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력화한 외교력이 절실한 이유
지구상에서 韓國처럼 여러 가지 측면에서 특이한 外交環境에 놓여 있는 나라는 없다.
우선 한반도는 앞으로 세계를 이끌어갈 주요 4개국, 미국·일본·중국·러시아의 이해와 세력이 교차하는 지역이다. 한반도는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할 역동적 東아시아에서 海洋勢力과 大陸勢力의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런 지정학적 여건으로 인하여 한반도는 우리가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기에 따라 동아시아 平和와 繁榮의 중심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경우 不安定과 混亂에 빠져들 수도 있다. 지난 세기 이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 구도는 「中華圈(중화권) 一極 體制(일극 체제)」에서 4대국을 중심으로 한 多極體制(다극체제)로 변모했다. 이런 환경변화는 우리에게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다극체제 안에서의 균형 있는 運身(운신)은 매우 힘들다. 하지만 세련된 外交力으로 힘의 균형상태를 잘 활용한다면 그 열매는 달콤할 것이다. 한반도를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의 중심국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는 脫冷戰(탈냉전)이 시작된 이래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冷戰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는 세계 유일의 分斷國이다. 우리 외교정책에는 다른 국가의 외교정책에는 없는 統一外交(통일외교)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 외교는 한반도 平和共存體制를 구축하고, 상호교류와 협력증진을 통해 궁극적인 통일을 이루어 가야 한다. 독일 통일과정에서 보았듯이, 한반도의 통일은 우리 뜻대로 한국화시킬 수가 없다.
통일에 따른 막대한 비용도 우리 경제력만으로는 감내할 수 없다. 한반도 통일은 주변국가들의 성원과 축복이 없으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주변국들이 한반도 통일을 이해하고 돕도록 이끌어 내는 책임이 한국 외교의 어깨에 걸려 있다.
우리나라처럼 對外(대외) 依存度(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드물다.
밖으로 나가야만 살 수 있는 운명
2001년 말 우리의 무역은 수출 1504억달러, 수입 1411억 달러로 총 2915억 달러에 달하여 국민총생산 4222억 달러의 69%를 점하는 매우 높은 무역의존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야만 살 수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개발의 어려운 고비마다 밖으로 밖으로 나가면서 국운을 개척하였던 역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경제외교는 우리 생존에 필수적인 원유, 식량 및 원자재를 수입하고, 생산된 제품을 수출하기 위한 해외시장 개척을 책임져야 한다.
이처럼 21세기의 한국 외교는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脫냉전 이후 국제환경은 새로운 국제질서의 패러다임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채 매우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9·11 테러 사태 이후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선진국 진입과 통일이라는 양대 과제를 달성해야 할 한국 외교의 항로는 결코 순탄하지 않다. 21세기 우리 외교환경에 적합한 外交戰略을 짜고 이를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외교 인프라를 정비하는 일은 시급하다.
외교는 다른 어떤 행정분야보다도 오랜 기간을 거쳐 양성되는 전문 인력에 대한 의존이 심하다. 外交需要(외교수요)를 정확히 읽고, 인재를 꾸준히 양성해야 한다. 과연 외교 인력이 세계의 빠른 변화에 탄력 있게 대응하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할 때다.
본격적인 多者外交 시대를 연 한국
외교 인력의 적정성을 판단하려면, 탈냉전 이후 우리의 외교 수요가 지난 10여 년간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살펴봐야 한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걸친 冷戰의 해체 이후 우리 외교에는 새로운 수요가 급증하였다.
첫째, 냉전시기 우리에게 문호를 닫아걸었던 共産圈의 舊소련, 중국, 東歐(동구), 인도차이나 국가들이 1990년대 초 국교 정상화를 통해 우리 외교 반경에 새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舊소련, 유고슬라비아 등의 해체로 다수의 新生國이 생겼다.
