한국 경제의 취약성에 관한 대응책을 거의 마련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미 갖고 있던 대응 수단마저 내던져버리며 ‘실물경제 파괴 정책’을 2년째 지속하고 있다. ‘금융동맹’도 파기 상태다. 한국 경제가 단층(斷層·fault line)에 놓여 있다는 엄중한 사실을 무시하고 요행수만 바라고 있는 것 같다. 금융위기라는 지진이 일어날 때에 큰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급히 금융동맹을 복원하고 경제정책을 대전환해야 한다.
 
 
  세계경제, 1997년은 대호황, 현재는 위기 국면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현재 세계경제와 한국 경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첫째, 당시는 세계경제가 대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미국과 유럽 경제도 호황이었고, 중국 경제도 10%에 이르는 고(高)성장을 지속하고 있었다. ‘21세기에는 아시아의 시대가 열린다’는 낙관적 전망이 팽배한 가운데 동아시아에 전 세계 자금이 몰려들고 있었다. 아시아 금융위기는 그 과정에서 벌어진 ‘유동성(流動性) 사고’였을 뿐이다. 단기자금을 많이 끌어들여 장기투자를 대대적으로 벌이다가 자금의 ‘불일치(mismatch)’가 벌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위기를 당한 나라들은 외화 유동성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브이(V)자’ 회복세를 보였다.(〈그림2〉 참조) 한국도 1998년에는 경제가 마이너스 6%가량이나 수축했지만, 1999년에는 11%의 성장률을 보이며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한국만 특별히 ‘구조조정’을 잘 했기 때문이 아니다. 태국·인도네시아같이 IMF 프로그램에 들어간 나라뿐만 아니라 IMF 프로그램을 거부한 말레이시아도 ‘V자형’ 회복세를 보였다. 이 나라들은 모두 수출 주도로 성장하던 나라인데, 세계경제가 좋은 상태에서 유동성 문제가 해결되니까 금세 회복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경제가 대단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전 세계적으로 성장이 둔화되고 경제가 수축하는 나라들마저 늘어나고 있다. 유럽에서는 ‘브렉시트(Brexit)’ 여파로 영국이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고, ‘유럽 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하던 독일도 마이너스 성장으로 가고 있다. 중국은 올해 성장률 6%를 달성하지 못할 것 같다. 7~8%의 성장률을 보이며 중국과 함께 신흥국 경제를 견인하던 인도의 성장률도 올해 6%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도 지난해 조금 좋아지는 듯하다가 올해 경기가 급격히 꺾여 1% 성장률에 턱걸이할 것 같다. 선진국 중 유일하게 경제가 괜찮았던 미국의 성장률도 2018년 2.9%에서 올해에는 2%대 초반으로 둔화되고 내년은 1%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동성 함정
 
1997년 12월 3일 임창열 부총리(가운데)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오른쪽)가 IMF 구제금융신청 의향서에 서명함으로써 한국은 IMF관리체제로 들어갔다. 사진=조선DB
  둘째,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에는 주요국들이 ‘적당한 수준’의 금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위기가 다가올 때 적극적으로 돈을 풀어 경기악화를 막는 대응력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1998년대 중반 브라질과 러시아에서 금융위기가 벌어지고 아시아 금융위기가 세계 금융위기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는 두 달 동안 금리를 세 번이나 인하하는 전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G7국가들도 ‘협조 금리인하’를 하면서 금융위기가 차단됐다. 세계경제는 확장가도를 달려갔다.
 
  그러나 지금은 ‘돈 풀기’의 경기 대응력이 크게 약화되어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후 전 세계 국가가 이미 10년 이상 돈을 많이 풀어왔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는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의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경기회복은 미약했다. 미국만이 유일하게 경기가 회복되면서 0%까지 떨어졌던 금리를 다시 올리며 ‘정상화’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미국 경기회복에 따라 다른 나라들도 회복세에 들어설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도 잠시 있었다. 그렇지만 올해 미국도 경기침체 기미가 나타나면서 연준이 지난 9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현재 1.75~2.00% 수준에 있는 기준금리를 이번 10월 말에 또다시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내년 대선(大選)을 앞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도 유럽을 따라 금리를 0%로 낮춰야 한다고 연준에 압력을 넣고 있다.
 
