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프로 세일즈맨십을 정립한 權五根의「人生 세일」 : 월간조선

지난 1월28일, 여의도 국제방송센터(IBC)가 보이는 맞은편 건물에서 權五根(권오근·62) 한국판매원장을 만났다. 올해로 꼭 20년째 해 오고 있는 미국 서부 지역 순회 강연에서 「불황타개를 위한 마케팅」 특강을 마치고 귀국한 지 이틀 만이다.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낯설기만 한 「한국판매교육원」이란 팻말이 나붙은 그의 사무실은 여느 사무실과 달리 아늑하고 포근한 응접실 같은 분위기가 한결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유독 필자의 시선을 끄는 건 서재 위에 진열된 기이한 모양의 오지 항아리였는데 그 모양은 흡사 어린 시절 본 「똥장군(화장실의 분뇨를 담아 비료로 사용하던 시절의 거름통)」의 미니어처 같은 것으로 정감이 갔다.

인사동에서 그 생김새가 귀엽고 왠지 마음이 끌려 그 작은 오지 「장군」을 한두 개 사 모으다 그게 취미로 발전, 200여 개쯤 수집했는데 필자가 보기에도 아마 우리나라에서 단일 품목으로 모은 골동품으로는 기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미국 순회 강연의 주제가 무엇이었습니까?

『「불황타개를 위한 마케팅」이 주제였는데, 불황이란 결국 고객과 시장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 말고 먼저 자신을 바꾸고 문제 푸는 공식을 바꾸라고 했죠. 그게 강의의 핵심입니다』

그의 명쾌한 해법은 체증 뚫린 고속도로처럼 시원했다.

그는 1969년 5월 「엔사이크로피디어 브리태니커」社에 들어가 입사 1개월 만에 全세계 53개국에서 판매 1위를 기록, 「International man of the month」가 된 한국 최초의 세일즈 박사 1호다 (그는 20여 년에 걸친 「프로페셔널 세일즈맨십」 강의로 1997년 캘리포니아 유인 대학(Califonia Yuin University)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權원장은 대학 졸업 이후 10년 남짓한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오직 한 우물 「프로페셔널 세일즈맨십」에 몰두하고 있다. 1969년부터 국내 1800여 기업체에 출강했으며, 1979년부터 금년 2월까지 연속 113회나 「Professional Salesmanship Seminar」를 개최했으며, 1993년부터 「한국수입업협회」 연수원에서 매회 3일간씩 역시 같은 강의를 71회나 개최한, 세일즈계의 代父다. 100여만 명이 국내에서 그의 강의를 들었고, 20여 년 동안 5만여 명의 해외 동포가 그의 강의를 들었다.

국내에서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미국 교포 사회에선 웬만하면 그를 알아본다. 權五根, 그는 어떤 사람이며, 무슨 연유로 국내에선 아직까지 대접받지 못하는 「세일즈 업계」에 투신했을까?

1941년생이니 올해 62세, 지금쯤은 추억 속에 안주하며 살아갈 나이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이다. 인생을 발로 뛰며 몸 전체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1964년 성균관大 법대를 졸업한 그는 사촌들끼리 조그마한 회사를 설립했다. 당시엔 제법 앞서가는 업종인 「魚網絲(어망사)」 공장이었는데, 상무라는 직책을 맡게 된다. 同種(동종) 업체에서 유능하다는 과장을 스카우트해 부장으로 앉히고 사업을 시작했으나 두세 달이 지나도록 도무지 판매가 제대로 되질 않았다. 회사엔 비상이 걸렸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가 사장에게 긴급 제안을 한다. 자기가 한번 직접 판매에 나서 보겠다고. 사장의 답변은 의외로 단호했다.

『너 같은 소극적인 친구는 할 수 없다』

능력에 합당한 고객밖에 만나지 못한다

사실 그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단 한 번도 발표라고는 한 적이 없었다. 그런 그의 성격을 사장인 사촌 형이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가 활기를 잃어가고 그가 자꾸 조르니까 어디 한번 해 보라고 해서 직접 현장에 나가게 됐다. 그때 회사도 탈출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신상품을 개발했는데 그게 바로 플라스틱 방충망이었다.