우리 수교국가 수는 1980년대 말 134개국에서 2002년 현재 186개국으로 비약적인 신장을 보였다. 이제 쿠바, 시리아 등 극히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세계의 모든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 외교는 全方位外交 時代로 진입했다. 이는 한국이 맺은 兩者(양자) 조약 체결 동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냉전시대의 경우 양자 조약 체결 건수는 1970년대 329건, 1980년대 326건이었으나, 탈냉전 이후 1990년대는 514건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둘째, 한국은 1992년 유엔에 가입함으로써 본격적인 多者(다자)外交 시대를 열었다. 그 이전에는 옵서버로 유엔 활동에 참여했기 때문에 상당한 제약이 있었다. 한국은 유엔가입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安全保障理事會(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 이사국(1996~1997), 經濟社會理事會(경제사회이사회) 이사국(1993~1995, 1997~1999, 2001~2003)으로 활동하면서 유엔 무대에서 우리의 위상을 확대시켰다.
環境, 테러, 人權, 貧困, 超國境犯罪, 軍縮, 小型武器 규제, 에이즈 등 汎世界的 問題의 대두는 다자외교의 영역 확장과 중요성 증대를 초래하였고, 이에 따른 우리의 외교적 대응을 요청하고 있다.
셋째, 경제의 世界化에 따라 우리 무역액도 지난 10년간 비약적으로 신장하였다. 우리 貿易高는 1991년 1533억 달러에서 2001년 2915억 달러로 2배 정도 늘었다. 한국은 OECD 회원국으로 이제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外國 投資의 유치 및 관리도 주요한 경제외교 활동 대상이 되었다.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産業構造調整(산업구조조정)으로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함으로써 우리 외교에 海外進出 企業의 보호라는 새로운 과제가 부과되었다. 무역 증대와 함께 通商紛爭(통상분쟁)이 증가하고 해외투자 증대에 따라 投資紛爭도 늘어나게 되어 이를 둘러싼 對外交涉의 總括·調整 窓口로서 외교부의 임무도 확대되었다.
외교 인프라 냉전 때보다 後退
넷째, 탈냉전 후 地域主義의 강화도 우리 외교의 地平을 확대하고 있다. EU(유럽지역), NAFTA(북미지역), MERCOSUR(남미지역), AFTA(동남아지역) 등을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地域主義는 동아시아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APEC과 「ASEAN+3」는 각각 태평양 연안과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地域協力을 선도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의 地域統合 진전은 우리 경제와 안보에 활동 공간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우리 외교의 中長期 戰略의 중요한 요소이다.
다섯째, 국민소득의 향상에 따라 우리 海外 旅行客 수도 지난 10년 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1991년 99만 건에 불과했던 旅券發給 건수가 2001년 240만 건에 달하고, 海外 出國者 수도 1991년 265만 명에서 2001년 638만 명을 넘어서 2.4배에 달하는 높은 신장률을 보였다. 지난해 신문 지상을 장식했던 중국에서의 痲藥犯(마약범) 死刑事件, 영국에서의 유학생 살해사건 등은 지금 이 시각에도 지구촌 구석구석을 여행 중인 우리 국민들에게 일어나는 다양한 領事問題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지난 세기 민족수난을 겪으면서 600여만 명에 이르는 海外同胞를 가지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있어서 이들을 네트워크化해 소중한 外交資産으로 엮는 일도 우리 외교가 해야 한다.
脫冷戰을 계기로 양적으로 증가하고 질적으로 다양화한 外交需要에 대처하기 위한 우리의 외교 인프라는 제대로 구축돼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우리 외교 인프라는 冷戰時代(냉전시대) 때보다 더 후퇴했거나, 비슷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냉전 시대의 우리 외교 인프라가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국가들보다 劣惡(열악)했던 점을 감안하면, 매우 우려할 상황이다.
외교 인프라에서 가장 중요한 외교 인력은 1991년 1729명에서 2001년 1519명으로 200여 명이 줄었다. 외교부 산하에 通商交涉本部(통상교섭본부)를 설치하면서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에서 전입한 50여 명의 인력을 감안하면 실질 감소 인원은 250명으로 늘어난다.
외교부 본부의 57개 課(과) 단위 부서는 과장 포함 직원 규모가 5~6명에 불과하여 대통령령으로 제정된 「행정기관의 조직과 정원에 관한 통칙」이 중앙행정기관과 단위 부서의 정원으로 정한 12명을 훨씬 밑돌고 있다.
일본 外務省(외무성)의 경우 課 인원이 통상 25~40명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외교부 본부의 인력이 얼마나 빈약한 수준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외교관 3~4명이 운영하는 절름발이 공관들
외교부의 職制(직제)도 다양한 외교수요를 감당하는 데 부적절하다.