  현재 세계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높아지는 것은 단순히 경기침체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경기악화에 대한 강력한 대응수단인 통화(通貨)정책이 무력화(無力化)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금리와 마이너스 물가는 그 결과다. 은행이 고객에게서 받은 돈을 기업대출이나 가계대출에 사용하지 못하고 중앙은행에 맡겨 낮은 이자율이라도 따먹으려니까 예치금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은 돈 쓸 곳을 찾지 못한다. 돈 쓰려는 수요가 없다 보니 물가도 마이너스로 간다.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진 모습이다. 돈을 쏟아부어도 금융 부문에서만 돌 뿐 실물 부문으로 흐르지 못한다.
 
 
  한국, 통화스와프로 2008년 위기 극복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각국은 밀접하게 협력하면서 위기를 타개하려 노력했다. 사진은 2008년 10월 12일 프랑스 엘리제궁에서 열린 유로존 15개국 정상회의. 사진=로이터/뉴시스
  지금의 상황을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와 비교해도 심각성은 크게 드러난다. 위기의 강도로 따지자면 아시아 금융위기에 비해 ‘핵폭탄급’ 사건이었다. 그렇지만 선진국과 신흥국이 잘 협조해서 위기를 타개해나갔다. G20을 중심으로 정치지도자, 경제관료, 중앙은행가들의 모임이 긴밀하게 이루어졌다. 함께 돈을 풀고 재정도 확장했다. 미국과 중국도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유럽과 미국의 관계도 좋았다. 당시 G20 의장국을 맡았던 한국은 선진국과 신흥국의 가교(架橋)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그 결과, 외환위기가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 처음 미국 금융시장 붕락의 여파로 아이슬란드·아일랜드 등 일부 국가가 타격을 입었지만, G20이 공동보조를 취한 다음에는 외환위기가 없었다. 환율을 안정시키고 보호무역주의가 나타나지 않도록 주요국이 힘을 합쳤기 때문이다.
 
  물론 워낙 충격이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실물경제 회복이 빨리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1930년대 대공황 때와 비교하면 대단히 선방(善防)했다. 대공황 때에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이 관세를 대폭 높였고 환율 안정에 대해 아무런 협력이 없었다. 그 결과 외환위기가 곳곳에서 벌어졌고, 세계무역이 급격히 축소됐다. 1929년 뉴욕 증시 대폭락 이후 4년이 지난 1933년에 세계 무역 규모는 3분의 1 수준으로 격감했다. 반면 세계 금융위기 때에는 국제공조가 이루어지면서 세계 교역량이 낮은 수준이나마 증가세를 유지했다.
 
  한국은 이 과정에서 미국·일본·중국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하는 전례 없는 금융동맹을 일궈냈다. 미국과 300억 달러, 일본과 400억 달러, 중국과 300억 달러의 규모였다. 한국이 당시 보유하고 있던 3500억 달러 수준의 외환보유액에 비해 아주 많다고 할 수는 없는 규모지만 ‘동맹’이 주는 전시(展示) 효과는 그 수치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었다. 통화 헤게모니를 가진 미국과 세계 1, 2위 외환보유국인 중국과 일본이 원화가 불안해질 때면 언제든지 외화를 공급해주겠다는 약속을 국제금융시장에 공표한 사실 자체가 원화에 대한 투기 공격을 엄두도 못 내게 만들었다. 실제로 원화 환율은 당시 달러당 1500원으로 치솟다가 통화스와프 체결 직후 1200원대로 급격히 떨어졌다. 원화가치 추가 절하에 베팅했던 투기세력은 큰 손실을 입었고, 한국은 외환보유액을 지킬 수 있었다.
 