유통구조를 조사해 봤더니 당시 을지로 4가 국도극장 옆 골목에 있던 철물상이 취급했다. 샘플을 들고 찾아가긴 했는데 도무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않아 거의 반나절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헤맸다. 겨우 용기를 내어 만만한 집을 골라 들어섰는데 점원 하나만 있는 집이었다(그의 지론으로는 세일즈맨은 자기 능력에 합당할 만한 고객밖에 만나지 못한다는 공식이 있다. 자기 능력이 10이면 그에 합당한 10의 고객을 만나게 되고, 능력이 100이면 그에 상응하는 100의 고객을 만난다).

『가게에 들어서니까 그 점원이 「어서 오세요」란 상냥한 인사말 대신 대뜸 「뭡니까?」(아마 「무얼 찾으시죠」 그런 뜻일 테지만) 하는 바람에 「예」 하고는 엉겁결에 명함을 불쑥 내밀었습니다. 샘플로 가지고 간 방충망에 대해 설명을 하니깐 단박에 「안 산다」고 거절하지 뭡니까. 그래서 밖으로 쫓겨 나왔지만 솔직히 욕밖에 나오질 않더군요』

거의 반나절을 헤매다 고른 집에서 거절당한 그때의 심정을 참담하더라고 했다. 그 다음부터는 그 집 앞을 지나기가 창피해서 일부러 피해 다니며 일주일쯤을 을지로에서 헤매다 아예 서울 공략(?)을 포기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의 어느 극장에 영화를 보러 들어갔는데 막상 영화는 보이지 않고 그의 뇌리엔 오로지 어떻게 하면 방충망을 팔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갑자기 도매상, 산매상을 거칠 게 아니라 직접 전국 방방곡곡의 구멍가게를 찾아다니며 공장도 가격으로 값싸게 직판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극장을 뛰쳐나와 그 길로 상경, 사장에게 앞으로 이렇게 저렇게 하여… 전국 읍·면·동에 있는 구멍가게에 판매망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사장은 『전국에 구멍가게가 몇천, 몇만 개가 될 텐데 무슨 재주로 거길 다 찾아다니겠느냐』고 일축했지만 그는 나중엔 『네 맘대로 해보라』는 半승락을 얻어 냈다.

그는 먼 길 떠날 여행 장구를 단단히 챙겨 부산行 보통열차를 타고 우선 천안에 내렸다. 그의 파란만장한 세일즈맨 일대기가 시작된 것이다.

도착 당일부터 천안의 구멍가게를 찾아다니며 공장도 가격으로 값싸게, 그것도 대금은 한 달 뒤에 받기로 하는 조건을 내세우자 하루에 일곱 군데 정도 주문을 받았다. 즉시 본사로 전화를 하고 물건을 배송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튿날도 열심히 구멍가게를 헤집고 다니면서 판매망을 구축해 나갔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제품 주문을 받고 한 달여 만에 서울역에 개선 장군(?)처럼 도착하니 사장 이하 全사원이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고생은 왜 나 혼자만 하나」

며칠 후 회식에서 사장이 『물건을 직접 판 사람이 아무래도 돈을 받는 게 더 쉬울 테니 다음 달에 한 번 더 가라』고 했다. 그는 정말 술맛이 확 달아나고 화가 나서 도저히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회식 장소에서 후암동 숙소까지 터덜터덜 걸어오는데 오만 가지 착잡한 생각이 나더란다.

「고생은 왜 나 혼자 하고… 사업은 나 혼자만 하는 게 아니잖는가?」

당시 스물일곱의 한창 젊은 나이라 오기도 발동했다. 아무튼 집에 돌아온 그는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했다.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사흘쯤 지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물건 판 사람이 수금을 해야 한다』는 사장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게 아니라 옳다는 생각이 들고, 솔직히 회사 사정이 궁금하기도 해서 닷새 만에 출근을 해 사장에게 『한 바퀴만 더 돌겠다』고 했다.

한 달 후 이번엔 수금을 겸한 판매, 두 가지 임무를 띠고 전국 순회를 했다.