現 외교부 직제는 통상교섭본부 발족에도 불구하고 10년 전 수준에 머물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감축된 것과 마찬가지다. 외교부 편제는 1991년 「2室 10局 59課」였으나, 현재 「2室 11局 57課」에 불과하다.
유엔 가입 이전에 존재하던 國際機構局(국제기구국)이 오히려 정식 유엔 회원국이 된 후 축소되어 外交政策室(외교정책실)에 편입됐다. 그리고 세계 대부분의 외교부가 주변 국가에 대해서는 2~3개의 局을 두어 집중적으로 다루는 추세라는 점에서, 일본·중국·동남아·오세아니아를 관장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局도 시급히 확대 개편되어야 한다.
열악한 인력 사정은 在外公館(재외공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재외공관의 경우 평균 직원 수가 6명이며, 전체 공관 수의 약 60%에 달하는 70여 개 공관이 3~4명의 인원으로 운영 되고 있다. 대다수 공관에서 직원들은 여러 분야를 동시에 담당해 외교업무 수행에 큰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재외공관이 政務(정무) 經濟(경제) 領事(영사) 文化(문화) 總務(총무) 등의 기본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7~8명의 인력이 基本編制로서 구비되어야 한다. 서울 주재 各國 大使館들의 인원 현황 <표 1>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국 공관에 최소한 10명 이상의 직원을 배치하여 체계적으로 外交機能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 외교의 神經網(신경망)인 재외공관 수도 1997년 145개에서 현재 125개로 20개가 감축되었다.
재외공관망의 축소는 1997년 경제위기에 따른 「작은 정부」 구현방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국가들, 예컨대 캐나다는 131개, 브라질 162개, 멕시코 136개, 네덜란드 145개, 그리스 145개, 이탈리아 250개, 벨기에 129개의 공관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한 만큼 빨리 適正 水準으로 공관망을 회복시켜야 한다.
재외 공관망의 축소는 공관폐쇄에 따른 예산 節減 效果보다 훨씬 큰 副作用을 유발한다. 공관 폐쇄는 공관에 크게 의존하는 中小企業들의 輸出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공관 폐쇄가 非우호적 措置(조치)로 간주돼 공관이 閉鎖되는 국가와의 관계를 손상시킨다.
經濟的 側面에서만 봐도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서 공관을 폐쇄했던 국가에 대한 중소기업 수출 가운데 90여 개 품목이 수출이 단절됐고, 1억 달러 이상의 수출액이 감소되었다.
우리 外交 人力이 어느 정도 부족한지를 알기 위해 우리와 비슷한 與件에 있는 국가들과 한번 비교해 보자. <표 2>에서 보듯이 우리 외교 인력 1519명은 경제규모, 무역규모 면에서 우리와 비슷한 수준인 호주 1960명, 캐나다 4702명, 네덜란드 3051명, 브라질 3152명 등에 비해 현저히 적다.
일본 외무성 1970년대 대비 두 배 증원
또 하나의 指標인 「외교 인력 1人當 人口數」에서 한국은 <표 3>에서와 같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열악한 형편이다. 외교부의 고위직도 다른 국가에 비해 숫자가 적기 때문에 외교활동에 지장을 주고 있다.
우리의 경우 高位職이 적어 상대국의 韓國訪問에 상응하는 訪問外交가 불가능하여 상대국의 외교적 불만을 야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주요 국가들이 탈냉전시대의 복잡한 외교환경에 대처하기 위하여 외교인력 擴充(확충)에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우리가 얼마나 세계적 趨勢(추세)에 逆行(역행)하고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선 가까운 이웃인 日本은 行政改革(행정개혁)의 일환으로 중앙 부처의 統廢合을 통해 대대적 인원 감축을 단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外務省의 경우 1970년 대비 두 배의 인력을 증원하였다.
최근 經濟危機를 겪은 말레이시아, 태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외교부 인력만큼은 감축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증가를 허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國務部 인력은 1993년 대비 약 8% 증가한 반면, 연방정부 인력은 11%가 감축되었다.