 
  국제공조의 실종
 
  그러나 지금은 국제공조가 실종되어 있다. 최근 세계 경기침체 가능성을 불러온 큰 원인은 미·중 갈등에 있다. 이것이 단순히 경제적인 것이라면 서로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으면서 타협할 여지가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갈등은 미·중 간 헤게모니 대결 전초전(前哨戰)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래서 대중(對中) 제재를 하는 데 있어서는 집권 공화당뿐만 아니라 야당인 민주당까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에 버금가는 친정(親政)체제를 구축한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정부도 쉽게 물러나기 어렵다. 미·중 갈등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더해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유럽에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면서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세계경제에서는 주요국이 ‘어떻게 함께 힘을 모아 환율을 안정시키고 경기침체를 이겨나갈 것인지’를 협의하고 해결방안을 찾기보다는, 상대방을 비난하며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 때와 닮은꼴이다.
 
 
  금융동맹 와해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地政學的) 여건을 감안할 때 세계 금융위기 와중에 구축했던 금융동맹은 대단히 값진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봐도 한국은 동아시아의 단층대(斷層帶)에 있었다. 임진왜란도 대륙세력과 해상세력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경합할 때에 벌어진 것이었다.
 
  20세기 들어서도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열강의 각축장으로서 6·25전쟁이라는 큰 비극을 겪은 바 있다. 지금도 남북 대치 상황 때문에 국제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릴 때면 정상 이자에 ‘분단 프리미엄’을 얹어서 지불해야 한다.
 
  중국 경제가 부상(浮上)하면서 한국경제의 단층구조는 더 명확해졌다. 그 전에는 안보와 외교를 크게 의존하고 있는 미국·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 수출입도 의존했기 때문에 경제와 외교·안보 간의 갈등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최대 무역상대국은 중국이 되어 있다.
 
  반면 금융과 안보에서는 미국에 거의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미·중 갈등이 벌어질 때 한국은 중간에서 악영향을 가장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경제보복을 당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세계 금융위기 때 한국이 구축했던 금융동맹은,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아우르는 것이었기에 지금과 같이 미·중 갈등이 벌어질 때 더욱 더 절실한 것이었다. 두 나라가 한국에 대해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고, 위기 때 협력한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엔화라는 국제통화를 갖고 있는 일본도 동맹에 합류해 있으니 한국으로서는 더욱 든든한 방패막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금융동맹을 강화하기보다 와해하는 길을 걸어왔다. 한미 통화스와프는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한국은 연장을 원했지만 미국 측에서 거부해 2010년 종료됐다. 일본과의 통화스와프는 연장되어 오다가 2015년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연장 논의가 무기한 중단된 상태다. 주요국 중에서는 중국과의 통화스와프만 남아 있다.
 
  미국·일본과의 금융동맹 해체가 갖는 의미는 통화 헤게모니를 제대로 인식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국제금융시장이 흔들릴 때에 통화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간에는 천지 차이가 난다. 헤게모니 국가들은 자국 통화를 찍어내서 자금 이탈을 막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힘들여 벌어놓은 달러 등 경화(硬貨·hard currency)를 활용해서 환율 불안에 대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금융위기가 벌어질 때 미국·유럽·일본 등 통화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나라들은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무너지는 신용위기만 걱정하면 될 뿐 외환위기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반면 통화 헤게모니가 없는 국가들은 신용위기와 함께 외환위기를 동시에 걱정해야 한다. 국내 경제가 괜찮은데도 외환 부문에서 문제가 벌어져서 신용위기로 전이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한국은 ‘동아시아의 현금인출기’
 