『그러고 나니 정말 자신이 생기더군요. 세상이 온통 내 것인 것 같고 그렇게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내가 적극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으로 변했음을 보고 저 자신도 놀랐습니다. 영어나 독일어 같은 외국어는 몰라도, 적어도 「물건 파는 경기를 한다면 대한민국 누구든지 덤벼라」 하고 큰소리 치고 싶더군요. 솔직히 生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게 제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이 된 것 같습니다』

잘 나가던 회사는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1968년 8월, 부도를 맞게 돼 風飛雹散(풍비박산), 그도 하루 아침에 도망다니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혼자 인왕산에 오르니, 내려다보이는 저 수많은 집들 가운데 왜 내 집이라곤 없는가? 괜한 자탄과 감상에 젖어 그만 죽어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음을 추스른 그는 「링컨」을 비롯한 위인들의 자서전을 탐독하며 스스로 위안을 한다. 이듬해 4월 「엔사이크로피디어 브리태니커」에 입사함으로써 오늘의 한국 세일즈界의 代父權五根으로 거듭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브리태니커」는 세계적인 권위의 「백과사전」 판매회사로 당시 全세계 53개국에 판매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회사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원으로 밤낮없이 뛰었다. 새벽 통금이 해제되기가 무섭게 집을 나서 밤 11시45분쯤 통금이 임박해서야 집에 들어왔다. 그는 「통금」이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겐 통금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당시 서울 수유리 집 한 채 값이 70만~80만원 정도인데 백과사전(총 24권) 한 세트 값이 18만3600원으로, 한 세트 팔면 1만8000원 수당을 받았다. 대졸 신입사원 초봉이 1만5000~2만원 정도였으니 상당히 많은 액수였다. 한 세트 팔면 한 달 삶이 보장되었는데, 많이 팔 때는 하루 6세트까지도 팔았고, 한 달에 60세트(假注文까지 합치면 한 달 최고 100세트)를 팔아 입사한 지 한 달여 만인 5월에 한국 최초로 全세계 53개국 지사 수십만 세일즈맨 가운데 1등을 차지해 「International man of the month」로 뽑히는 영광을 차지하게 된다.

1969년 당시 500달러도 안 되는 우리나라 국민 소득으로 보면 한 달에 60세트 판매기록은 全세계적으로 경이적인 수치였다. 그는 그같은 결과에 대해 원래 다니던 직장에서 「방충망」 판매망을 구축한답시고 장돌뱅이로 전국을 돌아다닌 것이 밑거름이 되었다고 술회했다.

50여 권의 서적 통해 판매기법 연구

이 시기를 전후로 그는 50여 권의 판매 기법에 관한 서적을 구입, 탐독하며 나름대로 메모, 정리하며 실전에 응용했다. 그는 언제나 「만족스런 고객은 최소한도 세 사람의 可望(가망) 고객을 소개시켜 주고 불만족스런 고객은 그와 반대로 11명의 또 다른 고객에게 惡宣傳(악선전)을 한다」는 이른바 「3대 11의 법칙」을 가슴속에 새기며 세일즈에 임했다고 한다. 왜 고객 만족을 해줘야 하는가? 그는 철저하게 연구하면서 세일즈를 했다. 단 한 사람의 고객을 위해서라도 철저하게 열성을 다했다.

그의 지론은 「세일즈맨에 있어 가장 친한 친구는 형제나 자매, 동창이나 친구가 아니라 오직 가장 만족스러웠던 고객」이란 원칙을 지켰다.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각종 포상도 받게 되고 성공사례 발표를 해 달라는 요청이 각종 단체에서 쇄도하게 된다. 그해 11월 「한국능률협회」는 이례적으로 세일즈맨 權五根에게 성공사례 발표 특강을 의뢰했다. 그후 1978년까지 최고 간부 경영자에서 후배 교육에 이르기까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1979년 1월에 「Professional Salesmanship」이란 책자를 만들게 된다.

기업에 있어 세일즈는 알파요 동시에 오메가다. 이렇게 중요한데도 우리나라엔 세일즈맨을 위한 교육기관이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1973년 7월 그는 「한국판매교육원」을 설립, 브리태니커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판매」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한국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판매」라는 간판을 떳떳하게, 그리고 저항하는 뜻에서 한국 사회를 설득시키려고 「국제경영원」이니 「한국컨설팅」이니 이런 말을 쓰지 않고 「한국판매교육원」이란 간판을 내걸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만 30여 년 동안 「세일즈學」에 대한 연구와 강의로 외길을 걸어 왔다. 왜 굳이 세일즈에 매달리느냐고 물었더니 『누군가 이 일을 해야 하는데 아무도 이 방면에 선뜻 나서질 않는다. 남들이 하지 않으니까 나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세일즈는 단순히 물건만 파는 기술이 아닙니다. 사람을 만드는 기술이죠. 인간관계론입니다, 미국에서는 「Art of living」이라고 합니다. 인생살이를 다루는 것이죠. 「사람이 사람을 다루는 기술」입니다. 우리 사회에선 아직도 세일즈맨이라 하면 「사기꾼이나 거짓말하는 직업(사람)」으로 비하하는데 이게 문제죠. 저는 「한 사람을 영원히, 대중을 순간적으로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중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링컨의 정치철학을 金科玉條(금과옥조)로 삼고 있습니다. 국민은 어떤 정치가보다도 현명합니다. 고객 역시 어떤 세일즈맨보다 현명합니다.