캐나다는 1990년대 초반 이후 점진 감축하던 외교 인력을 1998년 이후 다시 再증원하여 1990년대 초반의 인력 수준으로 복귀하였다. 영국,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등 유럽 국가들의 경우에도 긴축정책에 따라 정부 인력을 감축하고 있으나, 외교부 인력은 現狀(현상) 維持, 小幅 增加(소폭 증가) 또는 상대적으로 적은 감축을 허용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탈냉전 이후 外交需要가 증가하였고 이에 따른 人力擴充이 불가피하다는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다.
요즈음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특정 국가의 軍事力, 經濟力과 같은 밖으로 드러나는 힘(hard power) 못지 않게 그 나라의 정치·문화·외교·사회면에 있어서의 경쟁력으로 대표되는 보이지 않는 힘(soft power)이 중요성을 가진다.
물론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경제력과 군사력의 신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애써 가꾼 국력도 국제사회에서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外交力(외교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우리 능력에 맞는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고 바로 國益 損傷(국익 손상)으로 연결된다.
우리나라처럼 국제사회에서의 位相(위상)이 국가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역사상 수많은 外侵을 받는 시련을 겪으면서도 民族自尊을 지켜 왔다. 그런 어려운 경험을 통해, 外交의 失敗가 어떤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잘 알고 있다.
외교의 기초체력을 다져야 한다
우리 외교의 複雜多岐(복잡다기)한 환경과 새로운 외교수요를 고려할 경우 우리 외교 인력은 현재 인력의 두 배 수준으로 증가되어야 한다. 외교 인력의 양성은 하루 아침에 되지 않고, 급격한 인력충원은 장기적으로 인사운영 시스템 전체에 문제를 야기하게 되므로, 5~10년의 장기계획을 마련하여 지금부터 착실히 추진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유럽 국가들은 실효적이고 성공적인 외교를 위해서는 외교관들이 해외에서 권위 있게 국가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맥락에서 유럽 국가들은 「외교정책의 우위(das Primat der Aussenpolitik)」라는 원칙下에 외교부에 다른 부처에 비해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여 왔다. 자국 내에서 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외교가 상대방에게 대접받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이번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한국팀의 飛躍的 成長이 증명하였듯이 어느 분야든 세계 무대에서 통하려면 基礎體力이 튼튼해야 한다. 우리 국력이 신장될수록 국제 사회의 책무도 커지고 이를 수행하는 외교적 역량도 커져야 한다.●
지구상에서 韓國처럼 여러 가지 측면에서 특이한 外交環境에 놓여 있는 나라는 없다.
우선 한반도는 앞으로 세계를 이끌어갈 주요 4개국, 미국·일본·중국·러시아의 이해와 세력이 교차하는 지역이다. 한반도는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할 역동적 東아시아에서 海洋勢力과 大陸勢力의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런 지정학적 여건으로 인하여 한반도는 우리가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기에 따라 동아시아 平和와 繁榮의 중심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경우 不安定과 混亂에 빠져들 수도 있다. 지난 세기 이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 구도는 「中華圈(중화권) 一極 體制(일극 체제)」에서 4대국을 중심으로 한 多極體制(다극체제)로 변모했다. 이런 환경변화는 우리에게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다극체제 안에서의 균형 있는 運身(운신)은 매우 힘들다. 하지만 세련된 外交力으로 힘의 균형상태를 잘 활용한다면 그 열매는 달콤할 것이다. 한반도를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의 중심국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는 脫冷戰(탈냉전)이 시작된 이래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冷戰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는 세계 유일의 分斷國이다. 우리 외교정책에는 다른 국가의 외교정책에는 없는 統一外交(통일외교)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 외교는 한반도 平和共存體制를 구축하고, 상호교류와 협력증진을 통해 궁극적인 통일을 이루어 가야 한다. 독일 통일과정에서 보았듯이, 한반도의 통일은 우리 뜻대로 한국화시킬 수가 없다.
통일에 따른 막대한 비용도 우리 경제력만으로는 감내할 수 없다. 한반도 통일은 주변국가들의 성원과 축복이 없으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주변국들이 한반도 통일을 이해하고 돕도록 이끌어 내는 책임이 한국 외교의 어깨에 걸려 있다.
우리나라처럼 對外(대외) 依存度(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드물다.