  외환위기에 대비하는 최후의 보루가 외환보유액이다. 그러나 외화보유액은 조금 도움이 될지 몰라도 결정적 상황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개별 국가들이 갖고 있는 규모는 투기세력이 동원할 수 있는 규모에 비해 ‘새발의 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제금융시장에서 외환거래량은 하루에만 5조 달러가 넘는다. 연간으로는 1300조 달러가량 된다. 이 중 무역거래와 연결된 외환거래는 전체 거래량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이 투기적 거래다. 한국이 갖고 있는 40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으로 환율 방어에 잘못 나섰다가는 한 방에 ‘훅’ 가는 수가 있다. 중국도 지난 1년 동안 위안화를 방어하다가 1조 달러를 날린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이에 더해 1997년 IMF체제에서 대폭적으로 자본시장을 자유화해 ‘동아시아의 현금인출기’가 되어 있는 상태다. 기획재정부가 공식문서에서 “원화는 유동성이 풍부하고 자본거래가 자유로운 통화로 평가되어 신흥통화 중 거래가 가장 활성화되어 있다”고 밝힌 것은, 뒤집어 말하면 위기가 발생할 때에 신흥국 중 돈을 빼내기 가장 쉬운 나라라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주요 금융기관들이 한국에서 갖고 있던 돈을 빼내 ‘현금인출기’라는 사실을 입증한 바 있다. 그래서 아이슬란드 크로나보다 원화가 더 많이 절하되는 일이 벌어졌다. 원화는 올해 들어서도 아시아 통화 중 두 번째로 크게 절하되어 취약성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금융동맹 해체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와 닮은꼴
 
문재인 정권의 반일캠페인은 경제위기 시 한국의 대응 능력을 떨어뜨릴 것이다. 사진은 더불어민주당의 소재부품장비인력발전특위 회의 모습. 사진=조선DB
  그런데 정부는 현재 경제가 단층에 놓여 있다는 구조적 약점을 무시하거나 경시하고 있다. 위기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지도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한국은행만 걱정하는 모습을 보일 뿐, 정부 전체적으로는 국내 정치공학에 매몰되어 경제·안보·외교를 총체적으로 포기하고 있다는 우려마저 든다.
 
  금융위기 대비에 중요한 것은 외환보유액보다 금융동맹이다. 동맹이 튼튼하면 적이 함부로 공격하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우군(友軍)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미국과의 통화스와프가 해지된 후 이를 복원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번 정부 들어 미국과의 신뢰 관계는 한미동맹이 체결된 뒤 가장 낮은 상태로 떨어졌다. 미국 고위 정책당국자들의 입에서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 발언마저 공개적으로 나온다. 전례 없는 일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한국이 다급하다며 금융동맹만 복원하자고 요청하는 것이 씨알조차 먹히기 어렵다.
 
  일본과의 관계도 징용 등 과거사 문제를 둘러싸고 무역보복 등의 조치가 벌어지면서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가장 악화되어 있는 상태다. 현 정부에서는 일본을 우방이라기보다는 적(敵)으로 취급하는 경향까지 보인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반일(反日)을 선동한다. 일본을 찾는 한국 관광객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한일전에서 한국이 이기고 있다는 희망적 주장을 펴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정부는 한·미·일 안보동맹의 주요 축인 지소미아조차 파기 결정을 내렸다. 일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관계마저 추가로 악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냉엄한 경제현실은 한·미·일 중 통화 헤게모니가 없는 한국만 외환위기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관계 악화에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것과 같은 규범적 판단은 여기에서 통하지 않는다. 금융동맹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나라는 한국이고, 미국이나 일본은 없어도 그만이다. 지진이 곧 닥칠지 모르는 판국인데 단층대에 서 있는 사람이 유사시 도움받아야 할 부자 이웃과 싸우는 것은 자살 행위에 가깝다.
 
  지금의 상황은 그런 면에서 1997년 외환위기에 빠지기 직전 한국의 외교 상황과 닮은꼴이다. 현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를 ‘적폐 청산’ 구도에 집어넣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 국내 정치에서의 실지(失地)를 만회하기 위해 ‘일본 때리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일본에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까지 말했다. 그 후 한국이 외환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일본은 금융지원을 거절했다. 그리고 미국과 합작으로 한국의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줬다.
 