세일즈맨에게도 모럴이 있습니다. 세일즈맨은 상품의 객관적 가치가 없고 고객에게 반드시 이익이 안 된다고 생각할 때는 그 상품의 판매를 단호히 거부할 줄 알아야 하고, 반대일 경우에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팔아야 합니다. 이것이 세일즈맨의 모럴입니다』

그가 1979년 1월 펴낸 책자 「Professional Salesmanship」은 그동안 열다섯 차례의 개정과 수정 증보를 거쳐 2003년 오늘까지 교육원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3부로 나누어진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제1부 적극적인 정신자세」, 「제2부 세일즈맨십」, 「제3부 세일즈 매니저먼트」로 구분되어 있는데, 그는 특히 PMA를 강조한다. PMA(Positive Mental Attitude)란 「적극적인 정신자세」를 말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세일즈에 있어 가장 중요한 要諦(요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플러스(+) 성격을 띤 말들은(그는 이를 세일즈맨의 德目이라고 표현했다) 신념, 정직, 성실, 근면, 투지, 패기, 용기, 관용, 관대, 희망, 끈기, 노력, 충성 등으로 이루어진 정신자세를 일컬으며, 이러한 정신자세를 바탕으로 행동할 때 적극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 올바른 사람이라 부르게 된다.

능력보다는 의욕이다

그는 『능력이 없어서 실패하는 사람보다는 일에 대한 의욕이 없어서 실패하는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에 「의욕」은 「능력」에 우선하는 개념으로 생각되며,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능력」보다는 「의욕」이 탁월했기 때문에 성공하는 사람이 전체 성공하는 사람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적극적인 정신자세를 가진 사람의 특성은 우선 「행복하게 생각하고 일할 때와 놀 때 남과 잘 어울리고, 자제력이 있고, 믿을 수가 있으며, 매사에 흥미와 창의력이 있고, 난관에 부딪치면 이유를 달지 않고, 오직 해결 방법만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직하며 투지와 용기가 있고 성실·근면하며, 특히 「하면 된다」는 생각이 충만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존심을 건드리면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자존심이 인간관계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브리태니커」에서 잘 나가던 시절 후배를 「필드 트레이닝」(현장 실습)시킬 때 겪은 일화 한 토막을 들려 주었다.

『사무실에 들러 한번 거절당한 적이 있는 어느 변호사댁을 수소문 끝에 찾았죠. 그때가 오전 열 시쯤이었는데 그분은 마침 잠옷 차림으로 화단에 물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했더니 저를 탁 쳐다보더니만 며칠 전 책을 팔러 왔던 사람인 걸 확인하고는 대뜸 「안 삽니다」 하고 밀치듯 철문을 확 닫았습니다. 그 바람에 철문에 이마를 맞아 뒤로 나자빠져 버렸죠. 후배 앞에서 스타일 확 구겨 버렸습니다. 신입사원이 깜짝 놀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아니 세계에서 세일 제일 잘한다는 선배가 이지경이 되었으니… 그러나 씨익 웃으며 일어났습니다.

옷을 털면서 그 후배에게 「갑시다!」 했더니 「아니 지금 그 기분으로 어딜 갑니까?」 해요. 「그 기분이 어떤 기분인데? 팔러 가자. 세일즈맨은 매일 당하는 일인데 오늘은 좀 심하게 당했을 뿐이다. 당하는 게 무슨 대수야」라고 했더니 「아니 선배님은 자존심도 없습니까?」 하고 되묻더군요. 「야! 자존심이 밥 먹여 주냐? 나는 출근할 때 그런 쓸데없는 자존심은 버리고 나온다. Sale! or die!」 팔기 아니면 죽기라고 했더니 잠잠해지더라구요』

그러면서 불가에서 托鉢僧(탁발승)의 七家食(칠가식) 얘기를 했다.