밖으로 나가야만 살 수 있는 운명
2001년 말 우리의 무역은 수출 1504억달러, 수입 1411억 달러로 총 2915억 달러에 달하여 국민총생산 4222억 달러의 69%를 점하는 매우 높은 무역의존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야만 살 수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개발의 어려운 고비마다 밖으로 밖으로 나가면서 국운을 개척하였던 역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경제외교는 우리 생존에 필수적인 원유, 식량 및 원자재를 수입하고, 생산된 제품을 수출하기 위한 해외시장 개척을 책임져야 한다.
이처럼 21세기의 한국 외교는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脫냉전 이후 국제환경은 새로운 국제질서의 패러다임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채 매우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9·11 테러 사태 이후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선진국 진입과 통일이라는 양대 과제를 달성해야 할 한국 외교의 항로는 결코 순탄하지 않다. 21세기 우리 외교환경에 적합한 外交戰略을 짜고 이를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외교 인프라를 정비하는 일은 시급하다.
외교는 다른 어떤 행정분야보다도 오랜 기간을 거쳐 양성되는 전문 인력에 대한 의존이 심하다. 外交需要(외교수요)를 정확히 읽고, 인재를 꾸준히 양성해야 한다. 과연 외교 인력이 세계의 빠른 변화에 탄력 있게 대응하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할 때다.
본격적인 多者外交 시대를 연 한국
외교 인력의 적정성을 판단하려면, 탈냉전 이후 우리의 외교 수요가 지난 10여 년간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살펴봐야 한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걸친 冷戰의 해체 이후 우리 외교에는 새로운 수요가 급증하였다.
첫째, 냉전시기 우리에게 문호를 닫아걸었던 共産圈의 舊소련, 중국, 東歐(동구), 인도차이나 국가들이 1990년대 초 국교 정상화를 통해 우리 외교 반경에 새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舊소련, 유고슬라비아 등의 해체로 다수의 新生國이 생겼다.
우리 수교국가 수는 1980년대 말 134개국에서 2002년 현재 186개국으로 비약적인 신장을 보였다. 이제 쿠바, 시리아 등 극히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세계의 모든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 외교는 全方位外交 時代로 진입했다. 이는 한국이 맺은 兩者(양자) 조약 체결 동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냉전시대의 경우 양자 조약 체결 건수는 1970년대 329건, 1980년대 326건이었으나, 탈냉전 이후 1990년대는 514건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둘째, 한국은 1992년 유엔에 가입함으로써 본격적인 多者(다자)外交 시대를 열었다. 그 이전에는 옵서버로 유엔 활동에 참여했기 때문에 상당한 제약이 있었다. 한국은 유엔가입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安全保障理事會(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 이사국(1996~1997), 經濟社會理事會(경제사회이사회) 이사국(1993~1995, 1997~1999, 2001~2003)으로 활동하면서 유엔 무대에서 우리의 위상을 확대시켰다.
環境, 테러, 人權, 貧困, 超國境犯罪, 軍縮, 小型武器 규제, 에이즈 등 汎世界的 問題의 대두는 다자외교의 영역 확장과 중요성 증대를 초래하였고, 이에 따른 우리의 외교적 대응을 요청하고 있다.
셋째, 경제의 世界化에 따라 우리 무역액도 지난 10년간 비약적으로 신장하였다. 우리 貿易高는 1991년 1533억 달러에서 2001년 2915억 달러로 2배 정도 늘었다. 한국은 OECD 회원국으로 이제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外國 投資의 유치 및 관리도 주요한 경제외교 활동 대상이 되었다.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産業構造調整(산업구조조정)으로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함으로써 우리 외교에 海外進出 企業의 보호라는 새로운 과제가 부과되었다. 무역 증대와 함께 通商紛爭(통상분쟁)이 증가하고 해외투자 증대에 따라 投資紛爭도 늘어나게 되어 이를 둘러싼 對外交涉의 總括·調整 窓口로서 외교부의 임무도 확대되었다.
외교 인프라 냉전 때보다 後退
넷째, 탈냉전 후 地域主義의 강화도 우리 외교의 地平을 확대하고 있다. EU(유럽지역), NAFTA(북미지역), MERCOSUR(남미지역), AFTA(동남아지역) 등을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地域主義는 동아시아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APEC과 「ASEAN+3」는 각각 태평양 연안과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地域協力을 선도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의 地域統合 진전은 우리 경제와 안보에 활동 공간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우리 외교의 中長期 戰略의 중요한 요소이다.
