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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황지우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김형사에게>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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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김형사에게

                                                                황지우

  이제 김형사와 나는 격이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아내도 처음처럼 놀라거나 경계하지 않고 커피를 타오고, 우리 아이 장난감까지 사들고 들어오는 김형사에게 어떤 “인간적인 것”을 확인한다. 그는 늙으신 어머님께도 깍듯이 인사한다. 그 인간적인 것 때문일까. 그와 나는 좀처럼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다만 “제 1 공화국”에서 “최불암씨 연기”가 좋았다고는 말한 적이 있다.

  연기? 우리도 연기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김 선생님? 내가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는 그것에 그는 특히 만족한 것 같다. (그가, 크게, 웃었으니까) 나도 따라 웃으며 “요즘은 어떻게 지내냐”는 그의 물음에 답한다. 그걸로 생활이 되냐고 그는 묻는다. 나는 답한다. 몸은 좀 어떠냐고 묻는다. 나는 답한다. 그리고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살아온 이야기들을 그는 한다.

  그는 이북 황해도 지주 출신이라고 한다. 어렸을 적 내무서원 사람들이 집에 와서 사람들을 끌어가는 것을 보았고, 그는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았고, 어머님과 동생들과 월남했고, 어렵게 살았고, 해병대를 제대했고, 이 길로 뛰어들었는데, 김형사가 사람들 집을 방문할 때 그러니까 사람들이 꺼려하는 이유를 그는 안다고도 말했다. 그는 예절 바르고 잘 웃고 어쩌면 사물에 대한 연민도 있어 뵌다. 나는 언제라도 그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도 박봉이지만(!) 언제 밖에서 쇠주나 한잔 하자고 하고 갔다. 그가 간 뒤로 우리의 연기를 곰곰이 따져보는 버릇을 이제 나는 없앤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황지우의 시는 별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가 “나는 말할 수 없음으로 양식을 파괴한다. 아니 파괴를 양식화 한다”고 했을 때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물론 나중의 일이지만) 그(황지우) 정도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의 ‘양식’ 너머에 있는 ‘사람’에 놀랬다. 그의 인간미를 직접 느껴본 적은 없지만, 그가 사람 사이를 오가며 혀로 사람을 놀라게 할 위인은 못될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마치 괴짜 시인 박남철에 느끼는 생각과 비슷하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김형사에게」는 그의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파리떼」의 연장선에 있는 시다. 「파리떼」에 나오는 '崔교수'라는 이름은 姜萬吉 전 고려대 교수다. 姜교수는 지금 대통령 소속 ‘親日 반민족 행위진상규명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때 핍박받던 재야 지식인은 대학 총장(상지大)을 거쳐 장관 직급까지 올랐다. 세상이 변한 것이다.

  황지우는 1973년 유신 반대 시위에 연루, 강제 입영됐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얼마나 구속됐는지 모르겠지만), 1981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제적되어 서강대 철학과에 다시 입학했다.

  그의 첫 시집을 보면서 감춰진 많은 행간을 만나게 된다. 그의 ‘주석들’은 때로 비겁하고, 때로 연민으로 자기부정으로 가득하며 때로 솔직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일부러 솔직하려 한 그 ‘위선’까지도 생각해본다.

  어떤 면에선 거의 잡스럽다는, 수다스럽다는 느낌도 갖지만, 그것 자체로도 나름의 기지로 돌파하는 힘을 느끼게 만든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김형사에게」는 그다운 솔직함이 묻어있다. 서로가 뻔한 「연기」를 하는 각자의 삶을 그저 평평하게 응시할 뿐이다. 운동권 소설에서 보는 일방적 甲과 乙의 관계가 아니다. 동시대의 아픔으로 서로를 쓰다듬는다. 그것이 황지우의 매력이다. 
  하지만 변명같지만 이후 황지우의 시를 읽지 않았다. 「게 눈 속의 연꽃」은 읽다가 덮었고 이후 읽지 않았다. 안 봤다. 황지우가 추구하는 선 혹은 도는, 현실과의 사이에서 긴장력을 상실한 시인이 찾아간 현실 도피적이고 관념적인 세계일 뿐이라고, 굳이 지적하고 싶진 않다. 그저 나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1994년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가 1997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로 재직했다. 몇달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됐다. 그 역시 제도권 깊숙이 안착한 삶을 산 것이다.
  “문학의 은둔을 주장하던 내가 국립예술학교의 총장이 되면서 스스로 제도권으로 진입했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변절한 것이 아니냐고 묻지만 시대가 달라졌잖아요. 대항해야 할 대상 자체가 변했다는 거죠. 시인이 총장이 되고 광대가 장관(김명곤)이 된다는 것은 열린사회로 나아간다는 증거입니다”(2006년 5월16일 세계일보 기사 중에서)

입력 : 200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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