일정 기간 수도가 끝난 스님은 家家戶戶를 돌며 동냥을 다닌다. 집집마다 스님이 받는 대우(?)는 저마다 달랐을 것이다. 욕을 하거나 심지어 돌팔매질을 하는 이도 있을 테고, 쌀을 가마니로 시주하는 집도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 托鉢僧은 모든 이에게 한결같이 『부처님이시여! 이 불쌍한 중생에게 자비심을 베푸소서』 이렇게 기도를 드린다. 「프로」란 바로 이런 「한결 같은 마음」으로 모든 이를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세일즈맨의 十誡命(십계명)을 들어보면, 『첫째, 나는 오늘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둘째, 나는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맞겠다. 셋째, 나는 성공하는 그날까지 참고 견디겠다. 넷째, 나는 자연의 위대한 奇蹟(기적)인 것이다. 다섯째, 나는 오늘을 나의 최후의 날로서 살겠다. 여섯째, 나는 나의 감정을 지배하겠다. 일곱째, 나는 항상 웃겠다. 여덟째, 나는 나의 가치를 100배로 늘리겠다. 아홉째, 나는 바로 지금 행동으로 옮기겠다. 열째, 나는 신을 믿는다』이다.

가장 유능한 세일즈맨은 예수

오늘을 살아가는 샐러리맨들을 위한 좀더 나은 직장생활을 위한 처신이랄까… 그런 조언을 구했더니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똑똑(?)해서 탈』이란다. 그는 『미국의 대법관을 지낸 홈즈라는 분이 이런 얘길했습니다. 「젊은이는 원칙을 많이 알고 늙은이는 예의를 많이 안다. 인생살이에 있어 3% 정도의 예외는 있어야 합니다.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만큼의 윤활유 같은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며 웃어 보인다.

『어느 조직에서나 상사와 부하 직원 간에 갈등이 있게 마련입니다. 상사라고 다 인간적으로 존경할 수는 없죠. 집안의 부모나 직장의 상사가 항상 자기보다 더 나아야만 하느냐? 설사 네 부모가 오늘의 너보다 못할지라도 너는 잘 받들어 모셔야 한다. 상사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너보다 나으라는 법은 없다. 너보다 못할 수도 있다. 네가 부모가 되고 상사가 되었을 때 자식이 너보다 무식하고 못나고, 부하가 너보다 못하고 열등한 사람이기만을 바라겠느냐, 그게 아니잖느냐? 비록 네가 선택하지 않았어도, 네가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잘 다뤄 나가야 하고 잘 받들어 모실 줄 알아야 한다』고 그의 소신을 말했다.

화제를 바꾸었다. 『도대체 세일즈의 역사는 얼마쯤 될까?』라고 물으려 했는데 그가 먼저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세일즈맨이 누군지 아느냐』고 물었다. 『선생님이 아니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며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다(그런 면에서 보면 석가나 마호메트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인간은 누구나 세일즈맨이지만 예수야말로 가장 위대한 세일즈맨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하느님을 위한 세일즈맨이고, 크리스천은 예수를 위한 세일즈맨이라 했다.

『정치가는 정치 이념을 팔고, 사상가는 사상을 팔고, 화가는 그림을, 음악가는 음악을 팔죠. 어쩌면 요즘은 모든 예술 행위마저도 판매하는 시대가 됐다고 봅니다』

「신념을 옮겨 심는 작업」이 판매

이제 세상은 모든 게 「판매」로 통하는 시대다. 예전엔 「외무부」라 지칭했지만 이제는 「외교통상부」로 장사꾼 냄새가 풍기는 이름으로 간판마저 바꾸었다.

이렇게 「판매」는 한 나라의 국운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것인데 우리나라는 「士農工商(사농공상)」의 낡은 인습에 젖은 탓인지 「판매」가 중요하다고 말은 그럴 듯하게 하지만 아직도 대기업에서는 기획조정실이니 총무과, 인사과 같은 윤기(?) 나는 부서에 人材가 몰리고 영업부로 발령이라도 나면 아예 물먹은 것으로 치부되는 게 오늘의 실정이다.