다섯째, 국민소득의 향상에 따라 우리 海外 旅行客 수도 지난 10년 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1991년 99만 건에 불과했던 旅券發給 건수가 2001년 240만 건에 달하고, 海外 出國者 수도 1991년 265만 명에서 2001년 638만 명을 넘어서 2.4배에 달하는 높은 신장률을 보였다. 지난해 신문 지상을 장식했던 중국에서의 痲藥犯(마약범) 死刑事件, 영국에서의 유학생 살해사건 등은 지금 이 시각에도 지구촌 구석구석을 여행 중인 우리 국민들에게 일어나는 다양한 領事問題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지난 세기 민족수난을 겪으면서 600여만 명에 이르는 海外同胞를 가지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있어서 이들을 네트워크化해 소중한 外交資産으로 엮는 일도 우리 외교가 해야 한다.
脫冷戰을 계기로 양적으로 증가하고 질적으로 다양화한 外交需要에 대처하기 위한 우리의 외교 인프라는 제대로 구축돼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우리 외교 인프라는 冷戰時代(냉전시대) 때보다 더 후퇴했거나, 비슷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냉전 시대의 우리 외교 인프라가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국가들보다 劣惡(열악)했던 점을 감안하면, 매우 우려할 상황이다.
외교 인프라에서 가장 중요한 외교 인력은 1991년 1729명에서 2001년 1519명으로 200여 명이 줄었다. 외교부 산하에 通商交涉本部(통상교섭본부)를 설치하면서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에서 전입한 50여 명의 인력을 감안하면 실질 감소 인원은 250명으로 늘어난다.
외교부 본부의 57개 課(과) 단위 부서는 과장 포함 직원 규모가 5~6명에 불과하여 대통령령으로 제정된 「행정기관의 조직과 정원에 관한 통칙」이 중앙행정기관과 단위 부서의 정원으로 정한 12명을 훨씬 밑돌고 있다.
일본 外務省(외무성)의 경우 課 인원이 통상 25~40명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외교부 본부의 인력이 얼마나 빈약한 수준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외교관 3~4명이 운영하는 절름발이 공관들
외교부의 職制(직제)도 다양한 외교수요를 감당하는 데 부적절하다.
現 외교부 직제는 통상교섭본부 발족에도 불구하고 10년 전 수준에 머물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감축된 것과 마찬가지다. 외교부 편제는 1991년 「2室 10局 59課」였으나, 현재 「2室 11局 57課」에 불과하다.
유엔 가입 이전에 존재하던 國際機構局(국제기구국)이 오히려 정식 유엔 회원국이 된 후 축소되어 外交政策室(외교정책실)에 편입됐다. 그리고 세계 대부분의 외교부가 주변 국가에 대해서는 2~3개의 局을 두어 집중적으로 다루는 추세라는 점에서, 일본·중국·동남아·오세아니아를 관장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局도 시급히 확대 개편되어야 한다.
열악한 인력 사정은 在外公館(재외공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재외공관의 경우 평균 직원 수가 6명이며, 전체 공관 수의 약 60%에 달하는 70여 개 공관이 3~4명의 인원으로 운영 되고 있다. 대다수 공관에서 직원들은 여러 분야를 동시에 담당해 외교업무 수행에 큰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재외공관이 政務(정무) 經濟(경제) 領事(영사) 文化(문화) 總務(총무) 등의 기본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7~8명의 인력이 基本編制로서 구비되어야 한다. 서울 주재 各國 大使館들의 인원 현황 <표 1>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국 공관에 최소한 10명 이상의 직원을 배치하여 체계적으로 外交機能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 외교의 神經網(신경망)인 재외공관 수도 1997년 145개에서 현재 125개로 20개가 감축되었다.
재외공관망의 축소는 1997년 경제위기에 따른 「작은 정부」 구현방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국가들, 예컨대 캐나다는 131개, 브라질 162개, 멕시코 136개, 네덜란드 145개, 그리스 145개, 이탈리아 250개, 벨기에 129개의 공관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한 만큼 빨리 適正 水準으로 공관망을 회복시켜야 한다.
재외 공관망의 축소는 공관폐쇄에 따른 예산 節減 效果보다 훨씬 큰 副作用을 유발한다. 공관 폐쇄는 공관에 크게 의존하는 中小企業들의 輸出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공관 폐쇄가 非우호적 措置(조치)로 간주돼 공관이 閉鎖되는 국가와의 관계를 손상시킨다.