 
  復原力 상실한 한국 경제
 

  현재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실물 부문에서 한국 경제가 복원력(復原力)을 상실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아시아 금융위기 때에나 세계 금융위기 때에는 “펀더멘털이 튼튼하다”고 얘기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금융투자자들도 부인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를 당하더라도 실물경제가 금세 회복하는 복원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지금은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는 얘기를 꺼낼 수 없다. 믿어주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너무 오래 과도한 반(反)기업 정책이 시행되고 ‘노동귀족’만을 위한 친(親)노조 정책이 집행되면서 기업가 정신과 근로정신이 동시에 파괴되고 있다. 위기를 당할 때에는 어렵더라도 함께 이겨나가자고 힘을 합쳐 노력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팀워크’가 무너지고 있다. 특히 경직적인 주(週) 52시간 근무제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불철주야 일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회사가 망해도 나는 정해진 근무시간만 지키겠다”면 위기를 돌파할 동력이 상실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가들은 미래를 보고 투자할 의욕이 사라진다. 실제로 2018년 중반 이후 민간투자는 계속 마이너스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그림3〉 참조) 올해 이 추세가 반전(反轉)될 전망은 없다. 내년에 더 나빠질 가능성도 있다. 실물경제 악화는 수출입 통계에도 반영되어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수출과 수입이 동시에 줄어들고 있다. 무역흑자(黑字)도 급감했다.(〈그림4〉 참조) 전형적인 불황형 수출입 구조다.
 
 
  ‘나쁜 조합’만 만들어져 있는 상태
 
  금융위기가 벌어질 때마다 한국 경제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던 재정건전성도 최근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재정지출의 급격한 증가로 한국은 올해 재정적자(赤字)를 볼 전망이다. 내년에 흑자로 돌아설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적자가 더 커질 수 있다. 공공부문 부채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2015년 1004조원에서 올해 1153조원으로 늘어났고, 2023년에는 1540조원 수준으로 크게 올라갈 전망이다. 앞으로 한국이 만약 금융위기를 당한다면 재정이 나쁜 상태에서 처음으로 겪는 금융위기가 될 것이다.
 
  이에 더해 인구구조가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이미 생산연령인구 감소가 시작됐고, 2067년에는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현재 42세인 인구의 중위연령은 2067년에 62세로 높아질 것이다.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보다 출산율 하락, 노령화(老齡化)가 훨씬 더 빨리 진행되고 있다. 내수(內需)가 장기적으로 별로 좋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질 가능성이 커지면 기업의 국내투자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제의 복원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와 비교하면, 지금 세계경제와 한국 경제는 나쁜 요인들은 똑같이 나타나거나 더 나빠졌고, 좋은 요인들은 없어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당시의 일본 및 미국과의 관계 악화는 지금 다시 나타나는 반면, 2008년에 구축된 금융동맹은 해체되어 있다. 세계경제 상황은 1997년이나 2008년 당시보다 더 나쁜 상태다. 전체적으로 성장동력이 떨어져 있는 반면, 돈이 오랫동안 많이 풀려서 돈을 추가로 풀어 경기악화를 막을 수 있는 힘이 현격히 떨어져 있다.
 
  2008년에 잘 가동되던 국제공조 시스템은 지금 거의 무너져 있다. 한국 경제의 체력도 크게 고갈되어 있다. 과거와 비교할 때에 밝은 구석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나쁜 조합’만 남아 있는 상태다.
 
  한국이 또다시 금융위기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금융동맹을 빨리 복원하며 경제활력을 회복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에 따라 우선순위를 바꾸는 정책의 대전환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정부는 엄중한 경제 상황을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 경제가 단층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과연 인식하고 있는지, 지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지가 과연 있는지조차 근본적으로 의심스러운 정도다. 이미 갖고 있던 위기 대응 수단마저 버리고 실물경제를 악화시키면서 지진이 발생하지 않을 요행수만 바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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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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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우성    (2019-11-14) 찬성 : 0   반대 : 0
창업을 앞둔 사람으로서 정말 헷갈리네요! 이 백성들이 정말 쿠오 바디스네요
  김동현    (2019-10-31) 찬성 : 6   반대 : 0
신교수님, 100% 공감합니다. 그런데 우리같은 서민들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지도 가르쳐 주십시요. 가만히 있다가는 완전히 거지가 될것 같습니다. 두렵습니다.

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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