『판매란 무엇입니까? 진정한 판매란 「파는 사람으로부터 사는 사람에게 신념을 옮겨 심는 작업」입니다. 「신념을 옮겨 심는 작업」 이게 중요한 대목입니다』

그가 예수를 가장 위대한 세일즈맨에 비유한 것을 이해할 만했다. 그가 30여 년 동안 국내외 수백만 명에게 강조하는 것은 바로 信念이다. 「하면 된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 그런 신념에 충만한 사람은 반드시 이루어 내고 만다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그는 단 한 번도 세일즈에 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실전에서 배우고, 책을 읽고 연구하고, 배우면서 강의했다. 심지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대로 못 한 적도 있었다.

1979년 1월, 3일 동안의 「프로페셔널 세일즈맨십 세미나」를 개최해 지금까지 113회나 열었고, 이때 그는 잠시 외도(?)를 해 KBS 라디오에 1년간 게스트로 고정 출연하게 되고 그게 인연이 되어 뒷날 1991년 3월 SBS 개국 당시 샐러리맨 대상 프로그램인 「출발 성공시대」 (매일 새벽 6:00~7:00) 진행을 3년 반 동안 맡게 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위시한 서부 지방 순회 강연을 1983년부터 올해로 만 20년째 해 오고 있는데 그의 강의는 언제나 유료(100달러)인데도 300~500석의 객석은 언제나 만원이다. 주로 동포들이다. 그의 강의가 인기 있는 비결은 「사람을 기분 좋게 설득시키는 기술」에 있는 것 같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그의 매력이자 독특한 카리스마가 아닌가 한다.

『세일즈맨의 70~80%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만뒀다고 하는데 저는 그때마다 이렇게 얘길해 줍니다.

「내가 여러분 앞에서 강의하는 게 적성에 맞아서 하는 줄 아십니까? 지금 당장 사우나하고 푹 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우리는 하기 싫지만 해야 할 것이 더 많습니다」라고.

괴테는 「모든 동물은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만이 유독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동물」이라 했습니다. 「하고 싶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하기 싫지만 해야 할 것」 이 두 개의 얼굴을 가진 게 인간입니다. 어째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있느냐. 어째 꼭 네 적성대로 사느냐?고 되물어 봅니다』

「줏대 안 찾고 파는 게 낫다」

한번은 필드 트레이닝에 따라나선 후배에게 「논쟁을 하지 말라」는 교육을 시키며 처음 대하는 고객과 대화할 때는 공동의 관심사를 꺼내든가 가벼운 일상사의 얘기로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상품에 관한 이야기로 유도하는 게 필요하다는 말을 해주었다고 한다.

『예컨대 고객이 ○○신문을 본다면 「선생님, 저도 그 신문을 봅니다」, 또 안 본다면 「요새 신문 뭐 볼 게 있습니까? 짜증밖에 더 납니까」라든지, 주말엔 집에서 쉰다고 하면 「예, 선생님 일주일에 한 번쯤은 집에서 푹 쉬는 게 건강에 좋습니다」라고 맞장구를 쳐 줘야 한다고 했더니 후배는 「선배님은 줏대도 없습니까?」 하며 대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야 이놈아! 줏대 찾고 못 파는 것 보다 줏대 안 찾고 파는 게 낫다. 어찌 너는 줏대만 찾느냐」고 했습니다』

그와의 장장 세 시간여의 인터뷰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다.

자리를 일어서며 응접실에 걸린 액자에 눈길이 갔다.

「축록자 불고토(逐鹿者不顧兎)」

『사슴을 쫓는 사람은 토끼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죠』

―결국 한 우물을 파라는 뜻이군요.

『그런 뜻도 있고, 큰 것을 노리는 사람은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20년째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강의를 해오는 동안 지난 1월 처음으로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누군가 「꿈이 뭡니까」라고 묻더군요. 이 나이에 제가 무슨 별난 꿈이 있겠습니까만 이렇게 얘길 했습니다. 「먼 훗날 生을 마칠 즈음에 내가 돈을 많이 벌어 자식에게 몇백, 몇천만 달러씩 주고, 손자에게 빌딩을 사 주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후손들이 「할아버지 얘기 좀 해줘요」 할 때 「네 할아버지는 10代는 이렇게 살았고, 20~30代는 이렇게… 60~70代는 이렇게 살았노라」 이런 얘기를 해서 후손들이 들어도 또 듣고 싶어하는 멋진 「Self-Story」 하나쯤은 만들어 보는 것이 내 꿈이라고 했더니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더군요』

그리곤 겸연쩍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