經濟的 側面에서만 봐도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서 공관을 폐쇄했던 국가에 대한 중소기업 수출 가운데 90여 개 품목이 수출이 단절됐고, 1억 달러 이상의 수출액이 감소되었다.
우리 外交 人力이 어느 정도 부족한지를 알기 위해 우리와 비슷한 與件에 있는 국가들과 한번 비교해 보자. <표 2>에서 보듯이 우리 외교 인력 1519명은 경제규모, 무역규모 면에서 우리와 비슷한 수준인 호주 1960명, 캐나다 4702명, 네덜란드 3051명, 브라질 3152명 등에 비해 현저히 적다.
일본 외무성 1970년대 대비 두 배 증원
또 하나의 指標인 「외교 인력 1人當 人口數」에서 한국은 <표 3>에서와 같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열악한 형편이다. 외교부의 고위직도 다른 국가에 비해 숫자가 적기 때문에 외교활동에 지장을 주고 있다.
우리의 경우 高位職이 적어 상대국의 韓國訪問에 상응하는 訪問外交가 불가능하여 상대국의 외교적 불만을 야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주요 국가들이 탈냉전시대의 복잡한 외교환경에 대처하기 위하여 외교인력 擴充(확충)에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우리가 얼마나 세계적 趨勢(추세)에 逆行(역행)하고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선 가까운 이웃인 日本은 行政改革(행정개혁)의 일환으로 중앙 부처의 統廢合을 통해 대대적 인원 감축을 단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外務省의 경우 1970년 대비 두 배의 인력을 증원하였다.
최근 經濟危機를 겪은 말레이시아, 태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외교부 인력만큼은 감축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증가를 허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國務部 인력은 1993년 대비 약 8% 증가한 반면, 연방정부 인력은 11%가 감축되었다.
캐나다는 1990년대 초반 이후 점진 감축하던 외교 인력을 1998년 이후 다시 再증원하여 1990년대 초반의 인력 수준으로 복귀하였다. 영국,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등 유럽 국가들의 경우에도 긴축정책에 따라 정부 인력을 감축하고 있으나, 외교부 인력은 現狀(현상) 維持, 小幅 增加(소폭 증가) 또는 상대적으로 적은 감축을 허용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탈냉전 이후 外交需要가 증가하였고 이에 따른 人力擴充이 불가피하다는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다.
요즈음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특정 국가의 軍事力, 經濟力과 같은 밖으로 드러나는 힘(hard power) 못지 않게 그 나라의 정치·문화·외교·사회면에 있어서의 경쟁력으로 대표되는 보이지 않는 힘(soft power)이 중요성을 가진다.
물론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경제력과 군사력의 신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애써 가꾼 국력도 국제사회에서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外交力(외교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우리 능력에 맞는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고 바로 國益 損傷(국익 손상)으로 연결된다.
우리나라처럼 국제사회에서의 位相(위상)이 국가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역사상 수많은 外侵을 받는 시련을 겪으면서도 民族自尊을 지켜 왔다. 그런 어려운 경험을 통해, 外交의 失敗가 어떤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잘 알고 있다.
외교의 기초체력을 다져야 한다
우리 외교의 複雜多岐(복잡다기)한 환경과 새로운 외교수요를 고려할 경우 우리 외교 인력은 현재 인력의 두 배 수준으로 증가되어야 한다. 외교 인력의 양성은 하루 아침에 되지 않고, 급격한 인력충원은 장기적으로 인사운영 시스템 전체에 문제를 야기하게 되므로, 5~10년의 장기계획을 마련하여 지금부터 착실히 추진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유럽 국가들은 실효적이고 성공적인 외교를 위해서는 외교관들이 해외에서 권위 있게 국가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맥락에서 유럽 국가들은 「외교정책의 우위(das Primat der Aussenpolitik)」라는 원칙下에 외교부에 다른 부처에 비해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여 왔다. 자국 내에서 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외교가 상대방에게 대접받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이번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한국팀의 飛躍的 成長이 증명하였듯이 어느 분야든 세계 무대에서 통하려면 基礎體力이 튼튼해야 한다. 우리 국력이 신장될수록 국제 사회의 책무도 커지고 이를 수행하는 외교적 역량도 커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